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형이상학. 본문
262 형이상학.
1. 형이상학 자에게 질문한 대표적 예시.
1) 우리가 보고 느끼는 것이 진짜일까?
2) 정말로 있다는 것이 무엇일까?
3) 나는 무엇 일까?
4) 신은 존재 할까?
5) 사람들의 의지는 자유로울까?
추론: 창조와 생명과 미지 등 감각적 지식으로 실증이 불가한 추상적 존재의 의심이다.
기적과 종말과 재림 등 학문적 논리와 현상을 초월하는 미지 적 불확실성이다.
생명과 물질의 합리성에서 감각과 현상을 우선하는 실증주의와 창조와 생명의 근원 초월적 존재와 암시적 질서를
증명하려는 실존주의의 논쟁이다.
인류의 역사에서 과학과 현상의 괴리에 있는 신화는 많다.
고조선을 건국한 단군왕검의 탄생은 곰이 사람으로 변하였다는 웅녀의 신화이다.
신라를 건국한 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났다고 한다.
생물학적 논리로 이해 할 수 없는 기록이다.
과학적 괴리가 있으나 논리와 증거를 제시하라는 사회와 학문적 요구는 전무하다.
민족의 뿌리와 역사를 기억하기 위한 수사로 생각한다.
종교와 문화와 과학에서 현세를 지배하는 초월적 존재의 실증은 시대와 사회적 관심에서 영향력의 정도가 다르다.
진실 이든 아니든 또는 현상이든 추상이든 대중적 관심은 학문과 문화에 영향을 끼친다.
증거 없는 미지 적 불확실성은 더욱 그렇다.
지식과 문화의 범위에서 학문으로 설명 할 수 없는 존재의 의심이다.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학습의 한계에서 갈릴레오의 지동설과 21세기의 AI 발현은 실존주의를 실증하는
증거이다.
인간중심 사회와 문화에서 유전적 시간의 정체와 학습의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2. 질문의 답변.
1) 감각으로 느끼고 깨닫는 현상 너머 보편적 이지만 초월적 근원이 존재한다.
추론: 플라톤의 이데아는 생명과 물질의 합의체에서 생명의 미지이다.
보편적이란 답변은 현상을 근거하고 있다.
초월적 미지의 탐구와 다르다.
현상적 감각(증거)의 요구에서 초월적 존재의 근원은 창조의 절대와 앞선 문명의 미지이다.
인간중심 사회에서 창조(미지)의 긍정이 실존주의이다.
현상과 관련하여 알 수 없는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대자연의 암시적 질서이다.
신은 존재한다는 것이다.
2) 물리학에서 말하는 것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추론: 유물론은 현상을 우선하여 존재는 물질이 유일하다는 주장이다.
과학으로 존재를 증명 할 수 있다는 증거적 관점이다.
태초와 잉태에서 생명은 완전한 물질의 합의체가 아니다.
생명으로 잉태하여 물질의 합의체로 탄생한다.
존재에서 신의 영역과 생명을 경시하고 있다.
신의 영역을 시대적 지식과 학문으로 동격화 하는 인간중심의 오만이다.
태평양의 물방울도 안되는 지식으로 창조를 기만하는 학문의 독선이다.
형이하학의 주장이다.
3) 책임을 묻는 자아가 존재한다.
추론: 실존주의는 선의 지배와 죄와 벌에서 관계이다.
절대자의 존재에서 인간의 불안정성을 의식하는 나의 정체에 대한 탐구이다.
기도와 참선과 고행 등 생명의 근원에 가까이 하려는 존재의 증거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다.
창조와 생명과 미지의 이해이다
내안에서 신과 선의 존재이다.
4) 이 세계는 완전한 결정론의 세계이며 기계처럼 일정한 법칙에 따라 작동한다.
추론: 시간과 학습에서 문화의 정체(절대성)이다.
무한한 미지의 부정이며 현세는 인류의 자유가 선택한 결과이다.
인류의 미래는 결정된 것이 없다.
다른 선택이 있다.
선택에 따라 재림(신)의 시간과 인류의 시간이 될 수 있다.
진화의 절대는 유전적 시간과 학습의 한계에서 감각과 지식의 의지와 상관없이 새로운 미지가 발현된다.
현세는 AI이다.
신은 지배하여 인간의 선택에 개입하지 않는다.
인류는 유인원의 시간과 학습에 개입 할 수 없다.
유전적 시간의 분별이다.
5) 신경과학의 연구에서 자유의지가 존재하지 않음을 알리지 못한다.
추론: 여행의 본능이 자유이다.
울타리 밖의 어둠(미지)에서 미래는 우주의 여행이다.
창의력의 자유이다.
이러한 자유의 본능으로 지구 생태계의 유일한 지적 생명체이다.
인류에게 자아라는 내안의 자유가 있다.
현상과 증거 적 관점의 주장에서 태초의 생명은 물질의 완전한 합의체가 아니다.
인간으로 창조되지 않았다.
창조에서 물질의 합의체로 진화하였다.
사과의 선택은 인간의 자유이다.
신의 절대를 인간중심의 지식으로 견주어서는 안된다.
창조의 절대는 인간의 사고와 선택에 개입하지 않는다.
유전적 분별에서 문명이 생태계에 개입하면 인류의 학습에 의존하여 생태적 질서가 파괴된다.
신의 미지 적 절대로 인간 세상에 개입하면 기적의 나태로 지옥이 될 것이다.
인류는 유전적 시간에서 의지로 선택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자유의 최후 저항은 자결권이다.
생명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를 통제하여 지배하려는 전체주의와 계급주의의 사고이다.
6) 어떤 질문에도 정당한 답변을 하지 못한다.
추론: 인간과 문명은 완전하지 않다.
자아와 인내에서 전쟁과 파괴이며 과학에서 달에 가는 것도 어렵다.
역사와 문명을 떠들며 허구헌 날 싸우고 빼앗고 죽인다.
선과 자아의 망각이다.
유전적 시간과 학습의 한계이다.
유인원은 인류의 문명을 이해하지 못한다.
현세의 지식과 문화에서 시간 또는 시대를 초월하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중심의 문화가 창조의 절대를 동격화 하려는 모순이 있다.
학문의 무리이다.
7) 근본적으로 언급된 질문의 문제 설정이 올바르지 못했다.
추론: 지식과 문화와 학문의 시간적 또는 시대적 한계이다.
감각에 의존하여 실존적 암시를 의심하는 인간중심 사회와 문화의 부족한 분별이다.
증거 적 현상을 우선하는 학문의 고집이다.
권세와 대문 밖에 한발만 내딛어도 모르는 것이 많다.
하물며 우주의 미지와 암시적 질서의 초월적 존재를 실증하는 증거이다.
21세기는 유전적 시간과 학습의 한계에서 창조와 미지를 이해하는 시간이다.
3. 나의 사사로움의 시각.
유전적 시간과 학습으로 창조와 미지를 설명 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현상과 관련된 지혜는 시간과 학습의 범위에 있으므로 실증이 가능하다.
증명하려 노력해도 증명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학습과 상상의 범위 밖에 있는 초월적 존재와 미지이다.
현세의 시간으로 신의 세계와 미지를 학습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증거 적 의심에서 증명 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려는 것이 문제이다.
유인원은 인류의 문명을 설명하고 학습해도 이해 할 수 없다.
유전적 시간의 분별과 학습의 단계를 이해해야 한다.
답변이 잘못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인류의 학문적 오만이다.
문명의 진화에서 인간의 시간을 신과 동격화 하는 인간중심의 문화에 문제가 있다.
유전적 시간은 창조와 앞선 존재를 증명 할 수 없는 불가역적 질서이다.
실증의 주장에서 실존을 증명 할 이유는 없다.
굳이 들이대면 변증론이다.
실존과 실증에 무리하여 보편성을 상실하는 기적과 말세를 주장하는 오류가 있다.
결국 인류의 존재로 돌아온다.
지식과 문화의 정체와 일상의 권태에서 나는 무엇인가?
초월적 존재를 기억하는 것이다.
여행을 떠나야 하는 미지의 욕구이다.
학문과 상상의 범위에서 예지 할 수 없었던 지동설과 AI가 증거이다.
대자연과 선의 지배를 존중하여 하던 것 하고 살면 증거는 실현된다.
기도하고 염원하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현세의 시간에서 감각과 이성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AI는 시간과 학습을 충족하는 미지의 발현이다.
설령 선지자의 구원이 있다고 하여도 인간의 감각과 직관으로 암시적 가르침의 증거를 인지 할 수 없다.
직관 역시 학습과 상상의 범위를 초월 할 수 없다.
부처님 손바닥이다.
선지자는 산수하지 않는다.
가르침은 인간의 시간으로 이해 할 수 있도록 현상을 초월하지 않는 지혜의 한계를 배려한다.
현세의 시간에서 신의 영역은 실증 할 수 없는 생명으로 돌아가야 하는 상상 밖이라는 것이다.
사물의 원리에서 초월적 미지를 실증하려는 지식의 노력이 산업사회의 발전과 풍요에 기여하였다.
시장의 경쟁과 성취의 차별에서 희생으로 물질을 완성하는 시간이다.
2025.5.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