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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학.

박세욱. 2026. 5. 8. 11:50

315 실학.
1 일꾼.
객체의 일과 능력의 성과에서 번지수가 명확해야 한다.
이것이 사회의 발전을 이루는 생산성의 촉매이며 미래의 가치(질서)이다.
조직의 권세를 앞세워 숟가락 굿판 벌이지 말라는 것이다.
성과의 제대로 된 평가로 성취의 위치를 분명히 하는 풍토가 정의로운 사회가 된다.
그래야 무한의 창의적 생산성에 이른다.
조선의 신분제 개혁의 핵심이다.
이것이 객체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참여하는 주권적 사회가 된다.
선택의 방향에서 실용적 정의이다.
이미 역사의 학습이 있었음에도 권세의 치졸한 거취가 있다.
울타리의 관념적 선입견으로 일꾼을 침해하고 지배하여 실망시키는 못된 사사로움이다.
없으면서 있는 척 가식과 거짓의 잘못된 학습으로 진실과 정의를 훼손하는 철없는 가벼움이다.
말은 칭찬하라 하면서 쓸 만한 싹 잘라내는 사대부의 모순이다.
탐욕적 갓의 영역에 매몰되어 일꾼을 연장취급 말라는 것이다.
공과 상의 정의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학습의 전이이다.
정치는 공동체의 발전을 위해 객체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는 것이지 빼앗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 주가 아니라 생산적 사회가  주이다.
일과 능력이 검증되었으면 최상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언어의 거취를 배려해야 한다.
일의 마당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이것이 민생을 우선하는 실질적 생산성의 저변이 된다.
실학이다.
21세기는 통신과 지식의 시대이다.
일과 능력의 검증 없이 낮 바닥 허울과 말의 권모술수로 민심을 얻을 수 없다.
능력이 부족하면 일꾼에게 맡기고 물러나 청산에 머물러 편안하시라는 것이다.
2026.5.8일.
 
2 반도체와 국부.
예상치 못한 국부의 증가는 문질문명의 현상적 불평등을 해소하는 하늘의 기회라는 사고가 민주적 민생관이다.
소속의 특별한 경계적 치부는 21세기의 지식문명에서 사주팔자를 들이대는 대포이다.
민주주의의 제도는 생태적 순리의 합리적 가치를 우선한다.
공동체의 이성적 합리성이다.
기업의 실증적 현상을 초월한 막대한 국부의 창출에서 제도와 대의를 충족하는 공적(대중)기여의 시각이다.
물론 누구도 강제할 수 없는 기업경영의 사회적 책임에서 역할이다.
빈부의 격차와 기회의 차별에 기여하는 분배는 시장경제에서 올바른 경영이다.
한반도 미래의 투자이고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공공성의 기여이다.
분단의 해소를 위한 소통과 왕래에서 투자의 준비이고 가난하여 어둡고 어려운 곳을 배려하는 경영이다.
유니품을 앞세워 돈에 눈 돌아가는 일확천금의 기회주의는 차별적 우선주의이다.
오천만의 민생을 위한 국가의 추경도 수집 조원은 어렵다.
하나의 기업에서 일 년에 수 십 조가 불로소득으로 극소수의 전유물이 된다면 노동의 신분화는 극에 달할 것이다.
사단이 난다.
국민감정을 고려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현상의 인내가 바닥날 것이다.
한계를 넘는 분노는 무섭다.
절대 온전한 기업으로 생존할 수 없을 것이다.
작금의 반도체 산업의 부흥에서 기업 자력의 생산성이 아니었다는 것을 국민은 알고 있다.
미지적 생산성 창출이었다.
실존적 미지의 발현에 의한 국부의 부흥에서 경영의 양심을 말하는 것이다.

반도체의 새로운 가치에서 주권적 자본시장의 확장이 투자의 역력을 확장하여 AI 산업의 수요와 생산을 창출한 것이다.
AI와 주권적 자본의 새로운 도전에서 지배자본은 기득권 사수를 위해 버블론 등 반론으로 현상 사수의 공성전을 펼쳤다.
AI의 미래에서 반드시 필요한 자금력의 충족을 주권적 자본시장의 확장으로 뒷배가 되었다.
새로운 산업에서 자본의 병행적 조건을 자본시장의 확장으로 충족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의 뜻이다.
말뚝이 아니라 현상적 학습의 표피에 가려진 미지적 생산성 창출이다.
현상에 정체된 학습에서 상상의 범위를 초월하는 실존적 생산성이다.
작금의 반도체산업 부흥은 객체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류사적 관점으로 보아야 한다.
호주머니가 아니라 새로운 시간과 지식의 시각으로 한반도의 미래와 인륜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공익적 기여이다.
한반도 민족 모두의 기회가 되어야 하는 대의적 자금의 성격이다.
호주머니의 치부는 흩어져 힘없는 모래가 된다.
잔치는 하되 차별적 인륜의 해소와 한반도의 미래에 투자할 수 있도록 가능한 많이 남겨두어야 한다.
고추가루 호주머니는 번지수가 아니다.
2026.5.14.일.
 
3 인식의 변화.
세상은 변한다.
현상에 안주하는 소위 기득권의 고정관념은 차별적 저항을 모른다.
변화는 차별적 불편함과 똑 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학습의 지루함에 저항하는 생존적 본능이다.
유물론의 역사는 종교적 지배의 인륜적 차별과 사물적 근거가 부족한 초월적 존재의 지루함에 저항한 지식의 불편함이다.
현세는 유물론의 학습에 반론을 제기하는 실존과 실증을 공유하는 변화의 시간이다.
인식하여 의식하는 문명적 분별과 의식(암시)하여 인식하는 미지적 분별의 차이이다.
새로운 인식이 미지의 발현이며 새로운 질서이다.
학습은 시간의 충족으로 변화한다.
창조에 예속된 사물의 절대는 존재할 수 없으나 지적 인식의 관념이 절대를 만든다.
문명과 문화의 대세(시류)라는 관점이다.
대세에 예속된 의지를 순리라고 한다.
반론하면 창의적 자유의 예속이다.
인류는 현상(실증)된 세계와 준비(실존)세계의 접점에 있는 함수의 영역에 존재한다.
실증과 실존의 경계이다.
변화는 현상(대세)적 순리와 미지의 함수에서 인식(상상)의 경계를 초월하여 미지에 이르는 욕구와 욕망의 도전이다.
유물론은 실증적 학습의 영역에서 순리의 예속에 저항하는 지식의 권태가 함수의 경계를 넘은 변화이며 자유이다.

초자연적 현상에 예속된 유전적 시간의 한계에서 물질적 증거의 인식(의심)이다.
인류와 생태계는 끝임 없이 미지에 이르는 암시(존재의 의심)의 여행에 예속되어 있다.
시간의 학습에 의해 내제 된 인식의 의지이다.
사물의 분별에서 어제와 오늘은 분명하게 다르다.
유교문화의 명분적 관점에서 인간을 중심으로 한 신분적 인륜과 억압된 생산성의 개혁이 조선의 실학이다.
신분에 예속된 획일적 학습과 일과 능력을 우선하지 못하는 생산성의 불편함과 계급적 억압의 권태에서 지식의 저항이다.
21세기는 지식(데이터)시대이다.
역사(시간)에 의해 잠재된 인식의 증명이며 삶의 실체적 적용이다.
초자연적 현상의 기우가 아니라 증거 된 데이터에 의한 삶의 수단이고 방법이다.
학습은 의지가 아니라도 보고 듣고 느끼는 사사로운 일상의 체험으로 이루어진다.
생태적 본능이다.

어느 때나 생존의 사선에서 실학은 있었다.
21세기는 유물론의 증명되지 않은 사물의 미지적 의혹이 아니라 증명된 현상에서 논리적 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지식사회의 실학은 데이터에 의한 미지적 이해에서 실증적 도전이다.
데이터에 의한 창조와 초월적 존재의 이해이다.
실존(미지)을 지식(데이터)으로 실증(증명)하는 것이다.
유물론은 사물적 현상으로 실존의 의혹을 실증하려 하였다.
모두가 실학이나 학습과 시간에 의해 잠재된 시대적 인식의 관점이 다르다.
미래는 의혹적 미지가 아니라  지식으로 인식하여 존재를 찾아가는 시간이다.
문명적 현상의 예속에서 지식에 의한 예지적 가치이다.
실용주의의 발전이다.

2026.5.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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