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반야심경 5. 본문
반야심경 5.
염화시중(拈華示衆).
석가모니가 영취산(영산)에서 설법을 할 때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였다.
청중은 의미를 몰라 모두 침묵했다.
제자인 가섭(迦葉)만이 의미를 깨닫고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부처는 가섭의 미소를 보고 마음이 서로 통했음을 확인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
진리는 언어나 문자로 모두를 표현할 수 없으며 마음으로 전달해야 한다는 선(禪)의 가르침이다.
설하지 않아도 부처 자체가 당처(무아)이므로 마음으로 통한다는 것이다.
선종(禪宗)의 시작으로 알려져 있다
선정 (選定).
수행방법(禪定)에서 하나의 대상을 정하고 집중하는 일심(一心)의 고요이다.
깨달음을 얻기 위해 일념(一念)으로 만상을 비워나가는 참선의 수행이다.
선정의 사선(四禪)이다.
1선(初禪): 욕계의 번뇌에서 벗어남.
2선(第二禪): 생각을 지우는 내적 성취.
3선(第三禪): 평온하고 행복한 상태.
4선(第四禪): 초월하여 맑은 상태에 이름.
삼매(三昧).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고요하고 평정(平靜)한 일심(一心)을 위한 일념의 의지를 뜻한다.
수행에서 망상과 졸음(혼침)을 극복하고 집중력을 유지하는 참선의 필수적 단계이다.
주관과 객관이 하나가 되는 몰입의 상태이다.
반연(攀緣).
어떤 대상에 마음이 매달려 인연을 맺는다는 뜻이다.
덩굴이 나무를 감고 올라가듯 마음이 외부 대상이나 환경에 의지해 일어나는 것을 말한다.
홀로 서지 못하고 덧없는 일에 집착하는 것이다.
외부적 번뇌에서 벗어나 일심을 이루어야 깨달음에 이를 수 있다.
인연의 사슬에 있는 세속과 멸도에 있는 불가의 문법은 다르다.
요달(了達).
마칠 료(了)와 통달할 달(達)이며 사리(事理, 일과 이치)를 통달하였다는 뜻이다.
불법의 깊이를 깨달아 더 이상 의심이 없는 경지를 말한다.
무의 중용이다.
만상의 저울추는 하나이다.
있고 없음에서 모두가 같다는 것이다.
부질없는 만상에 억매이지 말고 객체에 머물러 자성을 완성하라는 말씀이다.
자신 있는 중생에게 손 들으라고 하면 세속을 원망하게 될 것이다.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부처가 세상에 오신 근본적이고 중대한 단 하나의 목적을 뜻이다.
네 가지 단계 개, 시, 오, 입를 통해 중생을 구제하는 과정이다.
개(開): 중생이 본래 갖추고 있는 부처의 지혜를 열어주는 것이다.
시(示): 직접 보여주는 것이다.
오(悟):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다.
입(入): 깨달음의 경지에 들어가게 하기 위함이다.
부처께서 소승의 법으로 중생을 구제하지 않았다.
실천불교이다.
적멸지도(寂滅之道).
모든 집착과 상(相)을 떠나는 것이 적멸이다.
번뇌와 고통이 사라진 고요한 상태(열반)에 이르는 길이다.
불도의 시작이고 중심이다.
제법종본래 상자적멸상(諸法從本來 常自寂滅相).
삼라만상은 본래부터 항상 적멸(고요함, 열반)의 모습이다.
마음으로 상의 동요 없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라는 것이다.
보이는 그대로가 부처의 세계라는 가르침이다.
!!!기름없는 등잔이 사방을 환하게 비춘다.
충실한 마음이 주변을 이롭게 한다.
충절이고 살신성인이고 무위적 보시이고 빗자루 들고 쓸어 깨끗하게 하는 것이다.
파종하여 이루고 나누는 것이다.
벽지장도 맞들어 합하여 이루는 것이다.
행하고 돌아서는 무위의 밝음으로 주변을 이롭게 하는 것이다.
!!!근기에 따라서 일체만물의 이로움과 일제중생을 제도하여 피안에 이르는 것이다.
내안의 성취가 진정한 성취가 아니다.
일체만물과 일체중생의 이로움에 이르러야 가르침에 이른 것이다.
낮은 곳을 채우고 높은 곳을 나누는 평정(平正)을 위해 나에 머물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루었으면 표시가 되었으니 제자가 되었든 중생이 되었든 보시하라는 것이다.
!!!무아라 하니 그것만이 중생을 구제하는 깨달음 이라는 관점은 오히려 자성의 경직에 이를 수 있다.
깃발은 표시이며 최종적 목적이긴 하나 이미 깨달음의 길에 있다면 유효한 것이다.
정도에서 기여할 수 있다.
불법의 가르침에도 계보가 있고 적자가 있으며 문하가 있다.
항아리 속에서 줄기가 되고 가지가 되고 잎이 되어 꽃을 피운다.
불토(佛土)이다.
!!! 지지고 볶아도 보는 놈은 한 놈이다.
만사는 보는 놈 마음이라는 것이다.
너 만 속 창시 제 대로면 무상이라는 것이다.
수신하여 얽히지 말라는 말씀이다.
세치깊이의 지식과 혀로 나서서 오지랖 넓히지 말라는 것이다.
너의 손에 만상의 장부가 없으면 네 것이 아니다.
쳐다 볼 이유가 없다.
남의 것에 침 바르려다 귀 싸대기 온전하지 못 한다.
내 안의 것으로 세상을 비추어 보는 지혜가 혜안이다.
!!!못을 박았으면 뺄 줄 알아야 하며 팔을 뻗었으면 굽힐 줄 알아야 한다.
참선하는 것도 이것을 위한 것이다.
현상은 창조에서 발현된 사물적 실증이다.
불토의 문법에서 모든 집착의 원인은 상이다.
삶에서 대체로 앎이 필요치 않는 존재적 또는 생태적 질서이다.
각각의 영역에서 의심을 해소하려는 탐구적 욕구는 인간의 생존적 본성이다.
인연의 의심이 삶이다.
상호적이고 대의적이다.
여기에서 현재는 학습과 시간을 충족해야 미래의 시간에 도달한다.
실증된 현상의 범위를 넘어야 미지에 이른다.
어떻게 하라는 것이 의심이다.
진리의 탐구이다.
스스로 노력하는 지혜이고 역사에서 가르침이다.
불토에서 참선이고 법문이다.
박힌 못을 뽑는 것이고 뻗은 팔을 굽히는 머물지 않는 지혜이다.
고정된 관념에서 벗어나는 학습에 의해 무명의 의혹이 밝아진다.
현상에서 미지는 진리를 평정(平定)해야 넘을 수 있는 백지장 하나의 무지이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도피안(到彼岸)의 수행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고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으나 하늘 아래 뫼(山)이로다.
하늘과 땅이라고 하나 인연의 시간에서 하늘(空)은 손 밖에 있는 미지이고 땅(相)은 그래도 어떻게 해볼 수 있는 손
안에 있는 것이다.
무한의 무아에 이르는 길은 쉬운 것이 아니다.
생의 한계에 있는 너로 인한 성취이다.
가지 않아도 생은 너의 것이다.
모르면 덜하여 손해이고 알면 더하여 행복하다.
모르면 화가 있고 알면 기쁨이 있다.
모르면 가두어 업이 쌓이고 알면 나누어 복덕이 쌓인다.
진리의 무지는 어둠워 무겁고 진리의 깨달음은 비워져 가볍다.
알고자 하면 못할 것도 없다.
모든 것이 내 안에 있다.
!!!"눈 밝은 사람이 산에 오르면 보이는 것이 없다." 고 하였다.
밝음으로 수용하면 막힘이 사라진다.
깨달으면 인식의 경계가 사라진다.
보이지 않으면 어둠의 경계가 생긴다.
의혹이다.
의혹이 진리의 밝음으로 해소되면 경계가 사라진다.
밝음으로 찾으려는 의혹(무명) 너머가 도피안(到彼岸)이다.
!!!"왜 일 없이 일산을 젖히고 지나갔는가?" 라는 설이 있다.
당시대에 공자와 맞먹는 온백설자의 조우에서 공자가 일산을 젖혔다.
동요하였다는 것이다.
세속의 시각에서 관심과 예의 일수 있으나 도가나 불가의 눈빛과 이심전심의 언어에서 상대를 의식하여 동요하는
것은 수행의 깊이와 관계가 있다.
백지 한 장이 아니라 빛이 지나간 찰나의 차이에서 우열이 가려진다.
최고의 경지에서 무신(無身) 우열 말씀이냐고요?
부처는 한분이시다.
두 분은 말없이 스쳐 지나가며 눈빛으로 소통하였다고 한다.
2026.3.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