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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 존재 7. 본문

나의 글방.

초월적 존재 7.

박세욱. 2025. 7. 28. 11:58

1 예레미야 (BC 6세기경).
1) 본문.
베냐민지파의 땅 아나돗의 제사장 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나는 아이라서 말할 줄 모른다고 하였다.
하나님께 서원한 사무엘도 어린나이에 하나님의 부름을 이해하지 못하고 대제사장 엘리에게 배움을 받았다.
예레미야가 살구나무를 보았다는 것은 항상 깨어있다는 의미가 있다.
겨울지나 이르게 잎이 아니라 꽃부터 나오는 나무이다.
북에서부터 기울어지는 가마는 북이스라엘과 유다왕국의 멸망이다.
북이스라엘의 에브라임지파 여로보암은 모세의 율법을 배신하여 금송아지와 레위인 배척과 절기를 바꾸었다.
하나님을 크게 배신하였다.
유다의 므닷세는 이방신을 우선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를 죽였다.
 
초월적 존재 1에서 예레미야의 기록이다.
[BC 6세기경 예언자 또는 선지자로 이스라엘 멸망을 목격한다.
북이스라엘에서 종교적 관용주의는 아합왕과 그의 왕비 이세벨의 이단으로 바알신과 아세라의 우상숭배였다.
종교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로 멸망한다.
호세아왕 집권 4년 후 앗수르(아시리아)왕 디글랏빌레셀(BC795~727년)이 죽는다.
호세아는 앗수르와 조공관계를 끊고 애굽과 손을 잡았다.
꼴이 난 앗수르의 다음 왕 살만에셀 5세가 쳐들어와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다.
애굽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포위 3년 후 살만에셀이 죽고 다음 왕 사루곤 2세 때 BC 722년 앗수르제국은 사마리아를 점령하였다.
이로써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였다.
이때 선지자와 백성들 대부분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한다.
앗수르는 대홍수를 예지한 노아의 장남 셈의 둘째아들로 아시리아를 건국하였다.
아이러니는 하나님의 영역에서 다툼이다.
남 유다의 요시야(BC 648~609년)왕은 할아버지 므낫세왕 시절 창궐한 이방신의 우상을 제거하고 유대율법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
당시 중동지역의 정세가 혼란스러웠다.
왕이 죽으면 아들들에게 영토를 나누어 주는 이상한 승계가 있었던 것 같다.
당연한 분열이고 국력의 약화이다.
바벨론 제국이 멸망하고 신 바벨론이 태동하는 시기에 앗수르의 아슈르바니팔(BC 685~631년)왕 사후 두 아들에게
양분된 아시리아가 왕권다툼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신 바벨론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리아를 도우러 가던 애굽 군을 요시야왕이 가로막는다.
BC 609년 1차 갈그미스 전쟁의 전초전 므깃도 전투이다.
당시의 국제정세에서 바벨론 쪽에 줄서는 것이 남 유다에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요사야 왕은 화살에 맞아 사망한다.
그나마 이스라엘을 구할 기회가 사라진다.
애굽의 왕은 바로느고 이었다.
바로느고는 영향력을 행사하여 남 유다 국민이 옹립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3개월 만에 폐위하고 그의 형제
엘리아김을 여호아김으로 계명하여 꼭두각시 왕을 만들었다.
애굽의 속국이다.
이래도 정신 못 차리고 율법을 배반하고 악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BC 605년 당시 중동지역의 정세를 결정지었다는 애굽과 바벨론의 2차 갈그미스 전투가 벌어진다.
바벨론의 승리였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승리의 여세로 남 유다에 들이닥친다.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저울질 하던 꼭두각시 왕 여호아김은 바벨론을 선택하라는 예레미야의 충고를 무시하고 애굽
을 선택하여 꼴 난 바벨론제국에 의해 BC 597년 예루살렘이 함락된다.
남 유다는 또 다시 바벨론의 속국이 된다.
이때에도 선지자 에스켈과 왕족 등 많은 포로들이 끌려갔다.
예레미야는 끌려간 포로들이 70년 후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바벨론은 요시야의 조카 여호야긴을 왕으로 세운지 삼 개월 만에 포로로 잡아갔다.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 맛다니아를 시드기아로 계명하여 왕으로 세운다.
속국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BC 586년 유다왕 시드기야가 시도한 저항이 실패하여 이스라엘이 멸망한다.
이로써 유대국가 이스라엘이 사라졌다.
성경은 므닷세가 벌인 이방신의 우상숭배와 선지자의 살육으로 하나님의 분노에 의해 멸망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요시야 왕의 유대율법 복원과 이방신의 제단과 우상의 파괴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 짝이 전쟁이 많았다.
빙하기를 피해 따뜻한 지중해 연안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은 모여든 인류의 다툼이 치열했던 곳이다.
사람이 많으면 생산성과 비례하여 다툼이 증가한다.
견고하였던 예루살렘성곽은 점령자에 의해 파괴되고 교훈으로 남겨진 일부가 통곡의 벽이다.
기원후 3세기 포로로 끌려가고 타국으로 이주하고 광야에 은거한 유대인들의 본격적 예루살렘 귀향이 이루어진다.
성은 역사의 처참하게 허물어지고 관계와 저항의 교훈으로 남겨진 벽에서 통곡하였다고 한다.
멸망 후 천년의 방량이었다.
이슬람의 구원자 마호메트의 자료에서 유대사회가 당시에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기원후 5~6세기 정도로 기억된다,
예루살렘 순례와 관련된 역사이다.
유대민족은 자존감이 강한 민족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여러나라가 종교와 민족적 경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쁜 것은 사람이 모이면 탐욕의 다툼이 발생한다.
팔레스티나의 고대사이다.
예레미야는 유대국가 멸망 후 고행으로 가르침을 전달하며 이스라엘 복원에 힘쓴다.
눈물의 선지자라는 기록이 있다.
남 유다 멸망 시 친 애굽계 왕족과 귀족들이 애굽으로 망명하는데 이때 그들에게 끌려가 바벨론을 편들고 유대의
멸망을 예언한 죄로 돌에 맞아 죽었다.
사람 사는 것이 덧없다 하여도 심하다.
십자가의 길과 가르침의 진리를 주장한 스테파노 성인의 돌 처형도 그렇고 종교적 관점에서 잔인하다.
어찌 성경의 뒷면이 우울해 지고 있다.
평화와 풍성한 수확이 없다.]
 
출애굽에서 가나안에 진입한 야곱의 백성은 토착민에 흡수되거나 동거하며 문화와 종교에서 혼란한 시기에 있었다.
다윗의 시에서 나그네 되었다고 하였다.
특정하여 지배할 수 없는 종교와 문화에서 주체의 모호함이다.
아브라함과 야곱의 귀향에서 헤브론의 장지와 세겜에서 헷족속에게 땅을 구입하였을 때 목축업의 일상에 치우쳐 정착
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격리된 문화에서 자생한 종교의 혼합이 이루어지는 시대의 유일신앙 하나님의 세계이다.
하나의 종교적 구심점 시도에서 혼재되어 있는 문화와 신앙을 모으는 역사가 나그네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앗수르에 수모를 당하듯 애굽에 수모를 당할 것이다.
유다는 므깃도 전투에서 요시야왕이 전사하여 패하고 바벨론에 멸망당할 때 까지 애굽의 속국이 된다.
 
귀한 땅을 주어 나를 떠나지 말라고 하였으나 너희 스스로 길을 굽게하여 계시의 지혜와 행함을 잊어버렸다.
하나님은 사랑을 빼앗기고 못 참는 질투가 많으신 성깔 있는 분이시다.
이적의 고통이아니라 멸망의 소멸을 경고하였고 요시야왕의 회개에도 진노의 용서를 구할 수 있는 처방이 없었다.
예루살렘에 정의를 행하는 자가 한사람이라도 있으면 멸망을 면할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기 전 아브라함의 기도에 답하신 말씀이다.
평강을 주신다고 하였던 주께서 예루살렘과 백성을 멸하여 속이셨나이다.
하나님의 선처를 기도하며 절망으로 원망하고 있다.
살찐 수말같이 대문 밖 도랑물을 탐하여 이웃의 원성이 요란하다.
패망의 수렁으로 빠지는 사탄의 유혹 음욕의 역사가 깊다.
 
증거의 은폐는 무죄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책에 기록되어 사탄의 끝장에 이를 것이다.
씨족사회 성의 관용에서 규범적 경계의 경멸이 증가하고 있다.
바알과 아세라의 신전에서 성행위의 제사가 여전하였다.
자신들의 신이 허용하는 성의 타락한 죄의식을 유추할 수 있다.
성전에 거하며 형식의 낯으로 거짓을 말하는 자를 믿지 말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구원과 보살핌을 이방신과 우상숭배로 배신한 진노로 멸망할 것이라는 예레미야의 경고를 무시하고 성전의
권세로 부귀영화를 탐하는 무리에 대한 경고이다.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와 무죄한 자를 괴롭히지 않고 나 외의 신을 버리면 영원토록 이 땅에서 살 수 있다.
거짓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죄를 멸절하고 선하여 남겨진 지푸라기의 기다림이다.
 
선한 야곱의 백성이 안타까워 침략자들이 나를 기억하여 해를 가하지 않으면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선의 연민과 죄의 처절한 형벌을 구분하고 계신다.
애굽에서 너희를 구할 때 번제와 희생을 요구하지 않았고 나의 목소리를 들으라 하였다.
제사를 기뻐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말씀은 성서의 광장한 발전이다.
예수의 의와 영이 가까워지고 있다.
힌놈의 골짜기 도벳은 몰록에게 자신의 아이를 불에 태워 제물로 받치던 장소이다.
이곳을 죽음의 골짜기라 하였다.
인신공양이 얼마나 많았으면 주검을 매장할 장소가 없다고 쓰여 있다.
인간의 잘못된 행위이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곳에서 옹기를 깨며 이방신과 우상숭배의 잔인한 제사를 죄라고 하였다.
우상숭배를 죄라고 하는 것은 영적소리를 물질의 감각적 형식을 통하여 들으려 하기 때문이다.
영은 물질과 관계없는 전혀다른 세계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의와 영을 전하는 중보자를 부정하는 것이기도 하다.
조상께 지내는 제사도 하나님의 세계와 관계없는 풍습과 예의이다.
십자가의 길에서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세계를 증명하라 하였을 때 너희가 증명하면 하겠다고 하였다.
인간은 하나님의 세계를 긍정할 수 있어도 증거 할 수없는 상상 밖 미지이다.
신약에서 창조의 세계를 인간사회에 전달할 수 있는 중보자는 예수뿐이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의와 영을 유대사회에 가두려 하였다.
 
인류는 대자연의 질서를 공유한다.
바울은 예수의 의와 영을 온 누리에 설득하여 하나님의 세계를 이루었다.
만백성의 제국에서 하나님의 영으로 약한 자의 생명과 인륜을 경시하고 파괴할 수 없다.
하나님의 영에서 만백성의 생명과 인륜은 같은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멸망하여 이주정책과 포로로 끌려가고 유다는 애굽의 속국이 되고 바벨론에 멸망하여 포로로
끌려가고 애굽으로 피난하였다.
하나님을 배신한 역사의 결과이다.
흉흉한 민심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신변을 위협하였다.
폭행하고 목에 기물을 체우고 죽음을 협박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려는 시험이다. 
 
애굽을 탈출하며 약속하신 나의 배성으로 친밀한 평강의 믿음이 사라졌다.
일상이 파괴되는 멸망의 고통에서 자기성찰을 기대하는 것은 민족적 상실의 증오와 분노를 모르는 것이다.
악한 자와 반역한 자가 형통하였다.
난세에 대의를 저버리고 부귀영화를 앞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한반도의 그늘진 역사가 있었다.
점령당한 백성의 고초가 하나님의 안타까운 애증의 분노로 예언되고 있다.
멸망으로 혼란스러운 난세의 살림살이는 공의가 깨져 힘들다.
나 살기 힘들어 이웃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하나님을 배신한 멸절의 분노가 이어진다.
 
성전과 성벽은 무너지고 풀이 무성하여 양과 소가 살찔 것이다.
남자는 죽이고 청년은 끌려가고 여인은 능욕 당할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이다.
아침이 밝으면 살아서 연명해야 하는 일상에 있으나 성취와 안정의 미래를 상실하였다.
므낫세의 악행으로 유다의 백성이 세계로 흩어질 것이다.
솟아날 구멍 없이 하늘이 무너지고 있다.
울고불고 용서를 구하면 물도 주고 식량도 주신 하나님께서 심판의 칼을 들었다.
나의 뜻을 돌이키기에는 너희의 굳은 목에 지쳤다.
어려울 때 울고불고 원하여 구원하면 배불러 까마게 잊고 바알과 아세라를 찾는 배신에 지친 것이다.
 
레갑족속은 모세의 장인 미디안의 제사장 겐족 르우엘의 후손이다.
조상의 유언을 따라 땅과 집을 소유하지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신앙으로 지조를 지켰다.
하나님께서 배신을 일삼는 유다의 백성과 비교한 것이다.
“주께서 내게 분노로 채우셨나이다.“
“나의 상처가 중하여 낫지 않고 있나이다.“
나의 죄와 상처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으려 하나 야곱의 백성이 너에게 돌아올 때 까지 말하지 말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분노는 인간의 저주에 가깝다.
“재앙의 날을 그들에게 임하게 하시고 배나 되는 멸망으로 멸하소서!”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진노를 포기하고 있다.
 
토기장의 비유에서 만국을 일으키고 지우는 것은 나의 뜻에 있다고 하였다.
토기는 깨지면 쓸수가 없다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유다의 멸망을 예언한 예레미야의 생명을 위협하는 성전의 세력들이 있다.
거짓으로 하나님의 구원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무리이다.
흉흉한 민심을 엿 볼 수 있다.
신앙을 돌이켜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려는 노력이 나라를 빼앗긴 상실의 분노와 괴리에 있다.
멸망의 이유가 하나님을 배신한 죄라고 귀가 따갑도록 설교하고 있으니 착한심보도 꼴이 사나운 것이다.
제사장 바스훌이 성전에서 예레미야의 목에 나무고랑을 채워 가두고 다음날 풀어주었다.
예레미야의 저주는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멸망이고 너의 거짓예언을 들은 친구들과 끌려가 이방에서 죽을 것이다.
 
예언이 아니라 증오이다.
시드기아왕이 제사장 바스홀과 스바냐를 예레미야에 보내 하나님께 기도하여 바벨론의 침략을 막아달라고 부탁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예시하며 멸절의 수난을 당할 것이라고 하였다.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우리 편 걱정이 눈곱도 없다.
방법이 없으면 말을 말든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가 이스라엘에 저주를 퍼붓는 상황이다.
고나야는 여호야긴왕의 본명이다.
제위 후 삼 개월 만에 바벨론에 끌려가 고초를 겪다 말년에 왕의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멸망의 역대기가 전계 될 것 같다.
 
예레미야는 여호아김 제위 사년 째에 애굽이 아니라 바벨론에 줄서야 된다고 하였다.
그렇지 않으면 칠십년 동안 그들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우리의 역사에서 명나라와 청나라의 선택과 수많은 침략에서 항전과 항복의 논쟁과 갈등이 있었다.
난세의 역사는 선택의 갈등으로 쓰여진다.
선지자 이사야가 바벨론의 사신에게 왕국의 구석구석을 보여준 히스기아왕에게 멸망을 예언하였다.
유다를 점령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이 여고냐(여호야긴왕)를 비롯하여 목공과 철공을 끌고 갔다.
끌려간 곳에서 텃밭 가꾸며 혼인하고 아이들 낳고 터 잡고 있으면 칠십년 후에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하니 난리가 났다.
생전에 돌아올 수 없다는 것이다.
원성이 쏟아지고 다른 선지자의 반론이 무성하나 칠십년 하나님의 말씀은 요지부동이다.
 
두광주리와 나쁜 무화과와 좋은 무화가 말씀이 있다.
바벨론의 갈대아인에 끌려간 백성을 좋은 무화과로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권세와 애굽으로 피한 백성을 나쁜 무화과로
표현하고 있다.
유다의 마지막 왕 사드기아는 바벨론에 저항하였다.
제국의 지배와 파괴가 두려워 대부분이 반대하였는데 무슨 뱃장이었는지 산수가 안 되고 있다.
공격으로 궁지에 몰린 시드기아는 하나님과 노예의 자유를 약속한다.
히브리인에게 자유를 주고 유다의 백성을 종으로 삼지 않겠다는 계약이다.
왕의 의지로 될 수 있는 문화적 예속이 아니다.
고관들과 기득권의 반발로 무산된다.
 
진노의 아슬아슬한 형국에서 하나님과 계약이 파괴되었다.
유다와 시드기아의 운명이 스올의 암흑으로 빠져들고 있다.
애굽의 군대가 갈대아로 움직여 예루살렘을 점령한 바벨론 군대가 대응을 위해 떠났을 때 세력의 반전으로 예레미야가
체포되어 옥에 갇힌다.
제국에 예속되는 약소국의 정치이다.
시드기아왕이 예레미야를 불러 하나님의 뜻을 물어 보는데 멸망의 답은 똑같다.
왕은 누설하지 말라는 당부와 보상으로 옥의 뜰에 거주하게 하여 위해를 가하려는 자들에게 보내지 않았다.
시드기아는 하나님의 충고에도 저항을 작정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애굽의 지원을 기대 하였을 것으로 유추할 수 있으나 오판이었다.
 
바벨론 군대가 움직이자 먼지 털고 돌아갔다.
예레미야는 유다가 망할 때 까지 옥의 뜰에 있었다.
결과적으로 시드가아는 하나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저항을 선택한다.
공격당해 도망치다 광야에서 붙잡혀 면전에서 아들이 죽임당하고 두 눈이 뽑혀 죽을 때 까지 옥에 갇혀 살았다.
유다의 멸망이다.
하나님의 형벌과 역사의 평은 다를 수 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이 선대하여 석방되었다고 하였다.
40장에서 잡혀 사슬에 묶여 포로와 섞여 끌려가다 호송하는 군 사령관의 배려로 풀려났다고 쓰여 있다.
바벨론은 사드기아를 대신하여 그다랴(왕하에서 그달리야)를 총독으로 세운다.
 
당연히 갈대이인(바벨론) 추종자이다.
난세에 성하고 안전한 것이 없다.
멸망의 분노는 있는 것이다.
왕족 출신 이스마엘과 십여 명의 추종자들이 분노의 표현을 준비한다.
이들은 미스바에서 그다랴를 비롯하여 같이 있던 유다사람과 갈대아 사람을 죽인다.
열 명은 도피를 위한 식량 때문에 살려준다.
팔십 명의 세겜과 실로와 사마리아인 이야기는 당시 상실의 분노가 심하여 부분적 봉기가 있었다는 자료이다.
이스마엘 일행은 왕의 딸과 백성을 인질을 잡아 암몬으로 가는 도중에 죽은 총독의 편에 있는 요하난의 군대를 만나
인질을 버려두고 도망친다.
 
요하난은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 백성과 애굽으로 피하며 베들레헴에 이르러 예레미아에게 하나님의 뜻을 물어본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현상의 두려움에 직면한 백성의 선택에서 예레미야는 애굽으로 피신하는 것을 반대하였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바벨론의 보복에서 보호할 수 있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칼과 기근과 질병으로 죽을 것이라는 위협을 빼놓지 않는다.
요하난 일행은 예레미야를 포함하여 백성을 이끌고 애굽으로 간다.
하나님을 떠나 죄의 길에 있다.
하나님께서 애굽의 예레미야에 이르러 느브갓네살이 그들 즉 애굽을 칠 것이라고 하였다.
멸망의 상실과 분노와 증오와 저항의 갈등이 끝이 없다.
나라가 멸망하였는데 땅을 매매하고 무르기의 권리를 말하는 것은 귀환할 사람들의 준비였다.
 
다윗의 할아버지 오벳의 양육자 나오미의 베들레헴 귀환에서 우리의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라고 하는 대목이 있다.
무를 기업이 있었으나 이삭 주으며 살았다.
후일 바사왕국에서 귀환하는 야곱의 백성은 무르기로 돌려받을 기업이 있었을 것이다.
기업을 회복하는 기간 어려운 생활을 대비하는 하나님의 배려이다. 
나쁜 이삭은 낫으로 쳐 자르고 좋은 이삭은 보호하여 기른다.
좋은 무화과는 이스라엘로 돌아올 것이라고 선한자의 용서를 말씀하였다.
포로의 귀환이다.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하고 갈대아가 폐허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실제로 바벨론이 멸망하고 갈대아 사람들이 흩어져 그곳에 사람이 살지 않아 황폐화 되었다고 한다.
 
바벨론은 전쟁으로 멸망한 것이 아니라 왕조가 민심을 잃어 바사왕국에 저항하지 않고 예속된 것이다.
열국의 멸망은 앗수르와 바벨론과 바사제국시대를 말씀하는 것이다.
페르시아도 하나님의 만국에 예속된 나라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사왕 고레스의 다민족 관용정책으로 귀환하여 성전과 예루살렘 성을 재건한다.
성서의 논리에서 하나님의 용서이고 구원이다.
유다의 멸망 후 페르시아와 로마의 시대에서 예수의 시대 까지 가나안의 민심이 궁금하다.
 
2) 게달.
이스마엘의 두째아들 이름이며 활을 잘 쏘고 목축에 역량이 있어으며 검은 염소 털로 만든 천막에서 생활하였다.
부유한 종족 이었다고 한다.
하나님과는 거리가 있었다.
 
3)믹돌(놉)과 다마네스.
유다가 멸망하자 애굽으로 피신 한 사람들이 모여 살던 곳이다.
요셉에 이끌려 야곱의 식솔이 정착한 고센의 동쪽 시나이 반도 근처라고 한다.
2025.7.28일.
 

2 예레미야 애가.

1) 본문.

성은 무너지고 주검의 피가 두려움으로 가득하다.

나의 남편이 어디 있는지 나의 여인이 어찌되었는지 아이의 두려움은 익숙한 것의 내일 없다.

어제까지 왕에 손가락질 하였으나 적의 병사가 주인이고 상전이 되었다.

주검을 뒤로하고 어디로 가는지 성전은 파괴되고 순결은 밟혀 하나님의 의지를 찾을 수 없다.

살기 위해 민족도 친구도 이웃도 어제와 오늘이 다르다.

생사의 사선에서 도망치는 두려움으로 죄의 무거움을 안다.

주인 떠난 땅이 다윗과 솔로몬의 영화는 온데간데 없고 휑하니 초목이 무성하고 들짐승의 집이 되었다.

하나도 힘든 전쟁터에 제 잘나 배신하고 둘이 되어 제국시대를 방어하지 못했다.

율법과 절기와 예배의 일상은 사라지고 하나님의 길은 암흑이 되었다.

공의는 사라지고 굶주림에 양식은 동이 났다.

이제 사 숨죽이며 기도한다.

돌이킬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는 나쁜 싹을 진멸하여 옥석을 가리는 형벌이다.

바벨론은 옥이고 예루살렘의 권세와 애굽을 택한 백성은 석이다.

야곱의 백성이 요단의 동서로 남과 북으로 바벨론과 애굽으로 흩어지고 있다.

난세의 선택에서 종교와 정치의 혼란이 내제되어 있다.

내 것으로 인류적 변화를 외면한 고립이 제국시대의 주체가 될 수 없었던 예속의 고난이다.

바사는 관용으로 제국을 이루었다.

지키되 인류적 이해가 필요했다.

하나님은 곳간의 자물쇠가 아니라 주체를 이루어 인류를 구원하려 하신 것이다.

수많은 종교가 있다가 소멸되었다.

역사는 현존의 승리가 있다.

고난의 견딤이다.

잘난 자존심이 고난에서 교훈으로 지킬 것이라는 하나님의 가르침이었다.

2025.7.29.일.

 

3 에스겔.

1) 본문.

물질적 학습의 탐욕이 없는 무의식의 환상은 심연에 내제된 자아적 진리이며 생명의 본질이다.

깨우쳐 찾으려는 자에게 이르는 영의 세계이다.

탄생의 무에서 학습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형상도 우상도 아닌 신비한 영상과 음성으로 말씀을 전달한다.

창조에서 불변의 물질의 성질과 달리 생명체의 변화는 유전적 시간으로 학습된 암시적 질서를 공유한다.

대자연의 연관성이다.

무엇이냐는 의심에서 찾고자 하는 자에게 발현되는 온 누리에 있는 하나님의 영적세계이다.

특별하여 이르는 것이 아니라 염원하는 자가 상상할 수 있는 학습의 한계에서 환상이나 소리로 예지한다.

인간의 시간으로 증거할 수 없는 준비된 세계 즉 창조의 암시이다.

시간의 순리로 학습된 정신세계가 물질을 운영한다고 보는 것이 종교적 관점이다.

 

영적세계는 물과 공기처럼 존재하는 것이다.

오해하는 것은 영적세계가 인간의 운명을 좌지우지 한다는 무지이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선 즉 공의의 정의로 학습하면 창조의 새로운 발현이 빨라진다는 것이다.

선의 지배에서 현상되는 악은 학습의 불완전성으로 보아야 한다.

악이 커지면 시간의 순리가 파괴되어 창조의 발현은 소멸되거나 수정하는 시간이 걸린다.

악이 지배하는 세계는 파괴되어 소멸 된다.

인류의 역사는 정의로운 바른 지식이 발전시켰다.

악의 배신을 벌하고 구원하며 학습하여 옥석을 가려 기다리는 하나님의 뜻이 있다.

하나님의 세계는 미증유의 미지로 실체하는 것이다.

 

짜 맞추기 산수가 아니다.

시비하여도 일리 있는 인간세상이다.

제사장 에스겔은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그발 강 가 끌려온 유다사람이 사는 곳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절박하여 간구하였던 것이다.

궁창아래 네 생물이 영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궁창에 무지개가 영상되고 남보석의 보좌에 사람의 형상을 한 분이 불꽃 안에 계셨다.

경이로운 환상이다.

엎드려 듣기를 청하니 뻣뻣하여 패역한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의 역이 임하였음을 전하라 하였다.

멸망과 포로생활의 고난에서 평강을 원망하는 야곱의 백성을 하나님의 길에서 지키는 파수꾼이다.

 

두루마리 책에 있는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달았다.

희망을 상실한 끌려간 사람들의 처절한 절망을 삶의 의지로 설득하라는 말씀이다.

절망에 빠져있으면 죽을 것이고 삶의 희망의 놓지 않으면 살 수 있다.

사지에서 마음의 꽃을 피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원망하는 마음에 너의 말을 곡해하여 화가 있을 것이니 혀를 입천장에 붙여 말을 신중하게 하라는 염려가 있다.

불난 집 부채질이 되지 않도록 나의 계시가 있을 때 입을 열어 전하라 하신다.

병이 시작된 곳이 패역한 백성이나 절망에서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처방이 매우 어렵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도 쉽게 이끌어 낼 수 없는 뱀의 유혹에 있는 선택의 방황이다.

구원은 있을 것이나 치료의 선택은 인간에게 있으며 결과는 선과 악의 옥석으로 분별될 것이다.

 

선과 악이 혼재된 세상이다.

토판에 예루살렘 성을 그리고 참고하여 진을 구축하여 지키라고 하였다.

제국의 통치에서 다민족의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북이스라엘의 죄는 삼백구십일 이고 유다의 죄는 사십일 이라고 하며 하루가 일 년이라고 하였다.

금송아지와 레위인 배척과 절기를 변경한 에브라임지파 여로보암의 죄가 훨씬 크다.

물과 식량과 연료가 부족하여 포로생활의 고난이 심하였다.

이십 세겔이면 230g 이고 물 일 힌의 육분의 일이면 600cc 이다.

인분을 연료로 쓰다가 쇠똥을 사용하였다.

살기위해 먹어야 하는 사지에서 음식의 격식과 율법은 어려운 것이다.

 

식량과 물이 부족하여 나누어 달고 되어 먹다 결국 쇠퇴하였다.

불모지에 버려진 포로생활의 어려움이다.

이방신과 우상숭배와 음행을 일삼아 하나님을 배신하여 패악을 저지른 죄 값으로 멸망한 저주가 줄기차게 쓰여 있다.

예레미야서로 충분하다는 생각이다.

궁창아래에서 영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네 생물은 이방의 군대였다.

성벽을 허물고 도망치다 잡혀 끌려간 시드기아의 행적이 쓰여 있다.

예루살렘 백성은 그렇게 이방의 군대에서 도망쳤다.

회칠하였다는 말씀은 진실을 감추는 거짓선지자들의 입바른 소리이다.

낯바닥에 분칠하고 나의 처신을 우선하여 하나님의 진실을 왜곡하는 예지 없는 인간중심의 현상적 선동이다.

 

가나안 백성을 말하고 있다.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어머니는 헷 사람으로 태어나 탯줄을 자르지 않고 물로 씻기지도 않고 강보에 싸지도 않은

핏덩이 이었다.

신앙으로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말씀이다.

불상하여 살리고 나의 백성으로 옷을 입히고 치장하여 다듬어 뭇사람들의 신망에 놓았더니 육신에 교만하여 여러사람과

음행하고 이방의 산당에서 음란행위를 하였다.

모자라 자녀들을 우상에게 넘겨 불 가운데로 자나가게 하였다.

하나님의 배신과 죄의 형벌에서 가나안과 야곱의 백성을 동격으로 표현하고 있다.

예루살렘을 지조 없는 여인으로 비유하였다.

 

하체가 큰 애굽과 놀아나더니 음욕이 모자라 앗수르와 행음하고 아직도 부족하여 갈대아(바벨론)도 끌어들였다.

자기 관리와 외교에서 일관성이 부족하였다는 것이다.

포로생활에서 바벨론에 거주하는 소돔과 사마리아 여인과 혼인하여 육신의 성장을 해결하였다.

대체로 남자만 끌려갔으니 그래도 가까운 씨와 밭으로 유대의 족속을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혈통의 관심은 여전하다.

종합하면 통혼이다.

종교적 이유의 음란함으로 아람과 블레셋의 여인이 야곱의 족속을 기피하였다는 말씀이 있다.

바알과 아세라의 신전에서 음란행위의 제사와 파급효과가 상당하여 혼인의 성결이 무너졌다고 볼 수 있다.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저울질하다 선택이 잘못되어 예루살렘을 점령당한 사드기아왕을 비판하고 있다.

 

높은나무를 낮추고 낮은나무를 높이며 푸른나무를 말리고 마른나무를 푸르게 할 수 있다.

예레미야에서 토기장과 같은 만국의 흥망을 관장하는 권능이다.

아버지의 죄를 아들에게 책임 지울 수 없는 율법에서 공의와 악의는 행한 자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선을 행하였다고 악의 벌이 감하여지지 않고 악을 행하다 선을 행하면 용서를 받는다.

선을 행하다 악을 행하면 덜어내는 저울추가 없다.

백중 아흔아홉을 잘하다 한 가지 잘못하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법에는 정상참작이 없다.

귀환에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는 이스라엘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칠십 년으로 세대가 바뀌었으니 유대사회의 유일성에서 선택의 비율이 있었을 것이다.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려는 하나님의 신앙은 돌아왔다.

불쑥불쑥 멸망의 죄악이 반복된다.

음행의 정도가 심하게 쓰여져 있다.

고관들은 부패하여 가난한 자를 만들고 과부를 늘어나게 하였다.

잘못을 회칠하여 거짓으로 율법을 어기고 성물을 훼손하였다.

살아날 수 없는 죽을죄가 산처럼 쌓이고 있다.

오홀라는 사마리아의 북이스라엘이고 오홀라비는 예루살렘이며 우상숭배로 타락한 장막을 칭한다.

음란한 간음의 죄가 많고 자녀를 불에 태우는 인신공양도 상당하다.

2339절 성전에서 인신공양이 있었다는 믿을 수 없는 의심될 만한 기록이 있다.

 

풀무로 찌꺼기가 된 야곱의 백성을 녹여 하나님의 분노가 이루어질 것이다.

노아 때의 형벌은 물의 홍수이었으나 불의 형벌이 전유되고 있다.

예루살렘을 녹슨 가마로 표현하고 있다.

신앙을 담아 깨끗한 물로 성결하게 익힐 수 없는 타락한 도시이다.

제국에 지배되는 열국들의 멸망이 나열되어 있다.

역사의 자료는 모압과 암몬과 에돔의 멸망에서 성경의 추리와 사실관계가 다르다.

솔로몬을 도왔던 두로는 바벨론의 포위를 십여 년 견디다 전리품 없는 빈 성으로 남겨두고 멸망하였다고 한다.

백성들이 재산을 가지고 도망하였다는 말씀이다.

예레미야서에서 요하난 일행이 애굽으로 피하자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칠 것이라고 하였다.

 

애굽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왕에 의해 멸망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스라엘 주변의 모든 왕국이 심판의 대상이다.

이스라엘이 오로지 유일한 하나님의 나라이다.

모든 열국은 아리안계 유목민에 의해 통합된 다민족 국가 바사왕국으로 통합된다.

여기서 하나님의 세계와 인류의 미래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야곱의 백성이 제국시대의 주체가 되어 선의 세계를 전파할 수 있도록 성령으로 구원하신 뜻이 있다.

자신들의 혈통과 할례의 격리된 문화에 갇혀 세계관을 상실한 것이 하나님께서 외면한 형벌의 교훈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가나안과 셈의 자손은 에덴에서 시작하여 노아의 홍수에서 하나님께 선택된 피가 같은 본토의 유목민이다.

뿌리가 같은 사해주변의 모든 나라가 통합하였으면 제국의 시대에 대응할 수 있었을 것이다.

 

유대역사의 속살에는 상대를 인정하기 어려운 내 것의 문화가 있다.

대응하여 승리하는 것과 잠그어 지키려는 차이이다.

우리의 역사에 쇄국정책의 상실이 있다.

이웃은 역사의 중요한 동행자이다.

결과론에서 멸망의 형벌은 하나님의 세계를 이루는 과정의 안타까운 교훈이다.

너의 곳간에 나를 가두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스라엘을 포함한 시해주변의 모든 나라가 앗수르와 바벨론과 바사제국과 로마에 예속되었다.

하나님의 심판은 주변국의 불행 보다 이스라엘에 더하여 가혹하였다.

남의 꼴을 밟고 남의 물을 더럽혔다.

 

유대사회의 불신이다.

이방에 끌려가고 도망친 야곱의 백성이 돌아올 것이라고 하였다.

민족의 뿌리와 땅의 개념은 회귀의 본능이 있다.

제국이 인간을 지배할 수 없다.

뼈가 살아났다고 하는 것은 흩어진 유대사회의 문화가 복원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멸망의 쓴 맛을 보고 제국에 예속되어 남북의 경계가 해소되었다.

자랑거리는 아니다.

에스겔의 성전은 실현되지 않은 환상 속의 성전이다.

이방의 우상을 따라간 레윗사람은 성전에 들어갈 수 없다.

 

다윗과 솔로몬 때 대제사장 이고 사두개파의 창시자 사독의 자손은 성전을 지켰다고 하였다.

제사장은 과부나 이혼한 여인에게 장가들지 말고 오직 이스라엘 처녀와 제사장의 미망인과 결혼할 수 있다.

가족이 아닌 타인의 주검을 가까이 하지 말고 기업을 갖지 말아야 한다.

현대의 목회자는 장례을 주관한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집을 지키고 관리하는 것이 기업이라는 것이다.

기업을 나눌 때에 반드시 성소와 제사장 무리가 자리할 땅을 배려해야 한다.

천년 후 마곡 땅에 있는 로스와 메섹과 두발왕 곡을 대적한다고 하였다.

끝 날에 곡을 이끌어 내 백성 이스라엘을 치게 하리니 이것은 나의 권능으로 대적하여 이방에 나의 거룩함을 알리기

위한 역사이다.

 

종말론 이기는 하나 전도로 알리시지 전쟁의 파괴를 말씀하고 계신다.

마곡은 노아의 아들 야벳의 자손으로 유럽과 흑해북쪽 북방민족을 가르친다는 학설이 있다.

문화적 이해에서 자신들이 가보지 못한 상대적으로 가까운 이질적 지역과 민족을 경계하였던 같기도 하다.

어린시절 산 넘어 강 건너 무엇이 있는지 두려운 궁금증이 있었다.

현실적으로 흑해북쪽 민족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여섯가지의 형벌이 한꺼번에 휘몰아 치는 종말에도 정결한 것이 있을지 아리송하다.

2025. 7. 29.

 

4 다니엘 (6세기경).

1) 본문.

초월적 존재 1이다.

[히브리어로 심판 또는 판결을 뜻하는 나의는 야훼의 실체를 뜻한다.

나의 뜻과 나에 의하여 등 상당히 의미 있는 단어로 개인의 명칭에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유다를 함락한 바벨론은 왕족과 귀족 등 유능한 사람들을 인질로 끌고 갔다.

이분도 자료에 확실치 않으나 대략 17세의 나이로 세 친구와 포로로 끌려갔다.

매우 유능하여 왕궁에서 교육받았으며 시종으로 시작하여 느부갓네살 왕의 꿈을 해석하여 장관에 오른다.

하나님의 선지자로 이방신과 우상이 들끓는 바벨론의 멸망을 예언한다.

철저하게 유대의 율법을 지켰다.

바벨론은 왕들의 실정으로 백년도 안 되어 망하고 페르시아국가의 건국이 전제된 매대와 바사(페르시아) 과도국가의

다리오왕에 의해 총리로 발탁된다.

메대 바사는 카스피해 동남부와 페르시아 만 북부에 정착한 메대인과 바사인이 연합한 국가이다.

바사는 페르시아이다.

본토인이 아니라 유목생활하다 정착한 인도 아리안 족 사람들이다.

메대국은 바벨론과 연합하여 요나가 하나님의 가르침을 전했다는 앗 수르의 수도 니네베를 함락시킨다.

앗수르의 멸망이다.

올라가면 끌어 내리려는 것이 가진 자들의 심보이다.

다니엘은 유다에서 끌려온 포로이고 멸망한 바벨론의 최고위직을 수행한 관리이다.

이방과 우상으로 오염된 본토출신 관리들의 시기가 없을 수 없다.

협잡과 권모술수를 동원하여 80된 노인의 약점을 찾으려 했으나 없었다.

마귀는 다니엘의 신앙심을 문제 삼는다.

왕에게 간신하여 삼십일 동안 왕 외에는 어떠한 신을 섬기지 말라는 금지령을 내린다.

어기면 사자 굴에 떨어지는 형벌이다.

그때의 왕도 신하들의 집단주의에 어쩔 수 없는 것이 있었나 보다.

다니엘은 알았는지 몰랐는지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창문을 열어놓고 소리 내어 유다를 향해 기도하였다.

하나님을 배신할 수 없다는 것이다.

끌려가 사자 굴에 던져졌다.

믿음은 구원받는다고 하였다.

사자들이 배불렀는지 먹을 것이 없었는지 아니며 맛없게 보였는지 침도 안 묻히고 살아나왔다.

밤새 노심초사하던 다리오왕은 다니엘이 살아나오자 하나님께 감사한다.

성경에서 악의 결론은 깨끗하다.

간신한 자들의 가족까지 싹 쓸어서 사자 밥을 만들었다.

인정사정이 없다.

이 사건으로 유다에서 끌려간 포로들의 생활이 나아졌다고 한다.]

 

두 가지 꿈의 해석이다.

첫째는 환상에서 두려운 큰 신상의 머리는 순금이고 가슴과 두 팔은 은이고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고 종아리는 쇠이고

발은 쇠와 진흙이 섞여있었다.

손대지 않은 돌이 쇠와 진흙이 섞인 발을 쳐서 신상이 무너지며 산산이 부서지고 잔해가 산을 이루었다.

해석에서 머리의 금은 나라의 만물을 다스리는 왕의 권세이고 가슴과 팔의 은은 대적의 나라가 있을 것이나 염려할

것이 못되고 배와 넓적다리의 놋의 의미는 강한 나라가 출현할 것이다.

종아리의 쇠는 병기를 의미하는 것으로 부딪치고 파괴하여 약한 나라를 지배할 것이다.

발의 쇠와 흙은 강함과 약함이 섞여 있는 것으로 다민족의 갈등이다.

결론은 부정적인 것이나 예지의 교훈으로 받아들이고 다니엘과 친구들을 나라의 중요자리를 맡긴다.

 

두 번째는 하늘에 이를 것 같은 무성한 나무가 있었고 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나그네의 그늘이 되었다.

하늘에서 내려온 거룩한 자가 잎을 쳐서 새들을 쫓고 가지와 줄기를 자르고 뿌리의 그루터기만 남겨 쇠와 놋줄로 동

놓아 이슬에 젖고 풀 가운데에서 짐승의 놀이터가 되어 일곱 때가 지난다.

해석은 왕의 권세가 강하였으나 사람들에게 쫓기어 들짐승과 같이 살며 소처럼 풀을 먹고 이슬을 맞으며 일곱 때를

지낼 것이다.

나라를 하늘에서 내려오신 거룩하신 분의 뜻에 따라 누구에게 든 주실 것이다.

나무 그루터기를 남겨둔 것은 죽이지 않고 살려 두려는 것으로 하나님의 믿음으로 선정하시면 무사할 것이다.

왕이 권세로 버터 보나 꿈대로 벌을 행하다 시간이 되어 회개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였다.

민심을 회복하였다는 것이다.

 

두 꿈을 해석할 수 있는 갈대아 관리와 사제가 없었다.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갈등도 있다.

바벨론은 다신교의 왕국으로 창조와 전쟁의 신 마르두크와 여신 이수타르가 대표적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고관으로 제사에 참여하여 우상에 절하지 않자 풀무 불에 던져졌으나 하나님의 보호로 멀쩡하게

살아나온다.

이적에 놀란 왕이 하나님을 찬양한다.

느부갓네살왕이 죽고 아들이 계승하나 반란과 암살로 외손자 벨사살이 아버지를 내세우나 십여년을 스스로 권좌에서

떠나 있었다.

사실상 벨사살이 통치한다.

 

벨사살은 전임왕 라바사마르독을 암살하고 집권하였다.

신바벨론 왕의 계보가 나라가 망할 정도로 권세의 탐욕이 복잡하다.

결정적 사건은 벨사살이 벌인 잔치에 예루살렘성전에서 약탈해온 신성한 기물로 술을 마시며 주흥에 사용하였다.

분노한 하나님의 이적으로 손가락이 나타나 벽에 글씨를 쓰는데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이었다.

다니엘이 불려가 해석한다.

왕의 시대는 부족하여 끝이 났고 메대와 바사사람들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였다.

이상한 것은 해석이 반역이고 악담인데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 목걸이를 걸어주고 나라의 세 번째 지위를 받는다.

그날 밤에 벨사살 왕이 죽임당하고 고레스가 내세운 다리오가 메대 바사 과도정부의 상징적 왕이 된다.

바벨론이 멸망한다.

 

이어서 앞서 언급한 사자굴 이야기가 있다.

다니엘의 환상에서 BC 6세기 이후 근동지역의 역사가 전계된다.

바벨론의 멸망과 바사왕국의 출현과 고레스(키루스 2세)왕의 관용정책 칙령으로 1차 귀환과 성전재건이 시작되었다.

건축시작 얼마 되지 않아 다민족 제국의 이질적 방해로 중단된다.

이후 건축과 방해의 우여곡절을 거치며 다리우스 1세의 지원으로 성전과 예루살렘성의 재건이 완성된다.

아하수에로 1세의 그리스 원정과 에스더 왕비의 유다인 배려가 있었고 아닥사스다 1세 때 에스라와 느혜미야의 2~3

귀환이 있었다.

이후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에 패한 바사왕국의 멸망과 후사를 남기기 못한 젊은 알렉산더의 죽음과 제국의 분열이다.

동방원정의 동지들 끼리 근동지역의 지배권을 놓고 수십 년의 전쟁을 벌여 주변의 민족이 고난을 격어야 했다.

 

북방왕과 남방왕은 제국 붕괴 후 이집트 지역의 프톨레미 왕조(BC 305~30년)와 바사지역의 셀류코스 왕조(BC 312~

63년)의 패권다툼이다.

화친과 파기와 복수의 지옥이다.

셀류코스 왕조가 클레오파트라를 프롤레미 왕조로 시집보내 친교를 가장하여 수단을 부리려 하지만 오히려 로마국과

손잡고 친정의 왕조를 견제한다.

시리아에서 5차례 전쟁 중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고난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약탈은 물론이고 학살하고 성전의 지성소를 침범당하는 일도 있었다.

대제사장을 자기들 마음대로 교체하고 나중에는 율례와 제사를 폐지하여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존재가 부정되었다.

약탈과 학살의 지배에 저항한 유대의 하스몬 왕조(BC 142~63년)가 있었다.

 

마카베오 가문의 시몬장군에 의해 BC 142년 창건된다.

왕조 초기 사령관 매부 프톨레마이오스가 초대한 잔치에서 아버지 시몬왕과 두형이 살해되고 어머니는 인질로 잡히는

비극이 발생한다.

세째 히르카노스도 죽이려 하였으나 반격하여 어머니를 인질로 잡고 버티는 매부 프툴레마이오스를 응징한다.

하스몬 왕조의 전성기 요한 히르카노스 1세의 시대이다.

레위인 계보가 아닌데도 대제사장을 겸임하여 유대사회의 저항이 있었으나 밀어붙이고 통치하였다.

성전과 왕정의 분리에서 어머니와 관련된 약소국의 회한으로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

암몬과 모압과 에돔을 지배하여 유대교로 동화시켰다고 한다.

문제는 알렉산더제국에서 분리된 페르시아지역 셀류코스 왕조의 지배에 있는 분봉왕 비슷한 자치권의 통치이었다.

 

조공과 침략의 고난이 있었다.

왕정에서 형제의 다툼과 여인의 통치가 있었고 사두개파와 바리세파 사이의 세력다틈과 학살 등 비극이 재현되었다.

BC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에게 사실상 멸망당한다.

이후는 로마의 분봉왕 시대이다.

바사제국시대와 알렉산더의 전쟁과 남방과 북방의 패권적 분열의 가혹한 혼란에서 로마제국시대의 흐름이다.

알렉산더의 원정과 스승 아리스토탈레스의 감각적 실증주의 헬레니즘 문화가 하나님의 신앙에 영향을 끼쳤다.

증거주의 철학이다.

사두개파의 문서적 율법과 바리세파 등 구전의 신앙이 대립하였다.

책대로 할 것이냐 구전의 전례를 따를 것이냐의 문제이다.

 

하나님의 세계를 책의 문자로 증명할 수 없다.

왕이 이 땅에 오는 날 까지 일곱이레와 예순두 이례 동안 성이 재건될 것이다.

일곱이레와 예순두 이레는 성전재건과 예수의 시대를 계산한 년 수이다.

로마의 지배와 예수시대와 십자가의 길과 예루살렘 파괴를 예언하고 있다.

환상의 예언이라고 하나 역사이다.

2015.8.1.일.

 

5 호세아.

1) 본문.

초월적 존재 2이다.

[앗수르에 멸망한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다.

당시 남 유다 출신으로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던 선지자 아모스는 우상숭배와 탐욕에 빠진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반신의 신전과 우상숭배 등 하던 짓은 여전하였다.

보다 못한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출신 호세아를 부른다.

호세아 이름은 "여호와여 구하소서!" 라는 뜻이다.

강압과 강제가 아니라 사랑과 눈물로 백성을 설득하나 제 버릇 여전하였다.

이래서 사랑과 눈물의 선지자이다.

여로보함 2세 때 국운이 기울어 아들 스가랴에 양위하나 6개월 만에 살룸에게 죽임당하고 살룸은 한 달 만에 성문을

열어주지 않았다고 성안의 백성을 모조리 살육한 학살자 므나헴에게 살해된다.

일 년에 죽임으로 왕권이 세 번 바뀌고 결국 앗수르가 쳐들어오자 독재자 므나헴은 국민을 핍박하여 적장을 은 일천

만 달란트로 매수하여 왕권을 유지한다.

조공을 위한 무리한 혈세의 부담으로 민심이 작용하였고 반란으로 아들 브가히야가 계승한다.

2년 만에 다시 군 장관 베가가 쿠데타로 왕을 살해한다.

이번에는 호세아가 베가를 죽이고 왕이 된다.

처절하다.

하나님의 부름에도 사마리아를 구하지 못하고 멸망 후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간다.]

 

하나님의 집을 지키지 못하고 이방의 집을 찾아 기름 붓지 않은 자하고 음행하였다.

애굽의 노역과 광야에서 물과 식량으로 구하고 나의 백성으로 애절하였으나 방랑하였다.

사랑으로 기다리고 용서하고 배려하였으나 욕정에 어두워 돌이키지 못하고 멸절의 시간을 예지하지 못했다.

생으로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다.

이스라엘도 내 것으로 안주하지 못할 것이고 유다도 너희의 집이 아닐 것이다.

구하고 구하여도 내 것의 돌아갈 곳 사라진 낯 설은 시간으로 정처 없을 것이다.

집과 인연의 안주를 빼앗긴 벌의 교훈으로 회한의 빈 마음이 되었을 때 초옥의 옛것이 그리울 것이다.

비로소 먼 길 돌아올 채비가 이루진 것이다.

성전을 재건하고 성벽을 고쳐 먼 길의 수고를 반길 갓이다.

 

기왕 시작한 것 내치시고 새 마누라 새 며느리 보시지 “야곱의 백성은 영원한 나의 양이다.“ 이시다.

죄는 용서를 바라는 것 보다 구하는 것이 순리이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던 인물이다.

아내의 방랑을 견디고 기다리고 노예로 전락한 아내를 찾아왔다고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타락하여 배신하는 야곱의 백성에 비유하고 있다.

밑으로 노는 씨도 마찬가지라고 하셨다.

어쩌다 입 맛없을 때 물 가생이 초막은 어쪄냐고 물으면 곤란하다.

마음의 평안을 얻는 것이 순리를 찾아 화를 면하여 복된 것이다.

참 종교에 어긋나는 영지주의의 비틀기는 지식의 잡념이다.

 

하나님께 정조를 지키지 못하고 사생아를 낳았다.

본서의 비유적 설정이다.

유다는 경계표를 옮기고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을 따른다.

호세아왕이 앗수르의 야렙왕에게 사람을 보내어 화친을 청했으나 구하지 못했다.

하나님께 구하지 못하고 사람에게 구했다는 대목이다.

이미 상황을 그르친 것으로 보이나 백성을 구하는 하나님의 진리를 어찌 이해해야 하는지 답답한 것이 사실이다.

유다의 지도자는 이웃을 탐하였다는 말씀이다.

이웃의 것을 빼앗으면 죄이다.

요사이는 수단과 방법의 문제이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다.

 

멸망의 애곡과 애가가 어김없이 쓰여 있다.

여로보암의 이탈 두 마리 금송아지에 많이 진노하신 것이다.

에브라임의 목에 멍에를 메우고 등에는 사람을 태울 것이며 유다는 밭을 갈고 야곱이 흙덩이를 깨트릴 것이다.

너희는 악의 밭을 갈고 거짓 열매를 먹었다.

“이스라엘아 에브라임아 어찌 아드마(멸망당한 도시) 같이 놓겠느냐 스보임(물에 잠긴 도시) 같이 두겠느냐.“ 하신다.

죽이자니 내 백성이고 살리자니 꼴이 망나니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증의 갈등에서 애곡하고 계신다.

에브라임아 내가 회개하면 나는 푸른 잣나무 같으니 열매를 얻을 것이다.

자손들이 애굽에서 앗수르에서 올 것이다.

 

다시는 나의 백성이 집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아직 로마가 남아있다.

2025.8.1.일.

 

6 요엘.

1) 본문.

팥중이가 남긴 것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 느치가 먹고 느치가 남긴 것 황충이 먹었다.

단 포도주가 사라 졌다.

다른민족이 올라왔다.

난세이다.

소재는 피 없이 곡식으로 드리는 제사이다.

전제는 피 있는 제물위에 포도주나 기름을 부어 드리는 제사이다.

이번에는 무슨 잘못을 하였는지 하나님께서 대응할 수 없는 다른나라 군대를 도구로 사용하여 벌하고 계신다.

옷이 아니라 마음을 찢고 회개하여 돌아올 지어다.

죄가 큰데 죄명이 없다.

 

금식 일을 정하고 젖먹이 아이까지 모아 성회를 소집하여 기도하고 용서를 구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청하고 있다.

울고불고 하여 찢으면 마음약한 하나님은 적을 치고 땅을 회복하여 덤까지 더하여 싹싹하게 없던 것으로 하신다.

버르장머리 걱정은 안하신다.

나 외의 신을 섬기지 않으면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죄명이 다른신전에 제사지내는 배신이었다.

예루살렘 자손을 헬라족속에 팔았다.

헬라는 그리스이다.

구약에서 그리스가 처음 등장 한다.

잡혀가고 팔았다는 것이 전쟁이 쉽게 끝난 것이 아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사로잡힌 백성을 돌아오게 하고 너희를 흩어지게 만든 만국을 심판할 것이다.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이 거론되고 있다.

북쪽의 군대를 물리치고 앞 부대는 동해로 뒤의 부대는 서해로 들어 갈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동해가 낯설다.

보습과 낫을 달구어 창을 만들어 강한 군대를 양성한다는 것은 응징의 준비이다.

여호사밧 골짜기에서 사면의 민족을 심판할 것이다.

당한 만큼 돌려주겠다는 것이다.

곡식이 익고 포도주가 넘치니 융성하여 승리한 것이므로 괴롭힌 족속이 패한 것이다.

결과가 좋으면 좋은 것이라는 하나님답지 않은 말씀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선으로 존재하지 이기고 지는 다툼의 악이 없다.

죄와 악의 형벌은 사탄이 충동하는 지식의 번민과 오만이다.

2025.8.2.일.

 

7 아모스(BC 814~740년)

1) 본문.

선지자 수업을 받지 않은 목축업 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지진은 고고학적 발굴로 있어다는 진실이 밝혀졌다.

초장부터 멸절을 말씀하고 있다.

다메섹은 아람의 성읍이고 벤하닷은 왕이다.

벧에덴은 아람의 지역이고 규를 끊을 것이라는 말씀은 왕의 거취를 벌한다는 것이다.

아스돗과 아스글론은 블레셋의 성읍이다.

두로의 백성을 잡아 에돔에 넘긴다.

여기저기 나라에서 백성을 끌어다 주시며 잘나가다가 에돔을 벌한다고 하였다.

데만은 에돔의 인물이고 지명이다.

 

암몬은 길르앗에서 아이 벤 여인의 배를 갈랐다.

죽어 마땅한 죄를 지었다.

랍바성과 모압도 불사르고 왕과 제사장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유다는 율법을 어기고 조상을 따라 토속신앙에 빠진 죄로 예루살렘을 파괴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부귀영화에 치우쳐 은으로 의인의 도리를 저버렸고 가난과 연약한 자를 차별하였다.

사마리아에서 겨울궁과 여름궁의 사치와 부와 권세의 차별이 많았으며 벧엘과 단의 재단에서 금송아지를 숭배하였다.

부자가 한 여인과 동침하였으며 전당잡은 물품으로 이익을 탐하였고 벌금으로 산 포도주를 마셨다.

출애굽의 고난에서 아모리 땅을 너희에게 주었고 선지자를 보내어 나의 뜻을 전하였으나 듣지 않았다.

나실 인에게 포도주를 마시게 하였다.

 

정의를 쓴 쑥으로 만들어 공의를 저버리고 부당한 세금으로 가난한 자를 괴롭혔으나 나서는 지혜로운 자가 없었다.

가자가지이다.

나열하였듯이 용서할 수 없는 죄를 범하였다.

아니 뗀 굴뚝에서 연기나지 않는다.

기근과 비와 가뭄과 깜부기로 팥중이로 전염병 등 여러가지 이적과 교훈으로 설득하였으나 목이 굳어 듣지 않고 죄가

날로 커졌다.

너희의 제사를 받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정의와 공의의 바름으로 죄가 사라질 것이다.

진즉에 하셔야 했던 말씀이다.

회개하지 않으면 멸절하여 사로잡혀 가는 인과응보가 있을 것이다.

 

요셉의 화난은 지심은 특별하다는 입방정으로 형들에게 외면당해 애굽으로 팔려가 노예로 고생한 변고이다.

선지자의 대결이 있다.

하나는 분명 가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쪽저쪽으로 상반되어 두 가지가 될 수 없다.

아모스는 원래 남쪽 유다사람이다.

사마리아의 제사장 아마샤가 왕에게 아모스의 멸망적 예언을 모반으로 상소한다.

너의 고향 유다로 돌아가 금송아지가 있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고 하였다.

아모스가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뽕나무 기르고 양치는 목자라고 대응하며 너의 아내는 창기가 될 것이며 자녀는 죽을 것이고 땅은 쪼개지고 이스라엘은 반드시 사로잡혀 간다고 하였다.

 

선지자의 저주가 하늘에 이르고 있다.

아마사는 유다로 떠나 편지로 이스라엘의 미래를 예언하였다고 한다.

편지의 양식이 최초 하나님 말씀을 문서로 작성한 기록이며 후대의 선지자들이 참고하였다고 한다.

아마샤의 아들이 아모스의 관자놀이를 어찌하고 하는 지료가 있으나 귀향으로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사마리아의 회개를 기대할 수 없는 하나님께서 지치고 계시다.

노래가 애곡으로 변하며 땅이 솟아오르고 백주에 어둠이 내리고 머리는 대머리가 되고 주검이 거리를 메우고 백성이

적의 말굽에 끌려갈 것이다.

멸망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진노의 끝에서 결국은 나의 백성이다.

 

야곱의 백성은 체로 걸러 쭉정이는 멸하고 알갱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사로잡힌 백성을 돌이켜 무너진 성전을 세우고 성을 재건하여 다윗의 역사를 되찾을 것이다.

그들의 땅에 뿌리고 가꾸어 다시는 떠나지 않을 것이다.

로마가 걱정이다.

2026.8.2.일.

 

8 오바댜.

1) 본문.

12인의 사사(판관)가 있었다.

대 사사는 옷이엘, 에홋,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이고 소 사사는 산갈,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이다.

기록에서 역설적으로 평하면 소 사사시대에 평온하였다고 볼 수 있다.

난세에 영웅이 나고 할 이야기도 많은 것이 역사이다.

선지자도 4인의 대선지자와 12인의 소선지자로 분류하고 있다.

대선지자는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이고 소선지자는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다, 요나. 미가. 나흠,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로 나눈다.

시대의 역할과 예언의 정도가 아니라 성경에 거론되는 내용으로 분류하였다고 한다.

사사시대와 만찬가지로 난세에 이야기 거리가 많은 것이다.

에돔의 멸망을 말씀하며 야곱에게 포악한 에서라고 하였다.

야곱은 에서의 발뒤꿈치를 잡고 태어난 쌍둥이 동생이다.

어머니 리브가의 수단으로 아버지 이삭이 속아 아브라함의 적통으로 상속권자가 된다.

장남 에서가 불편하여 외삼촌이 거주하는 하란에 피해 있다가 돌아오는 길에 에서가 무서워 엎드려 용사를 구하나

에서는 오히려 동생을 반긴다.

유다와 몇 차례 전쟁이 있으나 모압 정벌에서 유다와 북이스라엘과 에돔이 연합하였다.

출애굽에서 하나님은 에돔을 형제의 나라라고 하며 건들지 말라고 하였다.

물론 야곱의 백성이 이스라엘을 상속하여 지키고 에서의 에돔은 역사에서 사라진다.

속하였다는 것은 이해하는데 에서가 야곱에게 포악하였다는 말씀은 성경에서 금시초문이다.

2015.8.2.일.

 

9 요나.

1) 본문.

초월적 존재 1이다.

[고래뱃속에서 삼일 만에 살아남은 선지자이다.

큰 물고기라고 되어있는데 소싯적 움막교회에 잠깐 다닐 때 고래애기를 들었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배의 구석에 숨어 바다로 도망치다 야훼(하나님)의 체벌로 폭풍우가 몰아친다.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을 거역한 것이다.

요나는 아시리아가 괴롭히는 북이스라엘 선지자이다.

적국의 사람들에게 야훼의 말씀을 전달하여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그냥 불로 몰살시키라는 것이다.

그래서 뻔히 발각될 것을 알면서 도망친 것이다.

뱃사람들이 자신의 신께 기도하여도 소용이 없었다.

누구 때문인지 제비뽑기로 시험하는데 요나가 걸렸다.

하나님의 뜻이다.

성경의 보완자료에서 보면 제비뽑기가 종종 등장한다.

당시에 사람들이 제비뽑기 등 여러가지 인위적 현상으로 운세와 미래를 예측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유일신 야훼신앙의 관점적 선입견에서 종교의 체계적 정립이 혼란스러운 시대를 추리할 수 있다.

요나는 야훼의 체벌을 알고 사람들에게 자신을 바다에 던지라고 한다.

사람들은 꺼렸으나 사정을 파악하고 요나를 바다에 던진다.

폭풍은 멈추었고 사람들은 야훼의 신통방통한 능력에 개종하게 된다.

던져진 요나는 준비된 큰 물기의 뱃속에서 삼일을 견디다 숨 쉴만한 육지에 이른다.

이후 아시리아의 도시로 가서 오기가 삭지 않아 건성으로 말씀을 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네베 사람들은 하얀 옷을 입고 금식하며 야훼의 말씀을 따른다.

유대교는 이스라엘 밖의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다.

불구하고 야훼(하나님)께서 아시리아 백성들의 회개를 받아들인 것이다.

요나의 투정은 절대자와 관계에서 인간적 감각과 야훼신앙의 인류적 예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성경전체의 흐름 주종의 관계에서 특별한 설정이다.

부활의 예언에서 예수께서 바다에서 삼일 땅속에서 삼일이라고 말씀하였다.

부활과 승천에서 창조 이외의 사물적 현상의 흔적은 학습과 관계에서 이유가 있다.

말이 씨가 된다.]

 

호박넝쿨이야기는 사람의 싫은 투정과 하나님의 교훈이 제미 있게 설정되어 있다.

가까이 계신 분아라는 것이다.

요나는 실제 인물이 아니라 가상하여 쓴 산문이라고 한다.

요점은 하나님은 온 누리에 계시며 공유해야 하는 선이라는 것이다.

2025.8.2..

 

10 미가(BC 740~670년).

1) 본문.

구약의 후반부는 이방신과 우상숭배와 타락한 사회를 하나님께서 형벌하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채워진다.

출애굽의 고난으로 이끌어낸 야곱의백성이 정작 젖과 끌의 땅 가나안에 진입하여 토속적 문화와 신앙에 오염된다.

다윗과 솔로몬의 희망은 권세와 영화의 독선으로 분열되고 모세의 율법은 여로보암에 의해 훼손된다.

좁은 땅의 다툼에 몰입하다 제국의 시대에 대비하지 못하여 멸망의 형벌에 이른다.

하나님의 세계는 보다 큰 것이라는 이해가 부족하였던 유다와 북이스라엘의 문제이다.

과정에서 선지자를 통하여 사랑으로 애절하게 설득하나 뻣뻣한 야곱의 백성은 뱀의 유혹과 사과를 선택한다.

모새가 죽는 순간에도 염려한 종교적 타락에 빠진 것이다.

가나안의 토속적 신앙과 비교한 죄이다.

바벨론과 앗수르에 각각의 신이 만연되어 있었다.

 

그리스인들도 전쟁 전에 그들의 신에게 승패를 여쭈어 보았다.

야훼신앙이 선지자가 요구하는 대로 탄탄대로가 아니었다.

모새가 염려한 토속신앙을 하나님의 세계로 개척하는 과정이었다.

문화적 공유에서 이방신과 우상숭배에 예속 될 우려가 있었다.

우려가 현실이 된다.

인류적 미래를 예지하지 못하는 지역적 한계에서 내 것에 갇혀 탐구로 포장되는 지식의 탐욕이다.

죄에서 저울추를 속였다는 말씀이 많다.

율법에서 남의 것을 빼앗는 도적질은 중죄이다.

예초 열두지파의 경계를 설정하여 상속하고 침범하지 말라고 하였다.

 

딸의 상속에서 지파 밖의 결혼으로 기업의 경계를 우려하자 족속이 같지 않으면 금하라고 하였다.

상속된 지파의 경계는 변할 수 없다.

남의 것을 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궁둥이 뜨시고 배부르면 딴생각 하는 것이 인간이다.

권세와 영화로 가난하고 연약한 백성을 차별하였다.

하나님과 공의를 배신한 것이다.

어려울 때 울고불고 원하면 구하는 사랑이 절절한 말씀의 예언을 듣지 않았다.

호세아서의 교훈에서 용서하고 구원하고 기다리는 반복으로 지쳐가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미가는 모레셋 사람이며 북이스라엘 멸망 때 이사야, 아모스, 호세아와 같은 시대에 하나님의 형벌을 경고하였다.

 

앗수르의 사마리아 침공과 바벨론의 예루살렘 침공이다.

성은 함락되고 남편은 주검의 사지에 있고 여인은 능욕당하고 아이는 미래를 상실하였다.

제국주의 시대에 대비하지 못하여 저항의 여력을 상실한 완전한 멸망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앗수르와 바벨론에 끌려가고 애굽으로 피한다.

이방에 예속된 사실상 디아스포라이다.

하나님께 회개하여 돌아오는 교훈의 시련이 혹독하여 내생의 세대를 넘어야 했다.

기원전 8세기 후반과 6세기 전반 난세의 혼란에서 활동한 선지자의 기록은 멸망의 경고이며 한탄이다.

유대사회에서 하나님의 시간이 미약하였던 시대이다.

그나마 체로 걸러 죄를 멸하고 선한 알곡을 모아 귀환하는 희망이 있었다.

 

성전을 재건하고 성을 복원하나 권세의 학습과 율법의 범죄는 여전하였다.

귀환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다윗의 시대로 이루지지 않았다.

모세와 예레미야 등 선지자가 예언한 죄의 용서와 예속의 자유를 해결할 수 있는 메시아의 탄생이 간절하다.

메시아의 탄생을 기다리는 이유가 총분하였다.

21세기의 시간이 신의 재림을 기다리고 있다.

만인이 기도하여 요구하는 멸절의 상황에서 재림은 이루어질 것이다.

네게 구하는 것은 제사가 아니라 공의를 지키는 지혜의 정의와 겸손하여 사랑하며 나의 가르침을 행하는 것이다.

감각적 사물의 믿음이 아니라 자아에 내제된 의와 영이다.

시련은 남아있었다.

 

셀레우코스 왕국의 예속에서 조공과 침략의 차별을 견디어야 했다.

흩어진 민족의 교훈에서 히브리파가 용인한 헬라파의 인류적 역사의식이 필요하다.

2025.8.3.일.

 

11 하박국.

1) 본문.

여호야김은 생에가 굴곡이 심하였다.

애굽에 의해 왕으로 세워지고 애굽이 바벨론에 패하여 유다의 종주국이 된 후 삼년동안 잡혀있다 돌아와 전세가 애굽

으로 돌아서자 바벨론에 저항한다.

삼 개월 공성전 후 패하여 끌려갔다고 하였다.

끌려 간 것이 아니라 포위기간에 죽었다는 설이 있다.

요세푸스의 기록은 바벨론의 네부갓네살에게 장교들과 처형되어 주검이 성 밖에 버려졌다고 하였다.

애굽과 바벨론에 조공을 받치느라 백성의 고통을 강요하고 바벨론과 친교 하라는 선지자 우리야를 죽여 민심이 흉흉하였다.

예레미야가 바벨론과 친교 하라는 상소를 올리자 잘라 불에 태워 분노의 저주를 받은 왕이다.

생애가 파란만장 하였을 것이다.

아들 여호야긴이 계승하나 아버지의 복수를 염려한 느브갓네살에 의해 폐위되어 끌려간다.

이후 애굽의 지원을 기대하여 바벨론에 저항한 시드가야왕의 판단 잘못으로 유다가 멸망한다.

멸망의 원인과 기도는 우상숭배의 배신에 지친 하나님의 진노와 용서를 구하는 선지자의 애절함으로 반복된다.

돌이킬 수 없는 죄의 멸절과 알곡의 추수이다.

2025.8.3.일.

 

12 스바냐.

1) 본문.

하나님을 섬긴 유다왕 히스가아의 4대 손이다.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폐와 패망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다.

피는 쏟아져 티끌같이 되고 살은 분토될 것이다.

멸절의 표현이 바닷가 모래처럼 많다.

이방신과 우상에서 회개하여 하나님의 규례를 따라 겸손하여 공의를 찾아야 한다.

블레셋과 모압과 암몬과 구스까지 징벌을 경고하고 있다.

요시야왕 때이면 기울어가는 앗수르와 신 바벨론이 대립하고 애굽이 개입하는 혼란한 정세에 있었다.

북이스라엘은 BC 722년 앗수르에 멸망하여 예속된 상태였다.

유다의 운신이 어려운 시기였다.

 

앗수르와 바벨론 언급 없이 예루살렘과 주변 소국가의 이방신과 우상숭배를 걱정하고 형벌을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을 따르면 평강의 복이 있고 배신하면 칼과 기근과 질병 등 이적으로 멸하겠다는 일상적 언어의 경고이다.

예루살렘의 선지자는 경솔하고 간사한 자이요 제사장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다.

현상에 의존하는 인간의 속성이 하나님의 세계를 실증하려는 죄이다.

종교적 사회에서 공의를 저버린 성직의 권세이다.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은 공의를 저버리지 않았으나 부정하는 자는 수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헬레니즘이 지배하는 현세는 더 많다.

재림의 선입견 죄와 벌의 시각에서 그래도 종말의 심판을 25년 더 버티고 있다.

인류는 무엇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현상의 지배에 구속되어있다,

 

너희는 범죄 한 것을 알고 나의 집에 머무르면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죄의 심판이 임박하였다는 것이다.

우상과 범죄의 사로잡힘을 돌이키면 천하 만민 가운데 명성과 칭찬을 들을 것이다.

그리하면 너로 하여 기쁘고 즐겁고 사랑할 수 있다.

좋은 말씀 하시는 선지자이다.

조만간 애굽의 진군이 있을 것이고 요사이왕의 변고가 있을 것인데 난세의 예언에 처절한 선지자와 달리 일상적이다.

2025.8.3.일.

 

13 학개.

1) 본문.

에스겔서에서 발취한 내용이다.

[제사장 에스겔은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그발 강 가 끌려온 유다사람이 사는 곳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절박하여 간구하였던 것이다.

멸망과 포로생활의 고난에서 평강을 원망하는 야곱의 백성을 하나님의 길에서 지키는 파수꾼이다.

두루마리 책에 있는 구원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달았다.

희망을 상실한 끌려간 사람들의 처절한 절망을 삶의 의지로 설득하라는 말씀이다.

절망에 빠져있으면 죽을 것이고 삶의 희망의 놓지 않으면 살 수 있다.

사지에서 마음의 꽃을 피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원망하는 마음에 너의 말을 곡해하여 화가 있을 것이니 혀를 입천장에 붙여 말을 신중하게 하라는 염려가 있다.

불난 집 부채질이 되지 않도록 나의 계시가 있을 때 입을 열어 전하라 하신다.

병이 시작된 곳이 패역한 백성이나 절망에서 구원하려는 하나님의 처방이 매우 어렵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도 쉽게 이끌어 낼 수 없는 뱀의 유혹에 있는 선택의 방황이다.

구원은 있을 것이나 치료의 선택은 인간에게 있으며 결과는 선과 악의 옥석으로 분별될 것이다.

토판에 예루살렘 성을 그리고 참고하여 진을 구축하여 지키라고 하였다.

제국의 통치에서 다민족의 갈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물과 식량과 연료가 부족하여 포로생활의 고난이 심하였다.

이십 세겔이면 230g 이고 물 일 힌의 육분의 일이면 600cc 이다.

인분을 연료로 쓰다가 쇠똥을 사용하였다.

살기위해 먹어야 하는 사지에서 음식의 격식과 율법은 어려운 것이다.

식량과 물이 부족하여 나누어 달고 되어 먹다 결국 쇠퇴하였다.

불모지에 버려진 포로생활의 어려움이다.

포로생활에서 바벨론에 거주하는 소돔과 사마리아 여인과 혼인하여 육신의 성장을 해결하였다.

대체로 남자만 끌려갔으니 그래도 가까운 씨와 밭으로 유대의 족속을 유지하였다는 것이다.

혈통의 관심은 여전하다.

종합하면 통혼이다.

귀환에서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자는 이스라엘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였다.

칠십 년으로 세대가 바뀌었으니 유대사회의 유일성에서 선택의 비율이 있었을 것이다.

무너진 성전과 성벽을 재건하려는 하나님의 신앙은 돌아왔다.]

 

예레미야는 70년 후 귀환을 예언하였다.

BC 539년 바사왕국의 고레스(키루스2세)왕의 관용정책에 의한 칙령이 발표된다.

(종교의 지유를 존중하고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군인의 점령지 약탈을 금지하며 누구든 빛 때문에 노예가 되는 것을

반대했으며 인륜을 억압하지 말고 노동자에게 적절한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운 분 맞다.

칙령의 범위에서 학설이 분분하나 성경의 기록을 따르기로 한다.

바사제국시대에 자신들의 땅에 살지 못하고 끌려가고 강제 이주당한 야곱의 백성이 귀환한다.

1차 귀환에서 돌려받은 성전의 기물을 유다의 총독 세스바살에게 관리하여 옮길 수 있도록 감독의 권한을 부여하였다.

돌아와 일곱 달째에 성전의 지대를 마련하지 못하였으나 규례대로 번제를 올리고 귀환을 하나님께 고하였다.

 

BC 536년 성전재건을 시작하였다.

기초가 놓이자 기쁨과 통곡소리가 뒤섞여 잊어버린 시간의 회한이 가득하였다.

제국에 예속된 유일민족과 신앙의 험로는 주변의 대적을 피할 수 없다.

사마리아인의 반대로 BC 534년 중단된다.

이후 BC 520년 다리우스1세 2년에 재계되어 BC 516년12월에 총독 스룹바벨과 제사장 예수아에 의해 완공되었다.

민족과 종교가 부활되고 성전과 예루살렘성이 재건된다.

흩어진 하나님의 신앙이 예루살렘성전을 중심으로 숨통이 트인다.

이질적 이웃의 방해로 다수의 중단과 재계가 반복되었으나 다리우스1세의 지원이 있었다.

본서는 성전재건에 백성의 고혈이 들어갔다는 말씀이다.

2025.8.3.일.

 

14 스가랴.

1) 본문.

선지자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함락 후 칠십년 유대인의 귀환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를 멸망시킨 앗수르와 바벨론은 권력다툼으로 망하고 바사왕국이 인더스강 서쪽과 유프라테스강

유역과 사해주변에서 애굽까지 석권하는 대제국을 건설한다.

씨족사회에서 부족을 지나 왕정에서 열국을 통합한 대제국시대이다.

통치에서 하나의 민족개념을 초월하는 다민족 국가이다.

다리우스1세 왕정 출현에서 근대적 통치개념의 논쟁과 국가의 효율적 관리를 위한 왕의 길이 있다.

인류사에서 소통과 교류의 중요성과 발전을 의미한다.

유대사회는 바사제국에 예속된 백성이다.

민주정과 과두정과 군주제의 논쟁과 통치의 개념에서 전쟁으로 끌려온 차별받는 족속이 아니라는 것이다.

 

제국에 예속된 각각의 사람과 민족은 백성으로 권리를 가진다.

키루스2세의 치세 관용정책의 본질이다.

통치의 개념에서 예루살렘의 성전뿐 아니라 다민족의 문화와 종교의 자유가 포함되어 있다.

1차 귀환에서 성전의 기물을 책임진 유다총독 세스바살과 스롭바벨이 동일인과 두 사람이라는 주장이 있다.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성전은 완성되었고 하나님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셨다.

따질 일 별로 없다는 것이다.

내가 예루살렘을 지키는 불의 성곽이 될 것이다.

거리에는 남녀노소의 사람들이 분주할 것이고 예전의 영화를 찾을 것이다.

칠십년 전하고 많이 다르시다.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벗기고 새 옷으로 갈아입혀 정결한 관을 머리에 씌울 것이다.

죄를 사하고 성전의 성결한 관리를 당부하고 있다.

두 사람에게 기름을 부을 것이다.

성전의 기초를 다진 총독 스롭바벨과 신앙을 찾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이다.

내가 너희에게 고난의 형벌을 행한 것은 재판을 굽게 하지 말고 인애와 긍휼에 소홀하지 말고 과부와 고아와 나그네와

궁핍한 자를 차별하지 말라는 선의 당부를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것으로 뻣뻣하여 아름다운 다윗의 땅을 황폐화 시킨 죄이다.

이제 형벌의 시간이 지났으므로 되돌려 출애굽의 고난을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에브라임의 병거와 유다의 활을 꺾어 하나로 평회를 이룰 것이다.

 

알렉산더와 남방국과 북방국의 패권대립과 헬레니즘 문화의 실증주의와 로마의 역사가 줄줄이 기다리고 있다.

두로와 시돈과 블레셋의 도시 가사, 에그론, 아스글론, 아스돗의 죄를 심판할 것이다.

여전히 동행이 전무한 사면초가이다.

2차 귀환은 1차 귀환 79년 후 BC 458년 에스라의 인솔로 이루진다.

3차는 14년 후 느헤미야의 인솔로 BC 444년 이다.

성경에는 1~3차의 극단적 이주로 기록하고 있으나 점진적으로 고향으로 돌아 왔다는 주장이 있다.

유다의 당긴 활과 에브라임의 가까운 활로 시온의 자식들을 일으켜 헬라(그리스)를 칠 것이다.

귀환 시기 이집트의 반란이 진압되고 페르시아와 그리스의 세 차례 전쟁은 BC 449년 칼리아스 협약으로 종전된다.

자리 잡기도 어려운데 전쟁을 부추기는 말씀이 쓰여 있다.

 

레바논의 백향목이 불타고 잣나무와 상수리나무가 쓰러지고 사자가 부르짖는 소리는 요단이 쓰러진다는 것이다.

불쑥불쑥 한이 뛰쳐나오듯 불의의 증오가 있다.

“네가 잡혀죽을 양 떼를 먹이라.“ 가난하고 연약한 백성을 구하라는 말씀이다.

이것이 공의를 지키는 방향이다.

드라빔(우상)과 복술(점)을 여전히 우려하고 계신다.

은총의 막대기로 가엽은 양떼를 살피고 먹이지 않은 세 목자를 제거하였다.

피차 갈 길이 다르다는 말씀인데 귀환하여 안정을 간구하는 시간에 쭉정이가 있었던 것이다.

내가 너희를 먹이지 않을 것이다.

죽든 살든 망하던 말든 너희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나 울고불고 상하게 하여 나를 부르지 말라는 것이다.

 

나의 품삯을 받아서 토기장에게 던졌다.

초월적 미지에 무식한 죄인들 때문에 불 받아 옹기 깨는 소리이다.

나쁜 놈들 상종 안 할 것이라는 통첩이다.

두 번째 협력의 막대기를 꺽은 것은 형제의 의를 끊으려는 것이다.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로 합치던지 남으로 갈라서든지 결정하라는 것이다.

고치지 않으면 강건한 자를 먹이지 않으면 살찐 자의 고기를 먹고 굽을 찢을 것이다.

될 성싶은 자를 키우겠다는 것이며 적자생존의 법칙으로 센 놈으로 뭉치자는 것이다.

그러하지 않으면 타락하여 망하게 하겠다는 경고이다.

 

센 놈을 가리는 방법이 문제이다.

하늘을 펴시며 땅의 터를 세우시며 사람 안에 심령을 지으신 이가 천하를 취하게 할 것이다.

누군가 매우 크신 분이다.

지금까지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그날에 내가 예루살렘 민족에게 무거운 짐이 될 것이며 속하는 자는 크게 상할 것이다.

이를 치려고 만국이 모일 것이다.

그날에 말들이 놀라며 탄자들이 미치게 될 것이며 유다를 제외한 말들의 눈이 멀 것이다.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을 것이다.

유다의 지도자들을 불같이 하여 사면을 에워싼 민족을 불사를 것이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그 본 곳에서 살 것이다.

다윗의 영광을 더하여 유다를 먼저 구할 것이다.

그날에 다윗보다 약한 백성이 없을 것이고 이스라엘 족속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사자 같을 것이다.

이방의 침략을 멸하기 위해 힘쓸 것이다.

마음껏 액셀 밟으시고 결정에서 단호한 멸절의 집행과 달리 무엇인가 모자라다는 느낌이다.

은총을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찌른바 독자를 잃은 애통이요 장자를 잃은 통곡이다.

므깃도에서 요시야왕을 상실한 아품이 있었다.

커다란 시련을 예언하고 있다.

전자는 이스라엘의 보호이고 후자는 십자가의 길을 예언하고 있다는 설정이 가능하나 부분적으로 섞이어 있다.

 

주제를 골라내기 어려웠다.

아내와 남편이 보모와 자식이 모두가 따로 하는 애통한 일을 왜 벌였는지 결국은 죄이다.

씻는다고 행하고 본 죄가 사라지지 않는다.

노아의 알몸을 보았다고 함의 가나안 자손을 종 취급하였다.

거짓 선지자가 누구이며 더러운 귀신을 끌어들이는 자는 누구인지 또다시 죄가 커지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환상과 말씀을 들을 수 없음으로 거짓으로 빙자하면 역사를 그르칠 것이다.

선지자의 예언은 진실의 증명에 두려워 쉽게 내세워 가식으로 낯바닥 가리지 못한다.

너의 상처가 어찌된 것이냐고 물으면 나의 친구에게 받은 상처라 하라 하였다.

십자가의 상처가 깊다.

 

나를 빙자한 목자를 치라 가엽은 양이 흩어지면 내손이 이를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에서 믿음의 위선이 가장 큰 죄이다.

삼분의 이는 멸망하고 삼분일은 나의 권능으로 달구어 강건할 것이다.

바울의 전도를 너무 작게 평가하고 계신다.

21세기 인류의 반은 하나님의 신앙을 가까이 한다고 한다,

“하나님의 날이 이르리라.“ 재림의 예언이다.

일곱까지 형벌이 휘몰아치는 마지막 날이 오면 약탈뿐이 아닐 것이다.

종말의 암흑을 경고하고 있다.

눈감으면 어둡다.

 

아픈 것이 문제이다.

문명과 문화와 사물적 시각에서 종말을 탄생으로 보는 것은 현생인류의 인격으로 표 드리기 어렵다.

선지자는 선한백성과 같이 해야 하는데 종말에 나만 하나님께 간다고 하는 것 같아 아쉽다.

끝내 버르장머리 없는 야곱의 백성을 편들고 계신다.

21세기 하나님의 백성은 온 누리를 채우고 있다.

제사는 자아적 내면 의와 영이 되었다.

십자가의 길이 예언되었다.

성경의 순리에서 격동적 시대의 배열을 느낀다.

2025.8.4.일.

 

15 말라기.

1) 본문.

하나님의 집요한 사랑을 어떻게 사랑하였냐고 반문하는 야곱의 백성들이다.

하나님께서는 돗자리 깔아주고 춤은 너희들이 추라고 하신 것이다.

창조의 길을 찾아 나아가라는 가르침이다.

나를 곳간에 가두지 말라는 말씀이다.

하나님에게 말씀을 전할 백성은 있어도 특별한 백성은 없다.

레위인은 하나님의 말씀과 집을 관리하는 임무의 목적이 주어진 것이지 백성으로 특별하지 않다.

에서와 야곱의 경계를 형성하려는 노력은 공의와 긍휼과 만백성을 우선하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신하는 것이다.

에서의 시대에 에둠은 융성하였다.

출애굽에서 형제의 나라라고 하였다.

 

바사왕국의 고레스(키루스2세)왕의 칙령이다.

(종교의 지유를 존중하고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군인의 점령지 약탈을 금지하며 누구든 빛 때문에 노예가 되는 것을

반대했으며 인륜을 억압하지 말고 노동자에게 적절한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세운 분이라고 하였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밖에서도 크시다.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고 가르침을 따라 섬기었느냐?” 지치게 하여 교훈하였으나 멸시하였다고 투정이다.

나의 제단을 훼손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너의 총독(권세)에게 나에게 하였던 것처럼 하면 기뻐하지 않을 것이다.

제사를 번거로워 하고 저울추를 속이고 빼앗고 훔친 병든 물건을 제단에 가져다 놓으면 나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나를 영화롭게 하지 않으면 너희 얼굴에 똥을 바르고 저주할 것이다.

제단에 헛되이 불사르지 못하게 성전을 닫으면 좋을 것이다.

너희와 기름 부은 것을 돌려놓을 것이다.

이미 그렇게 하였다.

나의 이름이 해 뜨는 곳에서 지는 곳까지 이방에서 거룩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썽꾸러기 백성과 다투고 계시다.

레위인의 책무를 벗어나 거짓으로 믿음을 위장하는 성전의 직분을 죄하고 벌을 주었다.

유다는 하나님의 성결을 욕되게 하여 이방신의 딸과 혼인하였다.

북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숭배하여 절기를 훼손하고 저울추를 속이고 여름궁과 겨울궁으로 사치하였다.

 

잘못하여 어려우면 눈물과 울음과 탄식으로 괴롭혔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백성을 어려서 맞이한 아내사이 라고 하시며 너희가 언약을 깨트렸다고 하였다.

아내는 하나이다.

이방신과 우상에 현혹되어 남의 집 기웃거리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혼하는 것과 거짓을 위선으로 가리는 행위는 가증스러운 것이다.

너희가 내 앞에서 행하는 가식을 나는 알고 있다.

나의 사자가 땅에 이르러 심판할 때 죄지은 자 누구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레위인을 금과 은같이 연단한다고 하였다.

다시 다듬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사람이 긍휼에 필요한 하나님의 것 십일조와 봉헌물을 도둑질 하였다고 하였다.

믿음이 사랑을 상실하면 헛된 것이다.

너희는 나에게 예속된 자로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

선한백성이 교만한 자가 복되고 악한 자가 번성하고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화를 면하는 것을 한탄한다.

하나님을 지키는 것이 연약하고 슬프다고 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은 나를 경외하는 자는 생명책에 있을 것이며 특별한 일꾼으로 삼을 것이다.

믿음으로 마음이 평강하면 빼앗고 훔치지 않아도 순리의 질서가 있다.

주어진 대로 가진 만큼에서 빼앗기지 않고 안주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는 자유롭다.

 

마지막 날 내가 오기 전에 엘리야를 보내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돌이킬 것이다.

내가 너희를 죄로 심판하는 암흑의 날은 없어야 한다.

2025.8.4.일.

 

16 마무리 소감.

나에게 대장정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었다.

간혹 틀린 것 집어 도와 주셨다.

현세의 학습으로 주어진 시간에 있었다.

선과 악이 혼란한 시대이다.

환상과 소리는 사탄의 것도 있다.

분별할 수 있는 선의 선택이 중요하다.

이제 뭐하지요?

2025.8.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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