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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 존재 3. 본문

나의 글방.

초월적 존재 3.

박세욱. 2025. 6. 18. 15:25

1 히브리서.
1 본문.
먼저 저자의 추정에서 지금까지 마태, 마가, 누가 요한과 바울의 문맥과 절대자의 표현이 예수에서 대제사장이라는 것이 다르다.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계시다 환란의 인간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성령으로 잉태하여 성부의 아들로 태어나 십자가의
길에서 피와 생명으로 죄의 사함을 통해 잘못된 과거를 패하였다.
십자가의 길에서 인류가 잘못한 과거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삼일 후 부활하여 영생으로 하나님 곁으로 가셨다.
인간의 형상으로 유일하게 하나님의 세계를 증거 할 수 있는 분이다.
히브리서에서 예수에 버금가는 하나님의 사자가 등장한다.
대제사장 멜기세덱이다.
 
지금까지 대제사장은 그리스도교를 처참하게 박해한 악의 이미지였다.
예수도 대제사장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의 세계를 보지 못한 인간의 형상으로 예수에 버금가는 권능을 부여할 수 없다.
삼위일체에서 유일한 중보자 성자가 둘이 될 수 없다.
예수를 하나님의 맏아들로 쓰고 있다.
성서에서 장자의 비애하고 다르다.
성서에 멜기세댁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 구하는 전쟁에서 나타나 승전을 축복한다.
롯은 아브라함의 조카로 양을 같이 키우다 숫자가 많아지므로 목동사이에 초지의 분쟁이 일어난다.
큰아버지 아브라함은 불편한 동거를 해소하기 위해 롯에게 분가를 요구하며 먼저 초지를 선택하라고 한다.
 
롯은 냉큼 후일 하나님의 노여움으로 멸망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택한다.
사해 남동쪽 지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가나안 여러국가들이 수메르의 지배에 저항하여 전쟁이 터지고 롯이 살던 소돔이 함락되고 그쪽 전쟁이 늘 그렇듯이
롯을 포함한 주민들이 포로로 끌려간다.
집안의 장자 아브라함은 식솔들 중 힘 꽤나 쓰는 장정 수백으로 구하기 위해 호송군을 공격한다.
하나님의 언약을 지키는 분이 전쟁에서 패할 이유가 없다.
아브라함은 이겼고 롯은 망할 수밖에 없는 소돔으로 다시 돌아갔다.
이성과 동성의 성문란이 가관이 아니었다고 한다.
교회가 성에 민감한 이유가 있다.
 
소돔의 왕은 뻣뻣하여 아브라함의 걱정과 수고를 돈으로 때우려 하였다.
생사를 돈으로 산수하는 망할 종자들 이다.
부연하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려 작정하고 칼을 뽑아드는데 생명인지라 가르침을 따르는 인륜이 있는지
천사를 인간으로 위장하여 정탐하게 한다.
하나님도 세속을 정탐한다.
어찌되었든 몹쓸 인간들은 못된 짓 한다.
눈이 죄라고 주민들이 천사를 겁탈하려고 지랄 바가지를 떨었다.
롯은 천사들을 보호하려고 자신의 딸들을 주겠다고 한다.
상식으로 이짝이나 저짝이나 망할 종자들 이다.
 
천사는 정체를 드러내고 밑으로 미친 주민들 눈을 잠시 멀게 한 뒤 롯과 가족을 탈출시킨다.
하나님의 진노로 소돔과 고모라는 멸망한다.
장자 아브라함이 롯을 마중하러 나갔다.
장자의 책임이 크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책임감과 강인함을 인정하여 자손의 미래를 알려준다.
롯을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뒤 돌아보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돌아본 롯의 아내는 돌과 소금과 증기로
학자들의 분별이 분분한 기둥이 된다.
성서로 돌아와 예수의 권능에 버금가는 멜기세덱이 아브라함의 강인함을 축복한다.
축복은 높은 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으로 되어있다.
 
요사이는 누구라도 축복의 기도를 한다.
아브라함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을 살렘왕 이고 대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내어놓는다.
살렘은 예루살렘 지역의 왕국이다.
유대사회는 왕정과 성전이 분리되어 있다.
성전세의 이유가 있었다.
왕과 제사장의 지위를 한사람이 갖는 것은 하나님의 허락 없이 불가능한 유대사회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권능은 하나의 지위에 있는 이스라엘의 왕이다.
영원불멸의 대제사장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히브리서를 시작해야 한다.
 
율법은 왕정이 아니라 성전의 지배에 있다.
성전의 제사장은 레위파의 전유이다,
야곱이 자신의 열두 아들로 이스라엘의 조상 12지파를 만들어 땅을 나누어 주었다.
이때 셋째 레위지파는 땅을 주지 않고 성전을 관리하는 제사장 지위를 주었다.
조건은 각 지파는 생산의 십분의 일을 공물로 제공하는 것이다.
열두 아들에서 레위지파가 빠지면 산수가 안 된다.
그래서 야곱이 애지중지하였던 요셉에게 두 개의 지파를 상속한다,
요셉은 두 아들 장남 므낫세와 차남 에브라임에게 지파를 나누어 주었다.
차남 에브라임에게 알자 땅을 장남 므낫세에게 크기만 한 황무지를 주었다고 한다.
 
이삭이 죽기 전 에브라임의 머리에 오른손을 올려 상속자를 정했기 때문이다.
11장 28절에 믿음으로 유월절 피 뿌리는 예식을 정하였으니 이는 장자를 멸하는 자로 그들을 건드리지 않게 하려한
것이다.
유대사회에 이런 세속이 있었다.
율법에 있는지는 모르겠다.
유대의 장남은 피 박 쓰고 태어난다.
어찌되었든 그렇게 열두지파와 제사장으로 성전을 관리하는 레위지파가 있다.
따라서 레위지파 만이 제사장으로 성전을 관리할 수 있다.
멜기세덱은 야곱 이전 하나님의 권능을 부여 받은 왕정과 성전을 지배하는 절대의 유대왕이다.
 
예수께서는 유다지파 출신이다.
율법으로 제사장을 할 수 없다.
하나님의 아들은 유대의 율법에 예속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권능이면 유대사회의 절대라는 멜기세덱의 학습이 있다.
아브라함이 내어놓은 전리품의 십분의 일이 십일조의 시초라고 한다.
다른 복음서에는 레위지파에 각 지파가 공물로 제공하는 것을 십일조의 시초라 하였다.
멜기세덱의 시대에 있지도 않았는데 레위지파도 십일조를 받친 것으로 되어있다.
아브라함의 씨로 인하여 그의 자손이 미리 받친 것이다.
절대에 대한 철저한 예속이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을 주장하는 예수의 지위가 엄청나다.
유대의 왕과 성전의 대제사장이 된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대제사장이라고 하였다.
문장의 이해에서 동격 내지는 이하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다윗의 계승자란 말에 그가 주라하였으니 하나님의 아들 나의 종이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의 계보도 내가 하나님 곁에 먼저 있었다고 하였다.
주와 종의 관계라는 것이다.
예수가 인간으로 묘사된 인물을 따르는 것이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유일신앙에 맞는지 의문이다.
인간의 형상으로 하나님의 세계를 본 분은 예수가 유일하다.
 
애매하면 넘어가는 것이 답이다.
예수의 탄생과 기적과 긍휼은 율법의 시대를 지나 하나님의 절대권능에 의한 새로운 시간을 의미한다.
개혁에 필요한 절대의 논리와 추진력이다.
전도는 절대의 힘이 필요한 생명의 도전이었다.
로마의 절대지배와 헬레니즘의 침략적 경쟁과 성취의 세속에서 영과 가난한 곳의 긍휼을 지키는 것은 버리지 못하면
얻지 못하는 고행의 힘든 것이다.
웬만한 예수의 동역자는 죽임을 당했다.
어찌되었든 정확히 2025년 전 이스라엘 왕 예수의 탄생도 학습이 있었다.
예수와 멜기세덱은 유대사회가 아닌 하나님의 선택으로 왕과 제사장을 겸하는 대제사장이다.
 
여기서 아론의 반차를 알고가야 한다.
아론은 레위지파이고 모세의 형이며 대제사장이다.
아론은 율법이 정한 제사장이고 멜기세덱은 율법을 초월한 하나님이 정한 대제사장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대제사장이며 이스라엘 왕이다.
인간세계와 하나님의 세계에서 비교할 수 없는 권능의 차이이다.
사울이 이스라엘 초대왕 이나 성전과 관계를 살펴봐야 한다.
후과가 좋지 않았다.
성서의 선지자와 예언자는 성전의 제사장과 왕국의 통치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에서 종교적 죄의 판단과 왕정의 규범에 의한 판단과 처벌이 모호하다.
 
세례자 요한은 헤롯2세에게 죽임 당했다.
이사야도 므낫세왕에게 죽임 당했다.
아합왕과 왕비 이세벨은 엘리야를 죽이려 하였다.
스테파노를 돌 처형 한 성전은 한일이 없다.
뒤죽박죽이다.
성전이 하나님의 가르침과 선지자의 예언으로 암시된 메시아의 탄생을 지키지 못했다.
시간과 학습에 의한 변화의 무지이다.
여기에 종교의 보수적 경향이라고 하나 율법적 기득권을 지향하는 사두개파의 거취에서 이유가 있다.
권세의 탐욕이다.
 
성전세의 근본적 이유는 왕정과 성전의 분리라는 이해이다.
어쩌면 이원적 국가통치이다.
국가통합의 문제가 복잡할 수 있다.
1차 로마의 유대침공에서 당파적 분열이 심해 적의 앞에서 서로 죽였다.
왕정과 성전이 분리되어 대적하였다.
이러니 망했다.
할 말이 없다.
레위지파가 직분을 다했으면 하나님께서 영원불멸의 대제사장을 땅에 보낼 이유가 없었다.
12자파의 율법도 하나님의 권능으로 바뀐다.
 
예수의 탄생으로 새로운 율법이 필요했던 것이다.
십자가의 시련으로 유대사회는 멸절의 엄청난 시련을 격어야 했다.
창조주를 제외하는 만물과 사물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제사장이 많은 것은 인간의 수명으로 제단을 비워 둘 수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죽은자와 산자의 교대이다.
여기에 제사장의 빈자리는 탐욕이 된다는 권세의 진리가 있다.
예수는 죽지 않으므로 그럴 필요 없는 영원불멸의 대제사장이다.
멜기세덱의 학습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다.
예언과 학습이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은 제사를 받는 위치이므로 날마다 제사를 지낼 필요도 없다.
이미 사함의 권능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다.
제단의 제사 즉 죄의 용서를 사함으로 구원하는 위치이지 사함을 원하는 죄인이 아니다.
율법에 구애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금식 때 음식을 먹고 제사 때 전설병을 먹어다는 대목이 있다.
애굽 탈출과 광야의 사십년 시간에서 성상을 만들어 이방신 몰록과 레판을 숭배하여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신하였다.
용서하여 낡은 것은 버리고 새것으로 성전을 지키고 지성과 지식으로 의를 쌓으며 죄를 회계하고 제사로 영에 이르지
못하고 손으로 짓지 않은 피로 말미암아 의와 영에 이를 것이다.
과거의 죄는 용서의 사함으로 패하고 예수의 새로운 제시 의와 영으로 자유의 미래가 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의 세계에 이른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육신을 살리는 생명의 기적과 나누는 긍휼에서 영적 이상에 이르는 가르침이다.
땅의 죄는 예수의 피와 생명으로 사함이 이루어졌다.
이제는 그보다 더한 의와 영으로 하나님을 섬겨야 한다.
제사장 피로 고생할 이유는 없다.
예수의 죄 사함으로 과거를 패하였으니 제사지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율법에 따라 지내는 제사의 형식은 영에 이르지 못한다.
예수께서 모든 것을 관용하는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모세도 제사장에 대해 말한 것이 없다고 하였다.
 
레위지파가 아닌 하나님에 의한 멜기세덱의 대제사장 지위를 인정했다는 것이다.
율법은 그림자일 뿐이며 시간과 학습으로 변하는 새로운 지식과 지혜의 사물적 기준에 적합할 수 없다.
시대에 맞도록 변해야 한다.
죄는 타의나 형식이 아니라 스스로 벌하고 사하는 것이 올바른 것이다.
패하고 세우는 것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이다.
다시 죄를 지으면 재림 전에 사함이 없으니 심판만 있을 뿐이다.
천지가 죄의 무덤인데 큰일 났다.
지옥가면 줄서서 빠져나갈 구멍 찾으려고 수작이 만만하지 않을 것이다.
지옥에 개구멍 있을지 인간이 못할 것이 없다.
 
아벨은 가인에게 죽임 당했으나 하나님의 의로움을 얻었다.
에녹의 죽지 않고 하나님이 거두었다.
노아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따라 홍수에서 세상을 구했다.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은 믿음으로 이방과 싸워 나라를 구하고 의를 행하였다.
여자들은 가족 중 죽은 자를 부활로 받아들였다.
침략으로 잡혀가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지 못 한 것은 더 좋은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더불어 잘되어야 그들의 고통이 구원받는다.
하나님을 따르는 길은 가시밭길 이다.
유대율법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유대에 고립된 그리스도교의 고난이다.
 
모세의 애굽 탈출에서 바울의 전도로 유대탈출이 이루어졌다.
로마의 지배에서 4세기 만에 1차 그리스도교의 공회가 이루어졌다.
수많은 희생과 고행이 있었다.
영과 긍휼의 결실을 위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율법의 낡음을 패하고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의와 영의 세계관을 제시한 것이다.
이천년의 약속은 또 다른 시간의 예언이다.
변한다고 하였다.
이제는 침략을 염려해야 하는 이방이 적다.
과거는 패하고 새로운 것으로 세워야 한다.
 
의와 영의 가르침을 돌아보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21세기의 그리스도교는 유대의 것이 아니다.
유대사회를 벗어나 온 누리의 축복에 있다.
예수의 뜻이 현세에 이르고 있는지 모호하나 전달의 대세는 이루고 있다.
아브라함의 계보 이삭과 야곱에서 인류의 선한 관점은 이스마엘과 에서에 있다.
현세는 장자의 부담으로 탄생의 번호표가 없어진지 오래이다.
한 그릇의 유혹이 아니라 고의로 책임을 회피한다.
끝까지 아브라함의 씨는 이삭과 야곱이다.
에서가 죄지은 것은 아니다.
 
야곱이 어머니와 짜고 사기 친 것이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에서가 무서워 일곱 번 엎드려 절하고 용서를 구했다.
야곱을 눈물로 용서하고 안아주었다.
에서는 큰아버지 이스마엘의 도움으로 성공하여 있었다.
떠나는 야곱에게 재물과 세력을 나누어 주려는 에서의 형제애가 눈물겨웠다.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이다.
디모데가 겉옷을 가지고 로마의 감옥에 있는 바울을 찾아가 잡혔나보다.
놓였다고 하니 잡힌 것이다.
 
2) 아론.
웃기는 대제사장이다.
기독교가 경계하는 세공기술자 이다.
애굽 탈출 시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달라는 부탁으로 만든다.
만들어 달라는 사람들은 처형되고 모세의 형이라서 그러하였는지 살았다.
말썽꾸러기 이었다고 한다.
모세는 이집트 출생이고 왕가와 관련이 있다.
유대 말을 잘 못했다.
말을 잘해서 아우의 통역을 했다.
 
3) 에녹.
하나님과 교제하였다고 하니 굉장하다.
죽지 않고 승천한 최초의 인간이라고 한다.
순종하는 자, 따르는 자, 봉헌하다, 라는 의미가 있다.
 
4) 여리고.
광야의 히브리인들이 여호수아를 앞세워 요르단 강을 넘어 최초로 쳐들어간 가나안 성이다.
스파이를 숨겨준 라합이라는 여성만 남겨두고 씨를 말렸다고 한다.
성서에서 전쟁하면 다 죽인다.
 
5) 번제와 속죄제.
꼭 알아두어야 하는 하나님께 제사지내는 유대교의 형식이다.
번제는 소, 양, 염소, 비둘기 등 살아있는 동물의 가죽을 남기고 모두 불태워 제단에 올리는 제사이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헌신과 순종과 사랑을 표현했다고 한다.
예수께서 의와 영의 새로운 질서(문화)로 오신 이유가 있다.
현대의 시각으로 미신과 우상숭배가 따로 없다.
살아있는 소가죽 벗겼다고 난리이었는데 장난이 아니다.
속죄제는 죄의 용서를 구하는 제사이다.
동물에 어린양이 들어간다.
죄에 따라 동물이 바뀐다고 한다.
피를 제단의 뿔에 바르고 나머지는 불태운다.
가죽은 제사장 몫이다.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 진다.
예수의 말씀대로 바꾸어야 했다.
 
6) 기드온.
병사를 모집하며 개울에서 물을 마시게 하여 선별하였다는 설교를 들은 기억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히는 미디안 족의 응징이었다.
이스라엘은 거의 속국수준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추수하면 빼앗아가는 형세이다.
하나님이 이방신 바알과 아세라를 숭배하는 기드온에게 마디안과 전쟁을 하라고 한다.
말도 안 되는 전력의 차이였다.
하나님의 말씀이라 거역하기도 그렇고 승리의 증거 요구한다.
지면 종족의 씨가 말릴 테니 당연하다.
천사들이 요구를 기적으로 증명하여 설득하였다.
기드온은 우상의 제단을 철거한다.
제단을 철거하자 주변이 죽이려 하였다는 것으로 보아 이방신의 전염이 상당하였다.
하나님의 뒤 백으로 버틸 만 하니까 시작한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삼백의 소수로 10만이 넘는 미디안을 이겨 다시는 괴롭히지 못하게 아작 냈다.
당연히 죽음의 환란이다.
판관으로 이전쟁의 당사자이다.
 
7) 바락.
사사 드보라의 명으로 가나안왕 야빈과 전쟁에서 승리한 군인이다.
사사(판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정착하여 왕국에 이르기 전 무리를 이끌던 지도자이다.
평소에 농사짓고 양치고 하다 일터지면 나서는 우두머리 이다.
 
8) 입다
므낫세의 자손으로 길르앗의 아들이다.
당시 토호의 이름을 지역의 지명으로 사용한 듯하다.
본처의 지식이 아닌 서자이다.
힘이 장사였으나 본처자식들 등살에 돕으로 떠난다.
건달의 끼는 시정잡배들이 알아본다.
초한지의 주인공 한고조 유방이 있다.
깡패들이 모여 무리를 이루어 어찌되었든 무력이 생긴 것이다.
암몬이 길르앗을 쳐들어온다.
장로들이 찾아와 도와줄 것을 부탁하나 과거사가 있다.
지도자로 모시겠다는 언약으로 나선다.
암몬족 대장에게 좋게 말로 하자고 하나 꼭지 돌면 뵈는 것이 없다.
쳐들어가기 전 야훼께 도와달라고 하며 약속을 한다.
이기고 돌아갈 때 나의 집에서 맨 처음 나오는 사람을 번제의 재물로 바치겠다고 하였다.
입방정이 세다.
입다가 이겼다.
집에 도착하니 무남독녀 외동딸이 제일먼저 나와 아버지를 반겼다.
재물로 받쳐야 한다.
이겨서 집구석 아작 나고 있다.
딸이 사실을 알고 두 달의 시간을 달라고 한다.
번제는 있었고 이후 이스라엘 처녀들이 나흘 동안 애도하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2025.6.19.일.

 

2 야고보서.

1) 본문.

인내하라!

차별하지 말라!

온전하여 의와 영으로 구하라!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리라!

시험은 구하는 것으로 너의 자아와 내면이다.

성령은 스스로 깨닫는 것이다.

하나님의 세계는 변화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

한결 같아야 이를 수 있다.

듣기를 좋아하고 말하기를 조심하라 화는 해롭니다.

긍휼에서 고아와 과부와 고독사도 있다.

이웃을 탓하고 시비하고 비난하는 자는 멀지 않은 날 발등상이 될 것이다.

맨 날 밝히는 현관의 깔판을 기억하면 된다.

열개 잘하고 하나 잘못하면 죄가 된다.

그래도 잘한 것이 많으면 형평에서 났다.

요세 저울은 성능이 뛰어나다.

어려운 삶을 도우면 복이 된다.

가식으로 형색을 얻으려 말고 구하여 마음의 평안을 얻으라는 것이다.

작게라도 나누어 행하라는 것으로 걱정만 해서는 이르지 못한다.

하나님을 입으로 만 떠들지 말고 의와 긍휼의 가르침을 행하라는 것이다.

입으로 만 하나님을 칭송하는 것은 소용없는 행색이다.

번제와 속죄제에서 사람을 재물로 써다는 정황이 왕권에서 다수이다.

미신과 형식에 의지하는 제사는 고쳐야 하는 잘못 된 것이다.

제사는 형식으로 잘못된 것으로 행함에서 그것으로 책임을 다했다고 의와 긍휼에 소홀하다.

가나안의 점령에서 여리고의 라합은 좋은 말로 기생이었다.

살육의 피 비린내가 간난아이에게 있었다.

라합의 얻음은 하나님의 뜻 즉 유대의 스파이를 돕는 행함으로 얻었다.

유대가 중심이다.

우물의 물이 한결 같듯이 입에서 나오는 것도 같아야 한다.

마음이 어질지 못하면 소용없다.

하늘은 선이고 땅은 악의 잉태라는 말씀에서 물질은 나누어 잘 쓰면 선이고 긍휼이다.

치부하여 가난한 것이 문제이다.

마음이 평안하고 온유하면 나누게 된다.

나누는 것을 행하여 온유하고 평안하다.

악하면 나누지 않는다.

나누지 않는 것이 가르침을 외면하는 악함이다.

죄로 얻지 못함을 알면서 행하는 것은 인내하지 못하는 화이다.

먹고 잘 수 있으면 거짓하지 말고 도적질 말라는 것이다

먹고 잘 수 있도록 긍휼하라는 것이다.

생명과 인륜이 우선이다.

주 앞에 낮추라는 말씀은 입으로 떠들고 제사지내지 말고 가르침을 행하여 전하고 얻으라는 것이다.

겸손은 의와 영을 공유하는 것이다.

이웃을 판단하지 말라에서 고쳐야하는 충고의 수용은 비방하여 죄짓는 것이 아니다.

지식은 선으로 올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

학문은 학습되어야 한다.

관계에서 내 것은 이익으로 이웃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말세에 재물을 쌓았다.

물질과 자본과 권세의 경쟁과 차별이다.

삶과 생존에서 형이상학의 시대이나 세속의 다툼은 의와 영의 세계가 아니다.

품삯을 차별하고 사치하고 방종한자들을 죄로 심판할 때 선의 믿음이 살찔 것이다.

시원한 오기가 아니다.

농부는 길게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린다.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

관계에서 옳고 그름으로 평정하여야 한다.

사리사욕의 저울추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야고보서는 시적문맥이 많다.

내면이 잠재된 자아적 피라는 생각이다.

 

2) 욥.

하나님의 세계를 세속적 지식으로 제단하고 판단하는 내용이다.

현상과 결부시키는 신에 대한 인간의 일반적 사고이다.

선을 행하면 육체와 물질적 보상이 이루어 져야 하고 악을 행하면 망하고 육신이 병든다는 단순한 산수이다.

의와 영은 현상이아니라 자아의 평정이다.

마음의 평정하면 매사에 만족이 있다.

이것이 축복이다.

그래도 그렇지 하늘이 선의 인내와 악의 화를 몰라 인간을 고통으로 시험하는 것은 짓굳은 일이다.

작가의 표현이라도 그렇다.

인간이 감히 하늘의 유희를 판단한다고 하면 할 말은 없다.

두 배로 불려 주신다면 나도 시험받고 싶다.

"하나님의 세계는 변화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다." 고 하였다.

10대 전후 움막교회에 나갔는데 내용이 촉매인지 뜻은 몰라도 피부병 기왓장 등 기억이 있다.

 

3) 성모 야고보.

예수의 형제이고 교회에 관한 서신을 작성하였다.

초대 예루살렘 총대주교로 칭하고 있다.

바울의 예루살렘 공회에서 베드로와 같이 이방인에게 할례와 율법을 강요하지 말자는 주장을 하였다.

12사도에서 알패오의 아들 소 야고보가 있었다.

동일인으로 주장하는 통설이 있다.

2025.6.20일.

 

3 베드로 전후서.

1) 본문.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통해 알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의심을 찾아야 한다.

시험으로 선택되었고 고난과 고통으로 연단되어 기쁨에 이른다.

생의 나그네로 왔다 성령의 집에 머무를 것이다.

알지 못할 때 사욕을 버리고 의와 영으로 평안할 것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진다.

심판의 날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선택하고 회개하여 추수의 날을 대비하라는 것이다.

탄생은 썩지 않는 씨로 선택된 것으로 생명은 소중한 것이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고 부디치고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되었다.

그릇은 재질이 아니라 쓰기에 따라 다르다는 말씀과 같다.

전도를 강요하지 말고 전하는 자가 선을 본 하여 따르게 하라하였다.

십자가 길의 고난과 고통과 피와 생명으로 본 되어 가르치고 있다.

가르침은 너를 통해서 전도에 이른다.

성경책 끼고 다닌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에게 순종하라!

서신의 전달이 많았다.

죄로 벌을 받는 것과 선으로 고행하는 것은 같은 고난이나 지옥과 천당의 갈림이 있다.

선의 고난과 고통은 성부의 집에 이르는 길이다.

씨 말씀이 여기도 있다.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투정하여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치었다.

여자의 말도 말고 남편을 가르치지 말라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부대끼어 하나님께 하소연 하니 하갈과 이스마엘은 내가 보호할 테니 사라의 말을 따르라 하였다

3장 9절은 원수를 사랑하라 이다.

예수의 사함으로 과거의 허물을 패하였다고 하였다.

용서와 사랑과 의와 긍휼을 본 하여 따라 배우라 하였다.

현세의 저울은 성능이 좋다.

선한자의 행색은 보고 들을 것이나 악한 자는 상의 노여움이 있을 것이다.

범사에 예수로 말미암아 하나님에 이른다.

중보자의 역할이다.

믿음과 전도의 힘 듬에서 연단은 쇠를 달구어 두드리듯 마음을 단단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척박한 토양을 알 수 있다.

사람으로 사람을 심판하지 말라하였다.

예수께서 죄 짓는 자의 세속적 형벌에 대해 추수 때까지 놔두라고 하였다.

심판의 날 죄인이 먼저 벌을 받는다.

전서에서 "믿음으로 살찌울 것이다."라고 하였다.

지옥의 경기자와 관전자의 위치가 다르다는 것이다.

베드로는 마가를 가까이 하였다.

십자가의 길에서 죄의 사함을 잊었다 하였다.

과거의 허물이 사함으로 패하여 진 깨끗함을 알고 죄짓지 말라는 것이다.

유대사회에서 실족은 무덤을 밟는 것이다.

산자와 죽은 자의 거리이다.

제자가 아버지의 죽음에 먼저 가보겠다고 하니 전도를 계속하라 하시며 "죽은 자는 죽은 자가 마중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육신은 쓰고 버리는 것으로 이해된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길을 알고 깨어 있으라 한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시간이 가까운 것을 알고 있다.

순교의 예시이다.

성령의 예지는 선택된 암시 자에 의해 현상된다.

나의 견해는 성령은 온 누리에 있으며 찾는 자에게 발현된다.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왜곡하여 모방하는 영지주의를 염려하고 있다.

많으면 탈 나는 곳이 있다.

저자는 전서의 성서에 실누아노(실라)에게 부탁하였다는 대목이 있다.

후서의 자료에는 베드로가 전후서 저자로 되어있다.

 

2) 만인 제사장.

알렉산드리아 쿨레멘스는 교회의 조직에 냉담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틴 루터의 주장이다.

성자에게 기도하거나 도움을 성령으로 요구할 수 없다.

성령은 오직 예수와 하나님만이 소유한다.

인간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대신할 수 없다.

따라서 성령에서 교회와 성도는 동일하다.

중세의 지배적 종교관과 현대의 교회는 민주적 개념의 차이가 많다.

유대의 성전은 권력기관 이었다.

2025.6.20.일.

 

4 요한서.

1) 본문.

큰 야고보의 동생 사도요한은 12사도 중 나이가 가장 어렸다.

어머니 살로메가 예수께 훗날영광에서 두 아들을 좌우에 두어달라고 부탁하였다.

예수께서 너희가 나의 잔을 먼저 마실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니 그리하겠다고 하였다.

이일로 내가 잘났다고 사도들이 다투었다고 한다.

형 큰 야고보는 열두제자 중 최초 순교자가 되었다.

서신은 현세의 부정으로 시작한다.

골고다 형장에서 이제부터 여인의 아들이고 아들의 어머니라고 하였다.

어머니를 부탁하였다.

종교는 인간의 본 분을 찾는 자아적 내면의 제고이다.

진리를 알기 때문에 이해를 구하는 것이다.

모르면 말해도 소용없다.

학습과 지식의 용도이다.

1세기부터 예수를 의지하는 재림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은 아가페이다.

형제애 부정 모성 우정 가족 배려와 부양 등 관계에서 내것을 주는 보호적 본능의 배려이다.

요한은 사랑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노쇠하여 부축 받으며 설교에서 사랑을 말하니 듣는 사람들이 지겨워 그만하라고 하여도 사랑하면 모든 죄의 원흉이

사라진다고 하였다고 한다.

요한서는 사랑뿐이다.

44년 헤롯2세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지도했다.

95년 도미티수누스 황제의 박해로 파트모스 섬에 유배 되었다.

척박한 섬이었다.

요한계시록을 작성하였다.

부활하여 승천한 예수께서 "네가 나를 의심하느냐!" 하였다는 말씀이 유명하다.

 

2) 폴리갑(69~155년).

뛰어난 저술가로 스미르나 주교이며 신학자이며 사도시대와 1~2세기 기독교의 연속성에 기여하였다.

사도요한과 연락하며 그리스도교의 진리를 전파하는데 헌신하였다.

초기 발렌티누스 영지주의와 마르키온 영지주의 등 이단에 반대하였다.

발렌티누스 영지주의는 세 부류를 설정하고 있다.

뉴매틱는 영적인 사람들로 영에 속하고 영에 지배받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사이킥스는 멘털적인 사람들로 멘탈에 속하고 지배받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힐릭스는 물질적인 사람들로 물질에 속하고 지배받는 사람들을 의미한다.

부연하면 영에 속하거나 지배받는 사람들만 하나님의 세계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멘탈적인 사람들은 낮은 구원을 받으며 구천을 헤맨다는 이해이다.

물질적인 사람들은 영적세계 근처도 못 간다.

추수 날 최후의 심판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다.

영적세계를 인간중심의 우주관으로 해석하고 있다.

인간답다.

영지주의에서 그노시스를 공부하였다.

특별한 학습으로 영적세계에 이를 수 있다는 종교적 관점이다.

동양사상에서 신선의 이해이다.

마르키온 영지주의이다.

구약을 배제했다는 것은 야훼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다.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인간이 직접 초월적 존재를 보았다는 것이다.

예수의 나를 통하여 하나님의 세계에 이를 것이라는 가르침과 다르다.

설정할 수 있으나 종교의 역사에서 느닷없는 탄생이다.

종교 또는 신앙은 뿌리가 있다.

어떠한 시기에 과거의 절대성을 시간과 학습으로 다르게 보는 지식과 문화의 연속성에 의한 변화이다.

이것이 결여되어 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세계는 인류의 시간으로 상상할 수 없다는 것으로 중보자를 통해 이를수 있다고 하였다.

현세인류의 시간과 학습으로 보고 들어도 이해지 못하는 창조의 영역이다.

현실적으로 인간은 창조를 알 수 없다.

유인원은 인간의 문명을 학습할 수 없다.

유전적 시간의 분별이다.

인간을 구원하려는 종교는 안류의 지식과 문화의 역사로 접근할 수 있다.

창조에서 인간의 시간을 배려하는 초월적 존재의 준비가 시간과 학습에 의한 미지의 발현이다.

플라톤의 준비된 세계가 있다.

인간도 생태계 보호에 애쓴다.

인간이 신이 되려는 지식의 탐욕이다.

지옥 간다.

 

3) 디오디레베.

교회를 사적 사교장 쯤 생각한 위인이다.

요한의 서신을 돌려보내고 자신에 반대하면 추방하고 전도하지 않고 사탄이 교회를 지배하였다.

어찌 놔두었는지 성서에 버젓하다.

예수께서 놔두라 하시니까 방자하기가 하늘에 이르고 있다.

돌 처형은 이럴 때 해야 한다.

 

4) 데메드리오.

디오디레베와 비교하기 위해 예시한 성실한 성도이다.

 

5)가이오.

요한의 편지 수신인으로 재산을 헌금하여 어려운 사역자를 도왔다.

2025.6.20.

 

5 유다서.

1) 본문.

저자는 예수의 동생이고 작은 야고보의 형 유다라고 하고 12제자 중 유다 타데오라고 하기도 한다.

이 부분의 논쟁이 분분하다.

지위를 지키지 않고 떠난 천사들을 심판 때까지 결박하여 흑암에 가두었다.

천사들의 배신이 특이하다.

그럴 수 있다면 변화하지도 회전하지도 않는 천상의 이해가 혼란스럽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였듯이 불의 형벌을 받을 것이다.

무엇인가 대단하게 잘못된 것이다.

천상의 천사가 아니라 기독교내 영지주의자들의 이단이었다.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는 천사장 미가엘이 명으로 모세의 시신을 수습하는데 승천을 염려한 사탄이 나타나 방해한다.

마가엘은 사탄과 관계로 명을 수행하는데 미온적 태도를 취했다.

천사장은 사탄과 과거 기름(인연)으로 인한 구면과 하늘의 서열에서 낮은 위치에 있었다.

간섭하면 하나님의 책망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하는 정도였다.

모세의 시신을 안장한 장소는 성지화를 우려한 하나님의 뜻으로 현재에도 알 수 없다고 한다.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과 고라의 패역을 상기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압 땅 싯담에 들어오자 왕 발락이 발람에게 삯을 주고 저주를 부탁한다.

이스라엘사람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기위해 아모리 왕국을 통과하는데 사전에 약속된 길로 가지 않았다.

다른 길로 가니 아모리 사람들이 공격하였으나 패하여 살육 당한다.

이것을 알고 있었던 발락이 이스라엘 사람들이 두려워 망하라고 저주를 부탁한 것이다.

발람은 야훼께 물어보는데 처음에 거절하자 두 번 더 물어본다.

세 번째 허락한다.

왜 허락했는지 알 수 없다.

하나님 마음이다.

나귀를 타고 저주하러 가는데 좁은 골목에서 가운데가 아니라 벽에 찰싹 붙어가는 것이다.

야훼가 보낸 사자가 길을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화가 나서 나귀를 때리니 길이 열리며 사자가 나타나 말하기를 “비켜가지 않았으면 죽었을 것이다.” 라고 하였다.

돌아가려 하였으나 나쁜 천사가 하던 짓 하라고 꼬드겼다.

천사의 이미지 훼손이 상당하다.

가긴 갔으나 하나님이 두려워 발락의 요청을 무시하고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한다.

삯의 값을 못한 것이다.

여기까지는 그런대로 괜찮다.

삯 받고 찜찜한 점술가 발람은 값을 하기로 한다.

이스라엘 백성을 꾀어 음행과 우상숭배를 하게하였다.

진노한 하나님은 열병으로 벌한다.

삯을 위한 어그러진 길이다.

사제 비느하스의 창 춤으로 음란한 짓을 하던 시므온 지파의 족장 아들 시므리와 미디안족속의 수르왕의 딸 고스비를

현장에서 찔러 죽였다.

이후 열병은 사라졌다.

점술가 발람은 자신의 운명을 점지하지 못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보복으로 죽었다.

고라는 탈출기 광야에서 모세의 영향력이 의심받자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다 무리 250명과 생매장 당한다.

권세에 도전하였고 야훼를 배신하지 않았으므로 그의 자손들은 이스라엘에서 번성하였다.

에녹이 예언하여 "경건하지 않게 행한 일과 죄와 주를 비방하고 조롱한 말을 심판 할 것이다." 라고 하였다.

불만으로 원망하고 아첨하고 육신의 욕구대로 하는 자들이다.

분열을 일으키며 성령이 없는 자이다.

유다의 서신은 영지주의의 심판을 경고하고 비유한 것이다.

기독교 내 이단의 문제이다.

 

2) 비느하스.

초대 대제사장 아론의 손자이고 2대 엘르아살의 아들이며 아보지에 이어 3대 대제사장이다.

당연히 유다지파이다.

출애굽 시 사제였다.

사두개파는 성전의 권세가 대를 이어 어어진 문제가 있었다.

2025.6.20일.

 

6 요한 계시록.

1 본문.

종말론이다.

바빌론은 도시이다.

타락의 거점이다.

현세는 사과로 비유되는 관계의 지배이다.

뱀의 혀로 시작되는 불신이다.

중세는 자연과 신에 예속된 시간이다.

21세기의 인류 세는 인간의 세상이다.

산업사회와 증거적 관점 즉 형이상학의 문화이다.

신의 존재에서 무디어지고 무의식한 시대이다.

 

도시화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탐욕의 상징이다.

자연과 자아의 상실이다.

요한의 증오에서 하나도 빠지지 않는 탐욕과 타락이 전부인 세상이다.

물욕과 금욕과 권세의 타락이 신을 대신하는 절대의 존재가 되었다.

왜 일곱 천사를 통한 신의 진노가 없는지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현세에서 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물질의 세속에 세뇌된 자들을 벌 할 수 없다.

개별적 자유와 사유화는 민주주의의 대의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다.

물질과 자본의 시대를 인간 또는 사회를 통해 요한의 증오로 벌 할 수 있을지 불가능한 시대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현세를 인정 할 수밖에 없다.

자아적 증오로 적그리스도의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예수의 시대나 지금이나 적그리스도의 세상이다.

시대의 문화적 사고로 이해 할 수 있어야 바뀐다.

가르침의 증거가 필요이다.

요한처럼 네가 나를 의심하느냐 하여도 일곱 천사를 대신 할 방법이 없다.

재림이 답이다.

선의 분별과 용서의 한계에서 자아적 분노는 정의이다.

또다시 구원자의 희생으로 죄를 사해서는 안 된다.

 

로마와 봄베이 정도로 대신 할 수 없다.

기자지구의 참상이 천사의 형벌이라는 가르침은 따를 수 없다.

또 다른 심판과 형벌 절대자 신의 모방이다.

음녀의 지칭에서 차별이 느껴진다.

무저갱과 여덟 번째 왕의 정체가 궁금하다.

단테의 신곡이 어렴풋하다.

이천년 전의 자아이다.

 

2) 심판과 형벌.

인의 개봉.

첫번째 심판은 흰말은 권세의 다툼이다.

두번째 심판은 붉은말은 폭력과 전쟁에 의한 힘의 지배이다.

셋번째 심판은 검은말은 물욕과 금욕 등 물질만능 사회이다.

네번째 심판은 청황색 말은 기근이다.

다섯번째 심판은 우상숭배와 이단과 박해와 순교의 종교적 경계의 응보이다.

여섯번째 심판은 음해와 거짓의 다툼이다.

일곱번째 심판은 종말이다.

천사의 나팔.

천사1 형벌은 피석인 우박과 불이다.

천사2 형벌은 바다에 떨어진 운석이다.

천사3 형벌은 육지에 떨어진 운석이다.

천사4 형벌은 흉년 또는 수탈 등 의식주의 기근이다.

천사5 형벌은 종교와 민족적 경계에서 전쟁의 참상이다.

천사6 형벌은 지진과 태풍과 화산과 해일 등 천재지변이다.

천사7 형벌 모든 형벌(아마겟돈).

불의 형벌이 많다.

여섯 번 째 심판과 향료의 위치는 나름의 오해에서 글의 문학적 구색이다.

2025.4.13일.

 

3) 신약의 마무리.

네가 보는 것을 두루마리에 싸서 일곱 교회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다리,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보내라!

일곱 초대사이에 오른손에 일곱별을 쥐고 골고다의 십자가에서 죽었다 삼일 만에 살아난 분이 계셨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심판의 날 죽음과 음부(하데스, 지하, 무덤)의 왕으로 너희 앞에 있을 것이다.

너는 나의 명에 따라 본 것과 세속과 미래를 기록하라.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이며 일곱별은 일곱의 사자이다.

 

에베소교회 사자에게..

인자가 이르되 박해를 견디어 교회를 지키고 이단(영지주의)의 침략을 알려 부활과 사함의 증거로 악을 경고하였다.

너를 책망할 것은 세속의 번민으로 사랑을 버렸다.

나를 의심하였다.

본 분을 알고 초심으로 돌아가 회개하라!

아니하면 촛대를 옮길 것이다.

일곱 교회를 빼앗겠다는 것이다.

사람인지라 딴 생각 했나 보다.

하나님과 사탄의 짓 굳은 시험에 빠진 욥이 생각난다.

니골라당은 하나님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방종과 음행을 일삼은 초기 영지주의의 이단이다.

이기는 자에게 생명의 열매를 주겠다고 하였다.

무엇인가 크게 잘못하여 전쟁 날 것 같다.

 

서머나교회 사자에게..

인자가 이르되 환난과 궁핍의 거짓으로 부유를 위장하고 유대인의 가면으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을 비방하는 사탄의

회당을 알고 있다.

장차 견디어야 할 고난이 클 것이다.

이단의 마귀가 너희를 몇을 옥에 보내 시험할 것이다.

충성하여 십일을 견디어 이기는 자는 상으로 첫째 생명의 관을 줄 것이다.

둘째 생명의 해가 없을 것이다.

 

버가모교회 사자에게..

인자가 이르되 네가 사탄과 있는지 알고 있다.

충성된 증인 안디바는 너희가 보는 가운데 사탄에게 죽임을 당해도 믿음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아디바는 유혹과 고통스런 위해에도 예수를 지키고 죽었다.

교회에 나를 따르며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충실한 성도가 있다.

네게는 타락한 니골라당을 따른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안다.

회개하지 않으면 나의 검으로 벌할 것이다.

교회를 지키는 자에게 만나와 흰 돌을 줄 것이다.

돌에 기록하는 새 이름은 받는자 밖에 알 수 없다.

 

두아다리교회 사자에게..

인자가 이르되 너의 충실한 믿음과 섬김이 처음보다 크다.

그러나 네가 둔 여자 이세벨이 나의 종들을 꾀어 행음하고 우상의 재물을 먹었다.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거역하고 음해의 죄를 계속하였다.

침상에 던지고 환난에 빠트리고 사망의 열쇠로 자녀를 죽일 것이다.

교회와 너희가 인자가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것을 알 것이다.

발람의 교훈을 지키지 못하고 사탄의 늪에 빠진 너희에게 말 하노니 지혜로 견디어 선한 율법 지켜라!

따르지 않으면 반드시 행위대로 죄 값을 받을 것이다.

이기는 자에게 첫째 만국의 권세를 주겠다.

둘째 새벽별을 주겠다.

권세를 가진자가 음행하고 방탕한 죄를 처참하게 응징할 것이다.

 

시데교회 사자에게..

인자가 이르되 너는 죽을 각오를 하여라!

회개하지 않으면 도둑처럼 찾아가 소리 없이 응징할 것이다.

교회에 몇 명의 희망이 있어 그들이 흰옷입고 나와 함께 있을 것이다.

이기는 자는 생명책에 있을 것이며 아버지 앞에서 내가 증거 할 것이다.

 

빌라델비아교회 사자에게..

인자가 이르되 네가 작지만 배반하지 않고 나를 지켰다.

유대인의 가면을 쓰고 죄를 변명하는 사탄을 잡아다 너의 발 앞에 절하게 할 것이다.

나의 충실한 성도로 알게 할 것이다.

네가 나를 지켰으니 곧 있을 온 세상이 화난에 빠질 때 시험에 들지 않게 할 것이다.

내가 속히 갈태니 면류관을 지켜라!

이기는 자는 성전의 기둥이 될 것이며 새 예루살렘과 나의 이름을 새길 것이다.

 

리오디게아교회 사자에게..

인자가 이르되 나를 지킴에 충실하여라!

너는 내가 부요하다고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내게 금을 사서 횐 옷을 입고 벗은 수치를 감추고 안약을 넣어보아라!

나를 지키면 너에게 복이 있을 것이다.

이기는 자는 내가 아버지를 보좌하듯 나를 보좌하게 될 것이다.

 

그나저나 교회가 어찌 이지경이 되었는지 호랑이가 없으면 토끼가 왕이라는 말씀이 가슴 아프다.

부활의 시간이 지나갔다고 하고 여기저기 지방방송은 제 잘났다고 영지니 송이니 까불고 신앙이 쉽게 무너지는 것이

고행과 희생이 아리송하다.

일곱 촛대의 환란을 보니 하나님이 인간세상의 타락한 모습으로 영접 받는 것을 반가워하지 않았을 것이다.

타락하여 무너지는 이스라엘의 멸망을 보았다.

결과론으로 탄생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변화와 십자가의 길과 이방전도의 박해와 희생의 시험을 견디어 온 누리의

희망을 이루었으나 인간의 오만은 초월적 존재의 진리를 알지 못한다.

인류의 하나가 요원한 이유이다.

신약을 공부하였다.

시작은 가벼웠고 과정은 무모하였으나 끝나니 괜찮은 여행이었다.

아직은 다 모르나 성경은 인류의 역사이고 인간적이다.

신약을 끝내게 해주셔서 하나님과 그의 아들과 고행하고 순교하신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드린다.

2025.6.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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