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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취.

박세욱. 2026. 4. 24. 08:29

310 거취.
1 한반도 민족.
해결의 시각에서 이념의 냉전적 질서가 아니라 민족적 역사의 회복이다.
21세기 글로벌 지식문화의 질서에서 철지난 이념적 정치는 쓸모 없는 이분법적 고집이다.
반 이라는 양극화의 선입견으로 지배하여 선택을 강제하려는 얄팍한 정치적 산수이다.
이념의 역사가 인류에 기여한 것은 냉전적 분열과 전쟁의 파괴적 고통이었다.
산업화와 사회성의 기여에서 광야와 도시의 평가가 있으나 냉전적 역사의 유물 한반도 분단과 거리가 있다.
적대적 대립에서 상존하는 전쟁의 위협과 민족과 혈육의 80년 단절이다.
이제는 바꾸어야 하는 역사이다.
선거 때 되니 씨잘때기 없는 이념의 경계를 부추겨 이삭줍기 하려는 못난 산수가 제발하고 있다.
북풍, 총풍 등 민생과 상관없는 분단을 이용한 선거판 바람잡이가 상당하였다.
역사의 아품을 울타리 정치에 이용하여 분열과 대립을 조장한 비생산적 권모술수이다.
선거 끝나면 언제 떠들었냐는 식으로 이슈의 요식행위에 그쳤다.
아직도 분단의 경계를 이용하려는 정치가 개탄스럽다.
이분법적 경계의 획일적 비생산성에 머물며 섞은 창의력 없는 정치의 구태이다.
표현에서 객체의 자유라고 하나 몰상식한 역사 인식이다.
이념에 구속된 분열적 학습을 타파하여 일과 능력으로 평가되는 새로운 질서로 바꾸어야 미래가 밝다.
학습과 시간의 가치를 우선하는 실용주의이다.
21세기 지식산업에서 데이터의 경계는 없다.
미래의 인류사는 공유의 개념이 될 것이다.
철지난 이념적 시각으로 보수를 대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의 새로운 것 없이 관성적 구태에 기대려는 나약한 정치이다.
시대에 부합하는 창의적 신념이 전무하다.
현대사의 변천과 정보통신에 의한 지식의 분별을 닳아 없어진 냉전적 좌우대립의 구태로 대변할 수 없다.
남북문제는 민족적 시각을 회복할 때가 되었다.
지정학적 이유에서 많이 늦었다.
국제사회의 설득에서 피해 당사자가 나서서 분단의 적대적 당위성을 조장할 이유가 없다.
한반도 분단은 냉전적 인류사의 비극이며 지정학적 책임이 있다.
정치 공학적 접근은 역사의 번지수를 모르는 철없는 정치이다.
양극화의 선택적 강요에 학습된 정치공학의 접근이라면 민족적 대의에서 역사의 죄인이다.
최소한 21세기의 선거에서 정당의 슬로건이 될 수 없는 나 홀로의 무지이다.
민족과 국가의 안정과 평화를 우선해야 하는 보수의 시각이 아니다.
남북문제는 민족적 동질성 회복을 위한 선행적 조치가 우선되어야 한다.
독일처럼 민중의 힘으로 벽을 허무는 개벽도 베트남의 전쟁도 불가한 현실에서 소통과 교류를 통한 한반도 역사의 회복이다.
통 크게 하겠는 말의 잔치에 어긋장나 국제질서의 한계를 실감하였다.
독일과 베트남은 방법은 달라도 냉전적 역사가 아니라 민족적 의지로 통일을 이루었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더라도 우리끼리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세계를 설득해야 한다.
의료와 문화, 체육, 혈육과 생존에서 인륜적 접근이다.
선거 때만 되면 분단의 비극을 이용하려는 이분법적 시각은 사라져야 한다.
정치지형에 억매인 역사의 궤변은 보수전체의 시각이 아니다.
보수와 진보는 이념에 구속된 경계적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협력과 수용의 수레바퀴라고 하였다.
남북문제의 접근에서 필요한 시각이다.
민족적 공존의 동행이다.
인권문제에서 대한민국의 역사가 경험한 참혹한 시간이 있었다.
체제와 관계의 인식에서 인륜을 우선하는 사회와 문화적 시간의 흐름이 있다.
현재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이념적 대립의 희생으로 이루었다.
인륜의 구제는 우리가 경험한 비극적 시간을 소통과 교류를 통해 단축하거나 지우는 것이다.
현제의 대한민국에 버금가도록 이끌어내는 것이다.
전쟁을 전제하여 적성국 운운하며 인륜을 말하는 것은 민족으로 어불성설이다.
입바른 소리로 떠든다고 체제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실효적 가치에서 현상을 개선하자는 것이 남북교류를 통한 동질성 회복이다.
분단의 현상을 울타리 선거에 이용하려 하지 말고 한반도와 민족을 우선하는 적극적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역사에서 실제적 민족의 배려이다.
민족의 동질성으로 글로벌 사회의 동행을 이끌어내야 한반도 문제가 해결된다.
2026.4.24일.

2 정체.

뭐하고 살라는 것인지 북망산천이 신발 밑이다.
흙 파먹을 여지도 없다.
어찌하라는 것인지,,
산천은 유구한데 존재가 없다.
있어야 없는 것이고 없어도 있는 것이다.
대의를 빙자하나 관계는 상호주의이다.
이쯤이면 메아리가 있어야지 언제까지 멍석 깔고 북 치고 장구 치며 굿해야 하는지 뒤주 쌀 떨어져간다.
세월의 노력과 만상에 우뚝한 태산의 흔적이 없다.
지키려 애쓰나 내 몰면 결단 내는 수밖에 없다.
도대체 격과 경우가 없는 작자들 이다.
지붕 밑은 빌붙을 가치가 사리지고 세상의 이목은 한심하다.

대한민국 자본시장 시가총액이 6천조에 이르고 있는데 기여하여 창조한 객체의 거처가 심상치 않다.
황금 산 바라보며 진창에서 “씨팔씨팔“ 조이도 마이싱 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하였다.
세태의 성취 없는 저울추에 낮 바닥 들고 다니기 힘들다.
실체 없는 그림자 되어 언어가 사라지고 있다.
인륜과 한반도 평화에서 격의 말 빨이 서야 동행을 설득할 수 있는 것이다.
연장이 아니다.
한 것 없는 갓(조직)의 벼슬이고 멍석 깔고 굿하고 노력하여 창조해 봐야 서당 개 풍월이다.
관계의 몰상식과 인격의 말종이다.
2026.4.28일. 
 
3 균형.

양당정치의 미래에서 보수와 진보의 균형이 필요하다.
일방적 국정운영의 파행이 계엄정국이다.
파행적 입법부 운영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다.
미운자식과 떡 하나 더 준다고 하였다.
울타리라고 같지 않다.
옳고 그름에서 지킬 것은 지켜야 실용적 효율성에 이른다.
보수에도 중용을 이해하는 합리적 사람들이 있다.
계엄의 몰상식과 전혀 다른 정치적 시각의 필요이다.
울타리가 아니라 인격을 분별하여 선택해야 한다.
객체와 집단보다 정당이 우선하고 정당보다 국가가 우선이다.
민주적 정당의 정체성은 객체와 극단적 집단의 사사로움에 의해 훼손되었다.
싹쓸이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민주국가의 의견수렴 형태가 아니다.
극단적 집단의 지배를 위한 싹수 자르기의 기획정치는 정당한 의견수렴과 미래지향적 선택에서 괴리가 있다.
전체가 전제 된 포괄적 선택이 아니라 정당내 집단과 객체의 권세로 정해놓고 선택을 강요한다.
한마디로 쓸만한 일꾼의 싹수를 잘라내고 내 것과 우리 편으로 지배하려는 편협한 선택이다.
생태적 합리성에서 최선의 선택을 위한 민주적 절차를 훼손하고 있다. 
권세는 나누어야 탈이 없다.
견제할 수 없으면 반드시 사단이 난다.
끼리끼리 얼굴값 하는 이웃없는 사대부의 사랑방 정치는 독선과 부패를 우려해야 한다.
조선후기 세도정치의 비극적 결론을 알고 있다.
지방선거는 국정과 직접적 연관성이 적다.
동네 일꾼의 필요이다.
보수든 진보든 일과 능력에서 신념과 인격이다.
관계에서 인격의 거취를 보아야 한다.
미풍양속의 전례에서 초상집에 재 뿌리고 인륜을 저버란 약물테러를 자행한 인격이 올바를 수 없다.
인격의 말종이며 시방도 낮 바닥 버젓한 시정잡배의 짓거리 이었다.
과거 소시적 인연과 향우회를 동원한 패륜이다.
권세의 망종이 인격에 이르면 나라가 망한다고 하였다
돌아가신 내 어머니께서 알고 계신다.
2026.4.28일.

4 거취.

글과 문장으로 진실을 찾아 갈 때 무명의 고통으로 인내한 시간의 희열을 느낀다.
글의 진실을 문장으로 표현하는 새로운 사실의 정립은 사라지는 어둠의 잔해에서 밝음으로 가벼워진다.
나를 찾은 것이다.
자유이다.
나의 사사로움은 세계인과 한반도 민족의 것이다.
이미 공적인 것이다.
참여는 누구라도 가능한 것이나 사사로움의 개입은 침해이다.
지켜야 하는 것이 있다.
인정하여 동행하면 공유하는 것이다.
예속을 시험하는 시류의 저울질은 상에 머무는 무명이다.
아직 목적에 미흡하다.
시간은 남아 있다.
목적과 일을 위해 좀 더 나은 환경이 필요하다.
시대를 아우르는 언어이며 관계에서 기여의 가시적 확장이다.
이즈음에서 간판으로 분별되는 대승적 역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나눌 만큼 기여하였다.
선지자들께서도 식솔들의 생존적 물질을 고려하였다.
글은 산수가 아 니라 진실을 구하는 언어이다.
목적의 동행에서 존재를 존중하면 소통하여 협력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2026.4.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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