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출세간과 세속 3. 본문
1 아미타경.
삼계(三界).
세속에서 탐욕의 욕계와 물질의 색계와 정신의 무색계로 미혹의 상을 의미한다.
삼계(三界)의 구성.
1. 욕계(欲界): 식욕과 색욕과 수면욕 등 감각적 욕망에 지배된 세계이다.
지옥부터 인간과 육욕천까지 포함한다.
2. 색계(色界): 욕망은 없으나 미묘한 형체(물질)에 지배된 세계이다.
욕계 위쪽에 존재한다.
3. 무색계(無色界): 물질이나 형상이 없이 오직 정신적인 것만 존재하는 세계이다.
존재에서 욕계는 생존의 문제이며 색계는 집등 거주와 소유의 문제이고 무색계는 욕망과 소유를 초월한 정신이다.
정신은 학습에 의한 것으로 열반의 경지와 다른 것으로 이해한다.
정신(학습)의 상을 넘어야 수다원에 이른다는 것이다.
"나무아비타불"의 육자명호는 세속의 인연과 다른 부처의 가르침 무의 이른 세계이다.
참고 : 육욕천은 지옥의 시험과 세속의 상을 비운 천상세계를 의미한다.
보리심(菩提心).
깨달음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대승불교의 핵심이다.
위로는 부처의 지혜를 구하고(상구보리)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화중생)하는 실천적 깨달음이다.
객체의 성취 소승불교와 대비되는 세속에서 무위법에 의한 관계의 자비이다.
불토의 세속적 전파와 기여를 위한 가르침의 실천이다.
내안의 성취에서 행복으로 세속을 구제하는 도(道)와 지(智)와 각(覺)의 자비이다.
부처의 가르침으로 발심(發心)하여 있는 것 나누고 허물을 인내하는 것이다.
육자명호(六字名號).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여섯 글자이다.
여섯 글자 안에 부처의 가르침이 내제 되어있다.
말의 겉모습이 아니라 내 안에서 일심의 깨달음을 증명하는 무위적 약속이며 확인이다.
"나무(南無, 귀의한다)"와 "아미타불(阿彌陀佛, 무량광·무량수불)"이 합쳐진 것이다.
불현듯 심연에서 들리는 부처의 부름이다.
정토종(淨土宗).
아미타부처의 구원을 믿고 "나무아미타불"이라는 육자명호를 염불하여 서방극락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종파이다.
타력본원은 자력보다는 부처님의 무한한 자비와 서원(타력)에 의지한다.
칭명염불은 경전공부나 고행 등 이론과 수행의 어려움 대신하여 내 안에 가르침의 당처를 두어 마음으로 부처의 구원을
받는 것이다.
세속에 부처의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여 억겁에서 중생을 구제하기 위한 자비이다.
당나라 이후 민중 신앙의 중심이 되었다.
삼국시대 원효대사 등 불자에 의해 대중화 되었으며 일본불교의 중심에 있다.
정토삼부경(淨土三部經).
무량수경: 아미타부처님의 48가지 서원과 정토의 건립 과정을 설명한다.
관무량수경: 극락에 태어나기 위한 구체적인 명상법(16관법)이다.
아미타경: 극락정토의 아름다운 모습과 염불의 공덕을 찬탄한다.
소선근 (小善根).
선근(善根)은 “착한 뿌리” 라는 뜻이다.
선한 마음으로 바른 판단과 행동을 이끌어내는 가르침이다.
시류에 산수하지 않는 진실과 정의의 옳고 그름이다.
무탐(無貪)과 무진(無瞋)과 무치(無癡)에서 3선근(三善根)의 공덕이다.
선근보다 작은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하면 정도와 관계없이 정토에 이른다는 진실과 정의의 가르침이다.
선근의 반대말은 3계의 번뇌 탐, 진, 치이다.
참고 : 5선근(五善根).
1. 신근(信根): 가르침(불법)을 올바르게 믿는 마음.
2. 진근(進根):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기 위한 노력.
3. 념근(念根): 가르침을 잊지 않고 기억하며 마음에 당처를 정하는 것.
4. 정근(定根):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하나에 집중되어 평온을 유지하는 마음.
5. 혜근(慧根): 사물의 이치를 올바르게 꿰뚫어 보는 지혜.
심부전도(心不顚倒).
생각이 뒤바뀌지 않고 청정하고 밝은 마음자리를 유지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염불(念佛)을 통해 신구의(身口意) 삼업이 무르익으면 헛되고 뒤바뀐 생각에서 멀리 떠나(원리전도몽상, 遠離顚倒夢想)
마음의 극락을 이룰 수 있다.
극락왕생은 십이연기법과 고집멸도의 사성제의 시험에서 이승의 죄업을 비우면 해탈하여 지옥과 축생과 아귀의 윤회에서
벗어난다는 것이다.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여 육계와 색계의 탐진치를 멸하면 무색계에 이르면 수다원에서 아라한에 이른다.
원리전도몽상(遠離顚倒夢想).
반야심경의 핵심 가르침이다.
사물의 정의를 왜곡하여 허망한 성취에 빠지는 "전도몽상( 顚倒夢想)" 에서 떠나 깨달음을 얻는다는 뜻이다.
소유의 집착에서 공(空)의 진리를 깨달아 괴로움에서 벗어나 평화(열반)에 이르는 것이다.
전도(顚倒): 진실을 바르게 보지 못하는 것.
몽상(夢想): 헛된 생각에 사로잡혀(몽상) 현실을 왜곡하여 인식하는 상태.
원리(遠離): 왜곡된 망상과 집착에서 벗어나거나 멀어진다는 뜻이다.
소멸적 사물에 억 매이는 허상과 망상이 삶의 고통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이 내 것이라는 생각이 잘못된 것이다.
사물은 인연(시간)에 의해 변한다는 실상을 이해하고 공(空)의 진리를 깨달으면 망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물적 관계(상)가 소멸되고 가벼워지면 평화롭다.
일생보처(一生補處).
한 생만 더 태어나면 곧 부처가 되는 마지막 단계의 보살을 뜻한다.
금강경에서 사다함(斯陀含)을 공부하였다.
선종에서 자신의 본성을 깨달아 부처에 이른다는 견성성불(見性成佛)이 있다.
전생에 복덕을 쌓아 한 번의 생(一來)을 더하면 해탈의 경지에 이르는 수행의 최종단계이다.
성불의 직전에 있는 최고의 경지이다.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수행하며 다음 성불을 기다리는 것이 대표적인 예시라고 한다.
재상선인(宰相 仙人).
중국의 전설적인 도인 유해섬(劉海蟾)과 관련된 일화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재상(宰相)의 관직을 버리고 신선(仙人)이 된 인물을 의미하며 자아의 심연으로 세속의 탐욕적 상을 멸하여 비우는삶이다.
명예와 부를 버리고 영적인 자유를 택한 인물을 말한다.
현세에는 길을 떠나는 선인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는 작자들이 수두룩하다.
상의 멸에서 업이나 밝음을 채우고 떠나는 후사의 지혜가 필요하다.
사나함의 준비에서 만백성의 자비도 필요한 것이다.
부처께서 아신다.
구회일처(俱會一處).
"모든 선한 이들이 한곳에 다 함께 모인다"는 뜻이다.
아미타불의 원력으로 선남자와 선여인이 모여 왕생하는 극락 정토사상이다.
어질고 착한 사람들이 행한 선행의 결과로 선한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사는 곳이다.
천국과 극락이다.
대보리심(大菩提心).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깨달음을 얻겠다는 발심(發心)이며 보살이 갖추어야 할 자비심과 지혜의 마음이다.
상구보리(上求菩提)는 위로 깨달음에 이르고 하화중생(下化衆生)은 세속의 구제를 의미한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대승불교의 핵심이다.
무엇이든 얻었으면 나누어야 한다는 것이다.
너머(피안)에서 존재하는 것은 소멸된다.
탐, 진, 치는 생에서 내 것의 탐욕이다.
영원에서 색(상)은 소멸되어 무로 돌아간다.
비워 창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무아미타불"의 심연이다.
비우면 새로운 지혜가 발현된다.
세상을 구제하는 부처의 세계이며 문수보살의 지혜이다.
삼악도(三惡道).
지옥과 축생과 아귀를 말한다.
윤회의 육도(六道)에서 인도(人道)와 아수라도(阿修羅道)와 천상도(天上道)를 제외한 영역이다.
악행의 정도에서 지옥도와 축생도와 아귀도의 순서이다.
요사이 전쟁으로 악행을 일 삼는 분들이 가셔야 할 곳이다.
타의와 공공의 기여를 내 것으로 치부하는 고약한 악행도 있다.
원친채주(冤親債主).
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나로 비롯된 인연에서 반드시 갚아야 하는 업의 관계이다.
원(冤): 나에게 원한을 품은 악연.
친(親): 사랑과 집착으로 얽힌 친한 존재.
채(債): 내가 빚을 지고 갚지 못한 불신.
주(主): 권리를 가진 인연.
이승의 괴로움은 인연과 관계에서 원망과 원한을 해소하지 못한 업에서 비롯된다.
인과응보에서 반드시 갚아 회계하여야 삼악도에 떨어지지 않는다.
가치의 효율성으로 산수하지 말고 진실한 마음으로 육자명호에 이르는 것이다.
세치 혀의 허세와 별 볼일 없는 견장의 겉모습 분칠이 아니라 인연에 진심하라는 것이다.
!!!뜻하지 않게 어떠한 사건의 경험이나 목격할 때 불현듯 마음속에서 "나무아미타불"을 연호할 때가 있다.
이때 뜻 모를 깊이와 넓음에서 평안을 느끼게 된다.
내 안에 부처가 내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육자명호의 가르침이며 기독교에서 "아멘"으로 비유할 수 있다.
!!!아라한(열반)에서 객체와 대중의 분별을 말씀하고 있다.
객체의 성취에서 대중의 성취(구제)에 이르러야 완전한 성불에 이른다는 대승불교의 가르침이다.
!!!나를 찾아 깊은 심연에 이르면 사물과 인연이 사라진 망망대해이고 공활한 우주이다.
시작의 어둠에서 하나, 둘 찾아 비워지면 밝아지고 이내 가벼워진다.
억지로 버리지 않아도 비워진다.
언제나 돌아갈 당처의 안식에 이른다.
이미 생명에 도달하였으니 육신은 있으되 없는 것으로 언제나 나 에게 돌아간다.
시간은 잊히어지고 청산을 걷는다.
물질은 진실이고 정의이나 학습의 정신이 선에서 악을 시험한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
내 안에 삼라만상이 있다.
중생의 구제는 흐트러짐 없는 옳고 그름이다.
불의에 날 세우고 정의에 비운다.
선종이고 선불교이고 대승이고 "나무아미타불"이다.
2026.4.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