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초월적 존제 5. 본문
1 롯기.
1) 본문.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베들레헴에서 모압 땅으로 이주한다.
남편이 죽고 두 아들은 성년이 되어 오르바와 롯이라는 모압여인 하고 결혼한다.
요단강과 할례의 경계가 완화되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십년 후 자식 없이 두 아들이 죽는다.
남자의 절대주도로 이루어지는 사회에서 세여인의 힘든 삶이다.
여성이 혼인하여 남편이 죽으면 시동생과 사는 풍습을 알 수 있다.
내가 늙어서 태중에 너희 남편 될 아들은 없다.
설령 있다하여도 그 세월을 어찌 감당하겠느냐 한다.
시어머니 나오미는 다시 베들레헴 이주를 결정하고 두 며느리에게 모압에 남아 다른남자와 살기를 바란다.
모세의 율법에도 사별과 이혼한 여인의 재혼을 허락하고 있다.
오르바는 눈물의 이별로 남고 롯은 시어머니 나오미와 베들레헴으로 이주한다.
롯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
고향사람들의 관심이 있다.
나를 나오미라 부르지 말고 마라라 부르라 하였다.
베들레헴에 살 때 엘리멜렉의 기업이 있었으면 그나마 나았을 텐데 팔았던 모양이다.
떠날 때 풍족하였으나 다시 올 때는 빈손이라고 하였다.
이삭 주워 연명하는 어려움이다.
땅을 팔고 모압으로 이주하였다면 희년의 무르기를 기대할 수 있다.
본서는 며느리 모압여인 롯의 정체이다.
젊고 외모도 나쁘지 않아 사내들 눈에 띄는 여인으로 짐작할 수 있다.
우연하게 들어선 이삭 줍는 땅주인의 관심이 있다.
지역의 유지로 나오미(마라)의 죽은 남편 친척 보아스이다.
롯에게 어머니에게 정성한 소식을 알고 있다고 하며 다른 땅에 가지 말고 여기서 이삭을 주우라고 한다.
보아스의 배려로 넉넉하게 이삭을 주워 어머니에게 가져간다.
롯에게 하루의 이야기를 듣고 좋은 사람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였다.
우리의 기업을 무를 자 중 하나라고 하는 것이 모압으로 떠날 때 무엇이든 재산을 맡긴 친척이다.
마라의 작전은 며느리 롯를 보아스에게 시집보내는 것이다.
상황이 나쁘지 않았다는 결론이다.
임을 보았으면 뽕을 따야 일이 벌어진다.
보아스는 롯과 결혼하고 기업을 찾아 무르기를 요청하여 제 값으로 사서 후대의 기업으로 하였다.
두 집안의 기업이 합쳐진 것이다.
모세의 시내산과 여호수아의 여리고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으며 신을 벗는 장면이 나온다.
무르기를 할 때 돌려줄 사람이 계약의 징표로 장로 등 증인들 앞에서 신을 벗는 풍습이 있었다.
아이가 태어나고 마라는 손주의 양육자가 되었다,
이름은 오벳이고 유다와 며느리 다말에게서 태어난 쌍둥이의 아우 베레스의 자손으로 다윗의 아버지 이새의 아버지이다.
이스라엘 왕가의 족보가 등장하였다.
2025.7.5.일.
2 사무엘 상.
1) 본문.
에브라임지파 엘가나의 가정이야기로 시작한다.
아내가 브닌나와 한나 둘이다.
브니나에게 자식이 있으나 한나는 없다.
후대의 소생으로 아내의 지위가 달라지는 세상이 있었다.
엘가나는 자식을 낳은 브니나 보다 한나를 사랑하여 배려하였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와 하갈의 다툼과 야곱의 레아와 라헬이 생각난다.
한 승질하였던 브닌나는 질투하여 없는 자식팔자가 서글픈 한나를 괴롭힌다.
없는 자식 달라고 실로에 올라가 신을 벗고 소리내지 않고 마음을 다하여 정성으로 기도한다.
자식을 주시면 자식의 평생을 하나님께 서원하여 머리를 깍지 않게 하겠다고 약속한다.
대제사장 사사엘리가 하나님 앞에서 우물쭈물하는 한나의 모습을 보고 술 취하여 불손하다고 책망한다.
마음의 진심으로 기도하였다고 하니 엘리는 기도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기쁨을 주었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중요한일이나 하나님의 계시를 받을 때 신을 벗어야 일이 된다.
지금도 그러는지는 모른다.
한나의 정성이 통하여 임신하고 아들을 출산한다.
사무엘이다.
엘가나는 실로의 회당에 갓 난 사무엘을 데리고 올라가 예배드리자고 하였으나 한나는 하나님과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젖 뗀 후 영원히 하나님께 봉헌하겠다고 하였다.
실로에 맡겨진 어린사무엘은 세마포로 만든 에봇(예복)을 입고 하나님을 섬긴다.
엘리의 아들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의 행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행패 부릴 정도로 좋지 않았다.
자식 교육이 잘못되어 죄스러운 여한이 사무엘에게 옮겨갔다.
엘리가 한나 부부에게 친아들을 대신하여 사무엘을 자신의 후사로 주기를 청한다.
사무엘은 사사이며 제사장인 엘리에게 맡겨진다.
자식의 행실이 불량한 선대의 복잡한 산수가 작용하고 있다.
한나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사무엘을 대신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았다.
실로의 대제사장 엘리에게 맡겨진 사무엘의 봉헌이 복이 되었다.
호사다마 라고 홉니와 비느하스의 악행이 치열하여 온 성읍에 돌아 쓸 만한 곳이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너의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하며 두 자식을 한날에 죽일 것이라고 하였다.
기도하여 자신의 수명을 끊지 마시고 대제사장 직분으로 족하게 하여 달라고 한다.
엘리는 구십팔 세에 의자에서 굴러 목이 부러져 죽는다.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세 번 부르나 듣지 못하고 엘리가 부른 것으로 알고 그에게로 간다.
엘리는 사무엘을 부르지 않았다.
사무엘이 신앙으로 하나님의 부름을 듣지 못하고 있었다.
세 번째 엘리는 하나님께서 사무엘을 부르는 것을 알았다.
너의 처소로 가서 또다시 부르시면 “여호와여 말씀 하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 엘리의 집안에 내릴 형벌을 말씀하시고 어떠한 사함의 방법도 소용없는 정해진 결과라고 하였다.
좋지 않은 일이라서 엘리에게 알리기를 번민하였으나 물음에 들은 것을 애기한다.
이미 하나님의 벌을 알았으므로 하나님께서 선하신대로 하실 것이라고 하였다.
사무엘은 성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이르는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된다.
삼손에게 당한 블레셋이 쳐들어와 아벡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은 대적하여 에벤에셀에 진을 쳤다.
엘리의 두 아들도 참전하고 있다.
첫 번째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하고 언약궤를 전장으로 옮겨와 하나님의 거사로 병사의 사기를 북 돋는다.
블레셋도 만만하지 않아 과거 우리가 저들을 노예로 하였듯이 패하면 노예가 된다고 배수진으로 맞서 대적하였다.
언약궤를 빼앗기는 이스라엘의 대패이다.
언약궤를 빼앗겨다는 전달에 구십팔 세의 엘리가 의자에서 넘어져 목이 부러져 죽고 두 아들도 전투에서 죽었다.
남편의 소식을 접한 임신 중인 엘리의 둘째 비느하스의 아내가 난산으로 아들을 낳고 죽었다.
아이의 이름이 이가봇이다.
대제사장이고 사사인 엘리의 큰 잘못이 기록에 없는데 커다란 벌을 받았다.
사사가 된지 사십년 째의 해이다.
블레셋사람들은 빼앗은 언약궤를 아스돗으로 가져가 자신들이 섬기는 다곤의 신상 옆에 두었다.
성전이라면 이방신의 신물이 절대로 들어올 수 없는 해괴망측한 짓인데 다곤의 신전은 괜찮았던 모양이다.
어찌되었든 다음날 다곤의 신상이 언약궤 앞에 엎드러져 꼴이 우습게 되어있었다.
두 번째 날에는 목과 손이 부러져 문지방에 있고 몸통만 언약궤 앞에 널 부러져 있었다.
그뿐 아니다.
하나님께서 블레셋사람들을 종기로 이적하여 괴롭혔다.
놀라 칠 개월 만에 금으로 제물을 만들어 속건제를 올리고 이스라엘 벧세메스로 보낸다.
언약궤는 기럇여아림의 아비나담 집으로 옮겨졌다.
이후 전쟁이야기가 없는 것으로 모종의 협상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좋은 것이 좋은 것으로 싸우다 이견을 좁혀 물러서는 지혜는 필요한 것이다.
역사의 기록은 우리 편을 우선한다.
성경의 저자 선지자는 하나님 편이다.
사무엘은 바알과 아세라 등 이방신을 쫓아내고 하나님을 전도하여 평온을 유지하였다.
아멜렉과 블레셋이 골칫거리이다.
사무엘이 미스바에 있을 때 블레셋사람들이 또 다시 간보러 진을 친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무찔러 미스바와 센 사이에 금을 긋고 돌을 세워 그 곳을 에벤에셀이라고 하였다.
이전에는 부족의 경계가 산 넘어 구름 넘어 어디쯤 이었을 것이다.
블레셋이 지배하였던 이스라엘 성읍은 회복되었고 이후 한동안 블레셋의 시험은 없었다.
이스라엘 전역을 돌며 하나님을 설교하고 전파하여 목적한 뜻을 이루었다.
라마의 집으로 돌아와 제단을 쌓고 늙어 사사를 물려 줄 때 까지 안주하였다.
사무엘의 장자 요엘과 차자 아비야라가 브엘세바의 사사가 되었다.
권세와 뇌물로 송사를 굽게 하여 좋은 평판이 아니었다.
백성의 원성이 커지가 장로들이 사무엘을 찾아가 당신은 늙고 자식들은 올바르지 못하니 다른 무리들처럼 왕을 세워
나라를 다스리게 하자고 제안한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백성들의 나라로 하자는 것이다.
인류의 역사가 씨족을 넘어 부족시대에서 왕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당연히 사무엘은 반대하였고 하나님께 여쭈어 기도하니 “목이 뻣뻣한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너를 버려 왕으로 섬기지
않으려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종교의 절대시대가 인간중심 사회로 변화하고 있다.
광야의 시대나 사사의 시대에서 어려울 때 울며불며 찾고 배부르면 이방신과 우상을 기웃거려 애간장을 태웠다.
전쟁터에 언약궤를 앞세워 하나님의 사기로 진멸을 노래하다 바벨탑의 피 돌았다고 자기들끼리 해보겠다는 것이다.
다른 나라처럼 왕정하자는 제안에서 폐쇄적 유일신앙의 율법과 사회가 인류의 저변과 문명의 대세를 수용하고 있다.
나 홀로는 어렵다는 것이다.
창조주께서 시간과 학습의 진리를 모르실리 없다.
부처님 손바닥에 있는 지식의 진화에서 신은 언제나 백성의 편이다.
권세를 엄하게 경고하고 합당한 제도를 전제하여 백성의 말을 따르라 한다.
성전의 유일성에서 왕정이 시작되고 있다.
문명적 대세와 민족의 대외적 거취와 백성의 안정에서 권세의 탐욕을 어떻게 저울추에 올려놓을지 궁금하다.
열두지파의 통치에서 경계의 합의를 어떻게 할지 그것도 걱정이다.
합의냐 힘이냐 그것이 문제이다.
사무엘의 제안이 확실하지 않으나 사람의 왕을 제비뽑기로 할 것인지 힘으로 할 것인지 덕으로 할 것이지 결론 없이
장로들이 각자의 성읍으로 돌아갔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신임을 얻고 있는 베냐민 사람 기스에게 준수하고 키가 큰 아들 사울이 있다.
아버지의 말씀으로 잃어버린 암나귀를 찾아 사환을 데리고 나선다.
사무엘이 머무는 숩 땅에 이르러 걱정할 아버지를 생각하여 돌아가려는데 사환이 가까운 곳에 존경받는 하나님의 사제가
있으니 여쭈어 보자고 하였다.
사무엘은 사울이 찾아올 것을 하나님의 계시로 알고 있었다.
"그를 지도자로 하여 블레셋에서 나의 백성을 구하게 될 것이다." 라는 계시이다.
이제 하나님이아니라 왕을 세워 따르겠다는데 여전히 나의 백성이다.
인류는 현세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다.
결국 제도도 힘도 덕도 아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을 결정하였다.
민족을 미래를 좌우하는 제비뽑기도 정치가 개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죄를 논할 때 세 사람의 증언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살인자를 제비뽑기로 지목하면 선과 죄와 벌이 난리난다.
형식이 그렇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저울추에 올려놓고 견주면 힘 있는 지파의 다툼이 발생할 우려가 있어 약한 베냐민지파를 선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아니면 잘못된 선택을 쉽게 바꾸려는 지배적 계략을 의심할 수 있다.
베냐민지파는 3대 비느하스 시대에 레위인 여인에게 몹쓸 짓 하여 자손의 허리가 부러져 족속의 명백이 위태로웠다.
사무엘이 사울과 사환을 인도하여 객실로 들어가니 삼십 명이 있었고 상석에 자리하였다.
준비한 넓적다리와 붙은 것이 씨를 먹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다음날 사울의 머리에 기름을 붓고 대제사장 엘리에게 말하였듯이 하나님의 계시를 알려준다.
"여기서 길을 나서 베냐민의 경계에 이르러 라헬의 묘실 곁에 있는 두 사람이 너의 암나귀를 찾아 줄 것이다."
"나아가 다볼의 상수리나무에 이르면 하나님을 예배하러 벧엘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께 드릴 제물에서 떡 두 덩이를 줄 것이다."
백성의 기업을 지키고 융성하여 배고프지 않는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후 하나님의 산에서 블레셋사람들의 영문으로 성읍에 들어가면 선지자 무리가 악기를 불며 내려올 것이다.'
'여호와의 영이 클 것이며 그로 인하여 백성의 신임이 있을 것이다.'
블레셋과 전쟁에서 승리의 암시이다.
사울이 돌아와 숙부 넬의 물음에 암나귀 찾은 것 말고 말하지 않았다.
대사에 입이 가벼우면 될 일도 안 된다.
사무엘이 백성들 앞에서 각 지파의 유력인사 천 명씩 불러 왕을 뽑았다.
하나님에 의해 정해진 결과의 절차이다.
사울이 왕이 되었다.
그때도 권세에 줄서는 자와 시기하는 자가 있었다.
신앙을 우선하는 성경의 기록과 사물적 현상을 우선하는 역사의 기록은 다를 것이다.
초월적 존재는 현세의 지식과 문화와 문명의 시각으로 신앙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나름의 노력이다.
창조에서 만물의 변화는 필연이고 인류는 수용해야 한다.
선지자의 기록에 의한 성경도 개서가 있었다.
성전의 운영도 레위지파의 절대에서 변화하였다.
번제와 제사는 사라졌다.
사사입다에게 쫓겨난 암몬왕 나하스가 사울을 시험한다.
길리앗의 야베스에 진을 치고 루우벤과 갓지파 사람들에게 죽음 아니면 오른쪽 눈을 달라고 잔인한 위협을 한다.
오른쪽 눈의 이유는 전투에서 방패를 왼손에 들어야 하므로 자연히 왼쪽 눈을 가리게 되고 오른쪽 눈으로 만 상황을 판단하고 싸워야 하는데 그걸 빼버리면 싸우지 못한다는 짐승적 발상이다.
굴하여 섬김으로 화평을 요구하지만 짐승 나하스는 포위하여 공격태세를 취했다.
야베스의 장로들은 칠일의 시간을 주면 이스라엘에 전령을 보내 구원자가 없으면 항복하겠다고 조건을 제시한다.
죽음 아니면 눈알을 빼겠다는 전쟁을 이성적으로 분별 있게 한다.
일촉즉발의 전쟁 중에 전열정비 기간을 주었다는 대목의 이해가 어려우나 사울왕에게 도움을 청한다.
막 시작한 이스라엘의 왕정과 사울의 통치력을 시험하는 듯하다.
목동으로 양치며 일상을 소진하던 사울왕은 백성이 우는 이유를 물어 알았다고 하였다.
정황을 살펴보면 왕정이 상주하여 통치하는 체제가 이루어졌는지 모호하다.
어찌되었든 이스라엘왕의 책임감으로 분연하여 나선다.
소를 토막 내 각 지역에 보내고 따르지 않으면 너희들의 가축을 그리하겠다고 강력한 통치력을 발휘한다.
전쟁의 참여를 독려하고 회피하는 자는 왕정의 명에 불응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적 명령에서 인간사회의 사물적 책임이 따르는 명령체계의 가동이다.
이적의 처벌과 제사의 사함이아니라 명령의 복종과 불복종의 상과 벌이다.
이스라엘의 존재를 하나님의 영에서 보이는 사물적 형태로 실증하는 왕정 즉 국가체제의 전환점이다.
명령전달의 방법은 당시의 문화를 이해해야 한다.
가나안 땅은 작다.
유대사회의 장점 빠른 동의와 협력이 이루어진다.
눈여겨 볼 점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분리하여 적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유다를 이웃의 무리 또는 부족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이해이다.
사울의 군대가 요단강을 넘어 길르앗으로 진군한다.
실제 전투가 있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암몬왕 나하스의 군대가 흩어져 사라졌다.
암몬이 쳐들어오자 전쟁과 섬김으로 장로회의 이견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기에서 선택의 과정에 있었던 이견의 감정적 원한풀이가 국가의 미래는 아니다.
섬김을 주장한 자들을 처벌하자고 하나 사울왕이 반대한다.
백성의 평안을 우선하는 하나님의 뜻과 같다.
지도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여리고성 함락의 전초기지 길갈에 집결하여 승리를 축복하며 이스라엘 왕정의 기틀을 다진다.
사울의 시대이다.
사무엘의 고별이 백성의 사랑으로 시작하여 선지자의 무소유와 굽지 않은 판결을 선처하고 있다.
가고 오는 것이 생명의 시간이다.
모세와 아론의 출애굽과 사사시대 주변의 침략과 지배를 교훈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을 세웠다고 하였다.
유대사회는 언제든 죄를 응징하여 멸절의 벌을 행하는 하나님과 성전이 우선한다는 경고와 부탁이다.
왕정의 시대를 예지하고 하나님의 믿음과 성전의 미래를 염려하는 것이다.
“원수들의 손에서 건져 내소서 그리하면 주를 섬기겠나이다.” 앞뒤 없는 말이다.
하나님을 배신하고 이방신과 우상의 혼란으로 어려울 때 울고불며 구해달라고 할 때가 시도 때도 없었다.
목이 굳은 배신의 염치를 회개하여 주면 어찌하겠다는 불성실이 아니라 섬기고 달라고 하라는 것이다.
암몬의 전쟁이 끝나자 수천의 병력을 남기고 각기 지파의 진영으로 돌아갔다.
상주하는 체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블레셋 수비대를 공격한다.
사전에 계획된 공격이 아닌 국지적 전투였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해 수만의 병력으로 벧아원에 진을 쳤다.
벧아원은 여리고성과 세겜의 중간에 있는 아이성 근처이다.
준비 없는 요나단의 공격으로 중과부적의 동요가 심했다.
숨고 요단강 건너 피했다고 하였다.
사울은 여리고성 함락의 전초기지 요단강 서쪽 길갈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 병력이 사울을 따라 길갈로 향하여 집결하고 있었다.
과정에서 사무엘 즉 성전하고 사울의 왕정하고 하나님의 계시가 일치하지 않았다.
사무엘이 칠일 후 온다는 시간을 지체하자 병사들이 사기를 잃고 흔들려 흩어진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계시 없이 전쟁은 안 되는 것이다.
사태의 진정에 다급한 사울왕이 성막의 율법을 어기고 대제사장 없이 번제를 지낸다.
근간에 도착한 사무엘이 하나님의 영을 따르지 않은 왕을 책망하고 대노하여 돌아갔다.
전쟁의 목전에서 우려하였던 성전과 왕정의 갈등을 표현하고 있다.
병사들은 흩어지고 육백이 남았다.
철공이 없었다고 하는 것은 블레셋사람들이 지배할 때 이스라엘이 칼과 창으로 무장하지 못하게 대장간을 부수었다는
주도면밀한 조치이다.
이스라엘의 잠재력을 평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삽과 괭이가 무디어 지면 블레셋에 가서 사왔다고 하였다.
민족과 국가의 방어적 개념에서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차이가 극명한 대목이다.
사울의 군대는 지휘관 몇 말고는 삽과 괭이로 무장하고 있다.
거의 백병전 수준이다.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전사였다.
악조건에서 독자적으로 블레셋 진영을 급습하여 혼란에 빠트린다.
성서에 사울의 진영에 제사장 아히야가 에봇을 입고 있었다고 하였다.
사울왕의 잘못을 해소하는 과정에서 제사장 아히야를 내세워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있다는 믿음의 징표이다.
전쟁의 승리를 예감할 수 있다.
요나단의 급습으로 혼란에 빠진 블레셋 진영의 히브리사람들이 이스라엘 쪽에 합류하여 싸웠다.
사울의 본대가 언약궤를 앞세워 가세하고 숨어있고 피신한 백성들이 승리에 숟가락 올렸다.
블레셋은 경계 밖으로 쫓겨났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있다.
전장의 병사들에게 금식을 요구하였다는 것이다.
종교적 이유 말고는 없다.
사울이 제사의 절차를 어긴 잘못을 뉘우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전장에서 시무엘이 사울의 잘못을 비난하자 병사들이 흩어졌다고 하였다.
출애굽에서 하나님의 배려는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보호이다.
종교의 대의를 이해할 수 없는 정황이다.
전장에서 지친 요나단의 병사들이 사울의 금식지시를 모르고 소와 양을 잡아먹었다.
사울은 하나님의 율법어겼다는 이유로 전쟁의 영웅 장자 요나단을 죽이려 하였다.
병사들의 만류로 죽음을 면한다.
요나단의 실수와 처벌은 왕정이 하나님의 뜻에 예속되어있다는 강조이다.
사울이 회개를 시도하였다는 것이다.
요나단의 완악함이 일으킨 전쟁에서 요나단의 승리이다.
차후 사울왕은 전쟁에 대비하여 힘센 장정을 규합하고 병세를 확장한다.
여세를 몰아 주변의 악 아멜렉을 정벌하였다.
사무엘을 통한 하나님의 계시는 아멜렉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 하였는데 왕 아각을 살려 포로로 데려왔고 실한 양과
소를 끌고 와 번제의 제물로 받쳤다.
전쟁에서 무고한 백성을 해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암몬과의 전쟁에서 굴하여 섬기자는 장로들을 해치지 않았다.
하나님의 벌을 각오하고 사울왕의 인간성이 마음에 든다.
사무엘이 이번에도 격노한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떠났다고 하였다.
다음왕이 정해진 것이다.
사울이 사무엘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찌어질 때 까지 용서를 구하나 이후 사울왕을 만나지 않는다.
하나님의 선택을 자신이 전달하고 세운 왕과 완전한 결별이다.
종교적 사고가 지배하던 시대에 사울왕의 심리적 압박이 상당하였을 것이다.
일련의 사건으로 사무엘은 사울왕의 견제를 의식하고 있다.
베들레헴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정한 다음왕을 축복해야 하는데 사람의 왕을 의식하여 제사를 빌미로 여행을 떠난다.
유다지파 보아스와 모압여인 롯의 자손 이새의 아들 다윗(BC 1040~ 930년)이다.
다윗은 이새의 일곱 번째 막내아들이며 양치기이다.
사울에게 악령이 들었다고 하는 것이 종교적 소외와 전쟁의 상처와 세월을 어쩔 수 없어 병이든 것이다.
수금으로 진정되었다고 하는 것이 자아적 내면의 의지가 있었다.
신하들의 주선으로 다윗이 사울의 부름을 받고 왕가와 광야의 초지를 오가며 권세의 학습에 있다.
양치기 소년 다윗은 광야의 외로움을 수금으로 위로하며 경지에 이를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전설 다윗시대의 시작이다.
블레셋사람들이 과거를 망각하고 또 쳐들어왔다.
젖과 꿀의 땅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다툼에서 우뚝 설수 없는 민족적 운명이다.
거인 골리앗이 어마어마한 절벽의 형상으로 전장을 압도한다.
일대일로 붙어서 승부를 가리자는 무소불위의 위세에 짓눌려 나서는 자가 없다.
사울왕은 골리앗을 이기는 자에게 부와 명예와 공주를 주겠다고 공언하였다.
다윗의 아버지 이새가 전장에 나가있는 세 아들을 걱정하여 다윗에게 고기와 떡을 주어 심부름 시킨다.
전장에서 골리앗을 보고 자신이 나서 싸우겠다고 한다.
부와 명예와 공주의 약속을 확인한다.
양치기 할 때 사자와 곰이 양을 물어갈 때 짐승을 이기고 양을 구하였다고 하며 왕을 설득한다.
세형들이 완악한 성격의 객기라고 일축하나 허락을 받는다.
병사들 앞에서 내세운 장수가 지며는 사기의 막대한 피해가 발생한다.
거인 골리앗과 상대할 수 있는 무엇이 있었다는 것이다.
골리앗에 대응하는 무기는 매끄러운 돌 다섯 개와 물매에 막대기가 전부이다.
결과는 전설대로 골리앗은 다윗의 물매를 떠난 돌에 이마를 맞아 정신을 잃었고 자신의 칼에 목이 잘린다.
전쟁은 싱겁게 끝났다.
후세 사람들은 다윗은 은신과 잠입에 뛰어났다고 하였다.
사울의 신임으로 천부장이 된다.
궁에 상주하며 전사요나단과 단짝으로 네 것 내 것이 없는 사이가 되었다.
사울의 승리인지 다윗의 승리인지 역사의 몫이 화근이 되었다.
전쟁의 귀환에서 백성들이 사울의 공적은 천이며 다윗의 공적은 만이라고 다윗을 높이 평가하였다.
이후에도 여타의 전투에서 능력을 발휘한다.
왕이 권세의 속성으로 불편하여 정적으로 경계한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움의 승리로 약속한 사울의 둘째 딸 미갈과 혼인한다.
블레셋과 싸움에 선봉으로 내새워 죽이려는 계략이라고 하나 결과적으로 이스라엘 역사에 이로운 것이다.
역사의 인물에서 가는 자는 떨어지고 오는 자는 올라선다.
사울이 다윗의 능력을 시기하여 죽이려 하자 아들 요나단이 도와 화를 면하게 하고 딸 미갈은 탈출을 도와 라마의
사무엘에게 간다.
과정을 말하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다.
도망친 다윗이 사무엘과 있다는 것을 알게된 왕이 병사를 보낸다.
피하여 친구 요나단에게 가서 왜 왕이 나를 죽이려는지 이유를 알수 없다고 한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 한 것은 왕정의 적자를 위한 것이고 하나님께서 요나단을 통해 살리신 것은 하나님의 적자를
위한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적자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이어진다.
남은 것은 다윗과 요나단의 우정이다.
이것도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다.
요나단의 도움으로 사울에게 도망쳐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에 간다.
남루한 다윗의 행색에 놀란 제사장을 왕의 명령과 소년의 성결로 위장하여 진설병과 덤으로 골리앗의 칼을 얻는다.
수단이 뛰어났다는 것이다.
놉을 떠나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가 있는 곳으로 간다.
골리앗과 전쟁의 원한이 있는데 왜 갔는지는 불명하다.
관리들은 다윗의 업적으로 역할을 기대하나 왕은 다윗의 능력을 두려워하여 견제한다.
미친사람 행색으로 위장하여 미천한 모습으로 이목의 기대를 희석하며 때를 기다린다.
가드왕은 미친 척하는 다윗을 관심 밖으로 내친다.
그곳을 떠나 아둘람 굴에 이르러 형제와 식구들을 만나고 다윗의 능력을 인정하고 권세에 소외된 백성들이 따른다.
가족과 일행이 이동하여 하나님의 적자 다윗이 이방의 모압왕에게 머물기를 청하니 요새에 거처를 마련하여 주었다.
씨와 피보다 났다.
출애굽에서 에돔과 모압과 암몬을 내가 그들에게 넘겨준 땅이므로 건들지 말라고 하였다.
정순한 모압여인 롯은 다윗의 선조이다.
만인의 하나님이시다.
블레셋과 골리앗의 위기에서 이스라엘을 구한 전쟁영웅의 뒷길이 파란만장하다.
사울은 다윗의 명성을 믿고 지혜의 수단에 넘어가 선을 행한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과 식솔을 에돔 출신 도엑을 시켜
위해를 가한다.
사울왕이 흙암의 스올로 빠져들고 있다.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도망쳐 다윗에게 참상을 알린다.
왕정의 시작에서 권세의 원한이 쌓여간다.
블레셋이 또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힌다.
추수 때 이스라엘의 영역 그일라에 넘어와 곡식을 빼앗아 갔다.
입다에게 패하고 사울에게 패하고 다윗에게 패한 블레셋의 거취를 유추하면 권력에 의한 하나의 체제가 아니라 여러
무리로 이루어진 막연한 경계라고 이해할 수 있다.
통제되지 않는 무리의 노략질을 위한 산별적 침략이라는 것이다.
거창한 전쟁의 표현이나 노략질하는 도적떼 소탕이 많다.
사울은 무엇하고 유다의 땅에서 거처가 불명하다는 무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명령으로 나선다.
도적들을 몰아내고 머물러 있으니 사울이 알고 잡으려 병력을 보낸다.
하늘아래 하나밖에 없는 대적의 원수이다.
아비아달이 가져온 에봇을 입고 하나님께 거취를 여쭈어 보니 그일라 사람들을 믿지 말고 떠나라고 한다.
목숨으로 지켜주어도 머무를 곳 없는 딱한 처지이다.
욍의 추적을 피해 광야를 떠돈다.
요나단이 광야의 다윗을 찾아와 위로하며 다음왕은 너이고 그다음 나라는 것을 아버지 사울도 알고 있다고 하였다.
성서에 근거 없는 말씀이 쓰여 있다.
광야의 수풀에 있을 때 십 사람들이 고자질 하여 또 쫓긴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권세에 줄서서 옳고 그름의 앞뒤가 없다.
귀찮은 블레셋사람들이 쳐들어와 추적하던 병력이 대응하기 위해 이동하여 위기를 모면한다.
적이 좋을 때도 있다.
일행이 엔게디 요새에 머문다.
사울은 블레셋을 처리하고 집요하게 추적에 나선다.
평생의 원한이다.
할 일없어 술래잡기 하는 것이다.
왕도 볼일은 보아야 한다.
동굴에 들어가 일을 처리하는데 아뿔싸 다윗일행이 숨어있는 곳이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났다.
다윗은 죽이자는 무리를 진정하고 왕의 겉옷을 잘라 징표하고 보낸다.
사울도 사람으로 관계가 일단은 회복되었다.
다윗이 안정하다는 것은 왕정의 후대에 관한 우여곡절에서 우선은 하나님의 적자로 결정된 것이다.
사무엘이 죽고 자유인이 된 다윗의 일행이 바란 광야로 이동하였다.
사무엘 사후 이스라엘은 그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바란 광야에서 부자 나발의 아내 아비가일을 만난다.
왕비가 될 여인의 사연이 기름 부으면 좋은 놈이고 않으면 나쁜 놈이라는 구색이 안타깝게 절절하다.
나발은 가차 없이 죽이고 아비가일은 현모양처의 여인으로 표현하고 있다.
양고기 타는 냄새가 난다.
다윗의 탈출을 도왔던 사울의 둘째 딸 미갈은 세월을 견디다 다른 남자와 혼인했다고 한 줄로 끝이다.
성경은 선지자들에 의해 쓰였다는 전제에서 사람의 피를 속일 수 없다는 권세의 우선이 많다.
다윗의 아내는 아히노암을 더하여 두 사람이다.
사울이 볼일보다 겉옷을 베이고 정신 차린 줄 알았더니 또다시 추격한다.
광야에 진을 치고 잠든 사이 다윗의 일행이 왕의 침실에 잠입하여 창과 물병을 가지고 나온다.
왕의 호위무사들은 무엇하였는지 은신과 잠입의 대가답다.
죽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다윗은 일행에게 어찌되었든 사울왕은 하나님께서 선택한자이므로 죽일 수 없다고 한다.
친구 요나단의 아버지이기도하고 사울이 죽으면 자신이 왕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었다는 것이다.
아들이고 내 잘못이라는 왕의 입방아를 신뢰할 수 없는 다윗일행은 블레셋의 가드왕 아기스에게 다시 간다.
골리앗과 전쟁의 원한이 있는데 위험하다는 생각이 있으나 도시국가의 형태는 고을마다 왕이 있다.
하나의 통치가 아니라 연합체의 형식에서 각자의 이익을 달리하였다는 것이다.
블레셋사람은 크레데 섬에서 온 족속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셈족이아니라 지중해 섬에서 유래한 함족이라고 한다.
발람의 예언에서 “깃딤(구보로)섬 사람들이 앗 수르와 에벨을 괴롭힐 것이나 멸망당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에벨은 노아의 장남 셈의 증손자 이며 히브리인의 조상이다.
이해가 부족했는데 공부가 되었다.
다윗이 블레셋의 가드왕에게 갔다는 소식에 사울이 추적을 단념한다.
다윗일행은 시글락을 거처로 얻었으나 가드왕의 신임을 위해 하나님의 백성 유다를 공격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가드왕은 다윗이 자기백성을 공격하여 미움을 받았으니 영원히 나에게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을 해친 일인데 소문이 있을 것이라서 왕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다.
하나님의 선택을 괴리에 빠지게 하고 있다.
블레셋연합이 이스라엘공격을 준비한다.
사울은 두려움으로 기도하나 하나님의 응답을 듣지 못한다.
평민으로 위장하고 무당을 찾았으나 과거 하나님을 우선하여 자신들을 처참하게 대했던 사울을 알아보고 회피한다.
오히려 금식으로 몰골이 불상하여 결국 죽은 사무엘을 불러 패망할 것이라는 암시를 받는다.
첫 번째 블레셋과 전쟁에서 왕의 권세로 제사장 사무엘의 권위를 무시한 번제와 골리앗의 영웅 다윗의 배척과 집요한
죽음의 추적으로 민심의 이반이 있었다.
최후의 블레셋 전쟁에서 따르는 백성이 없었다고 본다.
사무엘의 옷자락을 찌어지도록 잡고 사정하여도 하나님의 결정은 요지부동이었다.
종교가 지배하던 시대에 왕정은 성전과 갈등을 이겨내야 하는 문화적 전환의 이해가 필요했던 것이다.
권세에 집착하여 종교적 대세를 간과한 사울의 판단으로 성전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왕의 정신적 압박이 심했다.
구성에서 예지가 부족한 다수에 의한 소수의 박해로 대의를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사울은 최후의 전쟁에서 나 홀로 싸워야 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연합체가 아니었다.
성전의 비협조로 구성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출애굽의 목적 하나님의 백성에서 대의에 부합 하냐는 것이다.
당시의 전쟁은 멸절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나 국지전의 피해정도 이었다.
사울과 요나단이 패하여 죽었어도 이스라엘은 건제하였다.
사울은 왕이 되었어도 양치고 소치는 목동이었다.
이 전쟁에서 가드왕은 다윗의 참전을 희망한다.
도중에 블레셋 두령들의 반대로 돌아서 후일 왕으로 다스릴 자기백성과 친구 요나단에 대적하는 전쟁은 면했다.
글쓴이의 산수가 아니기를 바란다.
돌아오니 시글락이 아멜렉 족속에게 노략질 당하여 불타고 두 아내와 식솔들이 끌려갔다.
하나님께 여쭈어 추격하여 구하고 전리품을 챙겨 돌아온다.
블레셋의 공격으로 패하여 사울과 요나단이 죽었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패하는 동안 식솔을 구하고 전리품을 씨가 같은 백성과 나누고 있었다.
이스라엘 지존의 성립에서 구색이 어색하다.
다윗의 선택에서 하나님의 일관된 정당성의 괴리로 뒤죽박죽이다.
사울과 친구 요나단과 두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나 하나님의 뜻이다.
길르앗사람들이 사울과 세 아들의 주검을 수습하여 장사지내고 칠일을 금식하였다는 것이 최초 이스라엘 왕의 예우가
전부이다.
이후 어떻게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되는지 궁금하다.
2) 다곤.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구약에서 반인반어의 신으로 표현되고 있다.
당연히 이방신이다.
삼손이 무너트린 곳이 가자의 다곤 신전이라고 하는 자료가 있다.
2025.7.8.일.
3 사무엘 하.
1) 본문.
다윗일행은 블레셋에서 돌아와 헤브론에 거주한다.
과거 공격의 피해에도 불구하고 싹싹하게 유다의 왕으로 추대된다.
이스라엘은 아브넬이 주도하여 기브온을 떠나 요단강 동쪽 마하나임으로 옮겨간다.
사울의 넷째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우나 실권자는 숙부아들 아브넬이다.
결국 남북으로 갈라져 왕이 둘이다.
왕권과 성전의 분열이다.
평화의 전제가 아니라 담판형식의 호전적 만남이 있었다.
두 왕국의 장정들이 기브온의 연못을 사이에 두고 대적한다.
사울의 실패에서 경험한 분열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지배하려는 주변의 정세에 대응할 수 없다는 논리의 작용이다.
가나안 좁은 땅에서 알만 한 집안이고 사람들이다
이스라엘 무리는 아브넬이 이끌고 유다의 무리는 요압이 이끌고 있다.
아브넬이 먼저 장정들을 내세워 어느 쪽이 강한지 겨루어 보자고 한다.
양쪽에서 열두 명이 나서 상대의 머리를 잡고 칼로 옆구리를 찌르는 무자비한 결투이다.
서부의 총잡이가 벌이는 룰은 많이 보아 알고 있으나 상대의 머리를 잡고 옆구리를 찌르는 둘 다 죽는 결투의 방식이
선을 가르치는 성경에 버젓하다.
하나님의 역사가 사람사는 세속의 원한으로 기록되어있다.
정말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다.
최소한 동북아시아에서는 없다.
옆구리 어디를 어떻게 찔렀는지 모르나 둘 다 쓰러졌을 텐데 유다 쪽이 이겼다고 되어있다.
싸움이 그 정도에서 끝난 것이 아닌 것 같다.
요압의 두 동생 아비새와 아사헬이 있었는데 아사헬이 아브넬과 붙었다.
언듯 아브넬이 싸움을 회피하는 모양인데 아사헬이 맹렬하게 달려드는 치열한 상황이다.
아브넬이 피하며 내가 너를 죽이면 네 형 요압의 얼굴을 어찌 보냐고 한다.
서로를 알고 있다는 것이다.
아브넬의 창이 아사헬의 몸통을 관통하여 죽는다.
사람들이 아사헬의 주검 앞에 멈추어 섯다고 하였다.
죽음의 충격이 컷 다는 표현으로 이해된다.
옆구리 찔렸다고 즉사하는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 무리는 현장을 떠났고 유다의 무리가 쫓아갔으나 이후 충돌은 기록에 없다.
광야의 산에 이르러 양진영이 대적하는데 말인 즉 아브렐이 “마침내 참혹한 일이 생겼다.” 고 하였다.
요압은 “네가 먼저 충동하지 않았으면 아사헬이 쫓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머리잡고 옆구리 찌르는 상황에서 죽음을 간과하고 있는 언쟁이다.
이후 싸움은 없었다고 한다.
이짝은 몇이 죽고 저 짝은 몇이 죽었다고 하는데 짊어지고 간 주검은 아사헬 하나이다.
다윗의 유다가 강해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쓸 만한 인간에게 백성을 맡긴다.
백성을 책임진다는 것은 때로는 나를 버릴 줄 알아야 한다.
관계는 마음을 알기 전에 경험과 지식의 분별에 의한 현상을 우선한다.
모든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보편성의 기준이 필요한 이유이다.
정치와 백성의 입장에서 무능한 자아보다 무리를 이끄는 수단의 융통성이 필요하다.
종교의 개별적 수양에서 수단의 융통성 보다 자아의 내면이 필요하다.
문명의 적응에서 두 가지 학습의 상호작용이 좋은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을 관리하는 자는 자아적 내면에서 수단의 융통성으로 찾고 계신다.
하나님의 너는 자아적 내면으로 이를 수 있다.
사울은 내면의 치우침으로 수단의 융통성이 부족하였다.
신앙이 아니라 정치에서 부족하였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알고 계신다.
이스라엘의 허깨비왕 이스보셋이 아버지의 첩과 아브넬이 통간하였다고 죄를 따졌다.
대의의 산수가 턱도 없이 부족하다.
다윗은 가드에서 미친척하고 상황을 주시하며 시간을 견디었다.
진퇴의 분별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브넬이 격분하여 왕에게 너 자신을 알라고 하였다.
내가 너를 다윗에게 넘겨줄 수 있다는 것이다.
미래의 이스라엘 왕 다윗의 정당성에 편드시는 분들이 많다.
현상과 기록은 시차가 있다.
사실인지 가신배의 농간인지 이 사건으로 아브넬을 다윗으로 돌아 세웠다.
왕가의 운명이 육신의 사소함으로 결정되었다.
닭 벼슬 세우고 깐족거려 봐야 어쩔 수 없는 인간이 하는 일이다.
왕정과 성전의 갈등에서 하나님의 산수가 절차에 따라 진행되고 있다.
아브렐이 다윗에게 이스라엘을 넘기겠으니 만나 협약할 것을 요구한다.
다윗은 남의 아내가 되어있는 사울의 둘째 딸 미갈을 데려오면 만나겠다고 강자의 아니면 말고 식 배짱이다.
미풍양속이 엉망이다.
하나님께서 선택한 나라의 왕이 권세의 차별로 백성의 눈물을 요구하고 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지 날벼락 맞은 남편 발디엘이 홀 애비 되었다.
마누라도 무르기가 있다.
통정의 허물로 대의를 상실한 아브넬이 이스라엘 지파와 장로들을 선동하여 싸 짊어지고 다윗에게 간다.
지키지 못한 사울의 시대를 읽으며 할 말이 많아지는 대목이다.
제 발로 굴러들어온 반쪽의 보따리를 진수성찬으로 대환영이다.
전사요나단이 없는 사울의 이후가 끝을 암시하고 있다.
역사의 인과응보는 반드시 있다.
아브넬은 돌아오는 길에 요압이 보낸 병사에게 잡혀 헤브론으로 끌려가서 죽임을 당한다.
기브온 연못에서 자신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복수이다.
다윗은 이스라엘을 팔아먹은 아브넬을 죽인 측근 요압을 저주하나 처벌하지 않았다.
본서에 다윗은 모르는 요압의 복수로 되어있다.
그때는 정치공학이 없었을 것이다.
역사는 비정한 것이다.
이스라엘의 이스모셋왕은 그나마 중심이었던 아브넬이 죽자 혼란에 빠진다.
왕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결론은 이스라엘 왕이 군 지휘관 베냐민지파 사람 바아나와 레갑 형제에게 낮잠 자다 살해당한다.
왕의 거처를 마을회관 들락거리는 것과 같다.
두 역적이 왕의 머리를 들고 다윗에게 가나 민심을 알고 수단의 용통성에서 현명한 군주는 산수가 빠르다.
난세에 역적질로 콩고물 챙기려다가 목이 성치 못했다.
아브넬도 베냐민지파이다.
다윗은 나이 삼십에 사울로 시작한 이스라엘의 2대 왕이 된다.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성벽을 쌓고 요새화하여 다윗성이라 하였다.
현대의 예루살렘에서 가장 오래된 곳이라고 한다.
때 되면 간보는 블레셋을 응징하여 예루살렘에서 멀리 몰아냈다.
블레셋에 빼앗겼다 돌려받은 언약궤를 아비나답의 집에 맡겨두었었다.
여차저차 하여 잔치하여 춤추며 다윗성으로 모셔온다.
왕정과 성전이 함께하는 통일 이스라엘이다.
어찌나 좋았던지 바지가 벗겨지도록 흔들어 대는 모습에 민망한 미갈이 체통 없는 행색이라고 한마디 거들었다.
다윗이 왕이 되고도 공주였던 미갈에게 양치기의 선입견이 있었던 모양이다.
말인 즉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네 아버지와 온 집안을 버리고 나를 택하였다.”
“천하게 보일지라도 계집종에게 영원히 내가 높다.“ 라고 하였다.
남의 아내로 잘사는 여인 데려오지나 말지 한풀이 하고 있다.
찌질한 면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가 애굽에서 지금까지 집 없이 장막과 성막에 있었다.” 내가 나의 집을 지으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이스라엘이 안정되면 네가 아닌 너의 씨가 성전을 지어 언약궤를 안정할 것이라고 하였다.
다윗이 성전을 짓지 않아 의아했는데 이부분의 이해가 잘못되었다.
블레셋사람들이 경계하였듯이 하나의 이스라엘은 강하여 주변을 싹쓸이하며 승승장구 하고 있다.
전사요나던의 전투에서 블레셋진영에 속한 히브리사람들이 이스라엘에 합류하였고 농기구를 사러 갔고 하였다.
유사시 족속과 정치와 권력의 경계는 있었으나 백성은 일상으로 왕래하며 문화를 공유하고 있었다.
인류의 역사와 종교의 교훈은 문화를 공유하여 격리되어 분류된 유전적 동질성을 회복하는 것이다
사울의 이스라엘을 배신한 아브넬을 죽인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었다.
제사장 사독은 사두개파의 창시자이다.
다윗은 돌아볼 여유가 생겼는지 사울의 자손에 대해 묻는다.
전사요나단의 아들이 므비보셋이 있었다.
다윗의 배려로 사울의 기업을 물려받아 안주하였다.
앞뒤가 다른 행색으로 대하는 미갈도 사울의 자손이다.
암몬에 사신을 보낸다.
역사의 오류는 간신배들의 입과 군주의 분별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평화의 긍정을 버리고 부정하여 대적의 염탐꾼으로 모함한다.
사고가 족속의 대적으로 절절하게 찌든 인간들이다.
수염과 옷의 소매와 바지를 반으로 잘라 지옥을 헤매다 돌아온 몰골로 표현하여 돌려보낸다.
다윗은 꼴이 보기 싫다고 수염이 자랄 때까지 궁에 들어오지 말라고 하였다.
수염을 상투와 비슷한 존엄으로 규범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전쟁은 사소한 것으로 시작하여 파괴와 죽음으로 백성의 골수를 마르게 한다.
사신의 몰골을 보고 가만있으면 얕보고 쳐들어올 테니 대응해야 하는 것이 국경의 관리이다.
군사령관 요압을 앞세워 본때를 보여주고 돌아온다.
당시 현재의 시리아 지역에 있었던 아람도 까불다 혼나고 화친을 청한다.
목축업으로 산재해 있던 유대의 사람들이 단일왕국의 힘으로 모아져 주변의 무리를 제압하고 있다.
다윗은 헤브론에 거주할 때 다수의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미갈도 권세로 빼앗아 데려왔다.
충성스런 군인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고 있었다.
배부르고 기름차면 밑이 무거워 앞뒤좌우와 씨와 밭의 유전적 지조와 표적의 경계를 망각하고 흔들리는 것이 있다.
육신의 광체에 꼴까닥 침이 넘어가 언약궤 가져오는 날 바지 벗겨지도록 춤춘 하나님의 믿음을 상실하였다.
온 이스라엘 여인이 제 것 인줄 착각하고 쓸 만한 밭 보이면 주소지 관계없이 내지르는 단세포 생물이다.
지(왕)가 뭐라고 충실한 군인의 아내를 데려다가 임신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죄 없는 생명을 전장의 끝선으로 몰아가
활에 맞아 죽게 하였다.
천둥번개와 지진과 화산과 우박과 유성불은 언제 써 잡수시는지 어떤 놈 빼놓고 행하시는 것이다.
안 보여도 보고 있어서 주둥이 불 발사 할 수도 없고 여전히 하나님의 선택에서 괴리가 발생하고 있다.
할 짓 다하고 회개하여 구하면 말씀 따르려고 할 짓 못한 놈들께서 엄청 손해이다.
사울과 제사장 엘리의 죄를 비교하면 개미 발에 군화이고 새발에 피 이고 달빛에 반디 불이고 한강에 돌 던지기이다.
봐줄 놈 따로 있으면 세속의 시장잡배와 다를 것이 없다.
그 많은 여인을 어찌 감당했는지 전쟁의 역사로 쓰여 지는 다윗의 시대가 불가사의 하다.
백성들 죽거나 말거나 전쟁에 보내고 발 갈아 씨 뿌리며 종자관리에 전념한 훌륭한 왕이다.
자손들 피박 쓴 것은 그나마 징표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세계이다.
이 여인의 첫배는 죄로 죽고 두 번째 배에서 솔로몬이 태어난다.
생명의 탄생이 씨와 밭의 죄는 아니나 하나님의 선택이라면 내 것 내 마음대로 내두르고 회개할 이유가 없다.
모텔의 은밀한 도적질과 이불 밑은 이유 불문하고 생명책에서 면제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어느 놈 따로 라고 배우지 않았다.
다윗의 자손들 행색이 기괴하다.
아들 암논이 누이 다말에 흑심을 품고 있었다.
또 다른 아들 압살롬이 배가 같은 친누이 다말을 가까이에서 보호하고 있으므로 욕심을 채우지 못하고 있었다.
처녀라서 어쩔 수 없었다는 말씀이 무엇을 뜻하는지 짐작하기 어렵다.
처녀가 아니면 어찌된다는 것이지 욕정의 규범이 있는 듯하다.
암논의 상사병은 욕정을 채워야 났는데 방법이 없다.
다윗의 집안이 밑으로 융성한 것이다.
암논의 요사한 사촌형제 요나답이 알고 간신 짓을 한다.
병든 척하여 왕이 문병 오면 다말에게 간병해달라고 요청하여 일을 벌이려는 수작이다.
왕이 아들이 아프다니까 와서 음흉한 놈의 말만 듣고 다말에게 간병하라고 한다.
수작도 대물림 하여 흉계가 꾸며졌다.
누이 다말을 강간하고 책임 없이 그의 집에서 쫓아낸다.
몹쓸 짓하고 형벌에 무지하여 싸가지가 없다.
다윗은 알고도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압살롬이 알고 복수를 계획한다.
배다른 형제이다.
여성에 관해서 현대의 사고로 상상할 수 없는 밭의 비하적 문화가 있는 듯하다.
이년 후 가족모임에서 압살롬이 암논을 유인해 죽이고 그술로 도망친다.
그의 어머니 마아가 그술왕 달매의 딸이다.
삼년을 머문다.
다윗이 압살롬을 그리워하는 것을 감지한 군사령관 요압이 그술에 가서 데려온다.
데려오라고 하고 아들의 얼굴을 보지 않는다.
압살롬이 자기를 데려온 요압에게 왕의 박대에 무슨 연유인지 영문을 듣기위해 만나기를 청하나 거절한다.
분노한 압살롬이 사람을 시켜 요압의 보리밭에 불을 지른다.
요압이 달려와 항의한다.
당신이 나의 청을 거절하여서 그리하였다고 하며 무엇 때문에 나를 데려왔냐고 처지의 빈약함을 토로한다.
그술에 있을 때가 좋았다고 하였다.
요압이 왕에게 보고하고 다윗이 아들 압살롬을 불러 죽은 놈에게 잘못이 있었고 되돌릴 수 없음을 알고 화해한다.
권위와 자유를 찾은 압살롬은 자신의 세력을 키운다.
사년 후 왕에게 청하여 헤브론으로 간다.
압살롬의 반란이 시작된다.
왜 반란을 일으켰는지 비극에 비교하여 기록되어 있지 않다.
다윗과 요압의 박대는 화해했다고 하였다.
치세가 잘못되어 민심이 이반한 이유를 가설할 수 있다.
민심을 얻은 반란의 세력이 만만하지 않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천하의 다윗이 아들이 일으킨 반란세력을 피해 후궁 열 명을 남겨두고 예루살렘에서 도망친다.
벧메르학에 이르러 따르는 사람들을 돌려보내는데 가드사람 잇대가 끝까지 같이 하겠다고 맹세한다.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언약궤를 가지고 합류하였으나 돌려보낸다.
이스라엘을 현 상태에서 하나님의 뜻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반란의 주동자는 아들이다.
광야의 나루터에서 하나님의 뜻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궁과 압살롬 주변에 남아있는 충복들의 정보를 기다리는 것이다.
감람산에 머리를 풀고 맨발로 올라가 기도한다.
어찌 초연하다.
회개는 형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아히도벨은 다윗의 능력 있는 신하였으나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 사건으로 압살롬의 편에 서서 모사가 된다.
민심 이반의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윗도 아히도벨의 능력을 경계하고 있다.
입에 침이 마르지 않는 아렉 사람 후세가 피난길에 찾아온다.
후세를 압살롬을 지지하는 것으로 위장하여 반란군 진영에 보내 아히도벨의 계략을 방해하도록 계략을 꾸민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므비봇셋 사람 시바가 나귀와 음식을 가지고 왔다.
도움에 감사하여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부자는 망해도 삼대는 먹고산다는 옛말이 있다.
사울의 사람들이 원한으로 다윗의 피난길을 비난하고 방해하여 주변이 죽이려 하였으나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였다.
추수 때가 되면 의식하지 않았던 잘못을 심연으로 알게 된다.
압살롬은 모사 아히도벨의 계략으로 남겨진 후궁과 동침하여 윤리적으로 아버지 다윗과 완전한 격리를 공언한다.
사람이 할 짓도 살 곳도 아닌 곳이다.
아히도벨의 신임이 대제사장을 버금가는 위치에 있었다.
다윗의 명을 받은 후세가 압살롬 만세를 외치며 위장전향에 성공한다.
아히도벨은 군사 일만이천을 조직하여 기습으로 다윗을 죽이면 피난한 백성이 돌아올 것이라고 하였다.
후세는 다윗은 군사전문가이므로 시간을 두고 군대를 양성하여 광야에서 전면전으로 결판을 내야 한다고 하였다.
설령 기습한다고 하여도 은신하고 있어 찾지 못하고 실패하면 민심이 반란의 성공을 의심할 것이라고 한다.
세치 혀에 역사가 좌지우지 된다.
압살롬은 후세의 의견을 선택한다.
아히도벨은 반란이 실패할 것을 예지하고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목메 죽었다.
구약에서 최초로 자살한 사람이라고 한다.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다윗은 요단강을 건너 길르앗을 지나고 있고 압살롬의 군대가 뒤를 추격하는 형세이다.
압살롬은 군사령관을 요압에서 아마사로 교체하였다.
요압과 아마사 각각의 어머니는 나하스의 두 딸이다.
족보가 근방이다.
다윗의 피난길에 암몬족속들이 물품을 가지고 왔다.
걸핏하면 전쟁으로 몰살하였다고 하는데 원한 맺힌 사람들이 침상과 그릇과 먹을 것 가져다줄 이유가 부족하다.
다윗은 길르앗 백성의 도움으로 군대를 재정비하여 반격을 준비한다.
압살롬의 반란은 후세의 세치 혀를 이용한 다윗의 수단에 의해 실패하였고 요압의 병사들에게 죽임 당한다.
모사 아히도벨의 전략이 옳았던 것이다.
후세의 이야기는 없다.
예루살렘에 남겨져 압살롬에게 능욕당한 후궁 열 명은 평생감옥에서 과부로 살았다고 하였다.
그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반란군 사령관 아마사는 갈등의 봉합을 위해 다윗의 지시로 연임되나 이종사촌 요압에게 죽임 당한다.
왕이 임명한 사령관을 살해한 요압의 처벌은 없다.
요압은 다윗의 정치적 동지이고 호위무사였다.
한동안 피난지 길르앗에 머물다 예루살렘으로 귀환한다.
반란은 평정되었으나 기근과 질명으로 고통에 이르자 하나님께 연유를 여쭈어 본다.
사울과 그의 집으로 인해 흘린 피 때문이라고 한다.
덧붙이면 사울과 그의 집안이 이스라엘과 유다에 매진하여 기브온의 아모리 사람을 학대한 것이 원인이라는 것이다.
기브온 사람들의 원한을 풀면 기근과 질병이 사라진다고 하였다.
다윗이 기브온의 아모리 사람들에게 물으니 사울의 자손 일곱을 주면 목을 메달아 원한을 풀겠다고 한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은 죽일 수 없었다.
이스라엘의 실권자로 있다 배신한 아브넬과 통정했다는 사울의 첩 리스바의 두 아들과 사울의 딸 메랍의 증손자 다섯이
잡혀 여호와 앞에 목 메달아 죽였다.
구약에 “여호와 앞에 동시에 목 메달아 죽였다.” 라고 되어있다.
연배로 보아 사울의 딸 메랍의 증손자는 어린아이이다.
사람의 생명을 받치는 번제이다.
하나님을 잘못 이해하는 것이다.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사하러 오신 이유가 실증되고 있다.
모세의 율법에 사람이 죽거나 죽이면 해지기 전에 정리해야 한다고 되어있다.
오래 동안 두었던 모양이다.
보리의 첫 수확 때라고 하니 여름이다.
리스바가 목 매달린 시체 곁에서 낮에는 새들이 밤에는 짐승들이 훼손하지 못하게 비가 올 때 까지 지켰다.
처절함이 오죽하였을 것이다.
다윗이 알고 길르앗에 있는 사울과 요나단의 유골과 매달린 일곱 제물의 시체를 수습하여 베냐민 셀라의 가족묘지에
안장하였다.
본서에서 다윗의 시대는 사울과 블레셋의 전쟁으로 시작하여 아들 압살롬의 비극과 기근과 질병과 마지막으로 블레셋
거인의 소탕으로 끝났다.
잔인한 시대였다.
2025.7.10.일.
4 열왕기 상.
1) 본문.
다윗이 늙어 기력이 쇠퇴하니 수멕은 젊은 처녀 아비삭으로 아내를 삼아 시중들게 하였다.
아이는 없었다고 한다.
다윗의 시대에 사람의 왕권이 강화되었다.
사무엘 시대에 성전이 왕권을 지배하고 있었다.
백성의 민심이 모세의 율법을 우선하는 성전의 시대였다는 것이다.
사무엘은 왕권이 살아있는데도 왕의 의지와 상관없이 다윗을 다음의 왕이라고 하였다.
정상적인 왕권의 절대에서 죽음을 면치 못하는 반역이었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길에 있을 때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이 언약궤를 메고 왔으나 돌려보냈다.
언약궤가 사람의 왕을 따라 왔다.
성전의 제사장들이 다윗의 왕권에 예속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성전을 관리하는 제사장과 비교해서는 안 되는 주종의 관계이다.
성전의 제사장을 하나님이 아닌 사람의 왕이 직무와 권한을 좌지우지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제사장이 왕권에 줄서다 발생한 모욕이다.
하나님의 영적세계와 플라톤이 말한 준비된 세계는 인간의 무엇에도 예속되지 않는다.
다윗의 후사가 정해지지 않았는데 왕비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세를 키우고 왕권을 선언한다.
이 자리에 군 사령과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이 있었다.
왕권이 살아있는데 내가 왕이라고 하는 것은 반역이다.
솔로몬(BC 990~931년)의 어머니 밧세바가 다윗의 결정에 개입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아도니야의 왕권선언 소식을 듣고 다윗에게 전하며 솔로몬을 후계로 하겠다고 한 약속을 다짐받는다.
솔로몬이 다윗의 지명으로 절차에 따라 왕좌에 앉았다.
측근으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의 용사들이다.
새로운 왕권을 위해 권력의 다림질이 필요하다.
다윗에게 충성한 요압은 아도니야 쪽에 가담하였어도 백성의 이목이 있어 명분 없이 죽일 수 없었다.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 이스라엘의 배신자 아브넬과 압살롬의 반란군 사령관을 하다 다윗에 의해 연임되었던 아마사를
이유 없이 죽인 죄로 브나야에게 죽는다.
제단의 뿔을 잡으면 고의가 아닌 살인은 죽음을 면한다고 한다.
요압은 제단의 뿔을 잡고 죽임을 당했다.
다윗은 요압이 죽인 두 사람의 일을 알지 못하였다고 쓰고 있다.
초한전쟁과 한나라 건국의 일등공신 한신장군의 토사구팽이 있다.
압살롬의 반란으로 피난길에 비난을 퍼부었던 베냐민사람 시므이가 있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는 솔로몬의 명을 어겨 브나야에게 죽임 당한다.
요압과 시므이는 다윗이 죽으며 죽이라고 유언하였다.
뒤끝이 있었다.
아도니야 쪽에 가담한 제사장 아비아달은 피난 때 언약궤를 메고 온 기름으로 죽음은 면하고 쫓겨난다.
아비아달은 도망자 다윗의 수단에 넘어가 진설병과 골리앗의 칼을 넘겨주고 사울의 지시로 도엑에게 살해당한 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로 당시 에봇을 가지고 다윗을 찾아갔었다.
하나님의 성전을 관리하는 제사장이 사람의 왕권에 의해 직을 상실하였다.
성전이 정치에 개입하여 왕권에 지배된 것이다.
요사이 종교관으로 하나님께서 선택한 것이 아니다.
아도나야는 다윗의 말년을 시중들던 아비삭을 아내로 욕심내다 솔로몬의 명으로 브나야에게 죽임 당한다.
왕권을 탐하였고 죽을 고비에 있는 왕자가 아버지의 후궁을 아내로 달라고 하였다는 것이 어정쩡하다.
사람 죽이는 선수 브나야는 군 사령관이 된다.
역사는 산자에 의해 쓰여 진다.
이렇게 다윗의 시대가 정리되었다.
솔로몬왕은 애굽의 공주와 혼인하고 성전을 건축한다.
다윗성의 솔로몬이 사울의 도시 기브온의 성전이 크므로 그곳으로 가서 제사를 드렸다고 한다.
솔로몬의 지혜 아기와 두 어머니의 이야기가 있다.
다윗이 이루어 강화된 왕권으로 전국을 열두지역으로 나누어 관리하는 체제를 완성한다.
전쟁 없는 솔로몬의 태평시대이다.
성전을 건축하는데 두로왕 히람의 도움으로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들여온다.
시돈과 두로는 신약에서 비극적 도시로 묘사되고 있다.
바알을 섬기는 시돈왕 에트바알은 북이스라엘을 이방신과 우상에 빠지게 한 아합의 왕비 이세벨의 아버지이다.
두로는 BC 10세기경 다윗과 솔로몬시대 이스라엘과 친분이 있었으나 9세기경 시돈왕국의 도시로 흡수된다.
시돈과 마찬가지로 이방신과 우상숭배가 성행하였으며 선지자들이 멸망을 예언하였다.
BC 4세기경 로마침공 시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철저하게 파괴되고 주민은 노예로 끌려간다.
예수께서 공들인 고라신과 벳세다가 회개하지 않으니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나았을 것이다.” 라는 말씀이 있다.
애굽탈출 후 사백 팔십년 만에 제대로 된 왕국에서 성전건축이 시작되었다.
칠년 만에 백향목과 가람나무목과 금의 화려함으로 완성된다.
두로에서 히람이라는 사람을 데려와 놋을 녹여 성전의 오른쪽(야긴)과 왼쪽(보아스) 기둥과 각종 기물을 만들었다.
두로의 히람왕과 납달리지파 과부의 아들 대장장이 히람은 다른사람이다.
왕궁과 왕의 거처를 병행하여 건축되었다.
읽다가 무엇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성전과 왕궁의 구조가 상세하게도 쓰여 있다.
하여튼 이방의 전쟁과 족속의 갈등으로 방해받지 않고 건축되었다.
언약궤가 엄숙하게 성전의 지성소에 휘장으로 가려 모셔졌다.
솔로몬왕이 백성의 평안을 위해 구구절절하게 기도한다.
화목제에 소가 이만이천마리고 양이 십이만 마리이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건축을 축복하고 “너는 나에 종이니 잊지 말고 섬기면 너의 왕가가 이어질
것이다.” 하시며 이방신과 우상을 섬기면 너와 성전과 왕궁을 멸할 것이라고 약방의 감초 같은 말씀을 하였다.
변방의 수비를 위해 진지를 구축하고 방벽을 건축하였다.
외부의 침략으로 부터 왕국의 기틀을 튼튼하게 다지는 역사이다.
시바의 여왕이 지혜가 뛰어나다는 솔로몬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다.
간섭받을 일 없는 왕들끼리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하룻밤을 보내는데 딱 걸려다.
태아난 아이가 에티오피아의 초대황제 메넬리그 1세라고 한다.
성경에 하루 밤의 정사로 아이가 태어났다는 내용은 없다.
왕과 여왕의 만남은 입방정 좋아하는 분들 소재로 날개달기 충분하다.
성경과 해석에서 더하고 빼는 산수와 전달에서 사실을 비약하는 상상의 의도가 상당하게 있다.
성년이 되어 솔로몬을 찾아와 공부하였다.
메넬리그가 이스라엘의 왕이 되라는 솔로몬의 제안을 마다하고 돌아갈 때 언약궤를 가져갔다는 자료가 있는데 가능한
사건인지 아리송하다.
사실이면 줄 세워 죽였을 것이다.
본서에 그런 내용이 없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최초의 기독교 국가이다.
방패와 그릇을 금으로 만들어 사용했다는 것이 사치도 대단하였다.
여인의 사랑도 유별나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딸들이 많았고 후궁이 칠백이고 첩이 삼백이었다.
밑으로 융성한 다윗의 씨가 맞다.
이방의 여인들이 각자의 신을 들여와 모압의 여신 그모스와 암몬의 몰록과 시돈의 아세라를 위해 신당을 짓는다.
솔로몬은 여인의 신과 우상을 우선하여 하나님의 경고를 따르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너의 자식에 이르러 왕좌를 빼앗아 신하에게 줄 것이며 다윗의 자손은 한지파의 주인으로 남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였다.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분열로 생각된다.
목이 굳어 말 안 듣는 백성이다.
솔로몬의 말년이 좋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전작업으로 평온했던 이스라엘에 대적이 일어난다.
요압의 에돔 정벌에서 애굽으로 도망쳐 살아남은 하닷과 애굽왕의 처제 사이에서 태어난 그누밧이다.
다윗에게 정발당한 소바사람 르손이 수리아의 왕이되어 대적하였다.
내부에서 에브라임지파의 여로보암은 선지자 아히야를 만나 열개지파의 왕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듣는다.
여로보암은 사울과 다윗의 관계처럼 솔로몬이 죽이려 하자 애굽으로 도망쳐 왕이 죽을 때 까지 있었다.
솔로몬이 사십년 제위하고 죽고 아들 르호보함이 사십일 세에 왕위를 계승한다.
세겜으로 백성과 같이 갔다는 것이 그 곳에서 대관식이 있었다는 것이다.
애굽으로 피했던 여로보암이 돌아와 새로운 왕에게 전대에서 백성들이 격어 던 고역과 멍에를 개선하면 따르겠다고
하였으나 즉답을 피하고 삼일 후에 보자고 한다.
르호보암은 백성의 제안을 수용해야 한다는 솔로몬시대의 사람들 의견을 무시하고 자신의 연배와 같은 사람들 의견을
우선하여 생산과 사역에 더욱 노력할 것을 주문한다.
유다지파의 사람들 제외하고 백성들이 다윗의 집안을 떠나 옛 이스라엘로 돌아간다.
왕이 신하 아도람을 보내 설득하려 하였으나 분노한 백성에게 돌에 맞아 죽는다.
르호보암은 서둘러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유다의 왕으로 만족해야 했다.
여로보암 1세는 북이스라엘의 왕이 된다.
가나안 땅이 멸망할 때 까지 두 개의 이스라엘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시므온지파와 베냐민지파의 거취에서 북이스라엘의 열 개지파의 의문이 있다.
야곱의 상속에서 시므온지파는 유다의 땅에 예속되어 기업을 분배받았다.
예초에 유다에 예속되어 있었고 여기에 베냐민지파가 유다에 합류한다.
따지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두 개로 갈라진 것과 상관없는 산수이다.
유다왕이 선대의 가업을 회복하기 위해 이스라엘과 전쟁을 준비하나 선지자 스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영으로 포기한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예루살렘의 성전에서 제사지내는 것을 금하고 새로운 상징 금송아지 두 마리를 만들어 벧엘과
단에 두고 제사를 지냈다.
레위인이 아닌 일반백성 중에 제사장을 두었고 팔월 십오일로 절기를 정하고 제사를 지냈다.
현대에는 절기의 의미가 축소되어 일상의 기도가 중요한 것이나 당시에는 제사는 민심의 구심점을 이루는 행사였다.
하나님께서 금송아지와 절기의 변화를 어찌 말씀하실지 자신께서 하신일 이라서 꺼림직 하다.
광야에서 아론이 만든 금송아지의 비극을 알고 있다.
여로보암이 제단에서 분향할 때 유다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영을 거지고 왔다.
영으로 외치기를 “다윗의 집(유다)에서 요시야라는 아들을 낳을 것이다.”
“그가 산당제사장을 제물로 받칠 것이요 무덤을 파 해쳐 유골을 불사를 것이다.” 라고 하였다.
여로보암이 팔을 뻗어 하나님의 사람을 잡으려 하였으나 경직되어 움직이지 않았으며 제단이 갈라져 재가 쏟아졌다.
여로보암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예물을 제시하며 동행을 요구했으나 단호하게 거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왔던 길이
아니라 다른 길로 간다.
요시야는 남유다의 16대 왕으로 이방신과 우상숭배를 척결하여 하나님의 진노에서 이스라엘을 구하려 노력한 왕이다.
후일 요시아왕이 벨엘의 제단을 부수고 무덤을 파 해쳐 유골을 불태워 우상숭배를 배척하였다.
당시 유다가 벧엘 지역을 점령하고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아깝게도 젊은나이에 1차 갈그미스 전투의 전초전 므깃도 전투에서 활에 맞아 죽는다.
하나님께서 아까워했던 왕이다.
이스라엘의 다종교 문화는 뿌리가 깊었다.
다른 길로 돌아가던 하나님의 사람은 선지자와 천사의 말을 사칭하는 사람에게 속아 떡과 물을 먹고 마신다.
거역하여 사자에게 물려 죽었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주검을 수습하여 자신의 묘실에 두고 죽으면 합장해 달라고 하였다.
그의 말이 이루어질 것을 증명하고 있다.
어처구니없는 설정이나 사자에게 물려 죽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여로보암은 율법을 어기고 일반인을 제사장으로 삼았다.
죄가 크다.
아들이 병들어 죽는다.
실로의 선지자 아히야는 이방신과 우상숭배의 죄로 말미암아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강 건너로 흩어질 것이라고 하였다,
멸망의 예언이다.
여로보암왕은 제위 이십이 년에 죽고 아들 나답이 욍위에 오른다.
제위 2년만에 바아사의 반란으로 죽었다.
유다의 르호보암은 애굽의 침공으로 성전의 보물창고에 있던 전왕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 등 재물을 약탈당한다.
어머니는 이방신 아세라를 섬기는 암몬의 여인이었다.
모세가 염려하였던 다종교 시대이다.
르호보암은 십칠 년을 제위하고 죽고 아들 아비야(BC 950~911년)가 계승한다.
아비야왕 때 여로보암의 북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한다.
본서에서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강간하여 임신시키고 훌륭한 군인을 죽인 죄밖에 없다고 강변하고 있다.
죄의 경중에서 무지한 것이다.
남색 하였다는 말씀이 다수이다.
이방신의 사제들은 음욕의 제약이 없었다고 한다.
성이 문란하였다는 말씀이다.
아버지 아비야를 이은 유다의 왕 아사(BC?~868SUS)를 당시 유일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왕으로 평하고 있다.
이방신의 제단을 허물고 산당을 부수고 아세라의 목상을 불태운다.
어머니 태후가 아세라의 목상을 만들어 섬기자 부수어 불태우고 폐위하였다고 쓰여 있다.
구스의 세라가 쳐들어 왔으나 하나님의 뜻이 이르러 물리치고 영토를 확장하여 태평하였다.
아사왕 십육년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조를 부너뜨린 바아사왕이 유다의 땅을 침범하여 방벽을 구축하였다.
다메섹의 아람왕 벤하닷에게 사람과 예물을 보내어 북이스라엘의 배후를 공격하게 하여 물러나게 하였다.
아사가 죽고 아들 여호사밧이 즉위한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함의 계보 나답왕이 제위 이년 만에 잇사갈족속 바아사의 모반으로 죽임 당한다.
여로보함의 대가 실로의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대로 끊어졌다.
반란으로 일으킨 새 왕조는 전 왕조의 사람들을 비참하게 한다.
바아사는 북이스라엘의 3대 왕이다.
바이사의 아버지 아히야와 실로의 선지자 아히야는 다른사람이다.
제위 이십사 년에 죽고 아들 엘라가 계승하나 이년 만에 디르사의 왕궁에서 군 지휘관 시므리의 반란으로 죽는다.
시므리는 칠일 후 이스라엘 백성이 세운 오므리의 무리가 디르사를 함락하자 궁에 불을 지르고 스스로 타 죽는다.
엘라와 시므리가 죽자 이스라엘의 호족 오므리와 디브니의 무리가 한판 붙어 오므리 무리가 이겨 디브니를 죽이고
왕권을 가져간다.
죽이고 또 죽이고 평온한 날이 없다
북이스라엘의 왕궁을 디르사에서 사마리아로 옮긴다.
오므리왕은 아합(BC 935~853년) 왕의 아버지이다.
아합왕 시대 왕비 이세벨의 이방신과 우상숭배는 북이스라엘 전역으로 번졌다.
아합이 바알을 섬기는 시돈왕의 딸 이세벨과 혼인할 때 하나님의 선지자들은 이방신과 우상숭배의 우려를 많이 하였다.
아버지 오므리왕에 더하여 바알의 제단을 세우고 아세라 상을 만들었다.
몰록에게 자신의 아이를 제물로 받쳤다는 내용은 없으나 맏아들과 막내아들이 죽었다고 쓰여 있다.
실제로 북이스라엘을 멸망에 이르게 한 왕이라고 하고 있으나 강한왕권으로 공도 있었다는 자료가 있다.
신약에서 공부한 죽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로 승천한 두 사람 중 한사람 선지자 엘리야가 나온다.
다른 한사람은 에녹이고 모세는 사탄의 방해로 승천하지 못했다고 하였다.
길르앗에서 기도하였으며 이슬람에서 25대 선지자 중 한사람이다.
기원전 팔레스티나에서 구약을 토대로 하는 유대교와 이슬람이 공존하였던 시간을 공부할 수 있다.
왕비(이세벨)와 주변은 바알과 아세라 등 이방신을 숭배하고 모자라 하나님의 사람을 박해하고 죽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아합왕에게 3년의 가뭄과 기근을 예언하고 요단의 그릿 시냇가에 은둔한다.
까마귀가 먹을 것을 물어다 준다
가뭄이 심하여 시냇물도 마른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명령으로 시돈의 사르밧으로 가서 만난 과부에게 음식을 달라고 부탁한다.
과부는 아들과 마지막 남은 한 끼의 식량으로 허기를 채우고 죽으려 하였다고 한다.
엘리야는 걱정하지 말고 떡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고 과부는 그렇게 하였다,
여기에는 유대사회의 손님접대 문화가 있다.
만물은 하나님의 것으로 그의 사람에게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지 않으면 벌을 받는다고 하였다,
과부의 아이가 어떠한 이유로 병들어 죽었는지 모르나 원망이 엘리야와 하나님께 이르렀다.
엘리야는 아이의 주검을 침대에 뉘이고 하나님께 간청하니 기적이 일어나 죽은 아이가 살아 돌아오고 기름과 식량이
끊이지 않았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이며 카톨릭의 성인이다.
엘리사는 적군대장의 병도 고쳐주고 하나님과 이방신을 동시에 섬기는 불손한 군주를 도와주기도 한다.
엘리야의 철저한 이방신 배척과 달랐다.
현대의 문명에서 다양성은 진보적 시각이나 당시에는 종교가 국가의 토대였다.
돌아온 엘리야는 자신을 죽이려는 아합왕에게 청하여 이방신 바알신과 아세라를 섬기는 사제들과 대결을 벌인다.
아세라는 일월성신으로 자연현상을 토대로 하는 이방신이었으며 아시리아 수도 니네베 사람들의 주교였다.
방법은 황소를 제물로 하는 제단을 쌓고 자신의 신을 통해 불을 붙이는 것이다
엘리아는 황소에 물까지 부어 젖은 황소를 불태운다.
승리하여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사제들을 모조리 죽였다고 되어있다.
이후 비가내리고 가뭄이 해갈되었다.
당시 팔레스티나 지역의 종교적 다양성과 경계적 관점을 볼 수 있다.
왕비 이세벨이 자신이 섬기는 신의 사제를 죽였다는 소식을 듣고 엘리야를 죽이려 한다.
도망하여 주야를 걸으며 천사의 도움으로 호렙산의 동굴에 이른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 이르러 내가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묻는다.
아합과 왕비 이세벨이 선지자를 모두 죽이고 나만이 남았다고 하였다.
이르되 “다메섹의 하사엘을 아람의 왕이 되게 하고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엘리사를 너의 후계자로 하면
그들이 너의 적을 멸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본서에 승천하는 대목이 없어 아쉽다.
북이스라엘의 동쪽 아람과 두 차례 전쟁에서 아합왕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이기고 평화조약을 체결한다.
이방신으로 배신한 아합을 도운 하나님의 괴리를 이스라엘 백성을 도왔다고 논리를 비약시키고 있다.
아람과 평화조약을 비판한 선지자가 있었다.
“적을 네 손으로 놓았으니 그의 생명을 너의 생명으로 대신할 것이고 너의 백성은 그의 백성을 대신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멸망을 두 번 째 예언하고 있다.
나봇의 포도밭이야기가 있다.
아봇은 왕궁 가까이에서 포도밭을 일구는 농부이다.
아합이 그 땅에 욕심이 많다.
팔거나 다른 좋은 땅을 주겠다고 하였으나 거절한다.
상심하고 있으니 사악한 왕비 이세벨이 물었고 말하니 불량한 사람을 시켜 나봇을 둘로 쳐 죽이고 빼앗는다.
하나님께서 디셉 사람 엘리야에 이르러 가서 아합에게 나의 말을 전하라 하였다.
가뭄의 예언과 은거와 과부와 기적과 이빙신 사제와 대결과 이사벨에 쫓겨 간 호렙산과 사차가 있다.
“너와 이세벨도 나봇의 피를 개가 핥듯이 할 것이며 살점을 찌어 먹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이세벨을 향한 악의 저주가 피비린내 나고 있다.
아합이 엘리야의 저주를 듣고 풀이 죽어 있으니 너 말고 너의 자손에게 할 것이라고 하나님께서 한발 후퇴하였다.
하나님은 분노하다가 울면 젖 주시는 분이시다.
아합왕이 유다의 여호사밧왕에게 연합하여 길르앗의 라못을 치자고 제안한다.
전쟁에 앞서 유다왕 여호사밧이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자고 한다.
이방신의 선지자는 수백인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선지자는 다 죽이고 미기야가 하나 남아있었다.
유다왕의 요구라고는 하나 하나님의 사람을 다 죽이고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한다.
미가야는 반대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시드기아를 비롯한 이방신의 선지자들은 왕의 뜻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미가야는 나쁜 예언을 하였다고 옥에 가둔다.
나뿐 일이 벌어질 것 같다.
길르앗 전쟁에서 아합왕이 죽는다.
주검에서 피를 씻어내니 그 물을 개들이 먹었다고 하였다.
아들 아하시야가 다음 왕이다.
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유다왕 여호사밧은 하나님과 기름을 유지하였으나 백성은 여전히 산당에 분향하고 제사지냈다.
2) 산당.
가나인 사람들이 산의 높은 곳에 제단을 만들고 우상을 숭배하는 장소이다.
2025.7.12.일.
5 열왕기 하.
1) 본문.
아합의 아들 아히시아왕이 난간에서 떨어져 심하게 다친다.
자신의 운명을 바알세불에게 물어오라 한다.
이방신과 우상숭배로 심하게 오염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엘리사를 불러 왕에게 가서 “이스라엘에 내가 있는데 어찌하여 바알세불에게 운명을 점치느냐 너는 죽을
것이다.” 라고 전하라 하였다.
아하시야왕이 2년 제위하여 죽고 아들이 없어 형제 요람(BC 870~841년)이 왕이 된다.
여호람의 동명으로 유다왕과 이스라엘왕이 있다.
편의상 북이스라엘 왕을 요람으로 하였다.
엘리야의 승천이 기록되어 있다.
요단에 오십 명의 제자를 남겨두고 강에 이르러 엘리야가 겉옷을 벗어 물을 치니 갈라져 마른땅으로 건넌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나에게 원하는 것을 말하라 하니 성령의 역사가 당신의 두 배가 되게 해달라고 한다.
“어려운 것이나 내가 하늘에 이르는 것을 네가 보면 이루어질 것이다.“ 라고 하였다.
강 건너 제자 엘리사와 가는데 불말과 불마차가 둘을 갈라놓고 회오리바람이 일더니 선지자 엘리야가 승천하였다.
오십인의 제자가 엘리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엘리야의 주검을 산과 골짜기에서 사흘밤낮을 찾았으나 없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의 죽임을 면하고 천수를 다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엘리사가 머무는 성읍의 백성들이 물이 안 좋아 고생한다는 말을 듣고 소금으로 기적을 행하여 고친다.
벧엘로 돌아오는 길에 어린아이들이 대머리라고 놀렸다.
아합왕이 전쟁으로 죽자 모압이 저항하여 이스라엘에 받치던 조공을 중단하였다.
이스라엘의 요람왕은 다종교의 죄는 여전하였으나 바알의 주상을 파괴하는 등 아버지 아합과 달랐다.
하나님의 산수가 전제되는 것이 일이 벌어지려는 것이다.
요람왕는 유다의 여호사빗왕을 청하여 저항하는 모압의 공격을 제안한다.
유다왕은 하나의 백성을 강조하며 에돔과 같이하자고 역제안 한다.
세 왕국이 모압으로 진군 칠일 만에 에돔광야에서 물이 떨어지고 주변에 우물이 없다.
유다의 여호사밧왕이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는다.
피투성이로 죽은 아합왕과 연합하여 길르앗 라못의 전쟁 전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았었던 전례가 있다.
엘리사가 천거된다.
엘리사는 이스라엘왕 요람에게 “내가 무슨 상관이냐 당신의 아버지나 어머니가 숭배한 신에게 물으라!” 한다.
여호사밧왕이 사정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세 왕국이 모압을 정벌하러 가는 길에 고난을 격고 있다고 설득한다.
유다왕의 하나님이 아니었으면 간섭할 이유가 없었다고 하며 광야에서 개울을 깊게 파 물을 찾는다.
다음날 하나님의 기적으로 개울에 물이 넘쳤다.
전쟁에서 이기기는 했으나 모압의 왕이 맏아들을 앞세워 하나님께 번제를 올려 연명을 구한다.
연합군은 하나님의 진노에 놀라 더 이상 공격하지 못하고 각자의 왕국으로 떠났다.
출애굽에서 에돔과 모압과 암몬은 내가 그들에게 준 땅이므로 건들지 말라고 하였다.
그쪽에도 하나님의 창조가 이르고 있다.
하나님은 사람의 목숨을 제물로 하는 제사로 믿음을 확인하지 않는다.
광야에서 물을 찾는 기적으로 엘리사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한 참혹한 전쟁이야기 이다.
죽은제자의 아내가 찾아와 빛을 낸 사람이 갚지 못하자 두 아들을 종으로 데려가려 한다고 구하기를 청한다.
과부에게 수중에 무엇을 가지고 있냐고 물으니 기름 한그릇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릇을 빌리든 어찌하든 구할 수 있는데 로 구하여 남은 기름을 부으라고 하였다.
엘리사의 기적은 모든그릇에 기름이 기득하여 빛 도 갚고 두 이들과 생활할 수 있었다.
도와주었다는 표현이다.
수넴에서 엘리사 일행을 환대한 집과 여인이 있었다.
고마워 사환에게 집안의 내력을 알아오라 하니 남편의 나이가 많아 아이가 없다고 하였다.
여인을 불러 일 년 후에 아이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고 그렇게 되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점지하여 엘리사를 통해 태어난 아이가 몇해 후 죽었다.
여인은 엘리사를 찾아 아이의 죽음 전하니 지팡이와 입맞춤의 기적으로 아이를 살렸다.
엘리야가 과부의 아들을 살린 기적이 전수되었다.
국의 독을 없애고 이십 개의 떡 덩이와 체소로 백 명을 먹이고 남았다.
아람의 군대장관 나아만의 나병을 고쳐주었다는 기록이 있다.
돌아가며 하나님을 섬길 것이나 직책상 아람의 신을 위한 제사에 참석하는 것을 용서해 달라고 한다.
엘리사는 편안히 돌아가시라고 하였다.
사람이 우선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나병환자의 혐오와 철저한 격리를 생각하면 아람의 군대장관을 하였다고 하는 것이 기적이다.
나이만이 예물을 주려하였으나 거절하여 돌려보냈는데 사환 게하시가 끼어들어 딴 주머니 챙기다 나병에 걸렸다.
기적을 행하는 선지자의 사환이 도적질 한 것이다.
물에 빠진 쇠도끼는 노력하면 웬만한 사람도 찾는다.
아람의 군대가 이스라엘을 침공하였으나 실패한다.
엘리사 때문이라고 판단한 아람의 왕이 병력을 보내 집을 에워싸고 잡가가려 하였으나 경비하던 이스라엘 병사에게
오히려 포로가 된다.
적은 죽이는 것이 성서의 기록인데 엘리사의 선처를 이스라엘 왕이 받아들여 잘 먹여 돌려보냈다.
아람의 군대는 공격을 포기하고 철수하였다.
악을 덕으로 승리하였다.
아람의 왕 벤하닷이 또 쳐들어와 사마리아가 포위되어 먹을 것이 떨어졌다.
어른이 어린사람을 솥단지 어쩌고 하였다고 쓰여 있다.
배고픈 백성의 언성이 높으니 하나님께서 내린 재앙이라고 생각한 왕이 엘리사를 잡아오라고 상황을 비관하였다.
엘리사는 내일아침이면 해결될 것이니 돌아가 기다리라고 충고하여 돌려보낸다.
아람의 왕이 소리와 진영의 허세로 침공을 위장하여 이스라엘의 공격을 선제하여 차단하려 술책을 부린 것이다.
주변을 배회하던 나병환자들이 가보니 아람의 진영이 비어있었다.
굶어 죽을 정도의 공성전인데 고작 외국인을 고용하여 나팔불고 소란스럽게 궁영을 위장하여 봉쇄하였다는 것이 산수
하기 어렵다.
어째거나 저째거나 술책을 모르고 하나님을 탓하고 엘리사를 잡아 죽이려 하였다.
명령한 왕은 멀쩡하고 명령을 수행하려던 사람이 속아 고생한 백성에게 밟혀죽었다.
우리의 풍습에서 정월 대보름에 동네사이 불싸움 같다.
수넴의 여인이 기근으로 칠년을 블레셋에 이주하였다 돌아와 엘리사의 도움으로 왕에게 청하여 기업을 되찾는다.
주변의 왕국에 영향력이 대단하였다는 것이다.
엘리사가 다메섹에 가니 이스라엘을 괴롭힌 병든 아람의 왕 벤하닷이 생사의 운명이 궁금하여 측근 하사엘을 보내어
예언을 구한다.
“벤하닷은 살아으나 죽고 하사엘 네가 왕이 될 것이며 이스라엘을 괴롭힐 것이다.” 라고 예지하였다.
하사엘이 병든 벤하닷을 젖은 이불로 얼굴을 덮어 죽이고 자신이 아람의 왕이 되었다.
선지자 엘리야가 이세벨에게 쫓겨 호렙산의 동굴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다메섹의 하사엘을 암몬왕으로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하고 엘리사를 후계자로 하면 너의 적을 멸할 것이라고 하였다.
유다의 여호사밧을 이어 아들 여호람이 왕이 된다.
왕비는 아합과 이세벨의 딸 아달리야 이다.
다윗의 나라에서 이방신과 우상숭배의 전파가 우려된다.
유다의 여호람왕의 기록이 침혹하다.
왕권을 위해 권력에 관심이 없었던 모든형제와 선대의 대신들을 죽였다.
벌 받아 말년에 창자가 터져 죽었다고 한다.
다윗에 의해 점령당하고 종이 된 에돔이 자신들의 새로운 왕을 세우고 조공을 거부하고 유다를 배척한다.
유다왕이 공격하나 하나님의 외면으로 실패하고 돌아온다.
다윗과 솔로몬의 시대가 완전히 지워지고 있다.
여호람이 유다를 팔년 다스리다 배 터져 죽고 이어 아들 아하시야가 왕이 된다.
왕은 이스라엘의 요람왕과 연합하여 기르앗의 라못에서 아람왕 하사엘과 싸우다 요람이 부상당한다.
길르앗의 라못은 이스라엘의 아합과 유다의 여호사밧이 연합하여 공격하다 실패하여 아합이 죽은 곳이다.
요람왕의 부상이 심해 던 모양이다.
유다의 아하시야왕이 문병을 간다.
엘리사가 길르앗 라못의 예후에게 사람을 보내 당신이 이스라엘의 왕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북이스라엘의 군사령관 예후의 반란이 시작된다.
요람의 부상으로 치세가 흔들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예후는 이스르엘 광야에 있는 요람을 공격한다.
유다의 아하시야왕이 문병와 있었다.
요람은 예후의 화살에 맞아 죽고 어머니 이세벨이 평범한 농부 나봇을 죽이고 빼앗은 포도밭에 버려진다.
아하시야는 도망치다 므깃도에서 죽는다.
신복들이 시신을 다윗성으로 옮겨 장사지냈다.
1993년 발견된 텔 단 비문에는 아하시야가 병문안 왔을 때 예후가 기습하여 둘 다 죽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악행을 일삼던 아합의 왕비 이세벨도 죽음을 면치 못해 주검이 광야에 버려진다.
이세벨은 예후가 죽이러 올 것을 알면서 치장하고 상전을 죽여다고 호통쳤다고 한다.
예후의 명령으로 내시들에 의해 창문으로 던지고 마차로 짓이겨 놓고 황후의 예우로 장사지내려 하였으나 남은 것이
없었다고 한다.
사마리아의 북이스라엘 왕궁은 저항을 포기하고 예후를 왕으로 인정하였다.
새로운 왕권에 의해 오므리 왕조의 씨를 말려 예후왕조가 시작되었다.
예후가 요람을 죽인 광야에서 사마리아로 가는 도중에 유다왕 아하시야 형제를 만나 몰살했다는 대목이 있다.
적의 혈족은 다 죽인다.
바알을 섬기는 사제와 제사장을 죽이고 신전을 부수고 목상을 불태웠다.
처절한 역사이다.
유다는 더 참혹하다.
아하시야가 죽자 어머니 아합의 딸 아달리야가 갓 태어난 아이 하나 빼놓고 손자들을 모조리 죽이고 여왕이 된다.
과정에서 아하시야의 누이 여호세바가 갓난아이 왕자 요아스를 숨겨 살린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피의 역사이다.
갓난아이 요아스는 고모 여호세바와 그의 남편 제사장 여호야다의 보호로 육년을 성전에 숨어 자란다.
요아스는 칠세에 아달리아의 우상숭배에 반대하는 여호야다의 반란으로 성전에서 왕으로 추대된다.
아달리야가 들이닥쳐 저항하나 성전 밖에서 죽임 당한다,
인과응보 이다.
남자들의 세상에서 여왕으로 칠년을 제위 한 특별한 여자이다.
바알을 섬기는 주변의 도움이 있었을 것이다.
바알의 신당은 부서지고 제사장 맛단도 처형된다.
후일 왕의 묘실에 묻히는 여호야다의 시대이다.
요아스왕 제위 23년 때이다.
회당의 헌금을 제사장들이 직접 받았는데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공적개념이 아니라 개인적 개념으로 헌금을 받아 사용하여 성전관리 자금이 부족하였던 것이다.
제사장과 합의하여 성전에 헌금 통을 만들어 직접관리하게 되었다.
담당하는 제사장에게 회계하지 않고 믿고 맡겨두었다고 하였다.
제사 때 들어오는 현물은 제사장 몫으로 남겨두었다.
여호야다가 살아 있을 때는 하나님을 섬겼으나 130세에 죽자 요아스왕은 아세라의 목상을 세우는 등 우상을 숭배하였다.
갑자기 돌변한 이유가 대신들의 충동이라고 하나 자신의 정체성을 억누르며 살았을 수 있다.
여호야다의 아들 제사장 스가랴가 우상숭배를 비판하자 돌로 쳐 죽여다.
은혜를 원수로 갚은 것이다.
엘리사가 이스라엘을 괴롭힌 것이라고 하였던 아람의 왕 하사엘이 쳐들어와 관리들을 죽이고 예루살렘과 성전을 약탈
하여 갔다.
유다왕 요아스도 크게 부상당했다.
신복 시므앗과 여호사바드의 반란으로 궁의 침상에 누워 살해된다.
다윗성에서 장사하고 아들 아마샤가 왕위를 계승한다.
후일 아마샤는 선왕 아버지를 암살한 시므앗과 여호사바드를 잡아 죽였다.
아버지의 죄로 자식을 죽이지 말고 자식의 죄로 아버지를 죽이지 말라는 율법에 따라 자식들은 화가 없었다.
자기의 죄에 따라 벌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북이스라엘 예후도 죽고 아들 여호아하스가 계승한다.
이방신과 우상숭배는 여전하였다.
야훼신앙의 전파에서 여전한 이방신과 우상숭배는 뿌리 깊은 토속적 문화였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바울의 전도와 비교할 수 없는 토속적 신앙의 대적이라는 생각이다.
여호아하스가 십칠 년 제위하고 죽고 아들 요아스가 왕이 된다.
유다왕 요아스와 동명이다.
하나로 하지 위아래로 왔다 갔다 헷갈려 정신없다.
엘리사가 죽으며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왕에게 아람을 물리칠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죽은자가 엘리사의 뼈에 닿으니 살아났다는 전설이 있다.
아람의 하사엘이 죽고 아들 벤하닷이 왕이 되었다.
하사엘이 젖은 이블로 얼굴을 덮어 죽인 병든 전왕 벤하닷과 이름이 같아 꺼림직 하였을 텐데 왕이 병들고 통치력이
떨어지면 죽이고 왕권을 바꾸는 것이 개념화 된 듯하다.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왕은 아람을 공격하여 영토를 회복하였다.
유다의 마이샤왕은 에돔의 셀라를 정벌하여 욕드엘 이라고 지명을 바꾸었다.
위아래가 잘나가니 유다왕 마이샤가 이스라엘왕 요아스에게 사자를 보내 만나자고 한다.
요아스가 너의 딸을 나의 아들에게 주어 관계를 개선하자고 제안하였다.
마이샤가 제안을 거절하자 유다의 벧세메스에서 한판 붙는다.
유다가 패하여 요아스 무리에 의해 예루살렘 성곽이 파괴되고 성전과 왕궁의 곳간은 털리고 사람들을 잡아갔다.
야곱의 백성이 둘로 갈라져 죽이고 빼앗고 잡아가고 열두지파의 상속과 기업이 파괴되고 있다.
유다의 아마샤는 북이스라엘의 요아스에게 패하고 십오 년 후 반란이 일어나 라기스로 피난하였으나 죽임 당한다.
주검을 다윗성로 가져와 장사지내고 아들 십육 세의 아사랴를 왕으로 세웠다.
신복들이 전왕을 죽이고 아들을 왕으로 세운다.
율법의 이유라고 짐작할 수 있으나 보복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초기에 엘랏을 재건하여 회복하고 블레셋과 싸워 이기고 암몬이 조공을 받치는 등 잘했으나 교만해져 성전에 들어가
율법을 어기고 향을 피우려 하였다.
다윗의 나라에서 제단의 관리와 제사는 레위인 제사장의 절대권한 이다.
사울이 사무엘이 늦자 혼란을 염려하여 자신이 번제를 주도하였다가 영원히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은 금송아지 두 마리의 우상과 제사장을 일반인으로 하고 절기도 바꾸었는데 멸하지 않았다.
제사장과 용감한 팔십 명이 제지하였고 이일로 벌을 받아 한센병으로 고생하였으며 왕자 요담이 왕정을 대신한다.
유다의 왕자요람이 한센병의 아버지 웃시야(아사랴)를 이어 왕이 되고 하나님을 섬기고 성전에 들어가지 않았다.
암몬에 승리하여 조공을 받았다.
죽자 아들 아하스(BC 763~727년)가 계승한다.
북이스라엘은 요아스가 죽고 아들 여로보암2세가 왕이 되었다.
영토를 확장하고 안정적 왕정을 이끌었다.
아들 스가랴에게 계승하나 북이스라엘은 일년에 왕이 세 번 바뀌는 혼란에 빠져든다.
스가랴 육개월에 살룸이 반역하여 죽이고 살룸은 한 달 만에 므나헴에게 죽는다.
므나헴에게 반란에 동조하자 않았던 딥사에서 잔인한 학살을 하였다.
앗수르가 공격하자 백성들의 고혈로 은 천 달란트를 적장에게 헌납하고 위기를 면한다.
아들 브가히야가 왕이 되었으나 이년 만에 신복 베가(BC ?~732년)의 반역으로 죽는다.
본서에 르말랴의 아들 베가가 이스라엘 왕이 되어 사마리아에서 이십년간 다스렸다고 되어있다.
자료에는 팔년과 사년 등 불분명하다.
이때에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유역에 앗 수르제국이 확장하고 있었다.
베가왕은 아람(재임기간 BC 754~732년)과 유다와 협력하여 대응하려 하였으나 유다왕 아하스가 거절한다.
베가는 아람과 연합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나 아하스왕이 성전과 왕궁의 금은으로 앗수르왕의 개입을 설득한다.
아하스왕의 분석에서 다른 면이 있다.
종교적으로 야훼신앙의 배신자이나 외교적 평가도 있다.
당시 가나안과 길르앗 정세가 혼란스러웠다.
북이스라엘에서 일년에 왕이 세 번 바뀌었다.
아람왕 르신이 쳐들어와 아사랴왕이 회복한 엘랏을 점령하여 유다사람을 추방하였고 아람사람들이 거주하였다.
야곱의 백성 북이스라엘과 관계도 대적되어 있었다.
앗수르에게 도와 달라고 성전과 왕궁의 예물과 복종의 서신을 보낸다.
유다왕 아하스의 요청을 수용한 앗수르왕이 다메섹을 점령하여 아람왕 르신을 죽이고 백성들을 잡아갔다.
북이스라엘도 다수의 성읍을 빼앗기고 백성이 끌려갔다.
베가왕 때의 전쟁이다.
베가는 전쟁에서 지고 여전한 이방신과 우상숭배 빠져있었다.
진노한 하나님의 명을 따른 선지자 호세아의 반란으로 죽는다.
힘을 합하여 앗수르에 대응하였으면 어찌되었을까 역사의 미련이다.
아하스가 앗수르의 왕을 만나기 위해 다메섹에 가서 그곳의 제단을 보고 제사장 우리야를 시켜 성전의 기물을 옮기고
훼손하였다.
왕국 전역에 산당을 만들고 다윗의 미련으로 보호하는 하나님을 배신한다.
왕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다는 대목을 인신공양으로 해석하고 있다.
아하스왕(BC 763~727년)과 이사야(BC 740~680년)의 생애가 겹친다.
이시기에 우상승배가 심했다.
뿌리 깊은 사물적 믿음에서 최고로 숭고하고 고결한 제물 인간의 생명과 육신을 찾는 잘못된 신앙이다.
예수께서 의와 영으로 이것을 가르치고 사하기 위해 오신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금송아지와 제사장과 절기의 율법을 어겨 BC 722년 앗수르에 멸망 당하였다.
남유다는 BC 586년 신바빌로니아에 멸망한다.
앗수로와 관계를 고려하면 북이스라엘 보다 130년을 버티었다는 외교적 해석이다.
맥락을 보면 전체가 뭉쳐도 힘든 정세에서 싸우고 죽이는 내부의 분열이 심각하였다.
야훼신앙과 이방신이 대적하는 다 종교 문화의 영향이 컷 다고 본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왕 예언자 호세아의 등장이다.
앗수르에 멸망한 북 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이다.
당시 남 유다 출신으로 북 이스라엘에서 활동하였던 선지자 아모스는 우상숭배와 탐욕에 빠진 북 이스라엘의 멸망을
예언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상숭배 등 하던 짓은 여전하였다.
보다 못한 하나님께서 에브라임 출신 호세아를 부른다.
호세아 이름은 "여호와여 구하소서!" 라는 뜻이라고 힌다.
강압과 강제가 아니라 사랑과 눈물로 백성을 설득하나 역시 하던 짓은 여전하였다.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조공을 받치고 있었다.
호세아왕이 거부하자 쳐들어와 사마리아를 삼년동안 포위하고 공격하였다.
하나님의 부름에도 구하지 못하고 호세아 구년 째 멸망 후 포로로 끌려간다.
앗수르왕은 북이스라엘 백성을 제국의 지역으로 앗수르인을 사마리아로 이주시키는 정책으로 민족과 종교적 결집을
약화시켜 통치력을 강화하였다.
이것이 사마리아인을 차별하였던 이민족과 통혼의 시작이다.
당연히 이주민에 의해 종교도 혼란스러웠다.
하나님을 배신한 유다의 아하스가 죽고 아들 히스기아가 즉위한다.
모세는 광야에서 뱀에 물려죽는 사람들이 있자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걸어두고 쳐다보면 화를 면한다고 하였다.
현상과 형상을 의지하려는 심리가 의와 영의 깊이를 소홀히 하는 성지와 우상을 만든다.
하나님의 세계에 이르는 길은 오직 예수 한분밖에 없다.
모세의 죽음에서 성지화를 우려하여 주검을 감추었다고 하였다.
히스기아왕은 성전을 보수하고 산당과 신상과 아세라의 목상과 모세의 놋 뱀도 부수어 우상을 제거하였다.
길르앗과 이스라엘 등 야곱의 백성에게 사람을 보내 유월절을 같이하자고 제안한다.
초기에 시큰둥하였으나 제물의 수가 소 이천에 양이 일만 칠천이라고 하는 것이 올 사람은 온 것이다.
솔로몬 이후 예루살렘 성전에서 최대의 유월절이었다고 한다.
유월절은 유대의 월력으로 정월 십사일이나 외지사람들의 도착이 늦자 이월십사일을 따로 정하여 절기를 진행하였다.
유대의 통합을 위한 시도였다.
블레셋을 쳐서 세력을 확장하고 앗수르에 받치던 조공을 중단하였다.
히스기아 육년에 북이스라엘이 멸망한다.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자 많은 백성들이 유다로 이주하여 살았다.
유다의 힘이 커졌다.
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강조하여 다윗과 소로몬 시대를 기억하는 것이다.
제위십사 년 앗수르의 산헤립왕이 유다가 애굽으로 돌아서고 조공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신을 섬기는 신전과 목상을
파괴하자 쳐들어와 유다의 여러 성읍을 점령한다.
히스기아왕은 사신을 보내 화평을 청한다.
산헤립은 조건으로 은 사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요구하였다.
굴하면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왕궁과 성전의 곳간으로 모자라 기둥과 문짝의 금까지 벗겨 보냈으나 앗수르왕은 사신을 보내 세를 과시하고 유다를
모욕하며 항복을 요구한다.
앗수르 군의 진군로와 전쟁의 양상을 살펴보면 북이스라엘의 멸망보다 까불면 혼내준다는 강자의 과시로 보여 진다.
히스기아왕은 초기 블레셋을 공격하여 세력을 확장하며 왕국의 방어를 위해 방벽을 튼튼하게 하였다.
예루살렘에 샘이 없었다고 한다.
성 밖 기혼 샘에서 지하수로를 건설하여 연못을 만들어 물을 확보하는 등 공성전에 대비하고 있었다.
중과부적에서 선지자 이사야에게 예지를 부탁한다.
예루살렘은 무사하고 앗수르는 물러날 것이며 산헤립은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본서에 앗수르 군사 십팔만이 이유 없이 죽었다고 하였으나 시바의 여왕이 생각나는 구스(에티오피아)왕이 앗수르에
대적하여 움직여 대응을 위해 히스기아에 편지 한 장 남기고 철군하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과정에서 예루살렘은 멸망을 면했으나 유다는 철저하게 파괴된다.
산헤립은 후계자의 갈등으로 두 왕자에게 살해되고 다른 아들 에실핫돈이 앗수르의 왕이 된다.
히스가아는 종기로 사경에서 아사야의 사망선고를 받으나 벽을 향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15년을 덤으로 더 산다.
바빌로니아에서 병문안으로 사신이 왔는데 왕궁의 이곳저곳을 데리고 다니며 자랑하여 보여주었다.
아사야가 탓하며 유다의 모든 것이 바빌로니아로 옮겨질 것이며 왕자가 갈고리에 뀌어 잡혀갈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다음은 초월적 존재 1에서 이사야에 대해 써놓은 것이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예수의 탄생과 십자가의 길을 예언하였다.
7장14~17절과 52장13절~53장12절이다.
예수 탄생 8백 년 전이다.
세례 자 요한의 출현과 종교적 업적도 예언한다.
남 유다의 14대 므낫세(BC 709~643년) 왕 시기 전대 히즈키야 왕과 달리 종교의 관용주의가 팽배해 민심이 흉흉해
졌다고 한다.
이 말씀은 종교적 갈등이 심해졌다는 것이다,
야훼신앙의 시각에서 엘리야의 철저한 배교정신과 이방신의 배척과 달리 엘리사의 경우는 사뭇 달랐다.
당시 종교는 혼재되어 있었다는 증거이다.
유일신앙의 경계에도 불구하고 교류와 소통을 통해 일상과 민생에서 문화적 공유가 이루지고 있었다.
현세의 지식으로 종교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
당시에는 종교가 왕국운영의 체제를 대신하였다.
종교적 관용주의는 므낫세왕 시기 바알과 이방신을 섬기는 우상숭배이었다.
성전에 우상을 만들고 선지자를 핍박하였으며 매일 그 중 몇을 죽였다고 한다.
예언자 이사야는 전대 히즈키야(BC 739~687년) 왕이 죽기 전 활동을 멈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톱으로 허리를 잘라 죽였다.
이러한 악행이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종교적 이유가 되었다.
유대의 종교적 관점에 국가의 토대를 이루는 유일신의 개념이 허무할 정도이다.
절대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다양한 종교적 사회라고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종교의 지배적 질서에서 하나님의 유일성을 배신하는 정신의 혼란은 국가의 분열이었다.
이스라엘 고대사의 문제는 국경의 방어와 관계에서 바알과 이방신 등 이단의 끊임없는 침략을 유일신앙으로 방어하지
못한 것이다.
문명의 진화와 역사에서 진실이 필요하다.
므낫세의 손자 요시야 왕의 유대율법 회복과 회개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의 우상숭배는 개선되지 않았다.
이방과 공유하는 토속적 신앙의 뿌리가 깊었다.
유일신의 주장에서 국경의 폐쇄성으로 지킬 수 없는 인류적 한계가 있었다는 것이다.
특정한 논리가 보편적 대세를 지배할 수 없다.
국경의 경계라고 하지만 일상과 민생의 공유에서 문화의 대세는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왕국의 개념적 경계가 없는 초지를 공유하며 이동하는 목축업의 시대였다.
정착하여 일상의 경계를 설정하는 족속의 확실한 경계가 없었다는 것이다.
시간과 학습에서 역사와 문화의 대세적 연속성 이탈은 판단이 필요하다.
생태적 합리성과 민주주의에서 독불장군은 없다
인류의 문화적 격리에서 교류와 소통으로 공유하여 학습하는 시간의 진화는 어쩔 수 없다.
야훼의 유일신앙을 요단강 서쪽으로 경계하여 지킬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유전적 시간의 학습에서 현재의 창을 완성하지 못하면 다음 창으로 넘어 갈 수 없다.
혼재된 종교의 학습과 결론이 필요한 시간이었다.
결국 유대교와 이방신의 갈등에서 유일신의 절대를 요구하였던 구심점 상실에 의해 이스라엘이 멸망한다.
인류적 대세에 의해 유일신앙의 고립이 무너진 것이다.
종교적 시각에서 위정자의 무지와 악행으로 이방신의 침략을 예지하고 방어하지 못한 하나님의 형벌이다.
지배와 관계에서 보편적 이해의 확장이 아니라 나의 것에 집착한 결과이다.
특정한 역사와 문화가 인류의 미래를 좌지우지 할 수 없다는 교훈이다.
예수의 가르침은 초자연적 현상에 의지하는 감각적 학습의 한계에서 의와 영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인류의 미래이다.
초자연적 현상의 지배와 문화적 격리에 의해 발생하는 종교의 이질적 경계를 생명의 심연에 있는 의와 영의 종교적
진리를 공유하여 하나를 이루어 경계적 갈등을 해소하는 것이다.
흩어진 종교의 통합이다.
종교적 관점에서 새로운 창의 발현이다.]
므낫세왕은 앗수르 지배에 저항한 전대 히스기아와 달리 속국의 관계를 유지한다.
속국은 조공뿐 아니라 문화적 예속을 의미한다.
종교가 문화를 우선하였던 시대였다.
약소국의 평화를 위해 당시 최고의 전성기에 있는 앗수르제국의 비위를 건들이지 않으려고 하나님의 성전과 선지자를
탄압하였다.
결과적으로 전쟁의 위협이 없는 교류의 활성화로 경제를 이룩하고 자신의 제위는 지켰으나 유일신앙의 자존심 자손의
미래에 잘못된 학습을 전하였다.
21장16절에 “범죄하여 무고한 백성의 피가 예루살렘에 가득하였다.”는 말씀은 선지자들의 피이다.
앞서 이사야의 예언에서 왕자가 갈고리에 뀌어 잡혀갈 것이라고 하였다.
역대하 33장10절~19절에 앗수르에 끌려가 고초를 겪다 하나님께 기도하여 유다의 왕으로 돌아왔다고 되어있다.
이후 예루살렘 외곽에 성을 쌓고 성을 요새화 하여 군대를 배치했으며 이방신의 신전과 목상을 부수었다.
앗수르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다.
백성의 우상숭배는 여전하였다.
하나님께 악한 왕 므낫세가 죽고 아들 아몬이 왕이 되었으나 이년 만에 신복들에게 살해된다.
종교적 차별에서 무고한 백성의 원한이 있었던 것이다.
백성들은 반역자들을 처단하고 여덟 살의 요시아를 왕으로 세운다.
요시아왕 제위 십팔 년에 사무관 사반과 제사장 힐기야를 통해 성전을 수리하다 율법 책을 발견한다.
사반과 제사장 등 사람을 여선지자 홀다에게 보내 발견된 율법책과 관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요시아왕의 죽음 후에 유다가 멸망할 것이라고 하였다.
돌이킬 수 없는 죄악으로 형벌의 불 떨어진 유다의 지도층은 성전에 있던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기물을 내어다 기드론
밭에서 불사르고 남창의 집을 헐었다.
말하기 어려워 비켜두었는데 바알과 아세라는 절기에 성행위로 풍요를 상징하였다고 한다.
바알은 남신이고 아세라는 여신이다.
남창이 있는 곳에 아세라의 휘장을 짜는 여성의 처소가 있었다.
현대의 상식에서 구약에는 성의 유전적 건강과 윤리적 기준이 없는 관습이 있었으나 신약에서 경멸의 수준이다.
모세는 창기를 배척하였다.
성의 문화는 고대종교의 역사와 관계가 있었다.
요시아왕은 이방신의 모든 제단과 산당과 신상과 부수고 성전 이외의 제사장을 패하였다.
몰록에게 자신의 아이를 제물로 받치는 행위를 금지시켰다.
북이스라엘의 초대왕 여로보암에 세운 벧엘의 제단과 산당을 부수고 이민자들이 들여온 아세라의 목상을 불살랐다.
여로보암이 벧엘의 제단에서 분향할 때 하나님의 영을 전하고 돌아가는 길에 꼬임에 빠져 사자에게 물려죽은 선지자가
있었다.
벧엘의 늙은 선지자가 주검을 수습하여 자신의 묘실에 두고 내가 죽으면 합장해 달라고 하였다.
두 영령의 비석은 해치치 않았다.
므낫세가 이루어 놓은 경제적 안정의 치세가 있어서 가능하였다는 자료가 있다.
정세적으로 신바빌로니아가 부상하고 앗수르가 멸망의 시기에 있었다.
특별하게 유월절을 지켰다고 하는 것이 성전이 거미줄이 덥혀 있었다는 표현을 알 것 같다.
완전하게 파괴된 하나님의 세계를 부활하는 종교개혁의 시도였다.
하나님께서 아까워한 왕이나 이스라엘의 멸망을 돌이킬 수는 없었다.
요사아왕은 므깃도에서 몰락하는 앗수르를 도우러 가는 애굽군의 원정을 저지하다 활에 맞아 죽는다.
유다는 애굽왕 바로느고의 지배에서 꼭두각시가 된다.
다음왕은 유다의 백성이 세운 아들 여호아하스이다.
삼개월 제위하다 애굽에 의해 폐위되고 은 백 달란트와 금 한 달란트를 벌금으로 내고 포로로 끌려가 죽임 당한다.
다음왕은 요시아의 다른 아들 엘리아김을 여호아김으로 계명하여 왕에 지명된다.
애굽의 속국으로 바로느고에 조공을 받쳤다.
초월적 존재 1에서 예레미야이다.
[BC 6세기경 예언자 또는 선지자로 이스라엘 멸망을 목격한다.
북이스라엘에서 종교적 관용주의는 아합 왕과 그의 왕비 이세벨의 이단으로 바알신과 아세라의 우상숭배였다.
종교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로 멸망한다.
호세아 왕 집권 4년 후 앗 수르(아시리아)왕 디글랏빌레셀(BC795~727년)이 죽는다.
호세아는 앗수르와 조공의 관계를 끊고 애굽과 손을 잡았다.
꼴이 난 앗수르의 다음 왕 살만에셀 5세가 쳐들어와 사마리아를 포위하였다.
애굽은 도움이 되지 못했다.
포위 3년 후 살만에셀이 죽고 다음왕 사루곤 2세 때 BC 722년 앗 수르제국은 사마리아를 점령하였다.
이로써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였다.
이때 선지자와 백성들 대부분이 포로로 끌려갔다고 한다.
앗 수르는 대홍수를 예지한 노아의 장남 샘의 둘째아들로 아시리아를 건국하였다.
아이러니는 하나님의 영역에서 다툼이다.
남 유다의 요시야 (BC 648~609년) 왕은 할아버지 므낫세왕 시절 창궐한 이방신의 우상을 제거하고 유대율법 회복을
위해 노력하였으나 하나님의 용서를 구하지 못했다.
당시 중동지역의 정세가 혼란스러웠다.
왕이 죽으면 아들들에게 영토를 나누어 주는 이상한 승계가 있었던 것 같다.
당연한 분열이고 국력의 약화이다.
바벨론 제국이 멸망하고 신 바벨론이 태동하는 시기에 앗 수르의 아슈르바니팔(BC 685~631년) 왕 사후 두 아들에게
양분된 아시리아가 왕권다툼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신 바벨론을 견제하기 위해 아시리아를 도우러 가던 애굽군을 요시야 왕이 가로막는다.
BC 609년 1차 갈그미스 전쟁의 전초전 므깃도 전투이다.
당시의 국제정세에서 바벨론 쪽에 줄서는 것이 남 유다에 유리하다는 판단이었다고 한다.
이 전투에서 요사야왕은 화살에 맞아 사망한다.
그나마 이스라엘을 구할 기회가 사라진다.
애굽의 왕은 바로느고 이었다.
바로느고는 영향력을 행사하여 남 유다 국민이 옹립한 요시야의 아들 여호아하스를 3개월 만에 폐위하고 그의 형제
엘리아김을 여호아김으로 계명하여 꼭두각시 왕을 만들었다.
애굽의 속국이다.
이래도 정신 못 차리고 율법을 배반하고 악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BC 605년 당시 중동지역의 정세를 결정지었다는 애굽과 바벨론의 2차 갈그미스 전투가 벌어진다.
바벨론의 승리였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은 승리의 여세로 남 유다에 들이닥친다.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저울질 하던 꼭두각시 왕 여호아김은 바벨론을 선택하라는 예레미야의 충고를 무시하고 애굽을
선택하여 꼴 난 바벨론제국에 의해 BC 597년 예루살렘이 함락된다.
남 유다는 또 다시 바벨론의 속국이 된다.
이때에도 선지자 에스켈과 왕족 등 많은 포로들이 끌려갔다.
예레미야는 끌려간 포로들이 70년 후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바벨론은 요시야의 조카 여호야긴을 왕으로 세운지 삼 개월 만에 포로로 잡아갔다.
요시야의 또 다른 아들 맛다니아를 시드기아로 계명하여 왕으로 세운다.
속국으로 명맥을 유지하던 BC 586년 유다 왕 시드기야가 시도한 저항이 실패하여 이스라엘이 멸망한다.
이로써 유대국가 이스라엘이 사라졌다.
성경은 므닷세가 벌인 이방신의 우상숭배와 선지자의 살육으로 하나님의 분노에 의해 멸망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성경에서 요시야왕의 유대율법 복원과 이방신의 제단과 우상의 파괴를 높이 평가하고 있다.
그 짝이 전쟁이 많았다.
빙하기를 피해 따뜻한 지중해 연안 젓과 꿀이 흐르는 땅은 모여든 인류의 다툼이 치열했던 곳이다.
사람이 많으면 생산성과 비례하여 다툼이 증가한다.
견고하였던 예루살렘 성곽은 점령자에 의해 파괴되고 교훈으로 남겨진 일부가 통곡의 벽이다.
기원후 3세기 포로로 끌려가고 타국으로 이주하고 광야에 은거한 유대인들의 본격적 예루살렘 귀향이 이루어진다.
성은 역사의 처참으로 허물어지고 관계와 저항의 교훈으로 남겨진 벽에서 통곡하였다고 한다.
멸망 후 천년의 방량이었다.
이슬람의 구원자 마호메트의 자료에서 유대사회가 당시에도 있었다는 기록이 있었다.
기원후 5~6세기 정도로 기억된다,
예루살렘 순례와 관련된 역사이다.
유대민족은 자존감이 강한 민족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여러나라가 종교와 민족적 경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쁜 것은 사람이 모이면 탐욕의 다툼이 발생한다.
팔레스티나의 고대사이다.
예레미야는 유대국가 멸망 후 고행으로 가르침을 전달하며 이스라엘 복원에 힘쓴다.
눈물의 선지자라는 기록이 있다.
남 유다 멸망 시 친 애굽계 왕족과 귀족들이 애굽으로 망명하는데 이때 그들에게 끌려가 바벨론을 편들고 유대의 멸망을
예언한 죄로 돌에 맞아 죽었다.
사람사는 것이 덧없다 하여도 심하다.
십자가의 길과 가르침의 진리를 주장한 스테파노 성인의 돌 처형도 그렇고 종교적 관점에서 잔인하다.
어찌 성경의 뒷면이 우울해 지고 있다.
평화와 풍성한 수확이 없다.]
여호아김은 신바벨로니아를 배신하여 삼년 만에 아작나고 죽는다.
이번에는 요호아김의 아들 여호아긴을 왕으로 세우나 삼개월 만에 폐위하고 어머니와 식솔과 신복과 내시들과 용사와
장인과 대장장이를 포로로 잡아간다.
이미 왕국이 아니다.
마지막왕 여호아긴의 숙부 맛다나아를 시드기아로 개명하여 왕으로 세운다.
시드기아 구년에 바벨론에 저항한다.
예루살렘을 포위한 공성전에서 먹을 것이 없어 성 밖으로 도망치는 시드기아와 식솔들을 잡아 아들을 현장에서 죽이고
두 눈을 빼앗아 죽을 때 까지 옥에 가두었다.
성전과 왕궁은 노략질로 파괴되고 불살랐으며 백성들은 끌려갔다.
바벨론은 요시아왕의 서기관 사반의 손자 그달리아를 총독으로 유다를 다스리게 하였다.
그달리아는 전쟁의 상처뿐인 백성들에게 갈대아 인을 섬기라고 한다.
왕족 이스마엘이 수하 십여 명과 그달리아를 죽이고 암몬으로 피신한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동시에 유대사회가 앗수르의 이민정책과 포로로 끌려가 흩어졌다.
왕위 삼개월 만에 바벨론에 끌려간 여호아긴은 말년에 옥에서 풀려나 왕의 대접을 받으며 여생을 보냈다.
2) 갈대아.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하류 지역으로 바벨론을 지칭한다.
2025.7.17.일.
6 역대 상.
1) 본문.
이스라엘 열두지파의 중심인물의 족보와 다윗의 왕정에 기여한 인물을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 하에서 공부하였던 다윗부분이 그대로 복사되어 있다.
사무엘 하 24장 계수(인구)조사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세가지 형벌을 선택하라 하였다.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형벌로 삼년의 기근과 전쟁에서 적군에 패하여 삼 개월을 쫓기는 것과 질병으로 백성을 상하게
할 것인지 선택하라 하였다.
다윗은 하나님과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해 달라고 한다.
나는 빠지고 백성 칠만이 염병으로 죽었다.
하나님은 더하여 천사를 보냈 칼로 예루살렘을 멸하려 하였다.
다윗이 천사가 내려와 칼을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장로들과 땅에 업드려 죄를 청한다.
내가 인구조사를 하라 했으니 백성은 죄가 없다는 것이다.
군사령관이고 다윗의 정치적 동지 요압이 계수조사는 죄라고 한 이유가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 네가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형벌이 과하다고 후회하여 천사에게 멈추라고 한다.
천사는 여부스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내려와 여기에 제단을 쌓으라고 하였다.
오르난과 네아들이 천사를 보고 숨었다는 대목에서 죄 없는 자가 하나님과 천사를 보고 숨을 이유가 없다.
하나님과 천사는 원하는 간절함으로 누구에게나 이를 수 있다.
모세는 광야에서 두 번 계수조사를 하였다.
그때는 말씀이 없었다.
현대의 인구조사는 중요한 국가운영 자료이다.
다윗이 성전건축을 준비하여 하나님께서 솔로몬 시대에 나의 집을 지으라는 말씀에 대비한다.
자신은 전쟁으로 흘린 피가 많아 성전건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깨끗한 후대에서 짓게 한 것이다.
사무엘하 7장에 있었다.
레위인의 성전과 제사의 관리는 율법이다.
각각의 자손에게 우두머리의 책임을 지워 성전의 제사와 유지와 기물의 관리 등 역할을 분담하게 하였다.
셋째아들 압살롬의 반란에서 위장투항으로 다윗을 도와 아히도벨의 계략을 방해하였던 후새는 왕의 친구가 되었다.
우라야 사건으로 돌아서 반란에 참여한 아히도벨은 자신의 계략이 채택되지 않자 실패를 예지하고 자살하였다.
요압은 솔로몬과 넷째아들 아도니아의 왕위 쟁탈전에서 아도니아 편에 줄 세우다 제단의 뿔을 잡고 죽임 당했다.
2) 나단.
다윗과 솔로몬시대의 선지자이다.
다윗이 충실한 군인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강간하고 우리야를 전장의 사선으로 몰아 죽였다.
부자와 가난한사람이 살았는데 부자에게 손님이 찾아오자 부자는 가난한사람의 한 마리뿐인 양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
하였다고 다윗에게 말하였다.
다윗이 노발대발하며 그놈을 죽여야 한다고 하였다.
나단은 그 부자가 왕이라고 하였다.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려하자 피의 손으로 적당하지 않으니 후대 맡기라고 조언하였다.
성전건축의 막대한 비용에서 국가재정의 안정을 우선하였다고 보아야 한다.
3) 갓.
다윗의 곁에 있던 선지자 중 한명이다.
하나님의 계시로 계수조사의 죄를 지적하고 세 가지 형벌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말한다.
여부스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제단을 쌓으라고 조언하였다.
2025.7.18.일.
7 역대 하.
1) 본문.
열왕기 상편 솔로몬시대의 복사판으로 시작한다.
야곱의 백성은 관리자이었으며 가나안 족속을 노예로 삼아 굿은 일을 시켰다.
노아의 기록에서 아버지의 나체를 본 둘째 함의 자손을 첫째 샘의 자손이 지배할 것이라고 하였다.
샘의 자손은 야곱의 백성이고 함의 자손은 가나안 토착민이다.
르호보암은 유다를 재정비하고 숙부 압살롬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여 많은 여인 중 사랑했다고 한다.
여로보암이 일반인으로 제사장을 지명하자 레위인과 따르는 사람들이 북이스라엘을 떠나 유다로 갔다.
왕국에 사람이 많으면 강해지는 시대였다.
르호보암 삼년동안 성곽을 증축하고 변방을 튼튼히 하여 세력을 보강하였다.
여호사밧왕의 기록이 쓰여 있다.
북이스라엘과 달리 이방신을 멀리하고 성전을 가까이 하였으며 국고성을 건축하고 요새화하여 방벽을 강화하였다.
아람의 공격을 막아냈다.
유다의 여호사밧왕은 두 번의 연합군 원정 길르앗 라못과 모압의 전쟁에서 승리하지 못했다.
유다의 아마샤왕과 북이스라엘 요아스왕의 정략적 혼인문제가 비회 된 전쟁에서 유다가 패하여 백성들이 끌려갔다.
야곱의 백성들이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선지자 오뎃이 있었다.
잡혀온 유다의 백성들을 형제로 예우하여 돌려보낸다.
이후는 대체로 열왕기 하편과 같다.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은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바사 고레스왕 때 돌아온다.
2) 바사.
바벨론은 왕들의 실정으로 백년도 안 되어 망하고 페르시아국가의 건국이 전제된 매대 바사(페르시아) 과도국가의
시기가 있었다.
메대 바사는 카스피해 동남부와 페르시아만 북부에 정착한 메대인과 바사인이 연합한 국가이다.
바사는 지금의 이란으로 페르시아이다.
본토인이 아니라 유목생활하다 정착한 인도 아리안족 사람들이다.
2025.7.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