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파시즘과 정치. 본문
268 파시즘과 정치.
이천년 전 정치의 논쟁이다.
국권의 난세에서 세 가지 의견이 제시되었다.
[더 이상 우리들 가운데 한 사람이 독재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신념이다.
독재정치란 즐거운 것도 좋은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마음대로 하고 책임지지 않는 정치를 좋은 제도라 할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인물이라도 독재가가 되면 평상시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기 마련이다.
독재자가 저지르는 악행은 교만과 시기심에서 생겨난다.
교만은 지나친 부와 권력과 성취의 자만으로 생기고 시기심은 인간의 타고난 본성이다.
악의 뿌리이다.
원하는 것을 다 가지고 있어 시기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민생과 관계에서 정의와 배치된다.
백성들 중 가장 훌륭한 자가 살아 있는 것을 시기한다.
아부하고 줄서는 열등한 자들을 좋아한다.
모함에 귀를 기울인다.
독불장군으로 누구보다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 된다.
적당히 찬양하면 충분하지 안 다고 역정 내고 지나치면 아첨꾼 이라고 한다.
독재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전래의 규범을 철폐하고 재판 없이 사람을 죽인다.
민주정치는 법 앞에 만인이 평등하여 차별이 없고 독재자의 교만이 없다.
관리를 추첨으로 선출하고 직무에 책임을 지며 모든 안건이 민회에서 결정된다.
다수의 합리성으로 독재정치를 철폐하고 민중의 힘을 늘리기 위한 체제이다.
사회에서 관계와 공존은 민중에게 달려 있기 때문이다.
국가와 국정은 결국 민생에 있다.
이것이 오타네스가 제시한 의견이었다.
메가뷔조스는 과두정치를 권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독재정치를 철폐해야 한다고 말한 오타네스의 의견에 동감한다.
그러나 민중에게 정권을 맡겨야 한다는 주장은 최선의 판단이라 할 수 없다.
아무 쓸모없는 군중보다 더 어리석고 교만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독재자의 교만을 피하려다 절제 없는 민중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독재자는 무엇을 할 때 알고 한다.
민중은 알지를 못한다.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 배운 적도 없고 타고난 감각도 없는데 알 턱이 없다.
그들은 겨울철에 불어난 강물처럼 맹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어 좌충우돌 할 뿐이다.
관계에서 불만을 품고 있는 자들이 민중의 정치에 찬성한다.
우리는 가장 훌륭한 자들의 단체를 선발하여 그들에게 정권을 맡길 것이다.
물론 그들 속에는 우리도 포함된다.
하나가 아니라 집단에서 훌륭한 의견이 나온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세 번 째로 다레이오스가 일어나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메가뷔조스가 민중에 관해 말한 것은 옳다고 생각한다.
과두정치에 관해 말한 것은 옳지 않다.
민주제와 과두제와 군주제가 최선의 상태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나는 군주제가 월등하게 우수하다고 단언한다.
가장 탁월한 한 사람에 의한 지배보다 더 나은 것은 없기 때문이다.
군주의 식견은 탁월함에 걸맞아 나무랄 데 없이 민중을 통치할 것이다.
적들에 대한 조처들은 다른 정체 하에서 보다 비밀 유지가 용이하다.
과두제에서 많은 사람들이 공익을 위해 공을 세우려 다투다 격심한 개인적 반목이 생겨나기 십상이다.
저마다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 하고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결국 반목하여 파쟁이 생겨나게 된다.
유혈 사태로 이어진다.
힘에 의해 파괴되어 군주제로 돌아간다.
이것으로 군주제가 최선의 체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민중이 지배하면 부패가 만연한다.
부패한 자들은 서로 반목하기보다 서로 형제가 되기 십상이다.
그들은 국가를 약탈하기로 결탁한다.
누군가 민중의 지도자로 부상하여 그들의 부패 행각에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계속된다.
난세의 영웅은 민중에게 찬양받게 되고 결국 군주가 된다.
군주제가 최선의 정체라는 증거이다.
한마디로 우리의 자유는 어디서 왔으며 무엇이 자유를 주었는지 이것이 중요하다.
민주제인가 과두제인가 아니면 군주제인가?
한 사람을 통해 자유를 견지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우리는 조상 전래의 건전한 관습들을 폐지해서는 안 된다.]
정당정치는 민주주의 체제의 의견수렴 방법이다.
일당의 파시즘에서 다양성의 자유를 지향하는 합리성의 공유이다.
견제와 타협과 협력이다.
다당제와 양당제로 운영되고 있다.
양당제에서 극단적 집단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국가운영에서 국수적 집단의 과도한 개입이다.
삼권분립 체제에서 국회의 중심이 절대로 필요하나 선택의 차별적 딜레마가 있다.
선택의 주권적 권한 일임에서 국민의 대변이 아니라 집단의 대변으로 변질되는 극단적 대립이다.
나와 우리 편을 우선하여 국민을 우선하는 정치의 대의를 상실하고 있다.
일부의 극단성에 치우쳐 전체를 망각하고 상실하는 승자독식 절대 권력의 횡포이다.
양당정치의 울타리에 억매여 선택의 자유가 침해되고 있다.
대다수 국민의 요구와 다른 집단적 욕구에 의해 국가운영이 결정되는 모순이다.
정당을 장악한 집단에 의해 내세워진 인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괴리적 획일성 강요이다.
의견수렴의 결과가 국수적 집단에 예속되어 전체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극단주의가 판을 치는 작금의 정치판에서 중용의 분별을 표현하고 관철할 수 없는 매우 잘못된 민주주의 이다.
획일적 집단주의에 의해 민주적 의견수렴의 정의를 상실하고 있다.
양당의 극단성으로 대립하는 당원의 횡포이다.
일부에 의해 전체가 왜곡되고 있다.
21세기 무한의 정보공유가 이루어지는 통신시대에 파시즘의 우려이다.
극단성에 기대어 정치적 입지를 마련하려는 정치인의 작태가 더 큰 문제이다.
정치의 대의적 신념은 승패적 현실정치에 안주하여 찾아볼 수 없는 과거이다.
우리 편이라고 앞뒤 없이 선택하고 끝물에 몰락하는 정치이다.
시기하여 다투다 절대 지배를 획책하는 군주의 망상이 탄핵정국의 현실이다.
승자독식 대통령제의 폐해이다.
정의와 옳고 그름을 상실한 자기중심의 사고이다.
타의를 존중할 줄 모른다.
이기고 보자는 승패주의 학습의 결과이다.
정치의 성취는 권세가 아니라 봉사의 만족이다.
정치와 진보는 나아가 되 반드시 돌아와야 한다.
시간과 학습의 충족에서 전체가 중요하다.
너만으로 암시적 질서는 성립하지 않는다.
시간은 공유되는 것이다.
보편성의 충족에서 미지의 발현이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치에서 민생을 우선하는 대표가 필요하다
국수적 논리의 극단적 집단주의는 보편성의 반격을 받을 것이다.
정치개혁이다.
2025.9.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