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고통의 시간. 본문
297 고통의 시간.
1 증상.
아스피린을 과다 복용했을 경우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태에 이를 수 있다.
증상은 이명 (귀울림), 난청, 위장출혈(메스꺼움, 구토,복통.),빠른 호흡 (과호흡), 졸음, 혼란, 어지러움, 발열, 탈수, 근육통,
신장이상 등이다.
유사하다.
무모한 작자이다.
의료인의 상식에서 왜 그랬을까?
조직사회를 맹신하는 작자들이 있다.
민간요법은 없다고 한다.
활성탄 투여하고 심하면 투석해서 제거해야 한다는 자료이다.
2 상태.
복통, 이명, 수면장애가 있다.
야간의 근육통과 어깨 결림과 반사 신경처럼 반응하여 움찔하는 발짝이 하루에 두어 번 정도이다.
호흡기에서 세끼손톱 정도의 노란가래와 마른기침이 하루에 서너 차례 있었다.
가래와 마른기침은 진정되는 듯하다.
왼쪽가슴에 통증이 심하진 않으나 있었는데 나아지고 있다.
호흡이 깊어지는데 이것도 증상 중 하나인 것 같다.
이명은 서너 달 되었고 복통은 사오일 되었는데 아직 소멸의 속도가 시원치 않다.
이명은 밤이 힘들다.
일상에서 소음에 섞여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위에 가스차고 소장에서 북치고 장고치고 있다.
대장의 과민성으로 괴롭다.
걷는 것이 예전 같지 않고 책보고 공부하는데 집중력과 체력의 부담을 느낀다.
두어 달 전 갑자기 체력이 떨어지고 호흡이 불안정한 경우가 있었다.
영문을 몰라 약과 운동을 줄이고 독서와 공부를 중단하였다.
이후 점차 회복되었다.
시방의 체력은 그때보다 나쁘지 않다.
시력도 노화와 비교하여 집중도가 떨어지는 듯하다.
두통은 못 견딜 정도는 아니나 정신은 시간이 흐르며 나아지고 있다.
과거의 경험으로 인내하여 견디고 있으나 수면이 불편하여 힘들다.
비몽사몽으로 서너 시간이다.
전철 타면 졸린다.
술 마시면 두어 시간 곤하게 떨어진다.
문제는 위의 부담이다.
복통 때문에 술의 힘은 피하고 있다.
그나마 술이 약이었는데 피난처가 사라져 아쉽다.
숙면이 그립고 병원과 약이 무섭다.
귀신은 모 하는지 죽일넘 돼지머리로 고사 지낼 날 가까워지고 있다.
3 하늘.
죄에서 선과 인륜의 정도가 있다.
감지했든 안 했든 예초 하늘의 뜻이었다.
인륜의 가면을 쓴 의술의 현상은 인간사회의 한계이다.
조직을 맹신하는 닭벼슬 보다 못한 지성의 가면이며 시정잡배의 패륜이다.
도발하여 적대적으로 시작하지 않으나 부당하게 침해하면 지옥에 이르러 깨달을 것이다.
마지막 날의 말씀이다.
4 정치개혁.
일은 안 하고 칫간 울타리만 부여잡는 정치판이다.
권세의 성취에 민주주의가 사라졌다.
너 아니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있다.
조직의 과거에 원만하게 처신하고 지식시대의 토대를 닦을 시간이다.
생태계의 존재적 존중을 이해하는 비율적 정치 참여이다.
유럽식 민주주의이다.
양극화의 극단적 집단주의에서 다당제의 정치개혁이다.
작금에서 가장 모자란 정치판의 권세와 벼슬의 개혁이다.
시대의 시간은 빛의 속도인데 칫간에 울타리 치고 요지부동인 조직사회의 구태이다.
할 일 없고 있어도 못하는 낮 바닥 정치의 프로파간다이다.
조직사회의 집단주의에서 기본권의 자유와 창의적 지식의 시각으로 바꾸어야 한다.
예속과 지배에서 자유와 창의적 예지의 지향이다.
집단을 충동하는 우상적 사회악의 개혁이다.
독선이 아니라 전체를 우선하는 민주적 체제의 올바른 이해이다.
정당보다 체제를 우선하는 삼권분립의 존중이다.
닭 벼슬 세우고 낮 바닥 가면과 거짓의 선동과 조직의 권세로 국민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사대부의 작태를 때려
치워야 한다.
프로파간다의 시대는 끝났다.
조직으로 진실과 정의를 억압하고 지배하려는 모자란 정치의 깨달음이 필요하다.
미지의 예지를 찾아볼 수 없는 정체된 사랑방정치의 개혁이다.
무리지어 노략질 하는 절대권력의 폐쇄적 사고방식이다.
하찮은 권세로 학습과 시간의 예지를 지배하려는 어리석은 수단의 고집이다.
내 것에 집착하여 지식과 문화의 수준을 무시하는 한 치가 어두운 집단주의이다.
일 저지르고 상대적 저울추에 기웃거리는 정의 없는 돗자리의 처신이다.
지식을 공유하는 통신사회의 이해가 부족한 울타리의 고립된 시각이다.
상호관세의 위법을 판정하였다.
본받을 것은 본받아야 한다.
입법과 사법기관은 우리편에 몰방하는 거수기가 아니다.
통신사회의 정치는 하루아침에 낙동강 오리알 될 수 있다.
증시가 하루아침에 육천에 이르고 있다.
국가중추가 변하고 있는데 정치는 울타리에 머물러 있다
국민이 이룩하면 호시탐탐 숟가락이나 올리려는 작태이다.
정치가 세상을 가꾸어 바꾸려는 노력이 아니라 구태의 바짓가랑이 붙잡고 있다.
너 죽어야 내가 산다는 산수밖에 모른다.
특별한 사대부의 갓 쓰고 권세에 집착하여 정체되는 벼슬의 모가지를 비틀어야 한다.
자유와 창의적 기본권 보호는 예지적 생산성 추구이다.
자본시장의 벼락같은 변화에서 공부가 필요하다.
부동산의 비생산성이 아니라 묻혀진 자본의 광물을 찾아야 한다.
사회와 정치에서 옳고 그름의 정의이다.
경제에서 자본의 차별적 정체가 아니라 유동성의 진실이다.
변화와 개혁을 통한 문화 유토피아이다.
AI와 로봇과 통신사회이다.
지식시대와 인류를 이해하는 글로벌 데이터 시대의 동행이며 한반도와 미래이다.
생산성의 새로운 시각이다.
현상의 안주가 아니라 미지적 예지이다.
2026.2.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