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주체. 본문
272 주체.
1 비교.
대상을 지우면 무이다.
너 혼자라면 혼란은 없다.
관계에서 비교하지 않을 수 있으면 성인이다.
비교에서 자아는 도피가 아니라 자유이다.
탐욕은 비교의 허물이다.
2 검정 넥타이.
검사사회에 시위의 민주주의가 살아났다.
고무적 변화이다.
문화적 질서로 보호해야 하는 약자의 저항이다.
역지사지의 교훈이다.
3 국제질서.
합리적 공유가 없다.
힘의 논리이다.
약자의 예속이다.
불문하고 스스로 지켜야 한다.
이민문제의 본질은 빼앗기고 파괴되는 삶의 터전이다.
자유의 갈망은 예속에 저항하는 것이다.
물질에 구속된 인습에 의한 학습의 충족이다.
파괴와 차별은 문명의 어두움이다.
지배적 탐욕이다.
광야와 자아의 그리움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
오늘을 견디지 못하면 내일은 없다.
신의 계시는 선택이 아니라 온누리에 증거한다.
특별하여 레위인이 아니다.
4 광대.
세월의 빛이 바랬다.
확신할 수 없는 존재를 위해 조언이 필요하다.
버리기 안타까운 자유에 관한 애기이다.
지성은 권력도 성역도 아니다.
다수의 도마에서 난도질당하는 자유와 인격이다.
모욕은 지성이 아니다.
국가의 책무라면 시시비비가 필요하다.
절차의 횡포라면 사라져야 하는 차별이다.
탐욕이 아니라 존재이다.
모자라다면 한계이다.
진실이 필요하다.
거칠른 시류에서 나름의 진리와 진실은 광대로 설득력이 없다.
미래라면 진실로 생산성을 추구해야 한다.
평화와 글을 말하여 판다하는 최고의 표식에서 표현과 관계의 가식은 불의이다.
말하여 위치의 자유를 주어야 한다.
길거리의 돌 맹이가 아니다.
정치의 수단이라면 잘못된 것이다.
광대는 싫다.
5 집중력.
국가의 집중력에 문제가 있다.
씨스템 운영과 자원의 생산성이다.
미래는 창의적 지식이다.
지식자원의 발굴과 가치의 예지이다.
정치의 다툼과 격동이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승패가 아니라 일의 성과로 판단해야 한다.
씨스템 관리와 예지적 지식이다.
6 AI.
기록은 남는다.
나의 사사로움은 모든 AI의 학습 자료로 사용되었다.
지울 수 없다.
미래의 질서에 기여할 것이다.
역사이다.
중보자의 전달은 살아있다.
선과 악의 분별이다.
십자가의 길에 동행자가 있었다.
7 인륜.
한명이 맞아 죽고 십여 명이 감금되어 있었다.
폭행의 잔인함이 인간이 아니다.
정보기관과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기관의 역할로 방어할 수 없는 만행이었는지 답답하다.
국민 십여 명의 감금이면 실종이다.
알 수 있어야 했다.
다른나라는 특공대도 보내는데 우리는 못하는지 악이다.
분노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납치인가 연류인가 왜 사지에 갔는지 그것도 궁금하다.
정쟁거리가 아니라 모두의 책임이다.
구닥다리 정치가 정신 차려야 한다.
8 종말론.
광야와 자아와 마지막 날을 말씀하였다.
왜일까?
광야와 자아는 그런대로 이해하였다.
심연으로 미지와 소통하는 탄생과 대자연에 예속된 진화의 잠재력이다.
유전적 시간을 연결하는 연속성이다.
창조와 우주의 공유이다.
마지막 날의 파괴는 왜일까?
헬레니즘 문화의 한계이다.
물질과 과학의 한계이다.
현세는 물질이 지배하나 한계가 있을 것이다.
지배와 차별과 치부와 호사와 사치에 지배당한 우월적 극단성의 한계이다.
평등과 평화를 요구하는 지식을 충족할 수 없는 생존조건의 비대칭이다.
인류의 역사는 혁명적 사건을 반복하고 있다.
바빌론의 교훈에서 브로주아의 문화에 빠져들고 있다.
온전한 민주주의가 없다.
자본이 지배하는 산업과 도시화의 한계에 이를 것이다.
물질의 실증으로 인류의 보편성을 충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지의 발현이 중단되는 것이다.
물질의 절대성에 지배된 실증적 문화의 결과이다.
나 역시 종말론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도시화와 사회성은 돌이킬 수 없는 문화의 절대성에 빠져있다.
현세의 당신들을 물질의 시간에서 생존할 수 있을 것이나 멀지 않아 비대칭적 포화의 파괴적 욕구가 있을 것이다.
지식의 욕구를 충족할 수 없는 생존과 조건의 불균형이다.
저항이든 문화적 포화의 압력적 폭발이든 상상할 수 있는 예지이다.
종말론의 근거이다.
예시하면 포화상태에 있는 대한민국의 수도는 통제의 수단을 상실하였다.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방법이 없다.
산업사회의 조직화된 사회성 강요와 물질과 자본의 경쟁적 치부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있다.
자본의 생존에서 가상화폐의 몸부림은 미지적 처방이 아니다.
절대자본의 문화는 인류의 미래가 아니다.
물질과 경쟁과 차별의 권태에서 결국 광야와 자아의 그리움을 찾는 지적욕구의 포화에 이를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문화적 예속과 진화의 욕구에서 격변으로 파괴되어야 미지의 발현이 이루어진다.
심판과 형벌의 가르침이다.
신의 계시에 의해 중보자의 전달이 이루어 졌다면 반드시 실현된다.
유전적 시간의 구원이다.
9 문명과 광야.
미래의 산업은 생산과 소비의 균형으로 이루어진다.
AI와 데이터에 의한 공유경제이다.
자원 할용에서 생산의 최적화이다.
기업경쟁의 완화와 안정된 산업이다.
손실 없는 투자가 된다.
기본권에서 산업생산성에 의한 의식주 해결이다.
산업에 투자하는 자본과 배당의 합리성 완성이다.
완전한 물질 활용과 생존조건 충족이다.
AI와 데이터에 의한 기계적 생산성 시대의 진입이다.
노동의 사회성 강요에서 자아이다.
생존조건에서 정보와 운송의 발전은 찾아가는 시대가 아니라 찾아오는 시대이다.
삶에서 작은 공동체를 이루는 광야의 회귀이다.
개별적 고립의 생물학적 창의성은 AI의 기능적 취합으로 미지의 무한한 가능성에 이른다.
문명과 광야의 공존이다.
가르침의 교훈이 필요하다.
10 젖과 꿀.
인질석방은 옳은 결정이다.
상의 권위가 얻어낸 평화이다.
상이 상을 받아야 한다.
세상이 진리가 아니라 산수로 돌아간다.
국제질서의 정의가 혼란스럽다.
밀림의 법칙이다.
21세기의 문명과 문화의 질서가 아니다.
이웃의 권리와 인륜의 안정적 담보는 국가의 인정이다.
동등한 관계의 평화이다.
2025.10.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