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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분별.

박세욱. 2025. 10. 21. 09:14

273 악의 분별.

1 호사다마.
재외국민의 보호는 책임이고 증시의 상승은 국부의 증가이다.
호사다마이다.
동해의 어선 살해범을 북으로 돌려보냈다.
한반도 백성의 보호라며 범죄 취급하였다.
불문하고 대한민국은 민족과 동포의 보호에 책임이 있다.
양극화에 기대어 따지는 것은 정치판의 청개구리 산수이다.
선을 상실한 악의 준동이 파괴에 이르고 있다.
상대적 물질과 성취에 지배된 실증의 집착이다.
지나친 기회의 차별이다.
마지막 날은 심판의 형벌과 미지의 발현으로 이루어진다.
선은 남고 악은 분별된다.
다가오고 있다.
 
2. 암시와 조각.
어제 밤 엄청났다.
미약한 암시가 스토리 되었다.
환상인지 생시인지 애써야 했다.
바램과 격동과 표식이다.
세속의 조각과 미래의 긍정이다.
미래의 긍정은 당신들 것이고 세속의 조각은 나의 것이다.
 
3 선의 경제.
선은 가장 대중적 관심사 이다.

보편성의 긍정이다.
인륜적 관계와 사물의 미지적 이해는 가치이다.
관심이 경제이다.
선의 신뢰와 완성이다.
실증적 가치에서 실존적 기여의 생산성이다.
노력 외의 성과는 증거이다.
네가 아니라 이웃과 인류이다
순환적 생산성이 필요하다.
나눔의 신뢰이다.

4 범죄도시.
범죄도시는 국적과 상관없는 악의 도발이다.
정의의 상식을 위협하는 범죄이다.
국가에 이르려는 어둠의 도전이다.
자유가 아니라 물질로 비교되는 시류의 피해이다.
선을 지향하는 문화의 한계에 이르고 있다.
마지막 날의 경고이다.
국제공조로 소멸되어야 한다.
국제사회와 당사국의 책임 있는 조치이다.
현세 즉 문화의 관성적 절대에서 결과를 예지하는 지식의 필요이다.
선을 방어하기 위한 악의 분별이다.

5 한반도.
자강에는 국제관계 확대도 있다.
세상의 눈치가 긍정이다.
옆구리 연연하지 마시고 결단하시면 하늘이 돕는다.
지나온 역사의 가능성에서 최고와 동행하는 평화와 인류이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체제와 국가가 어찌되어도 한반도 백성의 피와 문화는 하나이다.
역사의 결론은 동행이다.

6 심판.
물질적 성취를 우선하지 않는다.
문명의 시간으로 심판하지 않는다.

법과 제도 이전에 창조이다.
글의 제도와 구전의 전통에서 갈등하는 심연이다.
문화와 제도의 선입견과 다르다.
실증적 형식에서 실존적 의지이다.
관계에서 나로 돌아가는 광야와 자아이다.
보이지 않는 생명이다.
물질과 법과 제도는 사용하는 것이지 너의 것이 아니다.
진리는 대자연의 질서이다.
탐욕하지 않는다.
견주는 비교와 경쟁의 견제에서 자유이다.
인류의 미래이다.

7 주체와 질서.
생물학적 주체의 절대성은 없다.
각각이 모여서 보편성(생태계)이 성립한다.
다양성에서 구성의 합리성이다.
존재의 존중이다.
현세는 인간이 중심이나 창조의 주체가 아니다.
전체에 예속된 부분이다.
객관성은 각각의 비율로 참여하는 합리적 가치이다.
다자의 공존이다.
대자연의 질서이다.
염려하는 실증적 경계에서 데이터의 합리성은 미래의 무한한 생산성이다.
문화적 관점의 변화이다.

8 데이터.
생산에서 실체적 규명이 필요하다.
인류의 역사와 문화이다.
광주리(수단)가 과실(진리)을 대신할 수 없다.
실증의 역사가 실존의 기여를 방해할 수 없다.
너의 것도 나의 것도 내 것은 잘못된 것이다.
새로운 질서의 시작이다.
문화적 관점의 변화이다.
창조에서 시간의 공유이다.
지식의 기여는 가치로 공유되어야 한다.
조건적 비율의 동행이다.

9 맹꽁이.

민생과 상관이 없다.
낮 바닥 가면 쓰고 북치고 장구 치고 제풀에 멍석말이이다.
산천은 초연한데 우리 편이 서러워 탱자 탱자 목 메여 시끄럽다.
허구 헌 날 지지고 볶는 나팔소리는 단물 빠진 껌 딱지이다.
치간에 울타리 치고 속 창시 없다.
제 잘나 어설푼 굿판이다.
"맹꽁 맹꽁" 세월만 간다.
동장에 얼어 죽어 거적 떼기 북망산천 이면 불상할 것 없다.
무어라 하여도 21세기는 데이터에 의한 경제와 사회의 시대이다.
지식의 합리성이다.

 
10 산다는 것.
[길을 가는데 큰 코끼리가 성난 사자처럼 달려들었다.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다 긴 넝쿨이 늘어져 있는 우물 안으로 뛰어들어 피했다.
넝쿨에 매달린 우물은 깊었다.
코끼리는 쫒아 왔지만 우물 안으로 들어올 수 없다.
주변을 위협하고 있다.
절명을 면하는 촉각의 여유에서 위기를 살피니 우물 바닥에는 여러마리의 독사가 혀를 날름거리며 배회하고 있다.
넝쿨을 검은 쥐와 힌 쥐가 갈아먹고 있다.
탈출로가 없는 절망의 순간 꿀이 얼굴에 떨어졌다.
달다.]
부처님께서 산다는 것은 이런 것 이라고 하신 말씀이라고 한다.
코끼리는 권세와 물질의 세파이며 도망치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든 견주기의 경쟁에서 운명적 체념이다.
우물은 세상과 단절된 공간이며 넝쿨은 삶의 끈질긴 생명력이다.
변방으로 내몰린 그 나마의 생명에서 인간의 공격성은 뱀의 혓바닥으로 쫓아온다.
타의를 이유 없이 또는 내 것을 우선하여 폄하하고 배신하는 분별이다.
넝쿨을 부여잡고 가물가물한 존재를 찾으려 하지만 쥐들이 갈아먹는 밤낮의 세월은 내 마음이 아니다.
동심의 기억에서 잊히는 생의 미련이 허무하다.
분노의 고독에 절절하여 악다구니 하며 파괴적 수단으로 최후의 존재를 찾으려 한다.
거대한 세파에 힘든 불가항력적 저항은 숨 쉬는 것 말고 의지를 상실해 간다.
꿀은 그나마 남아 있는 동심으로 돌아가 내안의 좋은 것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삼라만상을 떠나면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찾고자 하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은 절망에도 그리운 것을 찾는다.
생명과 운명과 자아는 온전한 내 것이다.
도망치지 말고 내안에서 찾으라는 것이다.
동심과 자아는 달다.
성취와 법과 제도를 나누면 더 달다.
2025.1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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