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유몰론과 AI 3. 본문
302 유몰론과 AI 3.
16 두개용량.
산토끼든 집토끼든 토끼이고 멧돼지는 돼지이고 야생말 말이다.
유전적으로 동일한 종이다.
유전적 분화는 수천에서 수백만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자와 호랑이의 분화는 500~200만 년 전이라고 한다.
아직도 교배를 통한 유전적 합치가 가능하다.
라이거이다.
가축은 1만에서 1만3천 년 전 인류의 정착생활에서 시작되었다.
집토끼와 산토끼의 교배에서 새끼는 유전적으로 동일체이다.
종의 불변과 이종의 경고는 분화의 조건에서 최소 수백만 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류사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지식의 의혹은 끝이 없다.
존재의 욕구와 성취에서 필연적인 것이며 지적 생명체의 본성적 진리이다.
결과적으로 미래를 위한 노력이다.
인간을 지식의 울타리에 가두어 양육하신 신의 섭리이다.
지식의 정도와 업적은 뇌의 크기와 비례한다고 하였다.
데카르트의 두개골은 작으나 환상적 균형이었다.
학습에 관한 내용은 없다.
대학입시에서 상위에 있는 학생은 뇌가 크거나 균형적 이어야 한다.
왜 학원 다니고 잠잘 시간 쪼개어 공부하는지 현대인의 무지이다.
머리통 크면 장땡이다.
1860년대 초이면 멀지않은 역사이다.
불확실한 현상의 집착이며 창조를 설명할 수 없는 유물론의 한계이다.
여전히 정신을 학습이 아닌 영적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다.
철학보다 산수에 진리가 있다.
참선은 단순해지려는 고행이라고 한다.
진리는 단순한 것이다.
17 헌상과 생명.
과학은 종교적 은유이다.
성경의 개념에서 과학이 성장하였다.
종교가 추구하는 미지의 추론이라면 동의한다.
정념은 육신이 격정으로 반응하며 일으키는 정신적 기운이다.
이것이 정신과 육신을 일치시킨다고 하였다.
목숨줄 걸고 내 것 없이 내어주는 또는 나의 것으로 갈망하는 오죽하는 감성적 심정이다.
행동적 감각의 표출에서 정신이 육체와 결합한다고 보는 듯하다.
자아도취의 상태라고 본다.
현상에서 생명을 찾고 있다.
유물론의 집착이다.
자아의 심연이라는 것이 있다.
일반적으로 참선의 깊이에서 찾을 수 있는 무아의 상태이다.
무저갱의 절망적 나락에서 전무의 상태와 반대되는 깊고 고요한 의식에서 느끼는 생명의 기운이다.
탄생 후 최초로 울부짖는 갓난아이의 울음소리에 있다.
현상과 생명에서 관점의 차이가 있다.
표현하기 조금 무섭다.
이런 순수 시방은 찾아보기 힘들다.
18 점지.
육신의 고통을 견디며 시간의 소일을 찾았다.
몇 달 전 책을 빌려보기 위해 인터넷으로 회원증을 만들어두었다.
붙들면 끝장을 보아야하는 직성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집중력 문제이다.
언제나 결정은 계획하지 않은 순간에 이루어진다.
우연한 선택이 최선이 되는 경우가 많다.
경춘선 나들이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길목의 도서관에 갔다.
난생처음이다.
직원이라고 해야 하나 사서라고 해야 하나 모호하다.
사무적 상황이라서 그렇다.
사서라면 책장 앞에서 도서를 안내해 주는 그림이 도서관의 상상이었다.
미비한 절차를 거치고 4층 서고로 갔다.
구조와 책의 진열에 대해 식견이 전무하여 망막하였다.
읽고 싶은 책을 몇 권 메모해 두었는데 오밤중에 비녀 찾기였다.
두리번거리다 맨 처음 들른 곳이 철학서고 였다.
둘러보다 궁금하였던 유물론의 대가 데카르트의 명성이 보였다.
일단 위치를 확인하고 서고를 둘러보았다.
더러 들어본 책이 있었으나 내가 찾는 책을 찾을 수 없었다.
다시 돌아가 들고 나온 책이다.
읽으며 운명처럼 점지된 시간의 암시인가 하였다.
지식의 진화에서 학습의 연속성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마침 질서의 끝마무리를 작업하려 하였는데 점지였다.
역사에서 데카르트의 이원론과 이데올로기의 영향에 대해 많이 궁금하였다.
물질문명의 시간과 자아적 삶의 존재적 문제에서 나름의 결론도 필요하였다.
아직 많이 부족하나 도움이 되었다.
집착은 좋은 것이라고 말씀하신 분이 있다.
집착은 집착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해결책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지식이든 행동이든 파괴될 정도가 아니면 집요함은 필요한 것이다
밤낮이 바뀌었는데 고생 좀 할 것 같다.
19 다원적 시대.
의견의 일방적 요구가 형성되면 통치의 어려움이 있다.
절대다수의 집단적 요구를 수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절대다수의 집단적 요구는 필연적으로 내 것을 우선하여 합리성이 결여된다.
우성향의 일방적 요구가 대체적이다.
우리편과 넘에편에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통치권의 철학을 반영하는데 걸림돌이 발생한다.
생태적 질서는 각각의 디테일 한 생존조건에 앞서 의식적으로 현상적 균형의 합리성을 요구한다.
양당정치의 현실에서 정치가 숙지해야 하는 균형 즉 수레바퀴의 논리이다.
민심의 감각이다.
논리가 아니라 감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민심이 안주 할 수 있는 오두막이 필요하다.
물론 색깔론의 국수주의자를 제외 한 합리성을 우선하는 중도 진영의 선택이다.
현재 대한민국 정치구도에서 방황하는 민심의 오두막이 없다.
중도정당이 없다.
양극화로 대립하는 각자도생의 정당정치이다.
모 아니면 토이다.
들이밀면 된다는 미래 없는 정치가 만들어낸 막무가내 식 판떼기이다.
양당제의 이분법적 경계에서 정당권력의 극단적 폐쇄성에 기인하는 현상이다.
소수집단의 패권적 형국이다.
이것을 해소하여 균형의 상시를 이루자는 것이 다당제이다.
선택의 다원화이다.
민주당의 독주를 견제하려 하여도 야당의 극단성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편성의 극단적 결여이다.
정치는 각자도생이 아니다.
지식시대는 불편함에 합류하지 않는다.
코스피 육천과 시가 총액 오천조의 집중력은 지식시대의 증거이다.
정치가 시대의 요구에 따라 변해야 한다.
다원적 지식시대가 요구하는 균형의 합리성을 위한 다양성의 오두막이다.
작금의 현상은 관계의 합리성이 결여된 집단의 패권과 개인적 성취욕이 앞서고 있다.
대의와 일을 소홀히 하는 조직사회의 병패이다.
울타리에 줄서면 된다는 사고방식이다.
지식의 선택이 강요되고 있다.
중용에서 정당이 아니라 인물의 선택이 필요한 시국이다.
한마디 덧붙이면 남북관계도 정치적 수사가 있다.
지나치게 인색한 사람들이 있다.
20 주먹과 심리.
인류사에서 전쟁이 그칠 날이 없다.
질서 보다 표현이 우선하는 주먹이다.
21세기의 지성은 무엇 때문인지 알고 있다.
역사의 일상인데 사회와 경제의 시시비비가 극과 극이다.
알면서 "화들짝" 반사작용에 가위눌려 분별을 상실한다.
장날 인양 입방아 생산성에 몰두한다.
현상이 우선이 아니라 말이 우선이다.
한치 앞이면 되는데 십리를 먼저 간다.
일상이 지루하여 기다린 듯하다.
핵이라고 하니까 한반도 문제를 끼워 넣는다.
어찌 하겠다는 것인지 듣기 사나운 설정으로 오지랖 넓히고 있다.
전쟁나면 애쓴 역사 쓸모없게 된다.
한반도의 핵은 한국이 해결할 수 없는 이분법적 냉전과 패권주의 역사의 문제이다.
이것을 선행하여 해결해야 한다.
부수고 처참한 주먹이 무서운 것이다.
핵은 시도 때도 없이 문지방 부수고 처참한 앗수르의 역사에도 있다.
그렇다고 덩달아 말초신경 곤두서서 정신없는 경제도 문제이다.
자본시장 변동율이 천당과 지옥이다.
전문가의 말씀과 제시한 자료에서 몇 차례 중동전쟁과 9,11의 비극을 경험한 데이터가 있다.
면역이 되었을 법 한데 매번 나라밖 좋은 일 하신다.
주체를 지키고 견디어내는 인내와 기업가치의 분별에서 부족함이 있다.
어려우먼 그냥 죽이라고 눈감고 드밀면 세월이 약인데 섣부르게 팽개치는 형국이다.
대한민국 반도체산업의 저평가는 누이도 알고 세계도 안다.
아직은 대기만성의 과정에 있다.
주먹질 액션에 떨릴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부시고 처참하다 지치면 그만두게 되어있다.
이성적 산수에 희생되는 비극적 주검이 안타까우나 불난 자리에서 나무가 자란다.
선의 부담은 역사의 교훈이다.
세상의 이목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3억을 몰방하고 2만원이 백만원 되었다는 고수들의 초연함이 답이다.
서당 개 몇 개월의 풍월이기는 하나 우리나라 자본시장과 반도체는 아직 성장가치가 있다.
2026.3.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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