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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과 파행.

박세욱. 2026. 4. 14. 03:15

281 양극화와 이질적 국정.
직선제의 국민적 요구와 승자독식 양당정치의 비생산성은 문제의 접근이 다르다.
글로벌 민주진영의 주류는 다원적 의회주의 이다.
대통령제와 다당제 병행에서 민주적 절차의 문제가 없다.
직선제를 위한 양당정치 운운은 통신사회와 지식의 시대에 무지한 말의 조장이다.
대통령 직선제는 파행적 양당정치의 빌미가 될 수 없다.
양극화의 진영에 줄서서 입신을 우선하는 사사로운 또는 경계적 폐쇄성의 문제이다.
진영의 승패를 우선하는 괴리적 생리의 선동이다.
21세기 다원적 사회에서 20세기 이원적 사회에 머물러 있는 구태한 정치이다.
시대를 대변하지 못하는 무지이다.
 
전체와 통합이라는 시대적 주제가 편협한 궤변으로 왜곡되고 있다.
계엄, 내란, 의회독제, 기획정치, 철지난 독제정권과 민주화의 유물이 난무하는 정치판이다.
시대적 퇴보이다.
북으로 집체보다 큰 풍선에 삐라를 싫어 날리고 무인기를 수차례 보냈다는 말씀이다.
방어적 목적의 평소와 다른 군사적 도발이다.
국회에는 국방위원회가 있다.
전쟁을 유발할 수 있는 특이한 상황으로 국정의 주요기관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있다.
군은 국민의 안정과 국가의 이익에서 독선적 집단도 정권의 전유도 아니다.
더구나 전쟁의 위기를 조장하는 의도적 도발이다
 
국가기관의 국정운영 공유와 견제기능이 무용지물이다.
계엄의 처벌은 후차적 문제이다.
국정을 공유하지 못하는 승자독식 무소불위 정권의 그럴 수 있다는 독선적 행태가 잘못된 것이다.
극단적 양당정치의 폐쇄성이다.
삼권분립의 불안정이며 국정의 이질적 행태이다.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 독선의 총체적 망령이다.
모라라면 모자란 대로 하시면 된다.
국민보다 우선하는 시대와 문화적 주체는 없다.
별 볼 일없이 제 잘난 사대부의 갓이 굿하는 것이다.
 
정치는 국민을 우선한다.
민주적 정당은 국가를 우선하여 구성되는 정치집단이다.
민주주의는 약속된 절차이다.
기획정치는 의견수렴의 합리성을 방해 한다.
기획자의 의도가 있다.
민주주의 본질을 훼손하는 집단주의와 개인적 거취의 사사로움이 개입하고 있다.
일부집단을 중심으로 하는 월권적 독선이며 민주적 절차를 방해한다.
체제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민주화의 역사를 거론할 자격이 없다.
 
정치공학은 민주주의의 대의 국민을 우선하는 선의에서 작동되어야 한다.
정치적 토론의 목적은 국민과 국가이다.
너와 집단의 거취가 아니다.
민주주의 정치에서 독자생존의 어리석음은 존재할 수 없다.
일방적 철학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 없다.
대자연의 질서는 존재의 비율적 합리성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대자연의 합리적 공존을 학습하는 것이다.
다수의 결정에서 소수의 존중과 보호이다.
존재의 존중이다.
 
극단적 양당정치의 비민주적 사회성이 계엄과 기획정치의 독선을 야기한 것이다.
패권적 울타리에 집착하여 국정운영 공유가 불가한 원인이다.
협력과 견제에서 안정적 기능의 마비이다.
불장난 같은 전쟁의 위기를 국민은 모르고 있었다.
철없는 위선이다.
매우 잘못된 정치이고 국정운영이다.
K문화와 글로벌 사회의 주류에 있는 대한민국의 실체를 부정하는 정치의 불장난이다.
진보와 보수의 단어적 순수가 사라지고 있다.
발바닥 굳은살 같은 좌우의 경계적 선입견이다.
 
국가기관은 나 홀로 정치와 특정집단의 전유가 아니다.
국정은 주요기관과 공유되어야 한다.
염려하는 보안은 국가관의 의지이다.
누구라도 대한민국이 우선이다.
앞뒤를 모르면 철이 없다.
민주주의의 역사와 학습이 부족한 것이다.
21세기의 지식과 문화적 기회를 물 말아 드시고 있다.
극단적 정치에 기대는 사사로운 거취에 분노해야 한다.
개혁되어야 한다.
 
중용도 혁명할 수 있다.
대통령 직선제와 다당제는 절차적 관련이 없다.
나누어야 탈이 없다.
2025.12.3일.
 
268 파시즘과 정치.
이천년 전 정치의 논쟁이다.
국권의 난세에서 세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다.
[더 이상 우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독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독재정치란 즐거운 것도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고 책임지지 않는 정치를 좋은 제도라 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이라도 독재가가 되면 평상시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다.
독재자가 저지르는 악행은 교만과 시기심에서 생겨난다.
교만은 지나친 부와 권력과 성취의 자만으로 생기고 시기심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다.
악의 뿌리이다.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 있어 시기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민생과 관계에서 정의와 배치된다.
백성들 중 가장 훌륭한 자가 살아 있는 것을 시기한다.
아부하고 줄서는 열등한 자들을 좋아한다.
모함에 귀를 기울인다.
독불장군으로 누구보다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된다.
적당히 찬양하면 충분하지 안 다고 역정 내고 지나치면 아첨꾼 이라고 한다.
독재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전래의 규범을 철폐하고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인다.
민주정치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고 독재자의 교만이 없다.
관리를 추첨으로 선출하고 직무에 책임을 지며 모든 안건이 민회에서 결정된다.
다수의 합리성으로 독재정치를 철폐하고 민중의 힘을 늘리기 위한 체제이다.
사회에서 관계와 공존은 민중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정은 결국 민생에 있다.
이것이 오타네스가 제시한 의견이었다.
 
메가뷔조스는 과두정치를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재정치를 철폐해야 한다고 말한 오타네스의 의견에 동감한다.
그러나 민중에게 정권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최선의 판단이라 할 수 없다.
아무 쓸모없는 군중보다 더 어리석고 교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독재자의 교만을 피하려다 절제 없는 민중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독재자는 무엇을 할 때 알고 한다.
민중은 알지를 못한다.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 배운 적도 없고 타고난 감각도 없는데 알 턱이 없다.
그들은 겨울철에 불어난 강물처럼 맹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좌충우돌 할 뿐이다.
관계에서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이 민중의 정치에 찬성한다.
우리는 가장 훌륭한 자들의 단체를 선발하여 그들에게 정권을 맡길 것이다.
물론 그들 속에는 우리도 포함된다.
하나가 아니라 집단에서 훌륭한 의견이 나온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세 번 째로 다레이오스가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메가뷔조스가 민중에 관해 말한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과두정치에 관해 말한 것은 옳지 않다.
민주제와 과두제와 군주제가 최선의 상태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군주제가 월등하게 우수하다고 단언한다.
가장 탁월한 한 사람에 의한 지배보다 더 나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군주의 식견은 탁월함에 걸맞아 나무랄 데 없이 민중을 통치할 것이다.
적들에 대한 조처들은 다른 정체 하에서 보다 비밀 유지가 용이하다.
과두제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익을 위해 공을 세우려 다투다 격심한 개인적 반목이 생겨나기 십상이다.
저마다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 하고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결국 반목하여 파쟁이 생겨나게 된다.
유혈 사태로 이어진다.
힘에 의해 파괴되어 군주제로 돌아간다.
이것으로 군주제가 최선의 체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중이 지배하면 부패가 만연한다.
부패한 자들은 서로 반목하기보다 서로 형제가 되기 십상이다.
그들은 국가를 약탈하기로 결탁한다.
누군가 민중의 지도자로 부상하여 그들의 부패 행각에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계속된다.
난세의 영웅은 민중에게 찬양받게 되고 결국 군주가 된다.
군주제가 최선의 정체라는 증거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자유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 자유를 주었는지 이것이 중요하다.
민주제인가 과두제인가 아니면 군주제인가?
한 사람을 통해 자유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는 조상 전래의 건전한 관습들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
 
정당정치는 민주주의 체제의 의견수렴 방법이다.
일당의 파시즘에서 다양성의 자유를 지향하는 합리성의 공유이다.
견제와 타협과 협력이다.
다당제와 양당제로 운영되고 있다.
양당제에서 극단적 집단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국가운영에서 국수적 집단의 과도한 개입이다.
삼권분립 체제에서 국회의 중심이 절대로 필요하나 선택의 차별적 딜레마가 있다.
선택과 주권적 권한 일임에서 국민의 대변이 아니라 집단의 대변으로 변질되는 극단적 대립이다.
나와 우리 편을 우선하여 국민을 우선하는 정치의 대의를 상실하고 있다.
 
일부의 극단성에 치우쳐 전체를 망각하고 상실하는 승자독식 절대 권력의 횡포이다.
양당정치의 울타리에 억매여 선택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의 요구와 다른 집단적 욕구에 의해 국가운영이 결정되는 모순이다.
정당을 장악한 집단에 의해 내세워진 인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괴리적 획일성 강요이다.
의견수렴의 결과가 국수적 집단에 예속되어 전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극단주의가 판을 치는 작금의 정치판에서 중용의 분별을 표현하고 관철할 수 없는 매우 잘못된 민주주의 이다.
획일적 집단주의에 의해 민주적 의견수렴의 정의를 상실하고 있다.
양당의 극단성으로 대립하는 당원의 횡포이다.
일부에 의해 전체가 왜곡되고 있다.
 
21세기 무한의 정보공유가 이루어지는 통신시대에 파시즘의 우려이다.
극단성에 기대어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려는 정치인의 작태가 더 큰 문제이다.
정치의 대의적 신념은 승패적 현실정치에 안주하여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이다.
우리 편이라고 앞뒤 없이 선택하고 끝물에 몰락하는 정치이다.
시기하여 다투다 절대 지배를 획책하는 군주의 망상이 탄핵정국의 현실이다.
승자독식 대통령제의 폐해이다.
정의와 옳고 그름을 상실한 자기중심의 사고이다.
타의를 존중할 줄 모른다.
이기고 보자는 승패주의 학습의 결과이다.
 
정치의 성취는 권세가 아니라 봉사의 만족이다.
정치와 진보는 나아가 되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시간과 학습의 충족에서 전체가 중요하다.
너만으로 암시적 질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시간은 공유되는 것이다.
보편성의 충족에서 미지의 발현이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에서 민생을 우선하는 대표가 필요하다
국수적 논리의 극단적 집단주의는 보편성의 반격을 받을 것이다.
정치개혁이다.

2025.9.4일.
 
255 진보와 개헌.
1) 진보와 개헌.
사회의 모순을 바꾸어 나아가는 것이 진보이다.
전통과 진실이 아니라 수단의 가면으로 사사로운 권력에 안주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정치이다.
개헌의 미온적 태도는 갓으로 돗자리 깔고 벼슬세우는 사대부의 고집이다.
내란수사는 형사건이다.
법치에서 수사주체의 절차와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계엄의 정치적 혼란은 대통령 탄핵으로 정리되었다.
승패적 정치의 거취를 우선하여 역사와 문화의 인식에 무지한 계엄과 탄핵의 허물을 은폐하고 적대적 정치에
집착하여 물고 늘어지는 경계와 분열의 혼란은 없어야 한다.
정치와 국정의 정도를 벗어난 특검과 계엄의 모질은 굿판은 할 만큼 하였다.
 
권력의 칼자루에 연연하여 현상에 안주하려는 것은 기회주의이며 배반적 정치이다.
언제부터 떠들은 개헌인데 시기 운운하고 있다.
절차와 수단이 아니라 반복되는 탄핵과 철지난 정권의 불행에서 결단의 필요이다.
정권의 역대에서 입바른 소리로 침 바르며 임기 채우기 급급하였다.
제왕적 대통제와 승자독식의 문제이다.
권력의 독선적 후퇴에서 사회와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는 구조적 문제이다.
체제를 앞세운 조직논리의 구태한 낮 바닥이 앞서는 정치와 정당의 민주화이다.
탄핵에서 국민 열 명 중 여덟이 헌재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여론조사이다.
노파심에서 한 말씀 드리면 정치와 정당의 민주적 분별과 대통령의 자질과 정의를 요구하는 결과이다.
 
탄핵의 사후에서 우리 편이 아니라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대다수 국민의 노력에 감사해야 한다.
진영의 콩깍지에 눈먼 자가당착의 섣부른 판단은 패가망신하게 될 것이다.
대선에서 권력구조의 시대착오적 병패를 개혁하는 개헌안(분권) 병행은 구체적 완결이 아니라 대사에 뭉그적거리는
정치권의 결단을 주문하는 것이다.
개헌의 미온적 태도는 권력의 독선에 저항하며 피의 투쟁으로 민주주의를 요구하였던 진보의 자세가 아니다.
진보 역사를 상실한 사사로운 권력의 탐욕을 의심 할 수 있다.
나 홀로의 독선과 국수적 집단의 또 다른 지배이다.
계엄과 탄핵의 난세를 자초한 절대 권력의 재판이다.
2025.4.7일.
 
2) 권력과 독선.
이념과 군사문화에 저항한 민주화의 역사와 21세기의 문화에서 민주주의를 의심하는 국민은 없다.
12.3 계엄은 문화적 인식의 범위를 벗어난 극단적 집단의 오판이다.
군을 동원하여 폭력의 파괴적 수단으로 적대적 정치의 지배적 입지를 확보하려는 시도이다.
누구도 예상 할 수 없었던 정치와 국정의 시대착오적 무지이다.
국민과 민심을 소홀히 하는 국수적 집단과 나 홀로의 독선이 예지를 상실하였다.
국가를 위기로 몰아간 계엄과 탄핵의 난세에서 미래를 위한 교훈이 필요하다.
또 다시 있어서는 안 되는 왜 라는 동기와 만인이 공유하는 상황적 인식이다.
계엄의 정치적 정리는 대통령 탄핵이다.
처벌이 능사는 아니나 법적 거취는 차후의 문제이다.
 
삼권분립에서 사법적 정리는 정치가 개입 할 수 있는 범위에 있지 않다.
계엄과 탄핵의 정리는 사회와 국정의 안정으로 마무리 되어야 한다.
승패적 정치의 기회가 아니라 국민과 국가의 안정이다.
현상의 결과에서 탄핵된 대통령의 전적인 책임이 필요하나 양극화와 극단적 정치의 원인이 있다.
난세의 성찰에서 다수야당의 돌격적 입법 독주는 삼권분립의 민주적 절차를 충족했다고 볼 수 없다.
계엄의 이유로 부족한 특검과 탄핵의 공격에서 민주적 정치가 추구하는 대의의 이해가 부족하다.
의회주의의 부정적 현상에서 극단적 집단에 의한 민주적 절차와 문화적 인식의 훼손이다.
의회의 역사에서 유정회에 저항한 불나방의 의지가 있었다.
입법독주는 역지사지와 내로남불의 독선적 억지와 몰상식이다.
 
민주당 즉 진보정치의 뿌리는 이념과 군사문화의 절대 권력에 저항한 민주화의 역사이다.
동진정책과 검사와 대화는 국가통합의 노력이다.
관계에서 상호주의가 전제된 토론과 반론의 수용은 계보의 역사와 진보정신의 주체이다.
민주주의의 이해에서 일극의 독선과 국수적 집단주의가 민주당의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
무엇을 위한 정치인지 7인의 정치생명에서 세조의 후기를 이해하는 징후와 설득이 없다.
양극화의 승패를 우선하는 공허한 용비어천가는 미래가 무엇인지 이해의 한계가 있다.
민심과 사회의 상황적 요구에서 목적의 주어로 설명해야 하는 정체의 문제이다.
미래가 무엇인지 설득하라는 것이다.
목적 없이 무조건 따라 오라는 주문은 민주적 정치가 아니다.
 
전체주의를 모방하는 지저분한 울타리에 줄서야 하는 이유가 없다.
민주주의는 공감하여 공유하는 합리적 질서이다.
깃발에 줄서는 이분법적 승패에 고착화된 획일적 정치를 개선하자는 것이 개헌이다.
이성을 갈라 치는 정치적 진로의 선택에서 쓸 만한 인재들 아작 낸 실패의 책임이 있다.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는 국수적 집단의 벼슬로 전체를 지배하려는 정치는 퇴출되어야 한다.
권세의 수염으로 토론과 반론의 수용이 불가한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민심을 도외시 하는 반민주적 정당운영은 몰락해야 한다.
협치와 공존에서 수레바퀴의 균형이 파괴된 폐쇄적 정치를 개혁해야 한다.
탄핵의 시국에서 대권의 검증은 매우 중요한 절차가 되었다.
 
독선적 국정의 피해에서 정치가 인식해야 하는 학습의 긴장이다.
우리 편으로 못자리 만든 당내 민주화의 역설에서 또 다른 독선의 우려이다
난세의 후기에서 계엄의 단죄로 정리 할 수 없는 제왕적 대통령제와 극단적 집단의 문제이다.
무소불위 절대 권력과 승자독식의 권력구조를 개혁하는 개헌의 필요이다.
개헌의 주문은 다수의 요구를 수용하는 검증의 이유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극단적 집단과 개인에게 체제와 절차를 무시하는 무소불위 절대 권력의 권한은 없다.
개헌은 집단의 정치적 입지와 계엄의 단죄와 개인의 사사로움에 크게 앞서는 국가의 이익이 있다.
시기와 절차를 우선하는 결단의 문제에서 당장의 완결도 아니다.
씨알 먹히지 않는 낮 바닥으로 침 바르지 말고 약속하라는 것이다.
 
정권이 안정되면 닭 모가지 비틀어도 소용없다.
조기대선의 입지는 상대의 허물을 물고 늘어지는 계엄의 단죄가 아니라 스스로의 자강에 있다.
글로벌 사회의 대세에서 이념과 사관의 역사는 과거이다.
21세기의 문화와 지성은 숨 쉴 때 까지 자아적 표현의 자유가 있다.
2025.4.8일.
 
3) 아침은 똥 저녁은 개.
국회의장이 제안한 조기선거 개헌안 병행이 삼일 만에 철회되었다.
입법부 수장의 정상적 국정철학이라고 이해 할 수 없는 사건이다.
민주주의의 삼권분립 체제가 성립되어 있는지 불확실하다.
무엇이 삼권의 균형에 개입한다는 의심이 든다.
수십 년 공허한 87체제 개헌안 결단에서 되 든 안 되든 굳이 철회 할 이유가 없다.
안 되면 어제 일이고 되면 신의 가호이다.
정치판 믿을 구석 없다는 것 국민이 안다.
윤 정권 주변의 녹취에서 대통령이면 만사 오케이라고 하였다.
손가락질 하던 사람들이 그 짓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지식과 문화의 시대를 망각한 내로남불이다.
국민과 체제를 무시하고 있다.
매사가 절차와 정의가 아니라 양극화의 승패적 거취뿐이다.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불안하다.
계엄과 탄핵의 책임에서 제 잘나 미끄러진 권세 눈치 보기 바쁘던 여당의 대권후보가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떨어지는 새 똥 보았나 보다.
아서라!
기둥 빠진 집구석 지붕은 언감생심이다.
정치와 권세가 조변석개(아침은 똥 저녁은 개)이다.
2025.4.9일.
 
246 수박과 일극체제.
더민주의 정체성 혼란은 일극체제에 소외된 수박이다.
우유부단한 중도라고 오강단지 취급하더니 즈그들이 수박이라고 백주에 낮 바닥 버젓하다.
늬가 수박이 아니라 내가 수박이라는 어제와 오늘이 다른 경우 없는 처신이다
정치 참 쉽다.
정치는 해답 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극단적 집단으로 안 될 것 같으니 중도에 속창시 보이는 것이다.
대의와 대세의 거시적 능력이 부족하다.
정치적 진로의 선택에서 한치 앞이 어두운 예지의 부족은 미래를 장담 할 수 없는 행색이다.
탄핵의 차후에서 정치적 거취의 역량이 부족하면 낙향이 답이다.
 
국가와 민생의 대의에서 책임을 우선해야 하는 수신과 울타리의 제가는 정치의 도의이다.
민주당의 정체성과 계보의 합리적 국가관에서 어줍지 않은 포용이 아니라 예지의 실수를 인정해야 한다.
절대 권력에 기대는 특정한 집단의 목적이 아니라 합리적 관계를 위한 절차의 존중이다.
당내 민주화이다.
민주당이 추구하는 문화적 질서의 순리이다.
시대의 지식과 문화를 충족하는 21세기의 정치에서 권세의 독선적 행색은 민심의 요구가 아니다.
합리적 진보에 대한 당내 극단적 집단의 공격이 잘못된 것이다.
정치적 소외와 공천에서 좌파의 색깔론을 우선하여 수박으로 정치생명을 끝장낸 독선이다.
엇 그제 까지 극단의 절대를 지향하던 분들이 중도보수를 말씀하고 있다.
 
다양성과 반론을 수용해야 하는 민주적 절차에서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정치의 혼란이다.
강성진보와 민주당의 합리적 정체성은 다른 것이다.
(극단적 전체주의를 지향하여 일당독재에 절대복종을 강요한다.)
(적대적 이념으로 침략정책을 주장한다.)
파시즘의 대략적 내용이다.
작금의 대한민국에서 진보든 보수든 각자도생의 적대적 관계를 형성하는 극단적 정치의 실상이다.
극단적 집단의 집착적 망상은 목적을 위한 수단에서 공과 사의 분별과 절차를 무시하고 있다.
조직으로 군립하려는 무식한 권세이다.
21세기의 정치는 파시즘이 아니라 민심과 문화를 우선하는 민주주의이다.
 
계엄과 극단적 집단의 지배적 획책은 다를것 없는 파시즘의 망상이다.
반쪽도 안 되는 진영정치에 기대어 절대 권력을 획책하는 무모한 고집이다.
민주주의를 떠들며 지식과 문화의 정체성 혼란에 빠지는 독선적 권세이다.
문화적 질서를 지향하는 민주당의 뿌리로 이해 할 수 없는 복종의 강요이다.
나로 비롯되어야 하는 정치의 독선으로 다양성과 반론의 수용을 침략하는 폭력이다.
반쪽의 반쪽도 안 되는 집단으로 합리적 진보에 정치 테러를 자행한 행위이다.
계파정치의 기득권에 기대어 민주적 절차의 합리성을 파괴하였다.
수박은 겉과 속이 다르다고 떠들던 극단적 집단주의이다.
정당의 정체성은 허세로 포장된 말이 아니라 국가와 역사에 기여하는 행동하는 양심이다.
 
나 홀로의 고집으로 하다 안 되면 바꾸는 것이 아니다.
자기반성 없이 느닷없는 중도보수의 주장은 지나친 것이다.
당대표의 중도보수 발언에 얼굴 못 드는 자칭 진성진보의 표정에서 아쉬운 수박의 미련이 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밀어낸 아쉬움이다.
엇 그제 까지도 추종적 인물 론에 줄서던 낮 바닥 철판 깐 정치이다.
더러워 보따리 싼 민주당의 뿌리가 화면 빨 악수정도로 만사 오케이 할 꼴아지가 아니다.
민주당의 정체성과 계보의 정신에서 김대중, 노무현과 나 홀로 독선은 다르다.
수단만 보이는 진실과 정체성 없는 대권의 집착이다.
별 볼일 없는 닭 벼슬로 만사를 지배하려는 절차적 흠결의 독주이다.

민심의 역부족에서 중도보수의 주장은 대의 보다 수단이 앞서는 계파적 집단의 개혁이다.
계엄의 독선은 말 할 것도 없고 탄핵의 시국에 기여한 극단적 정치의 책임이다.
혼란한 시간에서 지나간 것의 미련이 아니라 민주당의 합리적 정체성을 회복하라는 것이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니 낮 바닥 바꾸어 겉이 검다하여 속조차 검을 수냐 백년만년 드렁 치게 살아보세 라고
하시려면 독선의 고집을 바꾸라는 것이다.
중도의 동의는 정치적 방향의 실수를 인정하는 성찰이 전제되어야 한다.
정치적 선택의 오판은 카멜레온이 아니라 진실에서 책임이 우선이다.
선택의 자유와 국가의 통합을 위한 것이다.
다수를 충족하는 설득과 동의에서 부정적 시각의 우려이다.

철지난 좌우의 이분법적 경계를 이용하는 적대적 정치에 의한 선택의 획일성이다. 
진영의 승패를 우선하는 경계적 정치의 문제이다.
미래의 예지 없이 내 것과 입신을 우선하여 깃발에 줄서는 극단적 정치의 고집이다.
흠결에서 절차적 진정성이 아니라 수단에 집착하는 반쪽도 안 되는 획일적 집단의 정치는 끝내야 한다.
계엄의 무모한 망상과 특검의 독주에서 비롯되는 탄핵과 난세의 부족한 선택으로 미래를 예지 할 수 없다.
21세기의 정치는 겉모습의 선동적 수단이 아니라 일과 능력이 우선하는 진정성의 설득이다.
나와 우리 편이 아니라 미래와 대의를 우선하는 양심이다.
모자람에 아쉬워 스스로 수박을 자처하며 속 보이는 모질은 까마귀의 안타까운 처신이다.
통신사회와 중도는 수단으로 진실을 은폐하려는 거짓을 수용 할 수 없다.

실체적 진실의 필요이다.
아쉬울 것도 없다.
벼슬의 사사로움 보다 국가와 민족과 민주주의가 우선이다.
난세의 정치적 책임과 기회에서 사람은 많다.
대권은 가업이 아니다.
새로운 시대에 부합하는 합리적 인격의 선택이 필요하다.
타협과 협력이 전제되는 중용의 실용주의를 우선하는 정치이다.
다양성과 반론의 수용에서 체제와 절차를 충족하는 의견수렴의 문제이다.
민심을 쉽게 사고하는 진정성 없는 정치의 개혁이다.
 
집단의 승패를 우선하는 정치공학과 권모술수의 올바른 판단이다.
문제는 양극화의 깃발에 줄서는 정치이다.
정치에서 민주주의와 우리의 주체를 확실하게 할 수 있는 체제의 필요이다.
선과 악의 획일적 경계는 분쟁의 소지가 있다.
국론의 통합은 안보의 중요한 요소이다.
타협과 협력을 우선하는 중용이 필요한 이유이다.
독일의 총선에서 중도보수와 중도진보가 연합하였다.
미지의 발현에 대비해야 하는 예지적 지식과 사물의 관계에서 합리적 가치의 시대이다.
울타리의 고집스런 깃발이 아니라 민심을 우선하는 지성의 분별에 의한 옳고 그름의 선택이 아쉽다.
2025.2.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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