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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는 안다.

박세욱. 2026. 5. 7. 06:25

314 며느리는 안다.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라면 연방제에서 좀 더 나아간 것이다.

오죽하면 그리하겠냐는 자조가 있다.

냉전적 역사의 잔해로 남은 80년 민족과 혈육의 단절이다.

이념의 좌우논리와 패권적 국제질서에서 인류사적 희생이다.

구한말에서 이어지는 한반도 역사와 민족의 고난이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탐욕과 지배의 시간에 휩쓸린 시간의 피해이다.

오천년의 역사에서 백여 년의 이념적 갈등이고 제국주의의 패권경쟁에서 지정학적 경계의 표피적 상징의 피해이다.

생태적 생존의 비율적 역사라고 말할 수 없는 이념적 대립이다.

 

이념적 분열로 수십만의 양민이 희생되었고 전쟁으로 힘겨운 가난이 파고되고 수백만이 희생되었다.

비극의 시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고난은 계속되고 있다.

민족적 한이다.

우리는 노력하였다.

무엇 때문에 아직도 분단의 한을 서러워하는지 모르지 않다.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가 있었고 두만강 푸른 물의 슬픈 자조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술잔의 한 치 깊이가 무저갱의 낙락으로 침전되었다.

희망의 절벽에서 말없는 침묵은 아련하고 그리운 슬픔이었다.

평양과 판문점과 싱가폴과 하노이의 시간이었다.

 

이제 민족이라는 단어가 지겨워 너는 너이고 나는 나라고 한다.

그렇게 되기를 억지하는 것이다.

민족의 피와 한은 나누어 질수 없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여 잊히어지는 낮 바닥 한번 보자는 것이다.

차라리 딴 나라라고 하면 소통과 왕래의 간섭에서 자유로울 것이라는 미덥지 않은 산수이다.

힘없는 민족과 국가에 평화의 권리가 있는지 인류의 양심에 물어보고 싶다.

이분법적 대립과 균형의 지배적 인류사에서 전쟁의 극단이 전제된 지정학적 사선이다.

외치고 몸부림 쳐도 쇠귀에 경 읽는 인류의 평화이고 문명과 산업의 희생이다.

탈출구 없는 외딴 섬이다.

 

한반도 민족은 곡선을 좋아하는 선한 민족이다.

이웃과 더불어 21세기의 문명과 산업에 기여하여 동행하는 질기고 섬세한 창의적 노력이 있다.

패권적 힘의 대립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면 개성도 금강산도 우리끼리 나누어 할 수 있다.

두 개의 나라에서 적성국의 명시가 빠졌다고 한다.

실타래의 한 올을 남겨둔 것이다.

그것이면 희망이 있다.

북쪽의 여자축구 팀이 서울에 왔다.

아시아 축구클럽 대항전이다.

평창 동계 올림픽이 기억난다.

 

예술단과 대규모 대표단이 왔었다.

무엇이 그때의 기대를 앗아갔는지 안타깝다.

인류도 역사도 사물도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생존과 동행의 조건도 당사자의 의지에 부합하게 변해야 한다.

소통과 왕래를 통해 평화를 이루는 것이다.

힘이 아니라 글로벌 사회의 동행으로 한반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한반도의 동질성 회복에서 대한민국의 인류사적 책임을 말하는 것이다.

민족으로 과거든 현재이든 국제사회의 책임이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고 모닥불에 뛰어드는 불나방의 오기와 집념으로 민주주의를 이루었다.

또 다시라는 단어의 단편적 해석이 아니라 끊임없는 의지가 필요하다.

질기고 섬세한 민족성이다.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곁가지의 입새정도 수고하면 되는 문제이다.

철지난 이념적 관념을 지우면 문제가 없다.

감정은 무용지물이다.

그저 피와 땅을 공유하는 단순한 민족이다.

그럴 여유도 있다.

패권적 자본지배에서 자본주권 시대를 단번에 이루었다.

 

현상 밖 미지의 창의적 생산성은 표피 바로 밑에 있다.

걷어내면 새로운 질서이고 시간이 된다.

보편성의 충족은 새로운 시간의 준비이다.

대한민국은 국제질서와 동행하는 한반도 미래에 준비되어있다.

홍익인간정신은 이웃과 더불어 동행하는 평화에 근본을 두고 있다.

안타까운 냉전의 역사이고 국제정세의 난제이다.

속 시원하게 까발려 말하여도 패권적 이해타산의 벽에 메아리 되어 돌아온다.

제국주의를 경험한 생존의 딜레마이고 글로벌 사회에 예속된 문화와 산업이다.

인륜에 기대하나 수천, 수만의 생명이 희생되는 지정학적 패권전쟁이 목전이다.

 

내 것의 집착인지 객체의 성취인지 역사와 지성의 분별이 모호하다.

한반도 문제를 말하려 하나 현상의 괴리에 산수가 어려워 말문이 막힌다.

천수답이다.

대륙과 소통하는 무궁한 생산성이 하늘의 뜻과 냉전적 역사의 잔해에 머물러 있다.

동북아시아의 풍부한 생산성이 잘려진 한반도의 허리에 묶여있다.

관계에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없다.

용서와 자비는 문화의 뿌리이며 인류는 유전적 시간을 공유한다.

공유의 동의에서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노력이 있어야 인류적 공감을 기대할 수 있다.

눈뜨면 이념의 대립이고 선거 때면 불장난하는 가련한 국수주의가 있다.

 

민족적 한과 염원의 깊이를 소홀히 하는 이념의 잔해와 관념적 집착이다.

객체의 한풀이 굿판이다.

잘못된 데이터의 입력이다.

2026년 지방선거에서 극단은 대한민국의 주체가 아니라는 진실이 증명되고 있다.

사회와 경제적 위치에서 그만할 여유도 있다.

새길 만들려 길 떠나는 일꾼 보자기 자꾸 옆구리 건드린다.

분단과 이념적 대립의 불확실성이 정치적 목적 같다.

벌 받는다.

물들어 왔을 때 배 띄우는 것이다.

 

질기고 섬세한 반도체의 미래는 세계가 주목하는 한반도의 기회이다.

산업과 기업과 자본의 미지적 생산성에서 역사의 사명을 가져야 한다.

한반도 문제해결에서 필요한 글로벌 사회의 이목은 노력한 만큼 평가한다.

주권적 존재이고 동행적 국제질서이다.

조건을 마련해야 관련된 국가의 동행을 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의 역량으로 마음이 우선하는 작은 노력이다.

여자축구선수들이 왔다.

왔으면 가는 것이다.

 

넘지 못할 선은 없다.

한반도 분단은 인류사의 특별한 사건이다.

염려하는 생존의 조건을 충족하면 산수를 못할 이유도 없다.

눈 한번 감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간사의 정리는 AI는 몰라도 며느리는 안다.

한반도의 잠재력은 인류의 미래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2026.5.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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