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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사왕국.

박세욱. 2026. 1. 19. 08:58

290 바사왕국.
이천년 전 정치의 논쟁이다.
국권의 난세에서 세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다.
[더 이상 우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독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독재정치란 즐거운 것도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고 책임지지 않는 정치를 좋은 제도라 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이라도 독재가가 되면 평상시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다.
독재자가 저지르는 악행은 교만과 시기심에서 생겨난다.
교만은 지나친 부와 권력과 성취의 자만으로 생기고 시기심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다.
악의 뿌리이다.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 있어 시기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민생과 관계에서 정의와 배치된다.
백성들 중 가장 훌륭한 자가 살아 있는 것을 시기한다.
아부하고 줄서는 열등한 자들을 좋아한다.
모함에 귀를 기울인다.
독불장군으로 누구보다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된다.
적당히 찬양하면 충분하지 안 다고 역정 내고 지나치면 아첨꾼 이라고 한다.
독재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전래의 규범을 철폐하고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인다.
민주정치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고 독재자의 교만이 없다.
관리를 추첨으로 선출하고 직무에 책임을 지며 모든 안건이 민회에서 결정된다.
다수의 합리성으로 독재정치를 철폐하고 민중의 힘을 늘리기 위한 체제이다.
사회에서 관계와 공존은 민중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정은 결국 민생에 있다.
이것이 오타네스가 제시한 의견이었다.
 
메가뷔조스는 과두정치를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재정치를 철폐해야 한다고 말한 오타네스의 의견에 동감한다.
그러나 민중에게 정권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최선의 판단이라 할 수 없다.
아무 쓸모없는 군중보다 더 어리석고 교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독재자의 교만을 피하려다 절제 없는 민중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독재자는 무엇을 할 때 알고 한다.
민중은 알지를 못한다.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 배운 적도 없고 타고난 감각도 없는데 알 턱이 없다.
그들은 겨울철에 불어난 강물처럼 맹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좌충우돌 할 뿐이다.
관계에서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이 민중의 정치에 찬성한다.
우리는 가장 훌륭한 자들의 단체를 선발하여 그들에게 정권을 맡길 것이다.
물론 그들 속에는 우리도 포함된다.
하나가 아니라 집단에서 훌륭한 의견이 나온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세 번 째로 다레이오스가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메가뷔조스가 민중에 관해 말한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과두정치에 관해 말한 것은 옳지 않다.
민주제와 과두제와 군주제가 최선의 상태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군주제가 월등하게 우수하다고 단언한다.
가장 탁월한 한 사람에 의한 지배보다 더 나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군주의 식견은 탁월함에 걸맞아 나무랄 데 없이 민중을 통치할 것이다.
적들에 대한 조처들은 다른 정체 하에서 보다 비밀 유지가 용이하다.
과두제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익을 위해 공을 세우려 다투다 격심한 개인적 반목이 생겨나기 십상이다.
저마다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 하고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결국 반목하여 파쟁이 생겨나게 된다.
유혈 사태로 이어진다.
힘에 의해 파괴되어 군주제로 돌아간다.
이것으로 군주제가 최선의 체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중이 지배하면 부패가 만연한다.
부패한 자들은 서로 반목하기보다 서로 형제가 되기 십상이다.
그들은 국가를 약탈하기로 결탁한다.
누군가 민중의 지도자로 부상하여 그들의 부패 행각에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계속된다.
난세의 영웅은 민중에게 찬양받게 되고 결국 군주가 된다.
군주제가 최선의 정체라는 증거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자유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 자유를 주었는지 이것이 중요하다.
민주제인가 과두제인가 아니면 군주제인가?
한 사람을 통해 자유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는 조상 전래의 건전한 관습들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

민생을 억압하는 이란사태의 비극에서 현대의 정치가 간과해서는 안 되는 페르시아의 역사이다.
민생의 요구를 대화가 아니라 총으로 억압하는 문제이다.

바사왕국은 민족적 갈등의 정치적 이유를 감안하여도 각각의 문화와 종교를 수용하였다.
문화적 다양성의 인정에서 대화와 견제로 구성원의 민생을 우선한 것이다.
초지를 방랑하는 유목민의 전통이다.
구원자의 가르침은 인간의 미래를 위한 극단적 인내이다.
종교적 대의에서 관용과 인내는 필연이다.
국가의 권력과 인륜에서 종교가 지향하는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인간중심 사회에서 개별적 절대는 존재하지 않는다.
2016.1.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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