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미지와 통신사회. 본문
270 미지와 통신사회.
전체적 의견수렴이 가능한 시대이다.
어떠한 체제든 민심을 외면 할 수 없다.
선출과 대변의 미완에서 전체적 의견수렴 방법이 마련되었다.
대변의 미완은 갓의 부르주아적 권세와 사사로운 탐욕과 성취의 차별로 왜곡되는 정치의 변질이다.
생명과 인륜을 우선하여 민생에 봉사하지 못하고 국수적 집단에 줄서서 사사로운 영달에 집착하는 인격이다.
일부 극단적 집단을 전체로 왜곡하는 선동과 권모술수의 가당치 않은 정치이다.
승자독식의 패권에 집착하여 전체를 대변하지 못하는 주권위임의 실상이다.
의견수렴의 미완적 수단을 빌미로 자행하는 민주주의의 파괴이다.
선택의 수단과 비용과 방법에서 체제의 괴리적 문제가 해결되었다.
통신을 통한 인류의 창의성과 AI의 기능적 취합이다.
문명과 자아의 공존적 성립이 가능한 수단의 진화이다.
생태적 합리성 충족에서 전체의 참여가 가능한 직접민주주의 성립이다.
전체의 의견수렴에서 수단의 부족함으로 국민주권을 위임하여 대변하는 체제의 불안정성 개선이다.
수단의 부족함을 해소하는 통신사회이다.
존재의 다양한 참여와 합리적 결론의 도출이 무한으로 가능한 시대이다.
수단이 개선되었으므로 정치체제도 시대에 맞게 정비되어야 한다.
정치는 의견수렴 방법이다.
합리적 비율로 전체의 생태적 질서를 우선해야 한다.
참여에서 차별과 소외 없는 존재의 존중이다.
독제와 집단의 우월적 월권을 배제하는 비율적 결론의 공유이다.
질서의 참여에서 생물학적 창의성을 존중하는 생명과 인륜의 정의이다.
위임의 대변에서 사사로운 갓의 개별적 역할은 축소 될 것이다.
공동체의 성립에서 전체가 참여하는 수단의 발전이다.
체제에서 잔존하는 전체주의와 지배의 시간적 또는 지식의 필연적 변화가 있을 것이다.
문화적 절대의 인내에서 혁명의 격변으로 이어진 인류사의 진화이다.
21세기는 문화의 혁명적 파괴가 아닌 가치적 예지의 지식진화 시대이다.
이념적 경계와 권위적 지배에서 지식의 권태는 시간과 학습의 충족을 의미한다.
평등과 평화의 차별에서 새로운 질서의 욕구이다.
사사로운 탐욕의 독선과 일부 극단적 집단주의의 권태적 배척이다.
부르주아적 기득권의 주도가 아니라 포괄적 의견수렴의 질서이다.
독선과 차별적 소외의 완전한 배제이다.
패권적 힘의 논리에서 공의의 지식과 인륜의 정의를 실현하는 공존의 요구이다.
생명의 평등에서 기회적 차별의 해소이다.
선의 대세적 민의를 우선하는 완전한 민주주의이다.
인류의 보편적 염원이다.
새로운 질서이다
이미 시작되었다.
신(미지)의 예지는 지식으로 인지 할 수 없는 시간에 발현된다.
문화의 절대에 예속된 지식의 깨달음은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는 학습의 시간을 충족한 것이다.
신의 가르침 광야와 자아의 실체를 이해해야 한다.
도시의 증거적 경쟁에서 실존적 내면으로 이루어지는 암시적 질서의 소통이다.
보이는 것의 절대에 예속된 자아의 상실이 암시적 질서의 미지를 소홀히 하고 있다.
산업사회와 사회성의 강요이다.
지배와 차별이 상존하는 생존적 물질 문화의 시대이다.
통신경제는 씨스템 사회이다.
인류의 제도적 예속을 강요하는 부품화의 시대이다.
광야와 자아의 상실이다.
증거적 현실에 매몰되어 미지의 존재를 의식 할 수 없는 문명의 정체이다.
생물학적 존재의 희석이다.
신께서 인간의 외면(실증)과 내면(실존)의 차이를 간곡하게 가르치고 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의 존재적 실체이다.
시간 즉 현재는 머물러 있지 않는다.
문명에서 생물학적(유전적) 존재의 시간적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예시하면 시간에서 인류의 문명과 유인원의 학습적 한계이다.
우주에서 인류가 유일한 지식 생명체라고 볼 수 없다.
생명의 차원에서 인류와 생태계를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
만물은 연관되어 있다.
인류 역시 생태계의 생명적 연속성에 예속되어 있다.
예지하면 미지와 문명은 인류와 유인원처럼 존재의 연속성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더하여 지식 생명체의 공존과 미래이다.
문명과 과학적(실증적)한계에서 기초하지 않은 새로운 미지의 발현이 증거이다.
예수께서 증거 하려 노력한 미지의 실체적 암시와 소통의 가르침이다.
보이지 않는 생명적 의심의 실체이다.
실증의 과학적 한계에서 생물학적 창의성의 심연으로 미지를 암시하여 전달하는 연속성의 공유이다.
생태적 질서의 연속성에서 인류의 책임이 있다.
광야와 자아를 강조한 이유이다.
물질의 증거적 관점 헬레니즘 문화는 미래의 절대가 아니다.
문명은 물질과 성취적 권세에 정체되고 있다.
힘의 지배와 파괴적 문화의 간혈적 만족은 한계가 있을 것이다.
실증적 문화가 차별적 권태의 시간에 있다.
생산성의 한계에서 가진 것으로 다투고 싸운다.
경쟁과 차별의 불편함을 해소하라는 욕구의 증가이다.
물질과 지배의 한계에서 유전적 시간과 학습의 충족으로 상상의 범위는 확장될 것이다.
새로운 지적 의식의 필요이다.
지식과 문명의 정체에서 미지적 변화이다.
신께서 도시화를 벌하며 광야와 내면을 강조한 이유가 분명하게 실현될 것이다.
보이지 않는 심연으로 미지와 생태적 연속성을 공유한다는 가르침이다.
자아의 심연으로 과거의 연속성과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
실존에서 자아적 내면으로 소통할 수 있는 중보자(전달자)의 이해이다.
인류는 앞선 문명의 실체적 의심으로 진화 할 것이다.
신의 가르침은 인류전체의 의지와 관련이 있는 생태적 질서의 규합이다.
개별적 집단의 문화와 이해타산에서 인류적 인식의 공유이다.
생물학적 창의성을 규합하는 통신사회가 새로운 질서의 수단이다.
통신의 기능적 활용은 생물학적 지식의 개별적 한계를 통합하는 방법이다.
전체의 의견수렴으로 인류의 본질적 염원을 표현하는 것이다.
문명과 자이적 내면의 총체적 의견수렴이다.
전체가 공감하는 선의 참선과 기도이며 이것이 미지에 가깝다.
2025. 9.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