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초월적 존재 4. 본문
1 창세기.
1) 본문.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육일 동안 만물을 만들고 칠일에 안식하였다.
아담을 흙으로 만들었다.
새와 짐승도 암수의 분별이 있는데 인간은 유독 남자는 흙으로 만들었고 여자는 남자의 외로움에 더부살이 하는 보조
밧데리로 밀어 붙이고 있다.
하와도 흙으로 만드시지 굳이 잠든 수컷 갈비대 빼서 만들어 부뚜막 꼴아지 힘들게 하였다.
생명은 같은 것이다.
선악과는 안주의 정지에서 지식의 시작이며 가르침의 시험이다.
인간은 예초부터 불안정하였다.
태초 물질에 의지하지 않는 생명체의 영생에서 사과의 물질과 보이는 지혜의 진화이다.
하나님께서 가죽 옷을 지어 입혔다.
하와를 책망을 하면서 물질의 사용과 지혜의 도전을 부체 질 하신 것이다.
앞의 행색에는 뒤의 궁리가 있다.
에덴에서 내보냈다는 것은 집에서 뭉그적거리지 말고 만물의 소유에 도전하라는 것이다.
경작은 지혜이며 에덴의 준비에 머물지 말고 감각 밖의 존재를 찾으라는 말씀이다.
창조에서 아담과 하와 즉 인간은 태평양의 물방울도 안되는 극히 일부이다.
이미 시간과 학습의 시험을 준비하고 선악과의 선택으로 책임을 인간의 경솔함으로 돌리신 것이다.
나는 책임 없다는 것이다.
네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지구에 던져 놓고 어찌하나 살피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께 속은 것이다.
코 뀌고 발목 잡힌 것이다.
나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지옥 간다는 것이다.
지옥은 가인으로 시험하여 가동되었다.
천당은 선의 지킴에서 불의에 저항하는 지혜가 부족한 아벨의 시험으로 가동되었는지 분명하지 않다.
자신의 방어에 부족하여 셋으로 리모델링하여 돌려보냈을 것이다.
악의 기원 가인의 후손 라멕은 두 아내 아다와 씰라를 두었다.
하나님은 아담의 아내로 하와 하나를 주었다.
옆구리는 하나라는 가르침을 배반한 것이다.
여차저차 해서 아다가 낳은 두 자식 야발은 유목민의 조상이 되었고 유발은 음악의 조상이 되었다.
씰라가 낳은 두발가인은 대장장과 세공의 조상이다.
성정이 포악하고 불안정한 라멕은 내가 분노로 소년을 죽였다고 하였다.
인류역사에서 두 번째 살인이다.
분노와 폭력과 살인과 음행의 씨앗이다.
죄 값은 가인의 칠에서 칠십칠 배 이다.
죄가 커지고 있다.
인간의 운명이다.
아벨의 죽음으로 태어난 셋은 아들 에노스를 낳았다.
신약에서 에녹을 알 것이다.
하나님과 교제하고 최초로 살아 승천한 인간이다.
셋의 6대손 이다.
노아도 셋은 후손이다.
셋의 후손이 구약인물의 주체가 될 것 같다.
노아는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다.
셈의 둘째아들 앗 수르가 후에 북이스라엘을 점령한 아시리아를 건국하였다.
인간의 창조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인간의 딸이라고 하였다.
처음부터 갈라놓고 시작하였다.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가 그러하였다.
네피림은 "넘어뜨리다와 쓰러뜨리다." 라고 한다.
넘어져야 자손만대의 일이 된다.
거인족 이라고 하니 네안데르탈인이 기억난다.
13~3만 년 전까지 생존하였다.
기골이 30만 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 호모 사피엔스 보다 컷 다.
지능이 있었고 장례문화의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학설에 의하면 호모 사피엔스와 아종관계였다.
아종은 분화에서 유전자의 합치가 가능한 진돗개와 삽살개 정도이다.
유전적 특성의 합치는 생태적 대응력이 발전한다.
각각의 유전자가 생태계에 적응하며 내제된 잠재력이 교차하여 생존의 함수가 증가한다.
순수혈통보다 혼합혈통이 건강하고 번식력이 뛰어나다.
무엇을 잘못했는지 최초의 심판이 준비되고 있다.
셋의 자손 노아의 방주이다.
가인과 그의 자손 라멕의 죄가 누룩이 되어 얼마나 타락하였으면 "싹 쓸어버릴 것이다." 라고 하였다.
성서의 목적에서 교훈에 필요한 원인의 구체적 언급이 없다.
왜! 라는 지식의 저항에서 이 부분이 답답하다.
그래도 창조의 씨는 아까워 방주에 남겨놓았다.
홍수의 심판으로 가인과 셋의 자손 즉 아담과 하와와 에덴동산의 자손은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새로이 선택한 노아의
직계가 인류의 조상된다.
방주의 크기에서 규빗은 팔꿈치에서 가운데 손가락 끝의 길이이다.
길이는 삼백이고 넓이는 오십이고 높이는 삼십 규빗의 방주이다.
1규빗은 대략 45cm이다.
십오 규빗에 산들이 잠겼다.
말이나 말 것이지 한강의 최고 홍수위가 넘을 것이다.
죄와 벌의 교훈에서 관심을 위한 신화이다.
따지면 힘들다.
비가 그치고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노아는 방주에서 나와 하나님께 살아남은 신성한 동물을 골라 가죽만 남기고 태워 제단에 올리고 번제를 올렸다.
선악과에서 하나님께서 부끄러움을 "가죽으로 아담과 하와의 몸을 가렸다." 하였다.
부끄러움은 타의를 의식하는 경계의 시작이다.
이러한 학습으로 가죽은 몸을 가리기 위해 벗겨 남겨 둔 것이다.
하나님은 노아의 번제를 받아들여 이후 사람의 죄를 홍수로 멸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다.
비 그친 후 나타나는 무지개가 증거라고 하였다.
무지개가 뜨면 비기 그친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고 하였듯이 고기는 먹고 생명의 피는 먹지 말라고 하였다.
인류에게 영원한 재갈을 물려 죄를 다스리는 고삐를 남겨두었다.
요사이 인류의 피를 요구하는 전쟁으로 고삐의 빌미를 만들고 있다.
노아는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본 가나안의 조상 함에게 셈의 종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함의 이스라엘이 셈의 앗 수르에 멸망당하는 예언이다.
가나안은 함의 후손이고 아시리아는 셈의 후손이다.
집안끼리 복고 싸우고 지랄이다.
니므롯을 첫 용사로 기록하고 있다.
이전에는 부끄러움(약점)을 가리기 위한 탐욕의 전쟁이 없었다는 것이다.
니므롯은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전도하여 회개한 앗 수르의 수도 니네베를 건설하였다.
바벨이 등장한다.
도시이다.
동굴에서 토굴에 이어 집이다.
광야의 자연에서 도시가 된다.
문명의 시작이다.
바벨탑은 인간중심 사회이며 지식의 오만이 하늘에 이르려 한다.
아이가 태어나고 어느정도 학습이 이루어지면 제 마음대로 하겠다고 고집 부린다.
인간이 머리에 피(지식)가 도니 하나님을 망각하고 육신과 물질을 우선하여 사물을 지배하려 한다.
감각적 시간이다.
인류가 번창하여 지구 전역으로 생존과 탐구의 여행을 시작하였다.
소통의 부제에서 격리된 지역의 자생적 공동체와 문화의 발전이다.
대자연의 탐구와 새로운 예속의 미지이다.
초자연의 절대적 예속에서 지식에 의한 현상의 분별과 생존의 현실주의이다.
신의 예속에서 감각적 현상의 변화이다.
유전적 분별에서 시간과 학습이다.
하늘에 닿는다는 표현에서 야곱의 사다리는 별말씀이 없었다.
아브라함의 자손 유대는 가나안 사람의 조상 함이 아니라 셈의 셋째아들 아르박삿(BC2094~1656년)이다.
노아의 장남 셈의 둘째 앗 수르와 셋째 아르박삿이 아시리아의 조상이다.
족보의 산수가 어려우나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를 떠돌던 유대인은 여호수아에 의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의 땅 가나안에 진입한다.
최초에 점령한 도시 여리고성에서 함의 자손을 잔인하게 살육한다.
노아의 장남 셈의 자손이 차남 함의 자손을 죽이고 종으로 만들었다.
사람사는 것이 혈통과 족보는 멍멍이 밥그릇이다.
인류사에서 노아의 싹쓸이 정리 후 아브람 대에 이르러 성경의 인간사가 펼쳐진다.
족보와 관계의 구심점에서 이방신이든 하나님이든 신들의 세계가 인간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초자연적 현상의 두려움에서 초월적 존재에 의지하는 불안정성의 보완이다.
태초의 무에서 왜 라는 지식의 발전이다.
지식은 긍정의 한계에서 의심을 만든다.
특별한 것은 우상숭배를 벌하는 하나님께서 번제와 할례를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물론 인간모세가 쓴 것이다.
발람과 관련 있는 모압과 건달 입다에게 멸망당한 암몬의 조상이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다.
소돔을 탈출한 롯과 딸의 자손이 해괴하여 빼놓았더니 성경에 버젓하다.
씨의 연속성에 집착하는 밭의 개념이 성의 시대적 분별이다.
구약에 등장하는 아비멜렉은 4명이라고 한다.
아브라함과 사라에 관련된 아비엘렉은 바로로 칭하는 에굽의 그릴왕 이다.
신약에서 공부한 아브라함이 사라를 누이로 속였다는 내용이다.
이스마엘은 아브라함이 86세에 태어났고 이삭은 100세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계시로 아들이삭을 번제의 재물로 받치려 하였다는 내용은 많이 알려져 있다.
코란에서 이스마엘로 되어있다고 한다.
그래도 자식을 동물처럼 잡으려 하였다는 표현은 막가는 것이다.
사라는 127세에 죽었다.
아브라함의 유목민은 땅이 없어 헷족에게 구구절절한 정의의 구색으로 막벨라 동굴을 구하여 장사지낸다.
사라가 죽은 후 이삭이 장가가는데 아내는 작은아버지 나흘의 손녀 리브가이다.
씨족사회의 근친혼이다.
이브라함은 175세에 죽어 사라가 묻힌 곳에 안장하였다.
이스마엘은 137세에 죽었고 그의 자손은 사해를 사이에 두고 이삭의 자손 맞은편에 살았다.
이삭은 흉년으로 블래셋왕 아비멜렉이 다스리는 그랄로 이주한다.
예초 거주지 브엘세바의 서북쪽 멀지 않는 곳이다.
유목민의 특성으로 이동이 쉽다.
여기서 아버지 아브라함이 어머니 사라를 누이로 속인 것처럼 아내 리브가를 누이로 속인다.
부전자전이다.
이유도 예쁘면 위험하다는 부정적 사회의 우려이다.
여성을 빼앗는 사건이 비일비재 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왕이 알고 이삭부부를 건들이면 누구든 죽인다고 하였다.
왕의 개념이 씨족사회의 우두머리 정도였을 것이다.
이삭은 하나님의 예언대로 성공하여 부자가 되었다.
나보다 잘나 눈에 띠면 시기하는 것이 인간이다.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로 그랄의 골자기지나 브엘세바로 돌아온다.
브엘세바와 현재의 가자지구 블래샛 사이에 그랄이 있다.
에서와 야곱의 일화는 신약에서 공부하였다.
추가하여 야곱이 외삼촌 라빈 몰래 밧단아람을 떠날 때 라헬이 아버지가 숭배하는 우상 드라빔을 훔쳤다.
딸을 미끼로 야곱을 20년 동안 부려먹은 라빈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흘의 손자이고 야곱의 외삼촌이다.
왜 라헬이 드라빔을 훔쳤는지 우상숭배의 의심이 있다.
레아와 달리 라헬에게 아이가 없었다.
마음고생하다 시종 빌하를 야곱의 첩으로 주고 두 아들을 얻은 후 느즈막에 요셉을 낳았다.
자신의 시종이 낳은 아이를 자신의 아이로 생각하였던 것 같다.
레아도 더 이상 임신이 안 되자 자신의 시종 실바를 야곱의 첩으로 주었다.
실바가 두 아들을 얻은 후 레아도 두 아들과 유일한 딸 디나를 낳았다.
두자매가 아이 낳는 경쟁을 하고 있다.
야곱은 열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었다.
이삭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의 역사는 신약에서 보았다.
빠뜨린 것은 인간이 하늘에 이르는 길 야곱의 사다리와 천사와 씨름에서 다리를 다치고 이겼다.
평생 절름발이 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때 야곱이 다친 골반 힘줄을 먹지 않는다고 한다.
성경에 이런 것도 쓰여 있다.
야곱이 외삼촌을 떠나 숙곳을 거쳐 세겜에 머물 때 레아가 낳은 유일한 딸 다나가 봉변을 당한다.
히위족 추장 세겜이 다나를 강간하였다.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사과하고 혼례를 청한다.
야곱과 열두 아들은 복수를 위해 위장하여 우리와 같이 할례를 받으면 수용하겠다고 한다.
할례를 포함하여 요구하는 조건을 받아들이겠다고 하며 자신들의 땅에서 같이 살자고 하였다.
하몰과 세겜은 상대를 믿고 성의 사람에게 할례를 하게하였다.
하나님의 목적에서 나쁜 것은 아니다.
다나의 결정은 요즘생각이고 그때의 여성은 정말로 남성의 갈빗대 이었다.
상처가 아물기 전 삼일 째 되는 날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복수하여 죽이고 재산을 약탈하였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므온과 레위는 다나의 어머니 레아의 여섯 친자 중 둘이다.
야곱의 생각은 달랐던 것 같다.
시므온과 레위를 책망하였다.
야곱은 토착세력의 후환이 두려워 위장하여 떠난다.
벧엘에 도착하여 여기에서 하나님의 계시로 야곱의 이름을 버리고 이스라엘이라 하였다.
다시 이동하여 에브랏(베들레헴)에 이르러 라헬에게 산기가 있었고 난산이었다.
야곱의 막둥이 벤자민은 태어났으나 라헬은 죽었고 그곳에서 장사지냈다.
드라빔의 우상을 연결 지으려는 시도가 있다.
유목민은 가축과 이동한다.
속도가 느리다.
야곱의 장남 르우벤이 첩 빌하와 동침했다는 말씀이 있다.
느닷없는 지옥이 스쳐 지나간다.
육신의 한계이다.
이러니 육신의 죄를 경계하는 것이다.
아니면 상속자를 옹호하기 위한 장남의 음해이든지 아리송하다.
상속자를 옹호하고 장남을 음해하는 정황이 곳곳에 있으니 짐작하는 것이다.
야곱은 기럇아르바(헤브론)의 상수리나무가 많은 마므레에서 이삭에 이르렀다.
헤브론은 사라를 장사지낸 곳으로 아브라함과 이삭의 거주지이다.
신약에서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여 팔아먹었다고 하였다.
이유가 충분하게 있었다.
요셉이 꿈 이야기를 하며 “밭에서 추수하여 작물의 단을 묶는데 내가 묶은 단은 서있고 형들이 묵은 단은 절하였다.”
또 한 번은 “달과 열한별이 나에게 절하였다.”
야곱의 편애도 꼴사나운데 기름 말고 휘발유 붓고 있다.
광야의 목축지를 찾아온 요셉을 형제들이 죽이려는 것을 장남 르우벤이 설득하여 광야의 구덩이에 버려놓았다.
형제끼리 피는 보지말자는 것이다.
죽이자니 형제의 의가 불행하고 살리자니 아버지의 편애로 산수가 안 되는 닭 벼슬의 동생이 화근이다.
마침 애굽으로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팔러가는 이스마엘 자손에게 유다가 선동하여 은 이십에 팔았다.
르우벤이 돌아와 요셉이 없어진 것을 발견하였으나 기차 떠난 뒤이다.
요셉의 입이 방정이었다.
장남 르우벤의 됨됨이가 괜찮다.
야곱에게 요셉에게서 빼앗은 채색 옷에 염소의 피를 묻혀 사나운 짐승에게 잡혀 먹혔다고 속였다.
윤간하고 속이고 이스라엘 조상의 거취가 하나님의 가르침과 다르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부정할 수 없다.
요셉은 애굽왕의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렸다.
이삭이 아내 리브가와 야곱의 사기에 당하여 상속자의 권한을 에서가 애걸하였으나 야곱에게 주고 180세에 죽었다.
에서와 야곱이 장사지냈다.
형제를 선동하여 요셉을 팔아넘긴 유다의 이야기가 기가 막히다.
현세의 상식으로 이해하는데 산수하기 어려웠다.
유다는 이스라엘의 조상 열두지파 중 유다지파의 원조이다.
여인의 이름이 없는 것으로 보아 혼전 동침하여 장남 엘과 차남 오난과 셋째 셀라라는 세 아들을 두었다.
첫째는 엘은 다말이라는 여성과 혼인하였으나 악인이라 하여 하나님이 죽였다.
둘째 오난은 아버지 유다가 엘의 씨를 위해 형수 다말과 동침을 명하였으나 자신의 씨가 아까워 회피하므로 하나님에
의해 죽었다.
웬만하면 죽여서 정리한다.
유다는 다말에게 셋째 셀라가 성장할 때까지 친정에 가서 조신하게 기다리라고 한다.
그때는 그렇게 하였다고 이해하면 된다.
세상사는 인간이 정하는 것 같아도 시간이 정한다.
다말은 셀라도 죽을 까봐 그렇게 한다.
그나마 없으면 평생과부이다.
유다는 셀라가 장성함에도 다말을 부르지 않았다.
결국 다말은 창녀로 위장하여 홀아비 유다를 끓여 들여 동침하며 사례를 요구한다.
유다는 염소새끼 주겠다고 하니 담보로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요구하였다.
급하면 뭐든 준다.
염소새끼를 가지고 담보물을 찾으려 했으나 주민들이 그곳에 창녀가 없다고 한다.
포기하였는데 다말이 임신한 것을 알고 불살라 죽이려 하였다.
다말은 유다가 담보물로 준 징표를 들이대며 씨의 주인을 말하였다.
다말은 쌍둥이 아들을 출산하였고 손이 먼저 나온 아이에게 황색실을 묶었는데 나중아이가 먼저 나왔다.
구약은 문제가 복잡하다.
유다는 셀라를 주지 않은 잘못을 인정하고 다시는 다말을 보지 않았다는 전설이다.
성의 개념이 달랐다고 보아야 한다.
노아의 홍수이야기는 혈통을 중시하는 씨족사회의 학습에서 성의 혼란에 의한 족보의 재정립이라는 생각이다.
혈통의 집착이 지금과 많이 달랐을 것이다.
홍수의 심판은 혈통의 죄라고 추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거역하면 반드시 벌이 내려지고 가르침을 따라 계시를 받으면 반드시 번성한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시험은 있으나 총명함으로 주인의 신임을 얻어 승승장구한다.
요셉의 용모가 라헬을 닮아 뛰어났다.
여주인아 거듭하여 욕심내었으나 하나님의 맹세로 거절한다.
욕정에 눈먼 여주인은 집안을 비우고 유혹하며 요셉의 옷을 잡아끌며 또다시 관계를 요구한다.
환장하고 있는 것이다.
거절하고 돌아서는데 옷을 놓아주지 않으니 옷을 벗어두고 자리를 피한다.
여주인은 소리를 질러 히브리인 즉 요셉이 자신을 강간하려 하였다고 모함하였다.
목욕하는 수산나를 강간하려다 거절하자 적반하장으로 모함한 재판관들이 있었다.
하여튼 수컷이든 암컷이든 육신의 욕정이 문제이다.
요셉은 여주인의 말을 우선한 주인 친위대장에 의해 옥에 갇힌다.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총명함이 인정되어 감옥업무를 처리하는 일을 한다.
왕궁에서 떡과 술을 만드는 관원장들이 왕의 노여움으로 옥에 갇혔다.
요셉이 친위대장의 명령으로 수종을 들며 그들의 꿈을 해석한다.
술 관장의 꿈은 포도나무 세 가지에 싹이 나고 꽃이 피고 포도가 익었다.
내손에 바로의 잔이 있어서 포도를 짜서 잔에 담아 바로에게 주었다.
긍정이다.
길몽으로 사흘 안에 직책을 회복할 것이라고 하였다.
요셉은 여주인의 모함을 애기하고 꿈의 해석이 맞으면 나를 기억하여 바로에게 기회를 부탁한다.
듣고 있던 떡 관장이 디테일을 수용하여 자신의 꿈 해몽도 부탁한다.
흰떡 세 광주리가 머리위에 있는데 맨 위 광주리는 바로에게 내어놓을 구운 음식이다.
새들이 쪼아 먹더라는 것이다.
흉몽이다.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을 메달을 것이며 새들이 육신을 쪼아 먹을 것이다.
사흘 후에 바로의 생일잔치가 열린다.
꿈의 해석이 맞았다.
술 관장은 바로에게 잔을 건네 복직 되었고 떡 관장은 매달렸다.
안타깝게 술 관장은 요셉의 해몽을 잊었다.
사정잡배는 배부르면 잊히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영원하다.
요셉의 지해가 무서웠을 것이다.
2년 후 애굽왕이 꿈을 꾸었는데 올바로 해몽하는 사람이 없었다.
때를 기다렸는지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살아남은 술 관장이 요셉의 해몽을 기억한 것이다.
두려워 숨기다 왕의 꿈이므로 콩고물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하나님 뜻이다.
바로가 부른다.
꿈의 내용은 일곱 마리의 보기 좋게 살찐 암소가 강가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뒤에 흉한 암소 일곱 마리가 나타나 살피더니 살찐 암소를 먹었다.
깨어 다시 잠들었는데 이번에는 한줄기에서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왔다.
잠시 후 마르고 시들한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앞선 무상하고 충실한 이삭을 삼키었다.
무엇이 있는 것 같은데 감이 안 잡히는 것이다.
왕의 꿈이니 해괴함이 더하고 있다.
요셉이 기회를 잡았다.
해몽은 일곱 해 풍년 들다 일곱 해 흉년이 들것이라는 것이다.
풍년에 오분의 일의 곡식을 거두어 저장해서 흉년에 대비하라고 하였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역사인데 논리적 총명으로 총리가 되었다.
하나님의 뜻이니 토 달아봤자 소용없다.
풍족하다면 저장해 두어 나쁠 것 없다.
여유 있을 때 아끼는 것이 중요하다.
요셉의 해몽대로 일곱해 풍년이 들다 다음해부터 흉년이 닥친다.
애굽은 준비하여 기근의 위기를 견딜 수 있었다.
문제는 기근이 닥친 가나안 땅에 있는 야곱의 식솔들이다.
애굽에 식량이 있다는 것을 안 야곱이 베냐민을 남겨두고 열 아들에게 식량을 구해오라고 보낸다.
요셉이 짐승에 찢겨 죽을 줄 알고 있는 야곱이 라헬의 남은 자식 베냐민을 염려하여 남겨둔 것이다.
야곱의 열형제가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나 식량을 부탁한다.
요셉은 형제를 알았으나 형들은 총리가 요셉인줄 모르고 있다.
친동생 베냐민이 안보이니 궁금하고 불안하였을 것이다.
첩자로 다그치며 집안과 사정을 물으니 열두 형제 중 하나는 사라지고 아버지가 베냐민과 같이 있다고 하였다.
삼일을 옥에 가두고 하나님을 거론하며 너희 중 한명만 남고 돌아가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오라고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시 나를 볼 수 없다고 하였다
시므온을 남겨두고 식량과 돈을 부대에 담아 돌려보낸다.
도중에 여차저차 해서 자신들이 식량 값으로 지불한 돈이 부대에 들어있는 것을 확인한다.
무엇인가 남다른 배려가 있다.
애굽 땅에서 시기로 팔아넘긴 요셉 생각을 안 하였다면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 야곱에게 애굽에서 있었던 일과 베냐민이 우리와 다시가야 시므온을 데려올 수 있다고 하였다.
야곱은 요셉에 시므온에 베냐민까지 잃을까봐 반대한다.
식량이 떨어져 가니 아들들에게 또 다시 식량을 구해오라고 한다.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한다.
장남 르우벤이 일이 잘못되면 자신의 두 아들을 죽여도 된다고 하며 아버지를 설득한다.
첩 애기하고 식솔들의 책임감이 다르다.
야곱이 말하여 애굽의 총리가 어찌하여 베냐민이 있는 것을 아느냐 하고 책망하였다.
요셉이 안부가 궁금하여 물었던 것이다.
식량이 없으면 다 죽는다.
베냐민이 동행한다.
요셉은 따뜻하게 형제를 대접하고 보내며 자신이 쓰는 은잔을 베냐민의 부대에 몰래 넣는다.
베냐민을 남겨두려는 수작이다.
뒤 쫒아간 청지기에 의해 발견되어 잡혀 돌아온다.
잔을 훔친 베냐민을 남겨두고 떠나라 하니 아버지의 낙담이 걱정되어 호소하는 형제들에게 요셉도 마음을 돌렸다.
자신의 정체를 알리고 형제의 정을 나누었다.
성경이 인간성 구색 맞추느라 열심이다.
요셉은 아버지와 식솔들을 애굽으로 데려와 고센 땅에 머문다.
야곱은 12지파를 유언하고 요셉의 두 아들 장남 므낫세와 차남 에브라임 중 차남에게 상속한다.
애굽에서 죽어 아브라함과 이삭이 있는 가족묘지 마므레의 막벨라 밭 동굴에 매어다 안장하였다.
요셉은 성취한 곳에서 110세에 죽었다.
유대민족이 애굽에서 격어야 하는 역사가 걱정이다.
다음은 출애굽기이다.
2) 스올.
신약에서 음부로 표현하고 있다.
어두운 곳과 죽은 자가 머무는 곳으로 지하세계를 말한다.
2025.6.23.일.
2 출애굽기.
1) 본문.
요셉이 죽고 일족은 애굽의 고센 땅에 머문다.
자손이 번창하였으나 유목민은 땅이 없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무덤도 구구절절 하게 헷족속의 땅을 사서 마련하였다.
애굽의 지배에서 하나님의 유일신앙을 강조하는 아브라함족속은 민족적 동거의 한계가 있었다.
예속된 민족의 차별과 권력의 견제를 견디기 어려운 것이다.
아브라함의 계보는 자존심 강한 민족이다.
요셉이 식솔들을 애굽으로 데리고 간 것은 당시 상황이 기근으로 어려웠고 능력이 있었으므로 가능하였다.
사백 삼십년 후 하층민으로 전락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다.
출애굽기의 시작이다.
비둠과 라암셋은 국가의 병기창으로 무기와 보급품을 저장하는 성이 있는 지역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노예로 노역하던 곳이다.
성을 건축하고 벽돌굽는 일에 동원되었다.
고센 땅 이주가 야곱의 백성을 민족적 경계의 차별과 학대에 방치하는 결과가 되었다.
가혹한 노역은 육신의 고통으로 정신을 압제하여 통제하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사람들이 늘어나자 왕이 산파에게 아들을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한다.
씨 자랑할 만 하다.
애굽왕이 살피니 남자아이들이 여전히 살아있어 산파에게 이유를 물으니 하나님을 섬기는 히브리 여인은 건강하여
도착 전에 아이를 낳아 볼 수 없었다고 대답한다.
왕은 아들이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지라고 다시 명령한다.
모세가 태어나고 삼 개월 지나 발각 될 것이 두려워 튼튼한 상자에 담아 바로의 딸이 목욕하는 강가 갈대숲에 두고
지켜보고 있었다.
공주가 상자를 발견하고 히브리인 아기인줄 알면서 보호한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이 젖을 줄 유모가 있어야 한다고 하며 구해오겠다고 하니 그렇게 하라고 하였다.
유모는 모세의 어머니였다.
모세가 애굽왕가와 기름을 부었다.
젖 삯 받는 유모 즉 어머니 손에 자라 공주에게 데려간다.
공주가 자신의 아들로 하여 모세라고 이름 지었다.
따지면 힘들다.
특별한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시작하는 모세의 탄생에서 천사를 통한 계시가 없다.
장성하여 히브리인이 노역하는 벽돌 굽는 장소에 가니 애굽 사람이 히브리 사람을 구타하는 것을 보고 놈을 죽여 모래
속에 묻었다.
한 승질한다.
어찌되었든 사람 죽인 죄는 감출 수 없다
히브리 사람의 고자질로 바로가 알게 되어 죽이려 하니 시내(사나이)반도 지나 홍해건너 미디안으로 도망쳤다.
나그네의 외로운 신세로 우물가에 있었다.
한 무리의 여인들이 남자의 보호 없이 물을 가져가려 하는데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불의에 한가락 하는 모세가 나서서 여인들을 도와주었다.
미디안 제사장의 딸들이었다.
제사장 르우엘이 도와준 청년 모세를 집으로 초대한다.
어찌 각본이 되어간다.
기거하며 그의 딸 십보라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 게르솜이 탄생하였다.
꿩 먹고 알 먹고 모세의 가정이 꾸려졌다.
나그네의 각본이 완성되었다.
세월이 흘러 모세를 죽이려던 왕이 죽었다.
애굽의 노역은 가혹함이 더하여 히브리인의 원성이 하늘에 닿았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던 가나안 땅으로 가야한다.
누군가 나서야 하는데 모세가 선택된다.
모세는 목동으로 장인의 양떼를 몰고 미디안에서 남서쪽 호렙(시내)산에 이른다.
일의 시작은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야 된다.
하나님께서 호렙산의 떨기나무에 불로 나타나 “모세야 신성한 땅이니 신발을 벗고 가까이 오라!” 하시며 애굽에서
노역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젖과 꿀이 흐르는 헷족속과 아모리족속과 브리스족속과 히위족속과 여부스족속이 사는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라 하였다.
사람을 죽이고 도망칠 정도로 이스라엘 민족의 노역에 분노하였던 모세는 생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커다란 사역에
두려움이 앞선다.
자신에게 그럴만한 능력이 없다고 하며 정체성을 부정한다.
도망친 나그네의 외로움에서 지역의 지도급 집안 사위로 안정된 삶이 그런대로 괜찮은 것이다.
문제는 거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역이고 명령이다.
느닷없는 하나님의 호출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였다.
히브리 사람들에게 자신을 누구라고 하며 생사가 불투명한 고난의 대장정을 어떻게 설득해야 하는지 막연한 것이다.
마음만으로 안 되는 민족적 거사이다.
하나님께서 산수가 안 되는 모세에게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다.” 라고 부체 질 하신다.
너희의 가혹한 차별과 노역을 세세히 알고 있으니 이제는 너희로 머물 수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할 것이다.
야곱(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스스로 있는 자 가 너를 너희에게 보냈다.” 라고 말하라 하였다.
바로에게 가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임하였으니 제사를 지내야 하므로 사흘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하라!” 하였다.
바로가 믿지 않고 증거를 요구할 것이니 나의 권능으로 너에게 기이한 능력을 줄 것이다.
네가 가지고 있는 지팡이를 던지면 뱀이 되고 꼬리를 잡으면 다시 지팡이가 되고 손을 품에 넣었다 빼면 나병에 걸린
손이 되고 다시 넣었다 빼면 원래로 돌아올 것이다.
그래도 놓아주지 않으면 나일강물을 떠다 땅에 부으면 피가 될 것이다.
듣고 있던 모세가 저는 말을 잘 못하여 설득의 부담이 있다고 한다.
여러가지 이다.
하나님께서 노하여 네 형 아론이 있지 않느냐 그의 입을 빌리라 하였다.
이 부분에서 말썽꾸러기 형의 입담을 아론의 반차에서 공부하였다.
모세는 돌아가 미디안의 장인에게 전후를 말하고 허락을 청한다.
가족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난다.
부연하면 미디안의 켄족은 야훼신앙을 섬겼으며 금속가공 기술이 뛰어났다.
창세기에서 가인의 6대손 라멕의 두 부인 중 씰라가 낳은 두발가인이 대장장의 시조라고 하였다.
미디안 족속은 유다지파 소속이라는 자료는 잘못된 것이다.
애굽을 탈출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돕는다.
성경에 느닷없는 구절이 등장한다.
야곱의 장남 르우벤의 침대 이야기에서 이번에는 할례문제이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공들인 모세를 죽이려 하였다.
이유를 유추하면 아들 게르솜의 할레였다.
아내 십보라가 돌칼로 잘라내 해결되었다.
다자고자 죽인다고 하여 깜짝 놀랐다.
고대 유대사회에서 할례문화가 그만큼 중요했다는 것이다.
제정신 돌아와 바로가 쉽게 허락하지 않을 것이나 너를 통해 여러가지 재난을 일으켜 죄 값이 이루어질 것이다.
애굽도 히브리 사람들이 떠나면 일할 사람이 없어 난감하였을 것이다.
있을 때 잘하지 부려먹고 삯에 인색한 가진 자들의 행색에 문제가 있다.
아론이 모세 일행을 광야에서 마중하였다.
하나님의 떨기나무 계시를 말하고 동행한다.
모세와 아론이 바로 앞에 나가 히브리 백성을 가고자 하는 곳으로 보내면 민족으로 도리를 지키겠다고 한다.
본격적으로 바로와 전쟁이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임하였으므로 광야에 나가 제사지내지 않으면 우리에게 화가 미칠 것이라고 위기를 조장한다.
대화의 성립에서 번제와 속죄제가 성행하였다는 정황을 알 수 있다.
하나님 말씀대로 광야에서 제사지낼 사흘의 시간을 달라고 요구하였다.
바로가 국고성(병기창)의 건설을 위해 쉴 시간이 없다고 거절한다.
오히려 모세의 요구에 노여워 노역이나 잘하라며 감독의 가혹함을 더하였다.
흙벽돌에 짚이 들어가야 형태가 쉽고 균열을 방지한다.
히브리인들이 제사를 빌미로 꾀를 부리니 짚의 공급을 중단하여 자체 조달하게 하고 벽돌의 수량을 재촉한다.
왕의 꼴이 사납다.
모세와 아론을 통한 하나님의 요구에 왕의 벼슬로 저항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차별과 예속을 강요하고 있다.
짚을 구하느라 벽돌의 수량을 채우기 어려우니 위협하고 때리고 가혹함이 짐승부리 듯하였다.
민족적 학대에서 심하지 않은 표현이다.
모세의 제사문제로 바로의 화가 미쳐 가혹함이 더하자 노역하는 히브리 사람들이 모세일행에 항의한다.
마음이 깊어진 모세는 하나님께 하소연 한다.
나로 인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힘든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로가 노여움으로 행하는 가혹함의 저항으로 궐기하게 될 것이며 그것의 원인으로 벌하여 그로 하여금
이스라엘(야곱) 백성을 놓아주게 할 것이다.
고난 없이 이루어지는 것이 없다.
모세를 위로하며 다시 바로에게 가서 나의 말을 전하라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나의 말을 안 듣는데 바로를 나의 둔한 언변으로 설득할 수 없다고 부족함을 한탄한다.
가나안의 실체를 모르고 수백 년을 살던 땅을 떠나야 하는 백성은 하나님의 약속 말고는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하다.
모세 자신도 뭐하나 손에 잡히는 미래가 없는 것이다.
있다면 광야에서 생존할 수 있는 목축업의 역사이다.
여기서 야곱이 열두 아들에게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를 상속하였다고 하였다.
자존심 강한 민족이 예속의 차별과 가혹한 노역을 견디어야 했던 이유가 궁금하다
기근은 야곱의 가족에게만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야곱의 열두지파 자손 대부분이 애굽에서 노역하고 있다.
왜 상속받은 땅 놓아두고 수백 년을 민족적 차별의 가혹한 지경에 있냐는 것이다.
땅의 소유에서 실체가 없었다는 것이다.
바벨탑 이전 목축업의 영역이라는 이해이다.
초지의 공유에서 사람이 증가하니 땅의 경계가 심해졌다고 보아야 한다.
가나안 땅의 약속에서 절박하게 싸워서 찾아야 하는 목적이 발생하였다는 것이다.
세상은 변한다.
애굽의 이스라엘 백성이 잚은시간에 공감하였다는 것이 유대의 민족성이다.
하나님을 여호와라 부르고 있다.
성경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나를 여호와라 하라 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하나님은 창조주의 초월적 존재이고 여호와는 신과 인간의 관계를 의미하는 차이가 있다.
언약의 주종에서 백성을 보살피는 관계적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여호와가 모세에게 전하는 뜻을 아론이 대언하여 바로에게 말하였다.
이때 모세의 나이는 80세였고 아론은 83세였다.
광야의 사십년이 힘들 것 같다.
요셉은 110세에 죽었다.
바로 앞에서 이적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모세가 지팡이를 던지니 뱀이 되었다.
바로가 마술사를 불러 대적하나 모세의 뱀이 마술사의 뱀을 잡아먹었다.
바로가 꿈적하지 않으므로 이번에는 하나님의 명에 따라 지팡이를 치니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물고기가 죽었다.
마술사도 똑같이 모방한다.
기고만장한 바로의 닭 벼슬이 움직일 가능성이 없다.
그래도 여호와의 명이니 갈 때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
이번에는 개구리의 이적을 행하나 마술사도 똑같이 한다.
그래도 개구리가 싫었던지 모세에게 개구리를 치우면 보내주겠다고 한다.
약간의 진전이 있다.
치우니 오리발로 버틴다.
애간장이 탄다.
이번에는 티끌로 이를 만들어 괴롭히니 이것은 마술사들이 따라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이겼다.
그래도 버틴다.
병기창은 지어야 하고 일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있을 때 잘하지 이제는 이판사판 끝장밖에 남은 것이 없다.
네 번째 파리 떼의 이적을 행한다.
죽을 지경인데 바로는 고집으로 버틴다.
다섯번째 가축의 죽임이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혀 해가 없었다.
여섯번째는 종기이고 일곱번째는 우박을 내려 채소를 아작 낸다.
여덟번째는 메뚜기로 그나마 남은 채소를 싹 쓸어 먹어치운다,
아홉번째는 흑암의 어두움이다.
숨 가쁘다.
드디어 열 번째 이다.
일곱으로 끝낼 줄 예상했는데 이번에는 열까지 세었다.
사람과 가축과 짐승 등 어미의 뱃속에서 첫 번째 출산된 생명의 죽음을 경고하였다.
그래도 똥배짱 바로가 버티고 있다.
여호와는 유월 십사일 어린양이나 염소의 수컷을 사람대로 잡아 날것으로 먹지 말고 쓴 나물과 구워먹으라고 하였다.
음식은 남기거나 집 밖에 내놓으면 부정하니 태우라고 하였다.
먹는 집 문설주에 생명의 피를 발라 내가 애굽의 장자를 죽일 때 피할 수 있도록 표시하라 하였다.
유월절이다.
무교병은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빵으로 급하게 애굽을 떠날 때 발효 안 된 재료에서 유래하였다.
정교회는 누룩 넣은 빵을 먹는다.
태의 첫 번 째 생명을 빼앗는 무시무시한 거사의 준비는 끝났다.
애굽이 뒤집어졌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겨우니 빨리 사라지라고 성화였다.
12장 36절에서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물품구매에 협조하였다.” 라고 하였다.
사백 삼십년을 이웃으로 살았는데 밑바닥 민심은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노역도시 라암셋을 떠나 숙곳에 도착한다.
숙곳은 야곱의 귀환경로 사해북쪽과 출애굽기에서 시나이 반도와 아프리카 대륙의 경계 두 곳이 있다.
출애굽기의 본격적 시작이다.
숙곳에 도착한 백성이 칠십만 이라고 한다.
가축과 같이 이동했으니 길이 아니라 일시에 광야에 흩어져 개별적 이동이었을 것이다.
상상해보면 대장관이다.
광야가 대이동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목축업의 역사를 살펴보면 광야는 왕국의 경계와 상관없이 공유되고 있었다.
사람과 짐승 중 처음 출산한 생명을 빼앗을 때 가혹하게 차별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우선하여 인륜의 무게 없이 가볍게
지나갔다.
애굽 사람들 모두가 바로의 생각과 같지는 않았을 것으로 무고한 생명을 해치는 것은 선과 인륜이 아니다.
13장 11~16절은 무섭다.
태에서 처음 난 것은 나귀의 새끼를 제외하고 여호와에게 제사 드려야 한다고 하였다.
번제와 속죄제의 무시무시함이 사고의 지배를 우선한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받치라는 하나님의 시험으로 장작과 칼을 가지고 모리아 땅으로 갔다.
암몬을 멸하였다는 입다는 자신의 외동딸을 번제물로 받쳤다.
아합왕은 자신의 가난아이를 몰록의 제물로 받쳤다.
고대의 종교적 의식에서 야사가 아닌 정사의 기록이 이렇다는 것이다.
마야문명에서 더러 등장하는 사람을 제물로 하는 제사이다.
초자연적 현상의 불가항력적 기근과 파괴에서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고귀함을 제물로 바치는 미신이다.
글은 어찌 되었든 사람의 내면을 표현하는 것이다.
미루어 짐작하는 것은 읽는 사람 몫이다.
문설주의 피처럼 넘어가고 싶었으나 있는 것이다.
성경은 겨자씨 안의 겨자씨이다.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영을 전달하는 선택된 자 라고 이해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속한 것은 제사장이라 하였다.
태의 맨 처음 말씀에서 장남은 나에게 속한 것이라고 하였다.
레위지파에게 땅을 주지 않고 제사장의 지위를 주었다.
같은 맥락의 이해이나 성경은 장남에게 소홀하다.
번제와 제단의 말씀은 신약을 공부해서 그런지 제사의 거부감이 있다.
다듬지 않은 돌로 쌓고 하체가 보이게 계단을 만들어 오르게 하지 말라고 하였다.
다듬지 말라는 것은 어린아이의 순수이며 하체가 보인다는 것은 속 가리개 관리의 허술함이다.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전자의 번제는 사라졌다.
애굽의 지배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홍해의 기적은 모두가 알고 있다.
가혹한 차별의 예속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조상의 땅으로 돌아오고 있다.
주변의 토호 족들이 긴장할 만 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의 땅에서 본래의 거주민이 누구인지 헷족과 아모리족과 브리스족과 히위족과 여부스족의
정체가 궁금하다.
미디안은 아브라함과 후처 그두라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의 후손이다.
상속자의 고집을 빼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이 애굽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출애굽의 경로를 살피면 미디안과 에돔과 모압과 암몬과 가나안의 세력이 있었으나 충돌이 없었다.
유목민의 이해라고 하기에는 출애굽의 규모가 크다.
이웃으로 이해하였다고 볼 수 있다.
광야의 고난이 시작되었다.
불편함에서 불만의 증가이다.
물과 먹을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기도에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을 행한다.
물이 없다고 불평하니 하나님께서 가르친 곳을 모세가 지팡이로 치니 물이 나왔다.
그곳을 맛사 또는 므리바 라고 하였다.
시련과 싸워 이겼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었으면 다 죽었다.
출애굽의 최초전투는 르비담에서 아멜렉을 격파한 것이다.
아멜렉은 이스라엘을 괴롭힌 주변 종족으로 이후 자주 나올 것 같다.
모세에게 아들 둘이 있다.
장남 게르솜은 나그네로 미디안에서 차남 엘리에셀은 애굽에서 태어났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가 십보라와 두 아들을 데리고 광야에 왔다.
광야는 거칠고 팔순의 나이이니 떨어져 살만하다.
이드로가 보니 모든 송사를 모세 혼자 시비를 가리고 있었다.
천부장과 백부장으로 체계를 이루어 작은 사건은 그들이 하게하고 큰 사건만 하는 것이 옳다고 하였다.
그렇게 하였다.
21장 종에 관련된 법에서 23장 19절 “세 가지 절기에 관한 법.” 까지 모세오경이 정한 목축업자들의 규범이다.
살인하는 자는 죽인다.
한고조 유방(BC 247~195년)이 초한전쟁에서 이기고 나라의 기틀을 정하며 한 말이다.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최초의 율법서는 장약용(AD 1762~1836년)의 흠흠신서이다.
성경에서 모세의 출애굽은 BC 1446~1406년경으로 추정된다.
빠르다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전쟁으로 패한 민족은 승자에 예속되어 노예로 살았다.
비참하고 가혹한 계급의 지배는 현세종교의 평등과는 거리가 멀다.
그리스도교의 개혁에는 시간과 학습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
가나안 토착족속들의 언급에서 나의 사자가 너를 그들에게 인도하고 나는 그들과 단절한다고 하였다.
앞서 궁금하였던 탈 애굽에서 가나안 토착민과 동거가 무엇이었냐는 답의 일부이다.
노아와 셈의 후손 아브라함 계보의 민족적 공유가 있었는지 의문이다.
유일신앙과 유일민족의 범위가 어디까지 이냐는 것이다.
유전적 이유가 불분명한 민족으로 쌈 박질 해대서 도대체 무슨 원수인지 알자는 것이다.
성경을 읽으면 최소한 시나이 반도와 사해근처와 홍해 북동부의 미디안과 아시리아와 바벨론의 씨가 같다.
쓰잘떼기 없는 왕가의 혈통이 아니라 백성의 유전적 공유이다.
씨에서 하와 하나로 부족하여 밭의 혈통과 관계없이 여기저기 생산력이 뛰어난 민족이다.
빌하와 실바가 증거이다.
이방신과 우상숭배의 배척이지 사람을 배척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나안의 이스라엘 역사는 노아와 아브라함이 아니라 모세로 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종교와 유전적 역사로 판단 할 때 니네베의 회개로 씨의 민족과 종교의 뿌리에서 정체성의 공유가 이루어 졌다.
인류는 유일체가 아니라 혼합체이다.
호모사피엔스의 피에 네안데르탈인의 피가 섞여있다.
인간은 포유류와 영장류에 속한다.
하나님께서 금을 좋아하셨다.
성소와 제단의 구성에서 휘장으로 가려졌다고 하나 탐욕의 화려한 좋은 것과 형상의 이미지가 있다.
보이지 않는 초자연적 현상에서 보이는 것의 안정을 요구하는 우상의 학습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모세는 부려 드시고 아론을 제사장으로 광야백성의 상징을 만들고 있다.
번제를 아침저녁으로 매일 올리는데 일 년 된 어린양을 죽여야 한다.
보이는 상징을 요구하는 원초적 신앙의 공유를 의심할 수 있다.
모세가 산에서 기거하며 광야를 비우자 불량한 백성들이 대제사장 아론을 부추겨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신들의 신을
섬기는 우상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다.
대제사장 아론은 그들이 소유한 금을 가져오라고 하여 금송아지를 만든다.
우상 앞에 제단을 만들고 여호와를 사칭하여 백성의 믿음을 혼란하게 하였다.
하나님의 설득과 이적으로 이루어진 애굽 탈출에서 가르침의 믿음이 깊지 않다.
다음날 새벽 광야의 불손은 이방신에 제사지내고 먹고 마시며 우상이 우리를 애굽에서 구했다고 떠들었다.
후자는 이방신 몰록과 레판의 숭배였다고 하였다.
고난의 구원에 애쓰는 하나님의 따름이 부족하다.
말썽꾸러기 아론이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광야를 진멸하겠다고 하니 모세가 기도한다.
산에서 여호수아와 증거판을 가지고 내려오는데 아래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린다.
여호수아가 싸움 났다고 하자 우상의 제단에서 노래 부르는 소리라고 한다.
이방의 제단에 이르러 노하여 하나님이 만든 증거판을 무리에 던지니 조각났다.
금송아지를 가루로 만들고 제단을 부셨다.
망종을 부린 자들을 형제와 친구와 이웃을 가리지 않고 처단하는데 수가 삼천이었다.
구하려 애굽을 떠났는데 살육하고 있다.
틈만 생기면 이방신의 우상이 침략하는 민족이다.
두 조각난 증거판을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내산에 들어가 사십일 동안 있으며 다시 만든다.
온 광야를 모아 장황하게 십계명을 기록한 증거판이 세상에 나왔다.
혼란을 격은 야곱의 백성은 시내산을 떠나 가나안으로 향한다.
하나님도 이스라엘 백성을 목이 뻣뻣한 인간이라고 하였다.
그때나 현제나 민족성은 변한 것이 없다.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 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다.
다른 신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나인의 토착민은 이방신을 섬기고 있었다.
이방신의 오염을 걱정하여 가나안에 거주하는 족속들을 배척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인간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유일신앙이 우선이다.
출애굽기에서 성막을 두 번 지었다.
2) 아멜렉.
가나안 주변의 족속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다.
르비빔 전투에서 패하고 가나안에 진입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인들과 협력하여 이긴다.
잠시 이스라엘을 점령하기도 하였다.
사울과 다윗에 의해 아작 나고 바벨론과 친교 하라는 예레미야의 충고를 무시하고 아시리아를 선택한 히스기아왕에
의해 멸절되었다.
3) 아빕월.
보리가 익는 계절로 유월절과 관계가 있다.
유대력에서는 첫 번째 달이며 양력으로 3~4월에 해당한다.
아빕월 14일이 유월절이다.
4) 속죄소.
고해성사의 상징적 의미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죄를 고백하고 용서하여 덮는 격리된 공간의 상징물로 언약궤 위에 있다.
5) 물두멍.
제사장들이 성소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손과 발을 씻어야 하는 물그릇이다.
6) 초실절과 칠칠절(맥추).
보리를 수확하는 칠 주의 가간에서 처음 주와 마지막 주의 명징이다.
별걸 다한다.
7) 에봇과 호마노.
에봇은 제사장의 의복이며 호마노는 열두지파를 상징하는 줄무늬 보석이다.
8) 이드로.
미디안의 제사장으로 르우엘과 같은 인물이다.
아브라함과 후처 그두라에서 탄생한 네째 아들이 미디안이다.
이스라엘의 열두지파는 아브라함과 사라의 계보이다.
종교는 성경에 이드로가 야훼신앙을 칭송하고 제사지내는 대목이 있으나 분분하다.
모세가 가나안으로 같이 가자고 했으나 친족이 있는 땅에 있겠다고 하며 거절한다.
나중에 사위 모세와 대적한다.
이유에 대해 분명한 것이 없다.
모세의 생이 파란만장 하였다.
9) 12장 36절.
협조가 아니라 약탈을 주장하는 자료가 있다.
긍정과 부정의 차이다.
광야의 고난에서 수도 없이 애굽의 노역으로 돌아가자고 불평하였다.
약탈을 자행한 곳으로 돌아가자고 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무교병의 시차도 산수가 어렵다.
따지면 힘들다.
2025.6.26.일.
3 레위기.
1) 본문.
신약을 공부하신 분은 건너뛰어도 될 것 같다.
새의 번제물은 비둘기 새끼이다.
속죄제는 의도하지 않았거나 모르고 지난 간 죄의 용서를 구하는 제사이다.
각종 제사의 절차와 재물의 종류와 처리하는 방법과 경중을 기록한 문서 이다.
유교의 홍동백서는 세발의 피다.
그래도 짐승 잡아 지내는 제사는 기독교의 교리와 상충된다.
바꾸어야 하는 문화로 말하기 까다롭다.
세례자 요한이 할레에서 물세례로 바꾼 이유가 있었다.
피를 먹지 말라는 말씀은 공감한다.
근친상간을 금하고 있다.
누이 사라와 혼인한 아브라함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다.
씨족사회의 소멸이다.
동성애의 말씀도 있다.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곡식을 수확할 때 거류민을 위해 남겨두고 이삭은 줍지 말라고 하였다.
본서에서 가뭄에 콩 나는 인간적인 말씀이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만든 옷감의 옷을 입지 말라하였다.
순수의 강조이다.
정혼한 여종과 동침하지 말라고 하였다.
있었으니 경고하고 금지하는 것이다.
과수를 심고 삼년 전에는 할례가 아니므로 먹어서는 안 되고 사년 째는 하나님께 바치고 다섯 해부터 먹으라 하였다.
점치고 술법을 하지 말며 머리 가를 둥글게 하지 말며 수염의 끝은 손대지 말라 하였다.
일상을 세세하게 통제하고 있다.
의와 도의 학습으로 스스로 행하는 자율과 자유와 거리가 있다.
다 지켜 죄짓지 않으려면 꽤나 힘들 것 같다.
몰록의 불의 제사를 매우 강하게 경계하고 있다.
커다란 소머리 우상의 달구어진 쇠 팔에 가난아이를 죽여서 올려놓는 제사이다.
아합왕이 자신의 간난아이를 재물 받쳤다는 죄가 있다.
점성술의 분노도 크다.
21장 11절 부모의 시신도 가까이 말라고 하였다.
어쩌라는 것인지 동양사상에서 매우 부도덕한 일이다.
예수께서 제자가 부모가 죽어 가보겠다고 하니 죽은 자는 죽은 자가 마중할 것이니 너는 할일을 하라 하였다.
유대사회에서 무덤은 멀다고 하였다.
21장 17~23절 자손 중 대대로 육체에 흠이 있는 자는 제사에 참여할 수 없다.
예수께서 기적으로 그들을 고쳤다.
대략 일천 오백년의 세월이 많이 다르다.
현세는 예수이후 이천 이백년이다.
제사장의 딸이 일반인에게 출가하였으면 성물을 먹지 못하고 이혼하고 지식 없이 친정에 돌아오면 먹을 수 있다.
자식아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식이 죄이다.
모르고 성물을 먹으면 오분의 일을 더하여 내놓아야 한다.
당시의 성물은 먹는다는 표현에서 음식이 포함된 듯하다.
가축의 제물은 흠 없는 깨끗한 것이어야 하며 어미와 새끼를 동시에 잡지 말아야 한다.
유대사회에서 하나님을 폄하 하거나 모욕하면 돌팔매 당한다.
갈수록 태산이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팔지 못한다고 하였다.
아들 없는 집안 딸의 상속과 관련하여 열두지파의 경계에서 다른 지파에 땅을 팔면 안 되는 것이다.
일정부분 사유권의 제한이다.
형제에게 팔았어도 여유가 되면 돌려주어야 하고 여유가 없어도 희년 즉 일곱 해의 일곱 배에 이르는 오십년 째는
돌려주어야 한다.
중간에 환원할 때는 중보인을 세워 사용한 햇수를 계산하여 이행한다.
얼핏 국가소유의 사용 후 환원에서 사회주의가 떠오른다.
성벽에 기대어 지은 집은 매매 후 일 년 이내에 무르지 않으면 영구히 매수자의 것이 된다.
바울의 다메섹 탈출은 이러한 집의 창문을 통해 이루어졌다.
일반가옥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다.
레위족 성읍의 가옥은 중간에 무르지 않으며 희년에 환원된다.
희년이 좋은 것은 이유야 어디 있던 상속받은 땅과 가옥을 팔았어도 돌려받는다는 것이다.
제대로 이해했는지 모르나 복잡하다.
자본주의에서 기대하면 망한다.
사람을 종으로 사고 팔 때도 적용된다.
예수께서 율법의 사물적 폐쇄성을 알고 의와 영을 말씀하신 것이다.
2) 희년.
유대교나 기독교에서 칠이라는 숫자는 중요한 의미기 있다.
안식일이다.
땅도 육년을 경작하고 칠년 째는 유휴지로 경작하지 말아야 한다.
만나에서 육일 째는 이틀분의 식량을 거두고 안식일에는 일하지 않는다.
안식일에 나무했다고 돌팔매 당하는 율법이다.
같은 맥락으로 칠년의 유휴지가 일곱째 지난 다음해 즉 오십년 되는 해이다.
땅이나 가옥 등 매매가 이루어진 기업의 무르기가 율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해이다.
2026.6.30.일.
4 민수기.
1) 본문.
이스라엘 백성이 무력을 사용하는 방어와 공격의 진영을 갖추었다.
열두지파의 분별을 이용하여 각각의 역할로 명령계통의 조직을 구성한다.
병력이 육십만 삼천 오백 오십 명이다.
흩어져 살던 유대의 유목민족이 에굽과 가나안 국가에 대적할 수 있는 상당한 세력의 인적자원을 확보하고 있었다.
애굽의 이주와 고센 땅 거주에서 이유가 어디에 있었건 공동체의 학습이 이루어졌다.
목축업의 흩어진 이완에서 일정한 땅에 머무는 정착의 발전이다.
성은 도시화 이며 지키는 방어의 개념이 필요하다.
방어로 견주다 계산이 되면 공격으로 전환하는 것이 초기 공동체의 지배와 역사이다.
초지 따라 이동하는 목축업의 전업에서 정착하여 생산하는 농경사회의 변화라고 하여도 될 것이다.
바벨탑의 시간에서 목축업을 가업으로 하는 유대사회가 광야의 자아에 머물러 변화의 학습에 많이 늦었다.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을 정착지에 집결하도록 이끌어 내는 역사가 모세이고 광야의 고난이다.
성경에 기록된 성공한 고대의 역사에서 과정의 기록은 과장되고 희화적이다,
실증을 요구하는 지식의 분별에서 굳이 그럴 것 까지 없는 아쉬움이 있다.
과거에 있었고 현세에 연속성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소멸된 역사는 끄뎅이 잡고 따지지 않는다.
성경은 소설이 가미된 역사책이다.
긍정보다 부정이 많다는 것이 흠이다.
21세기의 성경은 긍정으로 개서할 필요가 있다.
모세는 선인이고 악인이다.
선인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했고 악인으로 인륜을 멸절하여 가나안이 이르지 못하고 느보산에서 죽었다.
씨족사회에서 이웃의 멸절은 씨를 소멸시키는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남자를 다 죽이고 여자는 살려서 흡수하였다.
여성을 혈통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밭으로 씨의 닭 벼슬이 희석된다는 생태적 합리성의 무지이다.
요사이는 밭의 유전자가 대세이다.
정착민이 갖추어야 하는 군사적 체제에서 레위지파는 열외 하여 성막의 관리와 경비를 담당하였다.
광야의 유대사회는 성막을 중심으로 결속하였다.
첫 번째 대제사장 아론의 첫째와 둘째는 이방신을 섬기다 하나님께 벌 받아 죽었다.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남아있다.
엘르아살이 아버지 아론의 뒤를 이어 2대 대제사장이 된다.
모세의 아들 장남 게르솜과 차남 엘리에셀의 거론이 없다.
미디안에 있는 처가의 관계에서 불편한 일이 있는 것이다.
느닷없는 게르솜의 할례문제도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정황의 의심은 있으나 차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장남은 나에게 속한다는 말씀은 대신하여 레위인들이 제사의 수고를 맞는다는 것이었다.
유추하면 가족중심 문화에서 장남의 역할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현재는 많이 희석되었으나 장자는 가족을 부양하고 방어하는 고정관념이 있었다.
인류전체가 공유하였는지 좀 더 살펴봐야 하나 지식 생명체의 공동체 의식에서 위계의 질서가 있다.
미풍양속의 역사에서 장남의 책임으로 가까운 조상의 넋을 기리는 제사를 모시었고 지금도 남아있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종교적 결사체를 위해 조상 넋 또는 개별적 우상의 의식을 제한하는 것이다.
만물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이루어지고 이르는 것이므로 제사는 하나님을 향한 하나의 절대이어야 한다.
레위지파로 제사장 지위를 결정하여 유대민족의 제사를 성전 즉 중앙 집중식으로 관리하는 종교적 제도이다.
종교는 권위주의이고 전체주의이다.
레위지파 사람들보다 장남이 273명 많았는데 이들을 대신할 대상이 없음으로 현금으로 대신하였다.
제도의 형평성이다.
조선에서도 균역법을 시행하여 군대를 면제해 주고 마필로 대신하였다.
국가의 운영은 어려운 이다.
첫배의 무죄가 재물이 안 되어 다행이다.
이스라엘의 역사와 성경의 흐름에서 야곱의 상속자는 성전을 관리하는 셋째 레위이다.
요셉을 강조한 이유가 부족하다.
유대사회를 움직이는 성전과 제사의 관리는 모두 레위지파 사람들 이다.
야곱의 셋째 레위에게 장남 게르손과 모세의 할아버지 둘째 고핫과 막둥이 므라리가 있다.
이들의 후손들이 성전을 지배한다.
한지파의 영원한 제사장 제도가 다윗과 솔로몬시대 대제사장 사독으로 시작하는 사두개파의 탄생원인이다.
2대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자손 사독은 가나안인의 대제사장 이었다가 성전의 대제사장이 된다.
추리하면 애굽을 탈출한 야곱의 백성은 흩어져 사는 노아와 아브라함의 자손 가나안인과 합류하였다는 것이다.
왕의 혈통으로 어쩔 수 없는 백성에 의한 피의 확산이고 혼합이다.
하나님의 가르침은 왕과 대제사장이 아니라 세계를 이루는 실체 백성에 이른다.
모세는 성막(성전)을 엄하게 신성시 하고 있다.
성서에서 시시로 꼼꼼하게 제사의 순서를 배열하고 각각의 역할과 담당자까지 지정하고 있다.
어찌하여 예수의 시대에 성전이 시장이 되었는지 민수기까지에서 아직은 알 수 없다.
번제의 가죽과 성전에 들어오는 헌금을 제사장의 것으로 하고 있다.
하나님의 가르침과 성전은 공유된다는 나눔의 선입견하고 다르다.
십자가의 길과 바로의 이방전도에서 대제사장의 인격은 분별과 존경에서 별로였다.
나눔과 배려보다 권세로 표현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흙과 갈비대의 비애 여성의 인격이 애굽의 노역처럼 가혹하고 차별적이다.
의심만으로 증오와 혐오의 무대에서 죽을 지경에 이르고 있다.
예수께서는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놓아두라고 하였는데 다르다.
죄짓는 자를 추수 때 까지 놓아두라고 하였다.
돌 처형이 빈번하고 버젓하다.
순수는 바보가 아니라 의와 영을 따르는 것으로 죄짓는 인간이 벌 받는다.
초월적 존재의 개념에서 구약은 신약과 다르다.
신약은 내면을 강조하나 구약은 보이는 행색으로 진리를 판단하고 있다.
사물의 조화를 우선하여 무엇을 하면 어떻게 하라는 식이다.
양의 피를 우슬초로 문설주에 바르면 너의 집을 건너 첫배의 생명이 무사할 것이다.
모세와 예수는 사물의 행색과 자아적 내면의 차이가 있다.
종교의 시대적 관점의 차이이다.
보이지 않는 미지의 지식이 결여된 보이는 것의 실증적 믿음이다.
사물적 현상의 예속이다.
유대의 목축업 광야의 자아적 삶하고 다르다.
성전을 통한 종교의 역할에서 공동체의 규범과 정치에 개입하고 있다.
인류가 선택한 것이다.
레위의 아들 게르손과 므라리의 자손은 제사의 제물을 담당하고 고핫의 자손은 시설관리를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성막의 화려함과 각지파의 제물로 쓰일 헌물의 기록에 광야의 고난이 의아하다.
금송아지 환란 후 헌물이 너무 많이 들어와 제한하였다고 하였다.
광야의 고난에서 성막은 풍족하였다.
유월절에 양이나 염소 등 제물로 쓰일 가축을 잡을 때 뼈를 꺽지 말라고 하였다.
십자가의 길에서 뼈는 상하지 않았다는 말씀의 진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나안을 향한 진군은 불기둥과 구름의 보호를 받으며 맑은 날에만 하였고 나팔을 불어 통제하였다.
나팔소리는 영원한 율례라고 하였다.
계시록에서 일곱 천사의 나팔소리에 따라 각기 다른 형벌이 이루어졌다.
초월적 세계를 사물적 현상을 빌어 표현하고 있으나 예수가 주장한 하나님의 영적세계는 형상이 없다.
실증하여 학습할 수 없는 전달의 고육책이다.
인간의 구원은 인류의 시간으로 학습 할 수밖에 없다.
이해할 수 있어야 전달할 수 있다.
예수께서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이다.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오이와 참외와 부추와 파와 마늘 등 먹을 것이 많았는데 광야에 나와 만나만 먹고 있다고 다베라에서 불만이 진영 끝머리의 불에 이르러다.
고기 달라고 하는 것이다.
불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 작은 폭동이 있었던 것이다.
메추라기 떼가 나타나 고기의 불만을 해결하였다.
기도하면 주니 버르장머리 잘못 가르쳐 떼쓸만하다.
시내산에 머물다 둘 째해 둘 째달 이십일에 진군하여 애굽을 떠나 바란광야에 도착하였다.
진군의 선두는 언약궤를 지키는 무리이다.
모세는 처남 호밥에게 광야의 지식을 칭송하며 가나안의 동행을 구했으나 친족이 있는 미디안으로 돌아갔다.
처가와 단절되고 있다.
모세가 하세롯에서 에티오피아(구스) 여인과 혼인한다.
구스는 노아의 둘째아들 함의 첫째이며 스바와 하월라와 삽다와 라아마와 십드가의 조상이다.
함에게는 네 아들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 그리고 가나안이 있다.
아버지 노아의 벌거벗은 몸을 본 함의 가나안 자손이 장남 셈의 앗 수르 자손의 종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누이 마리암과 아론의 반대가 심했다.
마리암은 삼 개월 된 아기모세를 광주리에 담아 애굽공주가 목욕하는 강의 갈대숲에 두고 지켜보던 누이이다.
십보라의 자리를 대신하여 광야의 여성들을 대표하는 자리에 있었다.
최초의 여성 선지자라고 한다.
모세의 후처가 자리를 대신하는데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마리암은 권세의 탐욕으로 칠일동안 벌을 받는다.
여호와께서 애굽 탈출시 동행한 이방의 구스여인과 혼인을 허락하신 것이다.
살펴보면 노아와 아브라함 씨가 애굽과 에둠과 미디안과 모압과 암몬과 가나안에 섞여 살았다.
여기서 바울의 회심을 기억하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께서 계시할 때 일행은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신약에서 하나님과 부활한 그의 아들 예수는 특정하여 주종의 관계로 영을 전달하고 있다.
구약에서 여호와는 칠십 인의 장로와 모세 삼남매를 모아놓고 대변하여 영을 전달한다.
앞서 언급한 하나님과 여호와의 차이이다.
마리암을 벌한 하세롯을 떠나 신 광야 가데스에 진을 치고 지파의 지휘관을 소집하여 가나안의 진입을 염탐한다.
지휘관에는 에브라임지파의 여호수아와 유다지파의 갈렙이 있다.
열두 명의 지휘관중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하고 비관적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비어있었던 것으로 또는 반기고 비워 주리라 생각하였던 것 같다.
전쟁은 두려운 것이다.
마음이 앞서면 과정과 결과를 소홀히 한다.
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곡하고 집구석 난리 났다.
목적의 공유에서 유일신앙과 유일민족의 자존심에 걸맞은 진중한 것이 없다.
하나님은 진노하여 비관적 지휘관을 응징하고 사십년 동안 광야에서 방황하다 죽을 것이라고 벌을 내렸다.
결국은 인간의 능력과 의지의 선택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왔으니 주변국의 이목으로 창피하여 돌아갈 수는 없고 인내하여 힘을 기르는 수밖에 없다.
모세의 반대에도 시도된 첫 번째 가나안 공격에서 실패한다.
하나님의 허락이 없으면 무엇도 안 된다.
유대의 속성이다.
알지 못하고 행한 잘못은 제례에 따라 제사지내면 야곱의 백성이나 타국인도 사함을 받을 것이다.
구스의 여인에서 다민족의 이집트 탈출이다.
사백 삼십년 동안 이웃이었으면 웬만큼은 섞였다.
안식일에 나무하였다고 돌로 쳐 죽였다.
예수께서 안식일에 사람구하는 일을 멈출 수 없다고 하였다.
그리스도가 우려하고 바꾸려하였던 무자비한 유대율법의 권위이다.
구약과 율법은 권위와 지배를 우선하여 인륜과 긍휼이 부족하다.
가나안의 꿈과 광야의 현실에 실망한 민심이반을 대변한 고라의 반란이 진압되었다.
애굽 탈출 시 약속하였던 가나안 진입 실패로 광야의 민심이 모세와 아론의 지도력에 불만이 있었던 것이다.
성경에는 반란군 이백오십 명과 처자를 스올(어둠)에 빠지게 하였다고 하였다.
모세는 주동자 몇 명의 처벌을 기도한다.
고라의 자손은 번창하였다.
통치의 우여곡절을 신앙의 시각으로 쓰고 있다.
백성이 고라와 무리의 처벌을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자 열병으로 벌하여 일만 사천칠백 명이 죽었다.
하나님의 권세에 가나안으로 가기 전 남는 것 없을 것 같다.
열두 지팡이 말씀은 모세와 아론의 지배력을 확인하고 있다.
절대권력 이다.
17장 13절 백성들이 성막에 접근하면 누구라도 살아남지 못한다는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그럴 만도 하다.
아론은 이방신의 우상 금송아지의 벌을 범하고 대제사장이다.
레위지파의 권세를 편애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예수께서 레위지파 이었으면 십자가의 길이 있었을까 하는 의심도 든다.
성막의 관리에서 권위를 우선하여 레위지파 이외는 따르라 하는 것은 종교의 주체 백성과 격리하고 있다.
현대의 시각으로 친근함이 없다.
절대복종 즉 지식의 부조함으로 인한 순종의 시대이다.
유교의 부뚜막 문화와 칠거지악이 없어진지 많아야 백여 년의 시간이다.
BC 1600~1400년의 문화와 역사이다.
집안에 큰일이 있으면 초상집 문상을 가지 않는 사례가 있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의와 영의 이해와 다르다.
의와 영은 인간의 세속적 관계와 무관한 것으로 율법과 차원이 다른 것이다.
모세의 누이 마리암이 가데스에서 죽었다.
또 물이 없다고 불평불만이다.
모세와 아론이 모든 것을 준비해야 한다.
거칠은 광야의 생존이 어린아이 같다.
모든 것을 모세를 통해서 주시니 빌붙어 젖 달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지팡이가 아니라 바위에 명령하면 물이 나올 것이라고 하였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쳐서 물이 나오게 하였다.
백성들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지팡이로 자신의 능력을 과시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노하여 “너는 가나안이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물만 나오면 되었지 승질 까다롭기는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그전에 주시지 들을 것 먹을 것 다 잡수고 그제야 알려 주시니 열 받아 말 안 듣고 지팡이로 친 것이다.
어차피 모세의 세월로 안 되니 구실 붙여 놓은 것이다.
기데스에서 가나안으로 향하는 길목에 야곱의 형 에서가 세운 에돔이 있다.
에서의 자손이 강한 힘으로 이동경로를 허락하지 않아 돌아간다.
피하여 돌아간 것을 유추하면 에돔의 세력이 강하였던지 야곱의 자손이 큰아버지의 에서의 자손을 배려했던지 이다
기름 붓지 않으면 강하면 피하고 약하면 약탈하는 시대이다.
아모리 사람들은 길을 내주었으나 약속을 어기자 전쟁으로 저항하다 주권을 빼앗긴다.
22장 4절 “무리의 소가 밭의 풀을 뜯어먹는 것 같이 우리의 사방에 있는 것도 뜯어먹을 것이다.” 라고 되어있다.
초지는 공유할 수 있으나 일상과 권력의 침해를 걱정하는 것이다.
유추하면 아모리에서 초지가 아니라 생필품과 식량 등 약탈이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아모리족이 약했다는 것이다.
주변국에 퍼졌다.
예나 지금이나 민심을 잃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점술가 발람과 모압왕 발락의 자료와 성경이 다르다.
성경에는 아모리왕 시혼이 이미 모압을 제압하였다고 하고 있으며 통과를 거절하였다고 되어있다.
발람의 자료에는 아모리 왕과 약속된 길 외에는 침범하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어겨 전쟁이 발생하였고 야곱의 백성에
패해 지배되었다고 하였다.
이것이 두려워 모압왕 발락이 예언자 발람에게 저주를 사주한 것으로 되어있다.
실제로 모압 땅을 점령하였고 거주하였으면 국가의 규모를 갖추었으므로 더 이상 광야가 아니다.
21장 아모리족의 기록에서 야곱의 백성이 잘못하여 뒤가 절인 것이 있었던 것이다.
묘하게 긴장된다.
22장에서 발람과 시므온의 족장 아들과 미디안의 공주와 관계에서 2대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의 창춤을
살펴봐야 할 것 같다.
신약의 인물들이 쓰여 지고 있다.
모압왕 발락과 예언자 발람의 역사를 유다서에서 공부하였다.
신약 유다서에 써놓은 내용이다.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과 고라의 패역을 상기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압 땅 싯담에 들어오자 왕 발락이 발람에게 삯을 주고 저주를 부탁한다.
이스라엘사람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기위해 아모리 왕국을 통과하는데 사전에 약속된 길로 가지 않았다.
다른 길로 가니 아모리 사람들이 공격하였으나 패하여 살육 당한다.
이것을 알고 있었던 발락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두려워 망하라고 저주를 부탁한 것이다.
발람은 야훼께 물어보는데 처음에 거절하자 두 번 더 물어본다.
세 번째 허락한다.
왜 허락했는지 알 수 없다.
하나님 마음이다.
나귀를 타고 저주하러 가는데 좁은 골목에서 가운데가 아니라 벽에 찰싹 붙어가는 것이다.
야훼가 보낸 사자가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가 나서 나귀를 때리니 길이 열리며 사자가 나타나 말하기를 “비켜가지 않았으면 죽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돌아가려 하였으나 나쁜 천사가 하던 짓 하라고 꼬드겼다.
천사의 이미지 훼손이 상당하다.
가긴 갔으나 하나님이 두려워 발락의 요청을 무시하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한다.
삯의 값을 못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괜찮다.
삯 받고 찜찜한 점술가 발람은 값을 하기로 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꾀어 음행과 우상숭배를 하게하였다.
진노한 하나님은 열병으로 벌한다.
삯을 위한 어그러진 길이다.
사제 비느하스의 창춤으로 음란한 짓을 하던 시므온 지파의 족장 아들 시므리와 미디안족속의 수르왕의 딸 고스비를
현장에서 찔러죽였다.
이후 열병은 사라졌다.
점술가 발람은 자신의 운명을 점지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보복으로 죽었다.
고라는 탈출기 광야에서 모세의 영향력이 의심받자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다 무리 250명과 생매장 당한다.
권세에 도전하였고 야훼를 배신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에서 번성하였다.]
음행의 벌 열병으로 죽은 자가 이만 사천이었다.
가데스를 떠나 호르산에서 아론이 죽고 아들 엘르아살이 대제사장을 승계한다.
가나안에 근접하며 주변의 견제가 상당하다.
네게브 사막의 아랏의 왕이 주제파악 못하고 까불다 점령당한다.
유대의 세력에 무지한 시원치 않은 왕이 건들었다 꼴사납게 되었다.
이곳을 호르마 라고 하였다.
고구려의 장수왕이 아차산에 내려와 백제의 수도 풍납토성을 정벌하였다.
둘레 4km의 규모였다.
인류의 유전적 분포와 역사의 시간은 동서양이 비슷하다고 본다.
기원전 14세기의 성읍이라고 해야 작은 촌락 정도이었을 것이다.
멸하였다는 단어에서 현대의 시각과 정도의 차이가 매우 크다.
부족사회에서 진입 또는 합류하였다는 표현이 현대적이다.
에둠의 길이 막히자 또다시 불평이다.
이번에는 뱀으로 벌하신다.
여차저차 하여 호르마를 떠나 사해 남쪽 오봇에 이른다.
모압의 남쪽이다.
암몬은 강하다고 하였다.
암몬은 모압의 북쪽으로 가나안의 경로가 아니다.
출애굽의 경로는 가나안의 거인 네피림의 후손을 피해 사해 동쪽 모압으로 우회하는 경로이다.
시나이반도에서 가까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거주하였고 묻혀있는 사해 서쪽 브엘셀바와 헤브론 지역을 피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모압왕 발락이 건재하다.
모압에 거주하였다는 것은 초지의 공유이었을 것이다.
발락은 발람에게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이 맞은편에 거주하고 있으며 우리보다 강하다고 하였다.
드디어 발람이 등장한다.
여기에서 모압왕 발락의 사신으로 미디안의 장로들이 개입하고 있다.
23장 10절 발람은 야곱의 백성은 이스라엘의 사분의 일이라고 하였다.
나머지는 어디 있는지 궁금하다.
“야곱의 백성은 모압을 점령하고 셋(아담과 하와의 셋째)의 자손을 지배할 것이다.”
“아멜렉은 강하나 멸망하고 마디안의 겐족은 앗 수르에 지배될 것이다.” 라고 예언하였다.
성경의 주체 아브라함 계보의 조상 셋을 거론하며 “자손이 지배될 것이다.” 하였다.
이유를 잘 모르겠고 셋은 대리인이라는 해석이 있다고 한다.
발람은 하나님의 충실한 종인데 후에 왜 배신했는지 삯의 문제만은 아닌 것 같다.
구브로섬에서 배를 타고 와서 앗 수르와 에벨을 괴롭힌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그럴만한 세력이 없다.
바빌로니아는 그쪽이 아니고 로마를 칭한다면 작은 섬이다.
모압에 진입한 야곱의 백성은 진영을 재편성한다.
이때 이십 세 이상 된 장정의 수가 육십만 천칠백 삼십 명이었다.
시내 광야에서 최초 실시한 인원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 계수에 들지 못했다.
세월이 많이 흐른 것이다.
슬로브핫 딸들은 아버지는 성막에 충실하였고 불평하여 고라의 반란에 동하지 않았는데 기업의 분배에서 딸이라고
배제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항의한다.
하나님에 의해 아들이 없을 경우 딸에게 상속하는 법이 정해진다.
지식에 의한 변화는 필연이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계시와 절차에 따라 모세의 후계자가 되었다.
번제의 절차는 빼놓지 않고 챙긴다.
유월절은 첫째 달 14일이며 초실절은 추수하는 칠 주의 첫 주이고 칠칠절은 마지막 주이다.
7월1일은 나팔절이고 10일은 속죄일이고 15일은 장막절이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번제를 지내는 날이다.
장막절(초막절) 재물의 가축수가 거창하다.
서원은 전적으로 남자의 권위이며 하나님의 따뜻한 배려라는 설명은 남성우월주의이다.
이러한 문화는 육체적 힘의 생물학적 지배도 있을 것이나 흙과 갈비대의 학습이라는 생각이다.
세상 많이 변했다.
모세가 군대를 동원하여 미디안을 공격한다.
원수라고 하는데 설명이 부족하다.
우상숭배는 이스라엘 말고 주변국 모두의 문제이다.
음행의 시작은 모압 여인들 이었다.
모세를 장인과 아내를 공격한 악인으로 만들고 있다.
발람의 저주는 모압왕 발락의 사주였고 어찌되었든 하나님의 허락과 천사의 꼬드김이 있었다.
출애굽에서 최대의 미스테리이다.
야곱의 백성은 사해 동쪽의 비옥한 초지에 성전을 짓고 정착하자고 하였다.
갈르앗과 바산의 아모리 족을 정벌하였으니 정착할 땅이 마련된 것이다.
모세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가나안을 고집한다.
출애굽의 마무리 여정이 거의 약탈자 수준이다.
길르앗에 거처를 마련하고 가나안 정벌을 계획한다.
도피성이 특이하다.
인륜을 중시했다는 것이다.
미디안의 살육하고는 다르다.
앞서 여성의 상속권을 제정하였다고 하였다.
이스라엘은 열두지파의 영역으로 경계를 이루고 있다.
여성이 상속받아서 다른 지파의 남자와 혼인하면 분할된 지파의 재산이 여성의 상속분으로 인해 다른 지파의 기업이 되므로 분할의 목적을 훼손하게 된다는 문제제기이다.
경계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해가 어렵다.
모세의 답은 다른 지파 남자와 혼인하지 말라는 것이다.
간단하다.
모세의 군대는 요단강을 사이에 두고 여리고성 맞은편 진을 쳤다.
구약의 전계가 피의 살육전이 될 것 같아 두려움이 있다.
의도치 않게 레위기를 건너 뛰었다.
누가 우슬초로 문설주에 피 발랐나 보다.
2) 깃딤.
마가와 바나바의 고향 구보로 섬이다.
3) 나실인.
스스로 하나님께 헌신하겠다고 약속하고 정해진 규칙을 통해 신앙을 얻는 사람들이다.
삼손과 사무엘과 세례자 요한을 거론하는 것으로 보아 대단한 종교적 위치이다.
4) 아낙과 아히만.
아낙은 거인족으로 알려진 네피림 종족의 후손이고 아히만과 세새와 달매는 속한 부족으로 헤브론에 거주하였다.
헤브론은 유다지파에 정복되었으며 도피성이 된다.
2025.6.30.일.
5 신명기.
1) 본문.
가데스에서 열두지파의 지휘관을 선별하여 가나안을 염탐하였다고 하였다.
에스골은 포도농사가 잘되는 비옥한 땅이었다.
가데스는 오봇의 남쪽이고 에돔의 서쪽 변방이다.
염탐의 비관적 정보에 실망한 야곱의 백성은 신광야에서 가나안 진입을 포기하고 진로를 변경한다.
방향을 돌려 홍해 길을 따라 광야로 진입하라 하였다.
사해 남쪽 오붓을 지나 사해 동쪽 모압으로 우회하여 진입하는 것이다.
출애굽 백성의 용기에 실망한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살아서 가나안에 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2차 전열정비에서 갈렙과 여호수아 빼고는 계수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에서의 에돔은 동족이라고 하였고 모압과 암몬은 롯의 자손에게 주었다고 하였다.
따지려는 것은 아니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만 세상을 맡긴 것이 아니었다.
선택을 잘못한 롯의 자손이 오히려 번창하였다.
유대사회가 말하는 이방과 그들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는 무엇인지 아리송하다.
불구하고 하나님의 배려가 있었다는 것이다.
야곱의 백성은 노역과 광야의 시험으로 고난에 있고 이방에서 우상을 섬기는 에서와 롯의 백성은 호의호식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되어 있다.
출애굽에서 가나안 진입의 요충지 요르단강 동쪽 헤스본과 바산의 점령은 중요하였다.
아모리족의 왕 시혼과 바산왕 옥이 경로에 거주하다 아작 난다.
과정에서 싯딤의 바알브올 사건이 터진다.
하나님의 진노로 열병이 돌아 이만 사천 명이 죽는다.
미디안에 책임을 지웠다.
열병의 단초가 된 발락과 발람의 모사와 음행한 모압 여인들의 원한은 미디안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었다.
모압은 지척의 원수였고 미디안은 출애굽의 경로 에돔을 뒤돌아 지나가야 하는 지리적 위치에 있다.
출애굽의 경로에서 비켜주지 않았는데 무장하고 전쟁하러 가는 사람들에게 길을 내어줄리 만무하다.
미디안 사람들이 가축을 몰고 모압의 초지에 왔다가 봉변당했다는 가설은 가능하다.
이 대목의 원한과 증오는 산수가 안 된다.
후에 아모리족속은 바빌로니아 제국의 일원이 된다.
사사시대에 미디안은 모세의 장인이 속한 겐족과 달리 이스라엘을 괴롭힌다.
씨를 말렸다고 하였는데 버젓하다.
오래 두려고 말린듯하다.
야곱의 백성이 요르단강 동쪽 길르앗과 바산을 점령하고 광야의 안정기에 접어든다.
애굽의 노역에서 구하는 이적의 사건과 광야의 고난에서 헤스본과 압복강 주변에 정착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른 것이다.
안정되고 배부르니 가나안에 들어가지 말고 점령한 땅에서 살자는 백성이 있었다.
출애굽의 목적은 가나안에 있다.
가나안 진입준비가 완료되었다.
모세는 자신의 주도로 가나안 진입을 하나님께 간청하나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가데스의 우물사건으로 거절한다.
느보산에 올라 바라보다 세월이 간다.
군사력이 부족하였다는 자료가 있다.
모세는 야곱의 백성에게 불신이 많았다.
얼마나 따르지 않았으면 시도 때도 없이 율법을 강조하고 우상숭배를 경고하고 있다.
이방신과 우상숭배로 인해 이스라엘이 멸망할 것이라는 부정적 예언을 하고 있다.
물이 없다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돼먹지 않은 소리해대니 그럴만하다.
광야에 대로는 없다.
율법을 어기면 대에 걸쳐 벌 받는 죄의 연좌제도 있다.
의도하지 않은 중 죄자를 격리하는 일종의 보호소 격의 도피성은 요단강 동쪽정착에서 시작하였다.
베셀과 길르앗 라몬과 골란에 있었다.
정착하여 체제 즉 행정의 질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5장 32절 좌로나 우로 치우치지 말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도를 지키라고 하였다.
냉전적 좌우논리로 죄짓는 분들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잘못하면 연좌제로 삼사 대가 망한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살던 곳이고 무덤이 있는 가나안의 토착민을 원수처럼 대적하고 있다.
들짐승의 굶주린 피가 아니라도 최소한 고춧가루는 되는 조상들의 이웃이다.
화평과 용서와 사랑의 씨가 없다.
바울의 회개를 이끌어 하나님의 세계를 공유하려는 이방전도의 목적 예수의 가르침과 다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과 다르다.
현세의 시각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7장 16절 네게 넘기는 민족을 긍휼하지 말고 멸하여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였다.
바알과 아세라와 몰록과 레판 등 이단만 몰아내면 되지 사람까지 미워하는 것은 참 종교의 의와 영과 도가 아니다.
에돔과 모압과 암몬은 건들지 말라고 하시면서 정작 가나안의 이스라엘 백성을 미워하시는 이유가 궁금하다.
개인적 원한은 아닐 것이다.
반항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사분의 일로 어찌할지 걱정이다.
그러면서도 급하게 하지 말고 조금씩 쫓아내어 들짐승의 반격에 대비하라 하였다.
세월가면 섞이는 것이 문화이고 역사이다.
그냥 씨와 피로 섞이면 될 것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이다.
매사 불평불만이고 금송아지 만들고 걸핏하면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 안 듣는 야곱의 백성을 딱하게 걱정하신다.
마음의 할례를 행하고 목을 뻣뻣하게 하지 말라고 하셨다.
얼마나 말을 안 듣고 속 섞였으면 잔소리처럼 입에 달고 있다.
애굽의 노역장에서 감독관을 죽이고 미디안의 나그네 생활을 상기하며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에게 떡과 옷을 주라하며
나의 기억으로 구약에서 처음으로 선의 긍휼을 말하였다.
성전이 헌물과 십일조로 고아와 과부를 배려한다는 말씀이 구름이 갈라져 광명이 비치듯 눈물겹다.
맨 날 싸우고 죽이는 줄 알았다.
세속에서 일상을 공유하여 살 것이나 성전에서 하나님의 가르침 외에 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안식일에 하루만이라도 경건 하라는 것이다.
성전은 탐욕적 인습과 경쟁과 다툼의 인간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레위인은 기업과 상속이 없다고 하였다.
성전을 관리하며 십일조와 헌물로 하나님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는 것이다.
십이분의 일이면 관리인이 너무 많다는 생각이다.
일 없이 사는 것은 재미없는 생이다.
가축의 태에서 나오는 흠이 없는 첫배는 반드시 제물로 하여 성전에서 나누어 먹으라 하였다.
몰록을 믿는 자들이 가난아기를 불살라 제물로 받치는 것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이단의 신을 섬기는 자는 돌로 쳐 죽이고 성읍은 사람과 가축을 불문하고 생명의 씨를 말려 죽이고 불살라 하나님께
드리고 폐허를 만들어라 하였다.
살인한 놈의 형벌보다 무섭고 섬뜩하다.
번제의 제물에도 있었던 잘못된 것이다.
선의 가르침보다 죄의 저주와 가혹한 형벌의 학습이 많다.
긍정보다 부정의 환경이다.
먹는 것의 죄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고기로 먹을 수 있는 것은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하는 짐승이다.
낙타와 토끼와 사반은 새김질을 하나 굽이 갈라지지 않아 먹으면 안 된다.
토끼는 위가 하나라 되새김을 하지 않으나 주둥이로 오물오물 하는 모습이 되새김과 비슷하다는 이유이다.
사반은 사막의 바위틈에 사는 바위 너구리라고 한다.
돼지는 굽이 갈라졌으나 되새김 안하니 못 먹는다.
큰일 났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물고기는 못 먹는다.
갑각류와 오징어, 문어, 주꾸미, 해삼. 멍게, 낙지, 꼴뚜기 등이다.
새도 육식조의 맹금류와 학과 황새종류와 박쥐, 타조 등 땅에 기어 다니는 날개달린 조류는 못 먹는다.
닭과 오리와 거위가 포함된다.
이짝도 큰일이다.
타흐마스는 올빼미, 당아는 펠리컨, 올응은 왜가리, 노자는 가마우지, 대승은 물떼새나 오디새라고 한다.
먹는 것의 죄로 지구에 천당 갈 인간 없다.
사람에 의해 도살되지 않은 죽은 짐승은 먹지 말고 객에게 주거나 팔라고 하였다.
모세오경은 유대의 율법이다.
시험문제 까다롭게 하여 절반 지키고 살았으면 따질 것 없이 성인이다.
염소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는 말씀이 몇 차례 나오는데 이해하기 어렵다.
일곱째 해에 형제의 빛을 면제해 주라고 하였다.
희년의 환원은 칠년이 일곱 번 돌아오는 오십년 째 해이다.
상속의 분할로 머리 터지는 현세에 할 수 있다면 좋은 것이다.
종의 규범을 적시하고 있다.
종이 굴레를 벗고 자유인이 될 때 빈손으로 보내지 말라고 하였다.
인륜에서 성서의 책임이 보인다.
재판은 굽게 하지 말며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뇌물을 받지 말라고 하였다.
인간은 악의 소굴에 있는 죄인이다.
성전이 백성의 죄를 판단하고 죽일 권한이 있다.
모세가 실질적 광야의 왕이었다.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고 하면서 많이 두려고 애굽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하였다.
이해의 벽에서 노역하던 국가성(병기창) 생각이 난다.
가나안 정벌을 코앞에 두고 진을 정비하고 아모리족 땅 헤스본과 바산을 전쟁으로 점령하였다.
미디안 원정도 있었다.
이스라엘은 주변의 침략을 많이 받은 민족이다.
따지면 힘든데 따질 것이 많다.
왕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하였다.
유다의 므낫세왕이나 북이스라엘의 아합왕은 하나님이 아니라 이방신과 우상을 숭배하고 선지자를 박해하였다.
므낫세와 아합의 우상숭배는 맞으나 선지자의 신앙적 시각으로 폄하하였다는 자료가 있다.
선지자도 피가 있는 사람이다.
출애굽 당시에 가나안에 왕이 있었는지 성서에 거론되지 않아 공동체의 형태가 궁금하다.
요단강 동쪽 헤스본의 아모리족왕 시혼과 바산왕 옥을 알고 있다.
당시 블레셋도 왕이라는 표현이 없다.
하나님께서 레위인의 몫을 알뜰하게 챙긴다.
부득이 이사를 할 경우 지역의 성전에 종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정한 땅의 경계로 다투지 말라하였다.
인류의 역사는 영토의 경계적 다툼이다.
전쟁터에 나가는 자는 두고 온 것을 생각하지 말고 먼저 화평을 구하고 성문을 열면 조공의 관계로 하고 싸워 이기면
남자는 다 죽이라고 하였다.
씨가 문제이다.
포로로 잡아온 여인을 아내로 맞이할 경우 기쁨이 다할 때 종으로 팔지 못하고 내보내라고 하였다.
배려하는 것처럼 보이나 갈 곳 없는 사람을 내치는 비인간적 행위이다.
아이를 못 낳으면 내치는 칠거지악과 같다.
친정은 출가외인이었다.
성경을 읽으며 분노해도 되는지 안타까움이 있다.
21장 15~17절 집안의 상속에서 사랑의 정도를 따지지 말고 장자를 인정하라 하였다.
이스마엘과 에서의 시대가 바뀌고 있다.
정말이지 놀랄 노자 이다.
웃을 일이 아니다.
부모에게 불효하는 자를 부모가 장로회에 고발하면 돌로 쳐 죽인다.
어느 부모가 제 자식 허물을 시장 통의 배우로 내세워 돌에 맞아 죽게 할지 의문이나 아무튼 있다.
성의 자유와 상업시대에 적용할 수 없는 율법의 죄가 많다.
길 잃은 형제의 가축은 보호하여 주인에게 돌려주고 알은 취하라 하였다.
혼합이 좋은 것인데 무얼 하든 두 가지를 섞지 말라고 하였다.
요사이는 짜짬뽕이고 오불백 이다.
총회의 규정에서 모압과 암몬사람은 발람의 저주로 영원히 참여할 수 없다.
에돔은 형제이고 야곱의 식솔을 받아준 애굽은 미워하지 말고 삼대 후의 자손은 참여할 수 있다.
하나님의 믿음을 철저하게 씨의 인연과 관계의 선악으로 경계를 설정하고 있다.
바울의 이방전도가 율법으로 어려웠던 이유이다.
형제에게 이자를 받지 말고 남의 밭에 들어가 배불리 먹어도 되나 들고 나오면 안 된다.
형제를 유인하여 팔면 안 된다고 하였다.
애굽으로 팔려온 요셉의 과거이다.
가난한 자에게 돈을 꾸어주고 전당물을 잡으면 저녁에 돌려주라고 하였다.
꾸어줄 수 있으면 담보물을 잡지 말라는 애기이다.
품삯은 해지기전에 주어야 한다.
객과 고아와 과부의 배려는 나그네의 어려웠던 기억이다.
추수할 때 곡식과 열매를 남겨두라는 것은 애굽에서 가난한 종 생활의 경험이다.
태형은 사십대를 넘을 수 없게 되어있으며 넘지 않게 하기위해 삼십구에서 멈춘다고 한다.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는 것이 있다.
형이 죽으면 아우가 집안의 대를 위하여 형수와 동침하는 율법이다.
이를 거부하면 장로 앞에서 고하고 아우의 신을 벗기고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이다.
유다의 장남 엘이 죽자 둘째 오난을 형의 아내 다말과 동침하게 하여 형의 씨를 남기라고 한다.
오난이 거부하자 죽였다고 하였다.
신 벗김 당한 것이다.
유다의 계보는 곡절이 있는 며느리와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 베레스와 세라이다.
다윗과 예수께서 유다지파라고 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괴롭힌 아멜렉을 기억하고 천하에서 지우라고 하였다.
아멜렉은 유대의 악한 이웃이었다.
땅의 생산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십일조를 지키라 하였다.
이혼한 여인의 재혼할 수 있으며 재혼한 여인과 전남편의 재결합은 안 된다.
혼인하면 군대에 보내지 말고 일 년을 한가하게 집에 있으며 아내를 즐겁게 해야 한다.
남편이 다른 남자와 싸울 때 부인이 끼어들어 남자의 음낭을 잡으면 손목을 자르라고 하였다.
잡힌 놈이 머저리이다.
전쟁터의 진영에서 볼일보고 어떻게 하라는 것도 있다.
모세는 실올 하나를 빠트리지 않는 꼼꼼한 사람이다.
장인이 십보라와 두 아들을 데리고 광야에 찾아와 백부장 천부장의 체계를 조언한 이유가 있었다.
모든 것을 자신이 해야 성이 차는 것이다.
맡길 것은 맡겨야 한다.
축구는 감독이 아니라 선수가 하는 것이다.
27장에서 가나안의 진입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심산은 축복하여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 서고 에발산은 저주하여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볼론과 단과 납달리를 세우라고 하였다.
선과 악의 분별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한다.
에발산에 큰 돌을 세워 율법을 기록하고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올리라하였다.
그리심산에서 축복을 어찌하라는 말씀이 없다.
구약오경에 선의 축복은 마르고 저주의 형벌은 넘친다.
목이 뻣뻣하여 말들 안 들었다는 것이다.
여호수아는 여리고성을 점령하고 그리심산으로 이동하여 모세의 명을 따른다.
두 산 사이에 아브라함이 갈대아의 우르를 떠나 하란을 거쳐 가나안에 최초 진입한 세겜이 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귀향할 때 머무르며 히위족속 하몰의 아들들에게 땅을 사고 장막을 치고 제단을 쌓았다.
하물의 아들 추장 세겜에게 외동딸 다나가 몹쓸 짓 당하고 시므온과 레위가 칼로 복수한다.
토착민의 보복이 두려워 서둘러 떠난 곳이다.
야곱의 기업(땅)이 있었다.
무엇보다 요셉이 자신의 유골을 세겜에 안장해 달라고 유언하였다고 한다.
출애굽 시 요셉의 유골을 챙겨서 왔다.
애굽에서 죽은 야곱도 가나안 땅에 묻혔다.
애굽을 탈출한 야곱의 백성에 의해 땅에서 쫓겨난 가나안 백성의 용서를 구하고 하나님의 기업으로 같이하면 화평한
복이 있을 것이다,
발람의 말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사분의 일이라고 하였다.
가나안 사람들도 야곱의 백성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데 수단이 필요 했다는 것이다.
은근슬쩍 밀어놓고 자리가 되니 함께하자고 수작부리고 있다.
진즉에 같아 살자고 하지 굿판에 춤추고 낮 바닥 가려워 씨를 인정하는 행색이다.
모세가 120세에 요단강을 넘지 못하고 죽었다.
죽기 전까지도 가나안의 이방신과 우상숭배를 우려하고 있다.
야곱의 백성들도 가나안의 신에 현혹되어 멸망할 것이라고 한다.
내가 살아있을 때도 뻣뻣한 목으로 하나님을 거역하였는데 죽으면 오죽하겠냐는 것이다.
너희는 가나안에서 부패하여 악을 행하는 잘못으로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여 재앙을 당할 것이다.
광야에서 얼마나 애를 먹이고 걱정하게 하였으면 죽으면서 염려와 걱정이 태산이다.
모세는 유대의 율법에서 그리스도교를 위한 바울의 고난처럼 이방신과 우상숭배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신앙을 지키고 전파하기 위해 고난의 길을 택한 것 같다.
애굽에서 탈출한 야곱의 백성 외에 천지가 이방신이고 우상숭배이다.
창조주의 치열한 강조에서 인간세상이 하나님의 만물이 아니었다.
구약 오경의 대부분은 율법(번제)을 강조하여 이방신과 우상숭배를 척결하는 것이다.
당시 하나님의 가르침이 무엇이었는지 번제의 형식으로 영적세계를 이해하기 어렵다.
환경의 지배에서 보이는 사물적 현상을 우선하여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예를 찾고 있다는 생각이다.
그리스도의 보이지 않는 의와 영적세계는 종교의 개념을 바꾸어 놓았다는 이해이다.
종교의 미래는 막연함에서 실체에 다가가는 변화로 바꾸어 질 것이다.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으나 중보자에 가까울 수 있다는 생각이다.
네 형제 중에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를 일으킬 것이다.
나와 같음이라면 역사에 한분밖에 없다.
모세의 시신을 두고 사탄과 천사장이 다툰다.
사탄이 모세의 승천을 방해하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의 무덤이 성지화 될 것을 우려하여 숨겼다.
오경이 마무리 되었다.
2) 도피성.
의도하지 않은 과실성 살인으로 보복의 위험에 있는 백성을 특별한 도시에 모아 재판 때 까지 보호하는 제도이다.
과실로 판정되면 해당 제사장이 죽을 때가지 보호받은 도시에 머물 수 있다.
사람을 죽인 자는 재판 없이 죽여도 된다는 율법이 있다.
3) 유대의 총회.
절기와 예배의 모임이나 특별한 사건을 심리하거나 의견을 결정하는 제도이다.
여호와의 총회는 참석하는 사람을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한다.
2025.7.2일.
6 여호수아.
1) 본문.
여호수아는 요단강가 여리고 맞은편 싯담에 진을 치고 두 명의 염탐꾼을 보낸다.
염탐꾼은 기생 라합의 집에 은신하여 정탐하였다,
여리고왕은 야곱의 백성이 헤스본과 바산을 점령하고 자신들의 목전에서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왕의 개념이 모호하다.
고을의 우두머리 정도라는 생각이다.
왕은 정탐꾼이 기생 라합의 집에 은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경비병을 보냈으나 그들이 이미 성문을 빠져나갔다고
거짓으로 말한다.
라합의 집은 성벽에 붙어있었고 성 밖으로 창문이 있었다.
순진한 여리고의 병사들은 라합의 말을 믿고 성 밖으로 정탐꾼을 추적한다.
정탐꾼은 지붕 위 삼대에 숨어있었다.
여리고의 백성은 강 건너 야곱의 백성이 쳐들어 올 것이라는 현실에 두려워하고 있었다.
라합은 정탐꾼에게 자신과 가족의 안전을 요구한다.
창문에 붉은 줄을 매어두고 가족을 모아 집안에 있으라고 하였다.
창문으로 정탐꾼을 탈출시킨다.
바울의 다메섹 탈출과 같은 방법이다.
하나님의 뜻이라고는 하나 본받으면 안 되는 배신이다.
야곱의 병사는 싯딤을 출발하여 여리고 건너편 요단강가에 진을 친다.
사흘 동안 진을 구축하고 전열을 다듬어 공격을 준비한다.
열두지파의 지휘관을 임명하고 각 진영에 돌을 가져다 상징하라고 하였다.
추수 때라서 요단의 강물은 둑을 채우고 있었다.
언약궤를 앞세운 여호수아의 병사들이 요단강물에 발을 담그니 강물이 상류에 멈추어 마른땅으로 건넌다.
홍해의 기적이 재현되었다.
패할 수 없는 침공이다.
첫째 달 십일 강을 건넌 4만의 병력은 여리고 동쪽 길갈에 진을 친다.
여기서 할례를 행한다.
출애굽에서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은 광야의 1세대는 사십년 고난에서 죽었다.
2세대의 신성함으로 하나님께 약속하는 유대의 의식이다.
여호수아의 시대라는 것이다.
십사일 유월절 행사를 진행하고 가나안의 곡식으로 무교병 만들어 먹었다.
광야의 식량 만나가 사라졌다.
여호수아 앞에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네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땅은 거룩한 것이다.” 하였다.
호렙산에서 모세가 여호와께 들은 말씀이다.
성경의 주역은 계시가 있어야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굳게 닫힌 여리고성이 풍전등화이다.
야곱의 병사는 포위하고 엿 세 동안 성을 돌며 세력을 과시한다.
칠일 째 성벽을 돌며 나팔을 부니 성벽이 무너지고 여리고성이 함락되었다.
전쟁 없이 이겼다는 것이다.
재물은 하나님의 것이니 취하지 말라고 하였다.
칼날로 멸하였다는 것은 하나님의 벌을 앞세워 굴복을 받아냈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곳간은 인간에게 주신 땅의 생산이다.
그것의 십분의 일이 성전의 몫이다.
성과 가운데 것을 불태운 것은 이방신과 우상의 신전을 멸하였다는 것이다.
다시 성을 세우지 말라고 한 것은 이방신을 섬기는 여리고 백성의 추방을 의미한다,
야곱의 백성이 그 땅에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겠다는 것이다.
발람과 가나안 사람들이 야곱의 백성이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모세와 여호수아가 자신들이 가고자하는 땅에 사는 사람들의 정체를 모른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좋은 것이 좋은 것이다.
침종교의 시각에서 잘못된 해석이 많다.
유다지파의 아간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약탈하여 진노하였다.
벧엘 동쪽 벧아원 곁에 있는 아이성을 공략하였으나 무력저항으로 실패한다.
벧엘 동쪽 벧아원 곁에 있는 아이성이다.
노략질의 진노이다.
아간을 처벌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진정되었다.
유인술로 재공격하여 빈 성을 점령하였다.
아이성은 여리고성에서 세겜으로 가는 경로 중간에 있다.
이후는 여호수아의 전승기록과 가나안 땅의 분배이다.
좁은 땅에 왕들이 많기도 하다.
간판 달면 왕이다.
모세의 말씀 중 군대의 양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목축업의 특성상 영토의 개념이 부족하였다는 것이다.
가나안에 방어를 위해 군사체제를 보유한 무리가 없었다고 보아야 한다.
미루어 보면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체제도입이 모세와 야곱의 백성에게 커다란 교훈이 되었다.
성서대로라면 천당 가지 못한 사람 많다.
전리품의 분배는 야곱의 상속과 동일하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땅 딤낫 세라에 거주하였다.
가나안의 지파와 요단강 동쪽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동쪽) 지파의 경계적 우려가 있었다.
요단강 동쪽은 이방이라는 역사적 우려이다.
우려를 의식한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가 돌아가는 길에 자신들의 땅이 아닌 요단강 서편에 제단을 세운다.
가나안 지파가 반발하여 싸움직전에 대제사장 엘르아살의 아들 사제 비느하스를 보내 이유를 묻는다.
말인즉 우리의 후손이 요단강으로 격리되어 하나님의 백성에서 소외될 것이 염려되어 증거를 남겨두었다고 한다.
제단은 출애굽의 증거이지 땅의 징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동의가 빠른 것이 유대의 장점이고 약점이다.
기업(땅)의 경계가 확실하다.
어떻게 경계를 지키며 결속하였는지 이스라엘의 역사가 상당하다.
르우벤과 갓과 므낫세 반지파가 세운제단을 엣 이라고 하였다.
전승으로 멸하였다고 하면서 섞여 사는 이민족의 이방신과 우상숭배를 걱정하고 있다.
하나님의 역사가 갈 길이 멀다.
110세에 여호수아가 죽어 거주지 딤낫 세라에 장사지냈다.
2대 대제사장 엘르아살도 죽어 아들 바알브올의 창춤 비느하스가 3대 대제사장이 된다.
출애굽기의 2세대가 마무리 되었다.
2025.7.3.일.
7 사사기.
1) 본문.
여호수아의 전리품은 실제적 점령이 아니라 종이에 줄긋고 제비뽑기하여 땅 따먹기 한 것이다.
가나안을 멸절하였다면서 유다지파와 시므온지파가 힘을 합하여 가나안에 쳐들어가자고 한다.
사사시대는 여호수아 사후 사울왕까지 3~4백년 이어진 하나님께 불순종한 시대이다.
이스라엘의 사사는 12명이었다.
옷이엘, 에훗, 드보라, 기드온, 입다, 삼손은 대사사이고 삼갈, 돌라 야릴, 입산, 엘론, 압돈은 소사사이다.
드보라는 여성사사이다.
출애굽과 가나안 진입 후 사사가 열두지파를 대표하여 행정, 재판, 군사 등 이스라엘을 이끌었다.
모세의 하나님께서 가나안의 토속적 문화와 종교의 저항으로 혼란한 시대였다.
가나안에 진입한 야곱의 백성들 행적은 여호수아의 전승기록과 다르다.
유다지파 갈렙의 활약 말고는 별무신통이다.
최초의 사사 웃이엘은 갈렘의 조카이고 사위이다.
이겼다고 하는 것도 백성과 문화와 종교의 지배가아니라 고을의 권력을 빼앗는 정도이다.
가나안도 강했다.
대부분은 토착민에 합류하여 정착하였다.
그들의 딸들과 혼인하고 자신의 딸들을 그들에게 주었고 그들의 신을 섬겼다.
세겜에서 여리고, 벧엘, 예루살렘, 브엘세바, 헤브론, 그랄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이웃과 살던 곳이다.
야곱의 백성이나 가나안 백성이나 피가 같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땅에서 가나안 백성을 쫓아내지 않았다.
다만 가나안의 이방신과 우상숭배의 혼란으로 재앙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모세가 그토록 원했던 이방신의 지배도 성공하지 못했다.
사람이 선택하는 역사에 지나치게 하나님의 노역을 요구하고 있다.
사사시대의 종교적 혼란과 이방의 지배가 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왕 구산리사다임 시대의 팔년이다.
시차를 산수하면 가나안 진입과 여호수아의 시대에 유프라테스강 유역에서 커다란 세력이 태동하고 있었다.
동네 싸움하다 큰 놈한테 뒤통수 맞은 것이다.
초대 사사 옷이엘이 이스라엘을 구하고 사십년의 평화를 지키다 죽었다.
성경의 시간이 빠르다.
사사시대의 역사가 기록되고 있다.
이번에는 모압왕 에글론이 암몬과 아멜렉과 연합하여 십팔 년을 지배한다.
자존심의 저항은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에훗이었다.
왕을 유인하여 암살하고 이스라엘 백성과 봉기하여 모압을 요단강 동쪽으로 몰아냈다.
팔십년을 평온하다 사사삼갈 시대에 블레셋과 분쟁에서 소치는 막대기로 수백 명을 죽였다.
막대기가 보통이 아니다.
그 짝이 고대나 시방이나 싸우고 죽이고 시끄럽기는 만찬가지이다.
다음은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자이며 사사드보라 시대이다.
가나안의 왕 야빈은 군대장관 시스라가 지휘하는 철 병거 구백 대로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역사가 문설주 편한 날이 많지 않다.
사사드보라는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러 하나님의 명을 전하고 납달리와 스볼론 자손 만명을 데리고 디볼산으로
가라한다.
야빈의 군대장관을 꼬여 철 병거를 게데스의 기손 강가로 유인할 테니 때를 보아 공격하라는 봉기의 서막이다.
바락은 사사드보라와 동행할 것을 요구한다.
속고 속이는 세상의 두려움이다.
야빈의 군대는 패하였고 지휘관 시스라는 도망치다 미디안의 겐족 헤멜의 장막에 이르러 도움을 청한다.
바락이 시스라를 추격하여 겐족 진영에 이르니 이미 죽어있었다.
겐족이 도우는 척 하다 잠든 사이에 죽인 것이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의 자손이 이스라엘을 도왔다.
야빈은 힘을 잃었다.
40년 평온하다 이번에는 미디안이 칠년을 지배한다.
속국수준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추수하면 빼앗아가는 형세이다.
오죽하면 포도주 틀에 숨어서 추수하였다고 한다.
가축도 빼앗아가 먹을 것이 없어 굶주렸다.
출애굽 시 모세의 공격에 패하여 죽임당하고 노예로 끌려간 원한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의 눈물과 원성이 커지자 하나님의 천사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마디안과 전쟁을 하라고 하였다.
울어야 젖 준다는 말이 여기에서 나온 듯하다.
하나님의 말씀이라 거역하기도 그렇고 승리의 증거를 요구한다.
지면 종족의 씨가 말릴 테니 당연하다.
천사들이 요구를 기적으로 증명하여 설득하였다.
기드온은 집안에 있는 바알과 아세라의 우상과 제단을 이웃이 무서워 밤에 부순다.
모세가 죽을 때 까지도 염려하였던 이방신과 우상숭배의 만연이다.
제단을 철거하자 다음날 주변이 알고 아버지 요아스에게 물어 가디온의 소행이라고 하니 죽이려 하였다.
당시 미디안의 군사 십 수만이 요단강 동편에서 건너와 서편에 진을 치고 있었다.
가드온이 나서니 원한에 사무친 이스라엘 백성 수만이 모여다.
어린시절 움막교회 다니며 개울에서 물 마시는 모습으로 병사를 선별하였다는 설교를 들은 기억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가디온의 미디안족 응징이었다.
최종시험으로 삼백이 선발된다.
말도 안 되는 삼백의 소수로 십만이 넘는 미디안을 이겨 다시는 괴롭히지 못하게 아작 냈다.
기록에 므낫세와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의 자손들이 도왔다고 되어있다.
전쟁 말미에 에브라임지파가 왜 사전에 부르지 않았냐고 화를 낸다.
맏물포도 보다 끝물 포도가 났다고 설득하였다고 한다.
주변의 이스라엘백성이 연합하여 싸웠다는 것이다.
미디안 잔당 추적 중 숙곳의 두령에게 도움을 청하나 미디안의 횡포가 두려워 거절한다.
잔당을 요단강 동쪽으로 몰아내고 돌아오는 길에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의 원한을 갚았다.
씨와 피가 같아도 다르고 요단강 동서의 경계적 우려도 사실이다.
가드온은 사사가 되었다.
미디안과 전쟁에서 노획한 재물로 에봇(제사장의 예복)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의 원성이 있었다.
아내가 많아 자녀가 칠십 명이었다고 한다.
가드온이 죽자 또 다시 바알을 섬긴다.
어찌되었든 못 말리는 백성이다.
세겜족 첩의 소생 아비멜렉이 스스로 왕이라 칭하고 바알브릿 신전의 재물로 세력을 부풀린다.
바알브릿은 얼핏 세겜 지역의 토속신앙과 모세의 율법이 혼합된 지엽적 신앙으로 보여 진다.
권세에 눈멀어 자신의 형제 중 피신한 막내아들 요담을 제외하고 모두 죽인다.
죽은 가디온에게 하나님의 복은 없었다.
요담은 그리심산에서 저주를 내려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한다.
아비멜렉은 요담의 저주로 전투 중 여인이 던진 멧돌에 맞아 창피하게 죽는다.
요담의 거취는 기록에 없다.
건너 뛰어 입방정 때문에 자신의 딸을 번제의 제물로 바친 사사(판관)입다 이다.
암몬이 길르앗의 이스라엘 백성을 열여덟 해 지배하고 요단강을 넘어 가나안을 괴롭힌다.
길르앗에서 암몬과 이스라엘이 대적하여 진영을 구축하고 일촉즉발의 대치에 있다.
누군가 나서야 하는데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던 모양이다.
이것저것 불량한 일 저지르고 곤궁하여 힘들면 하나님을 찾는 것이 유대사회의 버릇이다.
입다가 날 설 차례이다.
므낫세의 자손으로 길르앗의 아들이다.
당시 토호의 이름을 지역의 지명으로 사용한 듯하다.
본처의 지식이 아닌 서자이다.
힘이 장사였으나 본처자식들 등살에 돕으로 떠난다.
건달의 끼는 시정잡배들이 알아본다.
초한지의 주인공 한고조 유방이 있다.
깡패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어 어찌되었든 무력이 생긴 것이다.
장로들이 찾아와 도와줄 것을 부탁하나 과거사가 있다.
지도자로 모시겠다는 언약으로 나선다.
출애굽에서 헤스본의 시혼과 바산의 옥을 정벌할 때 하나님께서 암몬을 건들지 말라고 하여 그렇게 하였다.
원한이 없는데 침략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화평을 설득한다.
좋게 말로 하자고 하나 꼭지 돌면 뵈는 것이 없다.
쳐들어가기 전 하나님께 도와달라고 하며 약속을 한다.
이기고 돌아올 때 나의 집에서 맨 처음 나오는 사람을 번제의 재물로 바치겠다고 하였다.
입방정이 세다.
입다가 이겼다.
집에 도착하니 무남독녀 외동딸이 제일먼저 나와 아버지를 반겼다.
재물로 받쳐야 한다.
이겨서 집구석 아작 나고 있다.
딸이 사실을 알고 두 달의 시간을 달라고 한다.
번제는 있었고 이후 이스라엘 처녀들이 나흘 동안 애도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승리 후 에브라임지파와 길르앗의 다툼이 있다.
가디온의 미디안전쟁에서 시비하더니 길르앗과 암몬의 전쟁도 시비이다.
부르지 않았다는 이유이다.
입다는 도움을 청하였는데 응하지 않았다고 대적하여 전쟁이 발생하였고 길르앗이 이겼다.
열두지파의 경계적 공생을 우려하였는데 전쟁이 있었다.
신약에서 에브라임지파의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입다는 사사로 육년을 지내다 죽었다.
사사의 자손이 보통으로 육칠십 이다.
다처제의 죄를 포기한 듯하다.
삼손이 등장한다.
블레셋의 이방적 표현이 지리적으로 의아했는데 사십년간 지배당한 원한을 이해하게 되었다.
남자는 죽이고 여자를 노예로 삼는 족보의 시대에 유대의 역사가 씨 자랑할 이유가 없는 동네북이다.
사마리아인을 따로 할 이유가 없다.
천사가 나타나 삼손의 탄생을 어머니에게 계시하니 아버지 마노아에게 알린다.
태어나면서 나실인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겠다고 맹세한 최초의 인간이다.
천사는 블레셋에서 이스라엘을 구할 것이라고 하였다.
모세도 천사의 예시가 없었다.
구약에서 천사가 나타나면 양이나 염소부터 잡는다.
절대처럼 인식 되어있는 제사의 인습이다.
삼손이 부모의 반대에도 씨의 경계를 넘어 딤나의 블레셋 여자와 혼인을 청한다.
삼손만 알고 있는 하나님의 계시에 의한 계략이 숨어있다.
부모와 함께 딤나에 내려가 포도원에서 사자를 맨손으로 죽인다.
힘자랑하는 것이다.
다시 본 사자의 주검에서 벌떼가 꿀을 모으고 있었고 그것을 먹고 부모에게 가져다 드렸다.
혼인이 있었고 삼십 명의 블레셋 청년이 참석하였다.
혼례에 수수께끼를 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삼손은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것이 나왔다.” 고 문제를 냈다.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내기로 걸었다.
사자를 죽이고 꿀을 먹은 일화이다.
삼십 명의 블레셋 청년들은 알 수가 없어 삼손의 아내를 협박하여 삼손에게 알아내어 알려달라고 한다.
아내 될 딤나의 여인이 조르자 사자의 일화를 알려준다,
혼례 마지막 날 칠일 째 청년들이 “꿀보다 단 것이 없고 사자보다 강한 것은 없다.” 고 하였다.
아내가 청년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삼손이 일갈하며 “내암송아지로 밭 갈지 않았으면 몰랐을 것이다.“ 하였다.
블레셋의 성읍 아스글론에서 삼십 명을 죽이고 노략한 물품을 청년들에게 주었다.
아내를 위협한 청년들을 죽이지 죄 없는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
소설이 잘 안 된다.
하나님의 계략이라고 하니 갈 때까지 가보는 것이 답이다.
삼손이 아내에게 분노하여 첫날밤 없이 본가로 갔다.
얼마 후 처가에 가서 아내를 찾으니 장인이 동네청년에게 주었으니 여동생을 주겠다고 한다.
뒤죽박죽이다.
무엇이 무엇인지 산수 없이 꼬투리의 앞뒤가 흩어지고 있다.
어찌되었든 삼손의 흔들기는 정당화 되었다.
여우 삼백 마리를 잡아 두 마리 씩 꼬리를 묶고 홰를 달아 불을 붙여 수확 철 들판의 곡식과 수목을 불태웠다.
죽일 수 있으면 그냥 죽이지 여차저차하고 우여곡절 없는 소설의 결론을 기대할 수 없다.
농사를 망친 블레셋 사람들이 누구의 소행이냐고 물으니 삼손이 장인이 아내를 동네청년에게 주어서 원통하여 불장난
하였다고 하였다.
말을 듣고 동네사람들이 장인과 아내 될 번한 여인을 불살라 죽였다.
그랬다고 또 꼬투리 잡아서 명색뿐인 처가를 불사른 놈들을 쳐 죽이고 에담의 동굴에 숨었다.
삼손은 단지파인데 블레셋 사람들이 유다자파에 진을 치고 삼손을 내놓으라고 지배자로 협박하였다.
유다사람들이 숨어있는 삼손에게 와서 너 때문에 우리가 죽게 되었다고 잡혀달라고 사정한다.
지배된 자의 예속이다.
삼손은 당신들은 개입하지 말고 나를 묵어서 그들에게 넘기라고 한다.
하나님의 계략이다.
블레셋사람들에게 끌려 동행한 삼손이 결박을 불에 탄 밧줄처럼 끊고 나귀의 턱뼈로 천명을 죽였다.
그곳이 라맛 레히이다.
일당 수천의 전투에서 이겼으나 지친사경에서 물을 달라고 하니 하나님께서 음폭한 곳을 터트려 물이 솟게 하였다.
이곳을 엔학고레라 불렀다는 전설이다.
세월 지나 들릴라 라는 여인에게 정신 줄 빼앗겨 위기가 닥친다.
불손한 여인이 블레셋사람들에게 매수되어 엄청난 힘을 제압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딤나의 여인처럼 조른다.
세 번 거짓으로 알려준다.
첫 번째는 새로 만든 활줄 일곱이고 두 번째는 새로 만든 밧줄이고 세 번째는 나의 머리털 일곱 가닥을 베틀의 날실로
엉켜 따면 된다고 하였다.
블레셋의 두령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들릴라의 신호로 잡으려 했으나 실패한다.
세 번의 교훈에도 네 번째 머리털 일곱 가닥을 자르면 된다고 가르쳐 주어 하나님께서 삼손의 능력을 빼앗았다.
잡혀 눈을 빼앗기고 놋줄로 묶여 커다란 멧돌을 돌리는 지옥에 떨어진다.
줄거리는 나실인이 하면 안되는 음행의 타락을 교훈하는 것으로 보인다.
머리카락은 자란다.
블레셋사람들은 짐승으로 전락한 삼손을 조롱하고 재미삼아 시험한다.
재앙의 날 궁전의 커다란 기둥사이에 묶어놓고 너의 힘을 발휘에 보라고 조롱하였다.
하나님께 저들과 함께 죽을 수 있도록 하여 달라고 기도한다.
회개하면 용서하는 것이 신앙이다.
힘이 회복되었다.
궁전이 무너져 블레셋사람들이 다 죽었다.
삼손은 사사로 이십년을 살았다.
베냐민 지파 사람들이 레위인 첩을 강간하여 죽음에 이르는 사건을 신약 로마서 11장에서 공부한 기억이 있다.
하나님께서 베냐민지파를 버리지 않았다고 하였다.
본서에 자세하게 기록되었다.
베냐민은 야곱이 사랑한 라헬의 친자식 이고 시기하는 형들에게 애굽으로 팔려가 총리가 된 요셉의 친동생이다.
야곱이 바닷아람에서 돌아오는 길에 에브랏(베들레헴) 근처에서 산고가 심해 베냐민 출산 후 어머니 라헬이 죽는다.
미가라는 사람과 단지파의 자손이 등장하고 레위인 제사장이 드라빔과 신상을 숭배하였다는 대목이 있다.
라헬이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훔쳤으므로 난산하여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는 의심이 있었다.
거주지를 찾던 단지파 사람들이 미가의 집에 이르러 에붓과 드라빔과 신상을 약탈하고 레위인 제사장을 데리고 갔다.
3대 대제사장 비느하스 시대에 가나안에 진입한 야곱의 백성이 정착하지 못하고 혼란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베냐민지파 사람들이 레위인 첩을 강간하여 죽음에 이르는 사건이 있었다.
이일로 내전이 발생하여 이스라엘연합에 베냐민 지파가 진다.
연합의 보복으로 베냐민 지파 여인들을 대부분 죽이고 딸을 주지 않기로 결의한다.
베냐민지파가 대가 끊어져 사라질 위기에서 딸을 주지 않기로 한 결정을 후회한다.
궁여지책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은 길르앗사람들의 책임을 추궁하여 처녀 사백 명을 강제로 데려다 베냐민 남자에게
혼인시킨다.
그래도 모자라 명절에 실로에서 여인들이 춤추는데 여기서 선착순으로 붙들어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하였다는 죄이다.
여성의 예속과 속박이 말이 아니다.
실로는 이스라엘의 첫 번째 수도이며 성소였다.
비느하스와 삼손의 시대는 수백 년 차이가 있다.
2) 밀로.
흙이나 돌로 쌓아 지은 성벽의 일부로 세겜의 성소로 추정하고 있다.
3) 드라빔.
고대 히브리에서 가정의 안정을 기원하고 점치는 작은 조각상이다.
2025.7.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