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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질서와 한반도. 본문
292 국제질서와 한반도.
1. 한반도 평화.
본류는 평화의 공유이다.
경계와 방어의 수단에서 무력의 가시적 경계에 집착하는 역사의 사슬을 끊어야 한다.
군사적 대치는 죽음과 소멸을 전제하여 존재와 자유의 예속적 관계를 강요하고 있다.
한반도 분단은 이분법적 문화의 패권과 냉전적 사고에서 에굿은 지정학적 문제의 끝물이다.
인류의 지식진화에서 학습의 시간에 예속된 문화적 책임이다.
부르주아와 사회주의로 기록되는 저항의 역사가 시간을 충족하고 있다.
21세기는 글로벌 문화를 공유하는 통합적 지식의 시대이다.
기득권에 저항하며 사회성을 요구하는 시대가 아니라 미지적 지식의 시대이다.
머릿 수의 노동에서 데이터와 기계적 생산성이다.
지식산업과 시장은 이미 이념적 학습의 시간을 지났다.
희석된 이분법적 역사의 관성적 집착이 치마자락 붙들고 있는 것이다.
적대적 생존의 문화에 구속된 자아이다.
예속과 저항의 사회성 요구에서 새로운 질서의 시간을 이해해야 한다.
가치를 우선하는 지식의 분별과 예지이다.
통신을 통한 글로벌 문화의 공유이다.
데이터에 의한 기계적 생산성은 체제와 관계가 없다.
미래의 생존이며 새로운 질서이다.
무서운 속도로 변화하는 지식의 요구에서 시대적 고립은 자멸에 이른다.
냉전적 체제의 문화적 구속에서 지식의 대세에 합류해야 한다.
한반도 문제의 인류적 책임에서 제국주의와 군사문화의 걸림돌이 있다.
냉전적 역사와 군사적 경계의 불신이다.
죽음과 소멸이 전제된 예속에서 체제와 민족적 의식이다.
상호공존의 전제가 필요하다.
세계와 한반도 주변국의 합의에 의한 한반도 평화안의 실체적 성립이다.
지식시대에 부합하는 지정학적 경계의 해소이다.
선이 주도하는 인류적 관심과 자본과 산업의 동행이다.
정치와 경제의 상호적 관계이다.
미래는 문화와 자아의 저변에서 개별적 능력과 창의력의 취합이다.
대외적 교류의 적극성이며 글로벌 문화의 공유를 인정하는 정치와 산업의 개방과 병행하는 존재의 보증이다.
치마자락 문제에서 상호주의의 신뢰이다.
이웃과 품앗시의 개념이다.
통 크게 하시라는 것이다.
2. 문화의 이웃.
문화적 교류와 소통이 필요하다.
땅의 왕래에서 자유로운 또는 자연스러운 이웃의 개념이 창의적 생산성에 기여한다.
비행기와 선박은 아무래도 특별한 접촉의 제한성이 있다.
주적을 고집하는 군사적 폐쇄성의 문제이다.
이분법적 냉전체제의 관성적 집착이다.
매사가 경계와 생존을 우려하는 삶은 힘들다.
주먹에 주목하면 지식과 자아를 소홀히 한다.
개별적 능력과 창의성은 문화와 지식의 학습적 충족이다.
글로벌 사회의 시간은 격리된 문화적 고립의 한계에서 이웃의 공유이다.
씨족 부족의 방어적 성벽개념에서 인류적 문화와 지식의 공유이다.
국가의 주권은 개인의 선택과 다르다.
개인은 생태적 이탈이 가능하나 국가는 어떠한 체제든 국민의 합의가 전제된다.
글로벌 사회의 생존적 조건은 전체적 생산성에 의해 국가의 경쟁력을 가늠한다.
국민 개개인의 생산성 향상이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냉전적 문화에 의한 획일적 사회성 요구가 자아의 창의성을 해친다.
미지적 지식은 현상적 사고의 절대성에서 함수적 가치의 분별이다.
AI시대의 미래는 타의적 더하기 이며 통합적 지식이다.
학습의 벽에 막힌 절대성의 집착이 유전적 시간이 요구하는 가치의 예지를 구속한다.
인류의 유전적 시간에서 역사는 존재하나 절대는 없다.
지식에 의해 문화(질서)는 변화한다.
21세기는 실증에 집착하는 현상의 절대가 아니라 학습과 시간이 요구하는 다원적 지식이다.
감각적 실증에 갇힌 절대적 사고의 벽에서 지식에 의한 가치의 예지적 미래를 이해해야 한다.
자본패권에서 지식과 기술패권의 시간에 진입하고 있다.
사상적 질서의 고립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지키기 어려운 시대이다.
데이터에 의한 기계적 생산성을 수동적 노동으로 경쟁할 수 없다.
사회주의의 사회성 요구는 자아적 창의성과 관계가 있다.
현상은 준비된 세계를 위한 학습과 시간의 충족이다.
현세의 국제질서는 격리된 고립된 문화로 생존하기 어렵다.
국가가 개인의 자아를 통제하는 지식의 어두움과 생태적 합리성에서 소통부제의 시대는 지나갔다.
미지의 발현은 지식에 의한 질서 즉 사회성의 변화에서 시작한다.
정권과 적대적 냉전체제는 다르다.
한반도의 소통과 교류에서 행정은 부담될 이유가 없다.
미래의 공존에서 행정과 지식의 분별이 필요하다.
지식과 문화의 향상으로 스스로 참여하여 이웃으로 공유되는 질서가 문화 유토피아이다.
한반도의 미래이다.
둥북아의 가능성이다.
3 주택정책.
집은 서민중심의 거주를 우선해야 한다.
부동산의 투기적 심리는 절제되어야 한다.
지나친 독점적 사유는 제도에 의해 제한되어야 한다.
주택정책에서 똑똑한 집 한채든 특정지역 이든 치부적 기회주의는 일부의 특정의식이다.
국민과 민생에서 주택은 당연히 대다수 국민의 주거 안정이다.
땅의 공공성에서 집값상승의 투기적 개념은 주거의 본질이 아니다.
계층의 차별적 기회에 줄서는 사유의 왜곡이다.
불로소득을 조장하는 똘똘한 집이 아니라 서민위주의 저렴한 안식처가 필요하다.
식구들과 밥 해먹고 잠자며 인연을 공유하는 장소의 애착이다.
일터에서 돌아갈 곳의 안주이다.
특정지역이 아니라 교통이 편리한 시 외곽과 수도권 편리한 지역에 비용을 고려하여 보급되어야 한다.
공공성을 요하는 서민주거 중심의 정책이다.
공동체의 의식주 해결에서 공공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국가가 주도하는 주택사업에서 투기심리를 조장하고 용인하는 특정지역이 정책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된다.
서민주건 환경개선이 중심이어야 한다.
하늘 높은지 모르는 별천지는 민간이 하든 지역이 하든 서민과 관계없는 호사이다.
서민생활 안정을 위해 자본의 변태적 탐욕과 격리하여 울타리 쳐야 한다.
토지공개념은 과거 진보진영에서 주장하였다.
한반도 남쪽의 차별적 불균형 문제이다.
4 자본시장.
조정의 건전성과 시장의 저변은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야 한다.
저변을 과시하고 확인해야 발전한다.
돈은 높은 곳을 향한다.
시장을 지키려는 굳건한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로벌 자본에 시달린 대한민국의 산업과 시장의 올바른 평가와 주체적 주도이다.
물론 산업전반의 신뢰는 근본적 바탕이다.
대한민국 산업의 가치와 성장에서 올바른 평가이다.
인공지능의 미래는 빅테크를 중심으로 기초를 다지는 초석의 시간이다.
중소기업의 데이터 활용이 다음 단계라고 본다.
결국 일상의 접목이다.
살펴보면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지식산업의 악과 선에서 주의할 부분도 결국 산업적 요구가 된다.
선을 지키는 경계와 보완의 생산성이다.
선의 주도에서 악의 시도는 지식의 가르침이다.
자본시장의 정당한 평가와 안정과 수성은 미래의 자산이다.
똘똘한 집한체의 문지방 집착에서 코스피와 코스닥의 건전한 성장은 불로소득의 불균형을 해소하는 긍정적 자산이다.
산업과 자본의 사회적 공유와 분배에서 다음세대와 한반도의 미래를 위한 준비이다.
5. 태평양과 대륙.
빅2의 공존적 생산성이다.
문화와 지식을 공유하여 냉전적 역사를 해소하는 동행의 미래이다.
지정학적 문제와 민족사관의 경계에서 미래적 가치를 우선하는 실체적 실용주의이다.
경계적 대립에서 문화적 공유를 통한 인류적 관계의 발전이다.
한반도 문제에서 지정학적 관계의 바램이다.
동북아와 북태평양 연안은 우수한 인적자원과 자원의 보고이며 사람살기 좋은 기후이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준비된 땅이다.
한반도는 대륙의 출발점이다.
현상의 활용에서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학습과 시간의 유전적 이해가 부족한 격리된 성벽과 이분법적 역사의 핑계이다.
이념의 경계를 우선하는 대결적 문화는 파괴적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성벽의 역사는 경계와 대립적 학습의 시간을 충족하였다.
후대를 말하며 당대에 집착하는 시간의 모순적 집착이 있다.
문화적 예속에 집착하는 관념과 관성적 절대성이다.
인간과 지구중심의 절대적 문화에 예속된 시간이 있었다.
가시적 현상의 우상화이다
암시적 질서 광야와 자아의 상실이다.
초자연적 현상의 절대에 예속된 격리된 문화와 힘을 우선하는 무리적 통제의 역사에서 지식과 문화적 질서의 시간을
이해해야 한다.
21세기는 통합적 지식의 시대이다.
문화적 정체의 파괴적 변화에서 지식에 의한 가치의 분별과 예지이다.
실용적 가치를 공유하여 공존하는 데이터의 시간이다.
총칼로 막을 수도 지배할 수 없는 성벽과 이념의 경계를 초월한 미지적 관점이다.
글로벌 문화와 지식의 공유에서 인류적 또는 유전적 시간의 동행이다.
파괴적 암시를 예지하는 새로운 질서이다.
인류는 한반도의 비극적 세계사에 책임이 있다.
조건을 충족하는 상호주의의 설득에서 부정적 고립은 시간의 오판이다.
현세와 현상에서 선을 우선하여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은 없다.
2026.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