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석유산업. 본문
305 석유산업.
1 머시기 혀!
새로운 질서는 상상의 범위를 초월할 것이다.
현재는 시작이다.
미래는 지배가 아니라 공유이다.
객체가 아니라 인류이다.
현상을 초월하는 기계적 기술에 의한 지식(데이터)의 시대이다.
물질의 소유에서 의식주를 우선하는 생존의 최적화이다.
공유경제이다.
지식은 저항의 힘이 있다.
주체의 자유이다.
물리적 지배에서 균형이다.
일방적 지배는 제국주의이다.
있는 것 포기할 바보는 없다.
누가 비 핵화를 말 할 수 있겠는가?
기회가 되면 가져야 한다.
생존적 현실이다.
민족으로 지켜 줄 자신 없으면 떠들지 말아야 한다.
없으면 힘자랑의 표적이 된다.
한반도에서 반쪽의 전쟁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지정학적 전쟁에서 국경의 의미를 상실하였다.
이해관계와 관련된 격과 생존의 치열함을 목격하고 있다.
죽이라고 들이미는 동귀어진의 벼랑 끝 저항이다.
힘세다고 특별하다고 함부로 하면 적당히가 안 된다는 것이다.
매우 우려되는 파괴적 학습이다.
특별할 것 없는 특별함과 힘세다고 연장을 앞세워도 인류의 유전적 한계를 초월할 수 없다.
학습의 보편성이 충족되어야 다음시간이 열린다.
너 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없다.
만만한 머시기가 안타까운 것이다.
통신사회의 역할이 필요하다.
2 공성전.
데이터의 활용에서 기술이 발전하여 생산성을 확장한다.
변화는 학습의 미완이고 확장적 미래이다.
분명한 것은 AI의 미래이고 관련산업의 미완이다.
확장성의 이해가 필요하다.
가치의 올 바른 평가는 시장의 정의이다.
상황이든 수단이든 저가매수의 기회는 지배자본의 생리이다.
한국 자본시장은 아직 저평가 되어있다.
자본의 주권(독립)이 필요한 전쟁 통이다.
동요하면 기둥을 지키지 못한다.
침략의 기회가 된다.
호르무즈는 아시아 경제와 관련이 깊다.
지긋지긋한 석유산업이다.
세계(인류)가 대응하게 될 것이다.
3 덩이.
지식시대를 말하며 나로 인해야 한다는 절벽 같은 덩이가 있다.
사방이 난리가 안인데 멍석 깔고 제 잘나 한바탕 굿판이다.
행여나 봄바람에 철들까 한해가 여삼추이다.
하나님과 부처님께 기도하고 삼신할미에게 지성 드려도 역시나이다.
지진이 나고 태풍이 지나가도 고놈에 덩이는 꿈쩍도 않는다.
기어코 사단을 내는 것이다.
힘이 장사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하늘을 원망한다.
벼슬의 오지랖은 패는 놈이나 들이대는 놈이나 똑같다.
내일이 아닌데 사나운 문지방 사수에 동네사람 모두 불러 역상 들라 한다.
애초에 지나치지 않았으면 물길은 이상이 없었다.
줄 세워 시험할 이유가 없다.
때려 부순다는데 할 일 없는 것이다.
어찌하다 이지경이 되었는지 해묵은 역사의 갈등으로 지구촌이 갈팡질팡 이다.
군자는 길이 아니면 가지 않는다고 하였다.
지키는 것은 갈등이 아니라 소통이다.
국경이 아니라 왕래하여 공유하는 것이다.
그나저나 소 잊고 외양간 고치는 것 아닌지 애쓴 보람이 없다.
잘 나가던 병오년(丙午年) 한해가 힘들어 지고 있다.
4 시류.
나는 나이다.
허수아비도 그림자도 아니다.
어설픈 시각으로 내 것을 네 것처럼 행색 하는 낮 바닥이 있다.
가며는 오는 것이 인지상정 이다.
안식일 주의에 거부감이 강하다.
시류의 변방이라고 하면 작금의 상황에서 서운한 것이 있다.
많이 노력하였다.
극단적 선택과 곁가지의 어부지리 산수에 기여할 생각이 없다.
옳고 그름의 선택은 언제나 자유이다.
중용을 위한 대의와 신념이다.
인연에서 인륜이고 인류의 평화이다.
한반도의 미래이다.
나의 사사로움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였다.
세속에서 도 닦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설득은 언어의 동행이 필요한 것이다.
운신하기 참으로 까다롭다.
이미 주변의 시선은 시류에 있다.
가까운 곳의 저울추가 힘들다.
5 한심한 사대부.
체제와 정치는 한치 앞이 어두운 인간의 탐욕적 속성에 지배되어 있다.
민주주의나 권위주의나 권력의 속성은 독선적 객체 또는 집단에 의한 것이 되었다.
가치의 정의를 상실하고 말과 낮 바닥을 우선하는 조직과 권세의 사대부가 시장을 교란하고 있다.
국민을 쉽게 생각하는 조직정치의 무지하고 한심한 시각이다.
21세기에 조광조의 혁파적 개혁을 생각해야 한다.
도대체가 자신들의 거취에 눈 돌아가 한치 앞을 보지 못하는 닭 벼슬뿐인 정치와 정치인부터 바꾸어야 한다.
시장이 왜 흔들리는 가?
진실을 허수아비와 그림자로 감추고 왜곡하여 숟가락 올리는 권세의 치졸함 때문이다.
언제부터 유교적 서얼(신분)의 차별이 재발하였는지 세태가 개탄스럽다.
조직의 학습에 지배되어 말을 해도 무엇이 국가이고 미래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정말 모른다.
그저 주뎅이와 낮 바닥뿐이다.
조직에 똬리 틀고 사대부의 망령을 뒤집어 쓴 정치판이다.
2026.4.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