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새 며느리. 본문
306 새 며느리.
1 몽중.
회색들판에 꽤 넓은 신작로가 곧게 뻗어있고 허공에서 쏜살같이 질주하고 있다.
혼자서 날고 있는 것이다.
창공은 공허하고 신작로의 두 아주머니는 작았다.
목적이 없었으므로 느긋하고 여유 있게 날아야 하는데 너무 높고 빠르다.
방향을 제대로 컨트롤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다.
어떻게 지상에 착지해야 하는지 막연하였다.
두 청년 옆에 내렸다.
본체만체 한다.
제방을 넘으니 호수였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날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맵시 있게 날며 공중제비하고 호수 위를 스치며 물장구치는 아슬아슬한 묘기를 연출한다.
호수가의 나이든 사람들은 여유롭게 날고 있다.
걷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특별하게 하늘을 나는 사람들 모임이었다.
핵심인사들께서 등장한다.
사회의 저명 급이다.
유형에서 무형을 창출하는 기묘한 신기의 소유자들 이다.
땅위에 서있다 순간 몸이 목 위만 남기고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어느 분은 목 위만 남은 머리가 컴퓨터 마우스처럼 스르르 움직였다.
극기를 이룬 특별한 사람들의 경연장이었다.
나도 꽤나 하는 대장급이었다.
몇 사람이 나에게 도전하였다.
기의 대결이다.
학습에 의한 마음의 설정이나 선과 악은 어디에나 있다.
서너 사람을 얍은 은색 판으로 둘둘 말아 꼼짝 못하게 가두었다.
사람들이 인정하였다.
영향력 있는 집안의 안 주인 해산날에 악마가 들이닥칠 것이라는 정보가 전달되었다.
날짜를 말하였는데 가물가물하다.
지켜야 한다는 어떠한 정의로운 사명감이 주어졌다.
커다란 두 짝의 문으로 닫혀있는 내실 앞에서 주시하고 서 있다.
호수에서 재주부리던 젊은이와 기의 고수가 어느 절에 양옆에 대기하고 있다.
문이 열렸다.
침상에 중세의 자주색 드레스 복장을 한 부인이 누워 있는데 해산하는 모습은 안이었다.
주변에 시중드는 몇 사람이 있다.
주시하는 가운데 침상의 부인이 서서히 떠오르며 머리 위를 지나 문밖으로 빠져 나가려 한다.
악마의 납치이다.
젊은 사람과 고수보다 가운데의 내가 먼저 떠올라 가로막으며 머리위로 지나가려는 상을 왼손을 뻗어 잡아채었다.
“뻑“ 하며 팔꿈치가 방바닥은 찍었다.
모든 것이 사라졌다.
귀신들이 오늘도 한바탕 난리치고 갔다.
2026.4.4일.
2. 세월의 무개.
누구나 자신의 것이 있다
내 것으로 타의를 지배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이 있다.
나의 사사로움은 타의적 예속과 지배에서 독립하려는 수십 년 세월의 고뇌와 인내가 있다.
시류의 시각으로 비교하고 견주어 성취하려는 견물이 없다.
예초 설정한 목적 외에 흔들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감히 말하는데 세속의 가장 소중한 것과 바꾸지 못하는 마지막 선택이다.
길의 끝은 어디인지 보이는 것은 시작이 된다.
날 파리의 소란에서 산짐승 들짐승에 이제는 고추가루 짐승의 제멋대로 저울추이다.
시류의 시궁창으로 들이대는 겉모습의 시험이다.
허풍과 허세로 산수하는 가벼운 처신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호수에 떨어지는 달빛의 고요에 핏빛 칼날이 선다.
물질과 권세의 속성을 위해 끈 내 막장으로 내몰아 처참한 몰골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인습의 당위성을 위해 몰록의 달구어진 금동 팔뚝에 올려지는 어린아이의 생명이다.
내 것으로 안주하지 못하는 타의적 경솔함이다.
내 안에서 물질과 권세와 허세로 안 되는 것이 있다고 하였다.
가까운 인연에 죄가 많이 있으나 주어진 시간 머물다 가는 것이다.
낫살에 시작한 이유이다.
언어의 동행은 요구하여 받은 것을 배려하라는 것이다.
관계는 상대를 인정하는 것이다.
이루어지면 분수를 지켜 옳고 그름으로 좋은 곳에 쓸 것이다.
아쉬운 추억이나 떠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존중하는 것은 간격이 필요한 것이다.
2926.4.7일.
3 중도.
극단과 독선이 판을 치는 민주적 정치 체제이다.
경기지사 후보경선에서 중도의 입지를 말하고 있다.
조직정치의 정지작업이다.
능력의 정당한 경쟁이 아니라 조직의 가면적 말살이다.
양당의 저울추에서 제외되는 중도의 비율이 최소 삼분의 일이다.
왜 선택지가 없는지 이것이 민주적 정당성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있는데 없다고 강요되고 있다.
다양성인가 극단인가 무엇을 향하는 것인지 예지가 필요한 대한민국의 미래이다.
중도정당의 족보가 필요한 것이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며 이해하여 수용하는 것이 비우는 대승적 지혜이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다.
언제까지 양당의 조직논리에 민주적 정의를 맡겨야 하는지 답답한 지식시대이다.
생태적 비율의 합리성에서 안타까운 중도의 분별이 필요하다.
미래지향적 선택이다.
2026.4.8일.
4 새 며느리.
새 며느리 들어와 살림살이는 크게 늘었는데 부뚜막 시집살이는 여전하다.
아직 숭늉까지 떠다 바쳐야 한다.
친정집 나들이가 언제인데 눈치보다 삼년이다.
인륜이고 평화를 떠들어도 가진자들의 몰염치는 뒤가 불편한지 쇠귀에 경 읽기이다.
일하는 놈 따로 챙기 놈 따로 이다.
동냥아치 서푼인데 왜인지 매우 궁금하다.
아쉬워 다급한 말이 아직 귓전인데 봄바람에 친정집 나들이는 요원하다.
곳간 열쇠 짊어지고 나누다 죽은 귀신이 있다.
애쓴 가치에 서러워 눈물 나는 것이다.
비운다고 하니 빈 수례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수례는 채워서 비우는 것이다.
경제에서 도덕을 상실하면 도적 떼가 된다.
이뿐 아니다.
울타리 사수는 사대부의 사랑방 되었다.
새끼줄 상표로 독점하여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민주적 투쟁의 역사는 독선에 갇혔다.
또 다시 조직과 권력자의 세상이 되어간다.
국민이 우선이 아니라 정당이 우선하는 이상한 민주주의이다.
중도의 더부살이를 끝내야 하는데 역사의 정체는 피로 쓴 시간을 망각하고 있다.
싹쓸이는 민주적 행태의 정치가 아니다.
결과에서 일의 순수보다 가면의 독선이 있다.
관계의 믿음이 부족하여 상황의 변화에 임기응변하는 권모술수가 팽배하다.
지지율의 권세이다.
권위주의적 독선은 지식의 저항이 있어야 한다.
2026.4.8일.
5 당처.
모가지 뽑아 올리는 정치판 거취에서 겉모습 가관인 특별한 객체는 없다.
상이 어찌하고 벼슬이 어찌 하다는 말의 허허실실은 믿을 것이 못된다.
단수이고 장 급이 어찌 하다고 하여 사람 볼 줄 아시는 갓 때문에 아찔하여 팔자 고치는 줄 알았다.
단수된 적도 없고 장 담은적도 없다.
손 안의 장부가 필요하나 모르고 지나가고 알고 지나간다.
견주어 갓에 연연할 상이 없다.
매사가 일이며 세속의 설득에서 언어의 동행은 필요한 것이다.
눈빛과 이심전심의 혜안은 멀었으나 남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온다고 말하고 오면 쉽다.
의혹과 의심에서 암시가 하나 둘 모여 하나의 언어(문화)가 되고 이것이 세상을 바꾼다.
무와 창조도 그렇게 이루어 졌다.
창조에서 생명과 인륜의 가치는 예초에 검고 희지 않았다.
삼라만상의 존재와 생명이 창조이고 변화의 대상이다.
언제나 떠날 수 있을지 당처를 정하지 못한 아쉬움으로 시간의 언덕을 넘어간다.
2026.4.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