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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귀천.

박세욱. 2026. 5. 16. 05:18

317 노동의 귀천.

1 배 터진다.
향후 오년 이면 반도체 최고 호황기이다.
해마다 수억씩이면 배 터진다.
알자만 챙기겠다는 것이다.
기회적 탐욕이다.
배부르면 딴 생각한다.
영원히 일꾼이라는 보장도 없다.
대한민국의 직업에서 대기업 종사는 상위이다.
입사하기 위해 줄서는 선택된 시류이다.
상대적으로 가난하지 않다.
비정규직과 협력업체 등 전반의 기여가 있다.

노동을 계층화 하는 불평등이다.
특정하여 갓이 아니다.
노동의 순수와 정의에서 문지방의 신분적(기회적) 사사로움이 개입하고 있다.

내 것 이상의 요구이다.
기여의 저울추에서 지나친 요구이며 국가의 미래를 위협하는 객체의 기회적 탐욕이다.
경영과 노동의 균형적 시각을 벗어나고 있다.
국가적 형평성과 노사의 관계에서 정당한 권리라고 인정하기 어렵다.
세상이 물질시류로 어지러워 졌다.
생존이 아니라 상대적 저울추의 성취이다.
끝 없는 나르시시즘의 견주기이다.
잘못 된 학습의 전이이다.
현상이 절대가 아니다.
광야와 도시의 가르침에 진리가 있다.
2026.5.14일.

2 본방전도.
제도는 인간의 탐욕이 고려되어야 한다.
근로조건이 아니라 성과금 달라는 쟁의이다.
주객이 전도된 노동현장의 새로운 현상이다.
비정규직, 하청, 협력업체 등 노동약자의 보호에서 기득권에 있는 대기업 정규직의 후주머니가 우선하고 있다.
노동약자의  차별적 어려움에 대해 말이 없다.
근로조건의 어두운 부분을 보호하려는 취지가 무색하다.
노동의 순혈에서 생산성과 사회적 차별을 주장하며 나는 다르다는 특별한 처우의 배반적 행태이다.
멍석 깔아놓으니 배부른 동냥아치들 굿판이다.

원인을 유추하면 노동귀족을 분별하는 학습의 결과이다.
약자의 거취를 비교하여 이해할 수 있도록 노동계의 실상을 공개해야 한다.
법과 정책의 실행에서 주체의 보호를 확실하게 하라는 것이다.
성과금 결정에서 산정의 산수도 문제이다.
경영상 비용과 투자금 등 기업의 미래를 위한 재원 계산 후 산정하는 것이 정의이다.
말 그대로 성과금이다.
모든 경영조건을 충족한 후 남는 것의 양심이다.
기업의 생존과 이익을 위한 계획표를 충족하고 나누는 것이다.
투자금에서 조차 성과금을 분할하여 지급하라는 요구는 무리한 것이다.
외적 조건에 의한 반도체 산업의 부흥이다.
저울추의 번지수가 다르다는 것이다.
성과금 산정 시 관련한 자료의 문제제기에서 어찌되었든 투명성을 요구하는 것이 순리이다.
한솥밥 운운하며 믿을 수 없다는 노사관계의 불신이 안타깝다.
불신적 관계를 돈으로 계산하는 사고의 한계가 있다.
작금의 상황으로 예지하면 정도와 무관하게 모든 사업장에서 성과금을 요구하는 지경에 이를 것이다.
산업현장 여기저기에서 호주머니 챙기려는 조짐이 상당하다는 보도이다.
일과 능력에 의한 경쟁적 생산성에서 시장경제의 미래가 어둡다.
국가경제를 위협하는 산업현장과 자본시장의 불확실성이다.
노력한 자와 울타리에 머문 자의 형평성이다.
일의 능력과 노력의 촉매가 위태롭다.
국가의 미래를 볼모로 하는 지나친 돌격이다.
잔치집 낮 바닥 배려가 없는 것도 아니다.
만인이 동의하는 성취에 만족하는 중용의 저울추가 절실하다.
2026.5.18일.

 

3 부르주아.

동남풍 불어 반집에  소 들어오니 외양간 짓는 충신은 없고 구멍 난 솥 걸고 칼 가는 백정들뿐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들이댄다고 배부른 동냥아치들 굿판이다.

무리의 권세로 떠드는 철없는 꼭지들이다.

국가의 대의와 미래는 내 호주머니 채운 후 하던지 말던 지 문지방 일이 아니다.

애써 가꾸어도 지켜 낼 서슬 퍼런 정의가 없다.

원칙 없는 민주적 절차와 제도의 문제이다.

흠흠 이라 하였다.

살피고 살펴서 정하고 적용해야 한다.

체계와 전통과 인습의 예지가 필요한 것이다.

울타리의 색깔에 어두워 표 산수에 정신 줄 빼앗기면 기둥이 성치 못한다.

오로지 우리 편이라는 잘못된 학습의 병폐이다.

비정규직과 협력업체와 중소기업 종사 노동자들의 차별해소가 노동현장의 문제이다.

노동기득권의 끝없는 탐욕적 치부에 대책이 없다.

원칙 없이 사사로움에 끌려 다니는 체제와 노사관계이다.

잘못된 성과금 찬치 이며 제도적 부족함이다.

전체적 시각의 부족에서 울타리를 우선하는 섣부른 학습의 전이가 문제이다.

공익적 관점의 경영이 필요하다.

너와 울타리만 사는 나라가 아니다.

너 좋다고 휘두르면 가난한 이웃이 다친다.

가진 놈들이 더하는 인정머리 없는 기회주의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우선하여 해소하는 것이 노동의 현실이며 순수이며 순혈이고 정의이다.

근로조건 차별의 해소를 말하며 배부른 성과금 잔치는 노동의 부르주아이다.

민초의 분노를 표현한 동학을 기억해야 한다.

국부는 공유적 시각의 분별이다.

너만의 노력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AI 산업은 인류사적 사건이다.

대중적 공유가 필요하다.

5.18에 탱크 마케팅으로 돈줄 계산하고 "탁"하니 어찌하였다고 분별없이 떠들고 색깔 옷 입고 주적 운운하며 민족이란

단어를 잊은 사람들이 있다. 

제 잘난 관념의 세상이다.

나의 사사로움의 민족적 옳고 그름에 울타리의 제 잘난 색깔로 기대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26.5.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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