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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의 시간.

박세욱. 2025. 5. 1. 20:48

261 사과의 시간.
1) 사과의 시간.
백년 이백년으로 조급 할 이유가 없다.
정치와 권세의 지배가 인류의 잠재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침략적 폭력과 방어가 만든 역사이다.
관계를 불신하여 죽이고 빼앗고 경계하는 문화이다.
탐욕과 지배이다.
자본과 권세가 지배하는 형색과 차별의 문화가 결론이 아니다.
정신의 진화는 물질에 예속되지 않는다.
인류는 사물의 증거 적 결론에 이르지 못하는 시간의 정체에 있다.
현상의 지배에 있는 시간의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
 
결론 없는 감각의 집착은 불확실한 물질의 미래이다.
인류의 존재는 생명과 물질의 합의체이다.
물질로 생명을 지배 할 수 없다.
정치와 제도는 자유로운 창의력을 지키고 보완하는 것이다
경계적 또는 집단적 지배가 아니라 생명과 인륜을 존중하라는 것이다.
정치와 제도는 타의와 자아의 분별에서 생명과 삶을 이해하고 지키는 것이다.
도시와 차별과 정치에서 자연의 순리에 예속되어 대지를 공유하는 평화이다.
경쟁과 생산성에서 미래는 물질과 분배의 다툼이 사라진 풍요에 있을 것이다.
지배와 다툼은 사라질 것이다.
 
데이터와 기계적 생산성 시대이다.
사과의 시간이 끝에 이르고 있다.
또 다른 창(시대)의 발현이 있을 것이다.
미지의 끝은 증거 적 학습으로 도달 할 수 없는 창조와 생명의 원초이다.
21세기는 선지자의 가르침을 성찰하는 시간이다.
2025.5.1일.
 
2) 풍요와 노동.
의식주의 해결과 물질을 이탈하는 삶의 변화이다.
공유와 공존에서 인류의 포괄적 생존과 생산성 분배의 노력이다.
차별의 문제를 해소하면 의식주의 해결은 현재도 가능하다.
포괄적 생존과 분배는 자본의 차별과 지배적 사고에 의해 요원하다.
21세기의 경제는 국경과 민족과 종교와 문화의 경계에 의한 정치적 지배와 개별적 소유의 시대이다.
작금의 사회와 산업은 노동과 관계의 점유가 전제된 차별적 시장과 자본 패권의 경제이다.
수공업의 생산에서 물질의 증거와 오토메이션의 산업혁명 후 수백 여 년 지나 데이터의 공유경제와 무한의 기계적
생산성 시대를 예견하고 있다.
데이터의 공유경제는 생산과 소비의 최적화로 시장경제의 무한경쟁으로 발생하는 물질의 낭비가 사라진다.
 
소비의 예측과 주문 생산으로 중복투자와 제품의 경쟁과 과잉생산의 제고 문제가 해결된다.
데이터의 관리에 의해 무한경쟁의 시대가 사라진다.
무한의 생산성과 최적의 생산과 소비는 의식주의 풍요를 예견 할 수 있다.
문제는 생산성의 풍요와 노동의 빈곤이다.
문화적 시각에서 노동은 생존과 사회의 주체였으나 가치의 위기가 증가하고 있다.
현세의 노동은 육체의 고행으로 생존의 조건을 충족하는 정신적 만족의 성취이다.
필요한 것이나 자아와 시간의 구속에서 하기 싫은 것이 기도 하다.
진화는 생존에서 불편한 조건의 해소이다.
인류는 노동의 시간을 줄이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산업에서 노동과 관련된 사회적 관계의 점유는 시간과 병행하여 줄어들 것이다.
현상은 욕구의 결과이다.
주 4.5일제를 주장하고 있다.
아직은 노동에 지친 개별적 삶의 충족이다.
일과 여가의 병행이다.
일이 사라진 여가의 시간과 학습에서 권태의 끝이 있다.
미래의 기계적 생산성은 무한의 생산성으로 완전하게 노동을 대체하게 될 것이다.
인류의 노동생산성은 산업의 중심에서 사라진다.
노동과 관계에 익숙한 삶의 변화가 필요하다.
 
한평생 멍 때리는 상상이 두렵다
새로운 생존의 가치를 찾아야 한다.
문명으로 사과 이전의 자연과 자아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주 또는 정신의 미지이다.
2025.5.2일.
 
3) 또 다른 시간.
시간에 정체되어 있는 역사와 문화와 생존에서 새로운 가치의 의식과 의지가 필요하다.
과거가 전제되는 현제의 현상은 미래의 암시이다.
익숙한 것의 일상적 관성에서 유전적 시간과 학습을 충족하는 미지의 발현이다.
진화의 필연에서 인류의 지적 의지를 초월하는 새로운 문명과 삶의 차원적 변화이다.
사과 이후 또 다른 선택이다.
이데올로기의 역사는 물질과 지배의 사회에서 전체주의와 귀족제 영주제등 분배의 차별에 저항한 평등의 합리성이다.
현세는 자본과 시장경제의 부정적 현상 패권경제의 극단적 차별의 시대에 있다.
탄생과 관계없는 자본의 차별에 있는 사회적 기회와 부와 비교되는 신분의 격차이다.
합리성을 전제하여 불편한 것을 개선하여 나아가는 것이 진화이다.
 
패권적 자본과 경제에서 부르주아적 사고와 집단이 지배하는 시대이다.
개선의 방법이 없는 소수에 의한 다수의 불편이 상시한다.
평등의 원초에서 합리적 의지의 저항이 불가피한 시간이다.
힘의 지배는 존재와 구성의 합리성을 요구하는 파괴적 수단의 설득에 한계가 있다.
과학의 진화는 문명이다.
평화와 존재를 공유하지 못하면 파괴적 균형의 욕구는 확장 될 것이다,
종교와 문화적 절대성의 관성에서 시간과 학습의 한계를 이해하는 가치적 판단의 예지가 필요하다.
새로운 사고의 시작이다.
창이 채워지면 다음 창으로 넘어가야 목적에 도달 할 수 있다.
 
창을 파괴하고 다음 창으로 넘어 갈수 없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진화와 역사의 퇴행이다.
재림은 파괴적 혼란에서 인류를 구하려는 선지자의 노력이다.
진화와 문명의 방향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재림(신)의 시간을 인류의 시간으로 노력해야 한다.
선을 우선하는 글로벌 지식과 문화의 공유이다.
통신사회는 인류의 예지와 의지가 아니라 시간과 학습과 현상에 의한 미지의 발현이다.
또 다른 질서이며 선의 지배를 계승해야 하는 정의가 있다.
 
생명과 물질의 합의체에서 물질을 완성하는 시간을 지나 생명에 가까운 미래이다.
새로운 질서의 시작이다.
2025.5.2일.
 
4) 개별적 삶.
노동생존의 상실과정에서 일의 개념이다.

통신의 교류와 이동수단의 비약적 발전은 산업과 노동의 형태를 바꿀 것이다.
도시화의 목적은 생산과 소비의 근접성을 위한 산업과 유통과 노동의 집약이다.
관계 즉 농경사회의 자급자족과 자아 적 고립에서 사회성의 확장이다.
AI와 기계적 생산성으로 관계와 지식의 집합을 위한 회의와 시장 등 물리적 접촉의 축소가 불가피하다.
통신과 데이터의 미래는 로봇의 노동대체와 드론 등 유통수단 발전으로 산업과 거주의 근접성이 완화된다.
개별적 거취에서 통신으로 지식과 문화의 학습과 의식주에 필요한 유통을 접촉하는 시간이 증가하게 된다는 것이다.
현상과 세대와 종이의 학습과 시장의 진열대 개념에서 인공지능과 통신유통의 개념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통신시장과 게임의 현상에서 미래의 예지이다.

 

고립과 자유의 딜레마에서 타의 또는 이웃의 관계를 의식하지 않는 일상과 삶이다.
지배적 역사를 주도한 무리 적 습성에서 인습의 변화와 개별적 자유이다.
공익과 공존의 관계를 희석하는 집단주의와 각자도생의 현상은 독립된 거취의 학습을 암시한다.
관계를 의식하는 성취에서 나를 우선하는 사고이다.
창조와 진화에서 잠재된 자연의 순리인지 사회와 관계에서 지식의 독립인지 아직은 모호하댜.
집단주의는 나의 거취와 이익에 가까운 예속의 거래이다.
공동체의 대의적 개념에서 사회성을 강조하는 조직과 거리가 있다.
의사당에 진입한 군인의 판단과 행위는 조직이 아니라 대의를 우선하는 개별적 지식으로 보아야 한다.
지식의 독립적 판단으로 산업사회의 주류적 현상 조직의 의식이 작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한의 기계적 생산성과 완전한 분배에서 다툼이 사라진 공동체의 개념은 최소화 될 것이다.
관계와 타의가 아니라 스스로 삶과 자유를 찾는 것이다.
자아와 문화 유토피아의 상상에서 무엇을 찾을지 아직은 확실하지 않다
노동의 감소와 증가하는 여가시간의 기대는 문화적 일상에서 자연과 자아의 회복이다.
노동은 필요의 한계에서 자급자족 하는 형태이다.
인류는 농경사회에서 그렇게 살았다.
의식주의 해결에서 낫살에 천태만상을 경험한 나의 경우는 부의 조건과 성취의 비교가 없다면 자연의 예속이다.
창조와 진화에서 생명과 가까운 자연과 자아의 휘귀적 잠재력은 사과 이전의 시간과 학습이다.
생명과 물질의 합의체에서 산업사회의 경쟁과 희생은 물질의 완전한 성립을 위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후는 사과 이전의 생명이다.
재림의 시간이 아니라 파괴적 준비의 인내와 인류의 시간에서 예지이다.
2025.5.2일.

 
5) 생명의 기원.
물질의 완성에서 생명과 탄생의 평등은 실현 될 것이다.
생명에 가까운 암시적 질서는 창조와 대자연에 예속된 진화의 잠재력이다.

대자연은 사물 적 형태의 존재와 생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물의 인식에서 각각의 생명은 유전적 시간의 분별이 있다.
유인원에게 인류는 앞선 문명이다.
우주의 시각에서 지구생명체의 유전적 시간을 초월하는 존재를 실체적으로 의심 할 수 있다.
신으로 표현되는 창조의 절대이다.
생태계의 유전적 즉 시간의 분별이 증거이다.
고고학은 작은 증거로 인류의 시간과 진화의 진실을 규명하고 있다.
 
우주에서 지구는 작다.
미지의 무한에서 무엇이라고 단정 할 수 없으나 인류에게 가장 궁금한 정체가 생명의 근원이다.
지식과 문화의 감각적 의혹에서 우선하는 당연한 문제이다.
창은 순서대로 열린다.
산수하면 물질의 다음은 생명이다.
미래는 인류 또는 생태계의 정체(근원) 생명을 찾는 시간이다.
우주의 실체 이든 내안의 자아이든 그렇게 될 것이다.
인류는 물질에서 생명과 우주를 향한 지식의 창을 열었다.
2025.5.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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