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경계적 집단주의. 본문
259 경계적 집단주의.
페미니즘과 검찰공화국의 전체주의이다.
특정집단의 정치이다.
권력의 정체와 의지는 그렇지 않기를 바라지만 사회의 영향이 크다.
진영정치의 양극화에서 승자독식의 점유와 소외이다.
의견수렴의 정의 전체와 통합에서 우리 편의 편견으로 부분을 우선하는 정권과 권력의 잘못된 인식이다.
다양성과 옳고 그름의 반론을 수용하지 못하는 이분법적 승패의 정치이다.
과거 영호남의 갈등에서 국방의무와 고속도로 단속 카메라에서 극명한 차별이 있었다.
정권의 방향에 일희일비 하는 단속 카메라의 밀집도와 선임의 출신지역에 갈리는 얼 차례와 열외이다.
승자독식의 권력과 울타리에 기대는 낮 바닥 입신의 기회주의 정치가 갈라놓은 사회의 부정적 현상이다.
냉전의 역사에서 이념의 혼란과 분단으로 이어진 단독정부 수립 후 남한은 우파의 독무대였다.
4.3과 여순사건 등 좌파는 민족과 이웃이 아니라 적이었다.
연좌제는 사회참여의 이념적 차별이다.
깡패정치로 회자되는 자유당 정권의 역사는 진영의 울타리가 아니라 이념과 권세가 지배하는 사회였다.
우파의 절대지배에서 다양성의 반론과 사회적 갈등이 정치에 개입 할 여지가 없었다.
감금하고 죽이고 여차하면 좌파로 내몰리는 우파의 독무대 이었다.
약자는 저항의 의지를 상실하고 있었다.
당시 위계질서를 우선하는 가부장제와 부뚜막 문화가 사회의 주류였다.
6~70년 전의 유교문화이다.
자유당의 독선은 이념과 냉전의 좌우 이분법적 선택에서 위계의 예속적 사고가 작용하였다고 볼수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에서 아직도 위계의 미련이 남아 있는 불합리한 현상이 12.3 계엄의 사상적 원인이다.
시간과 학습의 변화에서 문화와 사회에 잔존하는 이념적 절대지배의 망상이다.
광화문에 학살자의 기념관을 짓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결기가 부추긴 계엄과 탄핵의 난세이다.
21세기 지식과 문화의 시대를 망각한 무지한 집단의 국수주의이다.
양극화의 학습에서 파생된 전체를 도외시 하는 집단주의이다.
공동체의 구성과 질서에서 공적개념의 희석이다.
이웃을 배려하는 공유와 공존의 대의적 사고가 집단적 지배의 형태에 집착하는 현상이다.
대의와 절차의 순리를 상실한 의회의 돌격적 파행과 계엄의 망상이 그렇다는 것이다.
진영정치에 이용당한 지역의 문제도 천 년 전 백제와 신라의 앙금 이상은 아니었다.
지역문제는 5.16 이후 정치공학에 희생된 홍익인간정신이다.
혁명정부 초기 호남에서 공화당 의원이 다수였다.
민주화의 요구에 위기를 감지한 군사정권이 역사와 지역을 이용한 갈등의 정치가 갈라치기의 시작이다.
좌우의 대립에서 성향 적 저항의식이 강한 지역의 야성을 고립시키는 정치공학이다.
분단의 이념적 대치에서 적대적 정치의 선동이었다.
동서냉전의 적대적 정세를 이용한 진영의 강요이다.
이후 좌든 우든 입신양명과 가문의 영광을 우선하는 줄서기 정치가 지역갈등을 이용하고 조장하였다.
국가의 대의에서 민주화의 합리성이 부르주아의 탐욕으로 사리사욕을 합리화하였다.
불나방과 계란으로 표현되는 민주화의 절개가 기득권에 합류하여 사대부적 사고로 권력에 집착하였다.
얼핏 하여 권력의 쟁취는 민주화의 목적과 희생에서 기득권을 타파하는 당연한 진군이다.
현실은 죽은 자의 관 뚜껑 닫아 놓고 불나방의 행색뿐인 기득권의 안주이다.
민주주의의 대의와 민생이 아니라 우리 편의 진영에 휩쓸린 호가호의와 내로 남 불의 정치이다.
입신양명과 가문의 영광과 주변의 우월감이다.
절차와 순리를 외치며 권력의 독선에 저항한 민주화의 역사가 대의를 상실하고 일신과 집단과 승패에 매몰된 일극의
절대에 버젓하다.
불의에 저항하였던 야성은 옳고 그름을 상실하고 우리 편의 세뇌에 바람잡이로 전락하였다.
정의의 야성으로 시작한 광주학생항일운동과 5.18의 정신이 무색하다.
계엄과 탄핵의 난세에서 요란스런 정치의 국가관을 살펴봐야 한다.
집단과 개별적 성취의 탐욕이라는 것이다.
철지난 이념과 진영의 구실에서 국민과 국가의 대의를 빙자한 승자독식의 패권이다.
민중과 민심의 궐기와 요구는 합리성으로 시작하여 합리화 한다.
요구에서 주체가 된다는 것이다.
미약한 빛으로 시작한 촛불의 역사가 증거이다.
페미의 요구와 권력과 유착한 사정의 역사를 우려하는 이유이다.
권력의 주체는 구성과 사회적 심리에 영향을 끼친다.
부분의 합리성에서 주체의 대의로 합리화 하려는 또 다른 갈등의 조장과 시작이다.
부분으로 전체의 대의를 왜곡하는 독선이다.
선동과 선점으로 민주적 체제와 절차를 왜곡하는 집단주의의 학습이다.
의견수렴에서 절차를 충족하는 선택의 요구는 수용되어야 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동의하는 민심을 수용하고 배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의견수렴의 합리성이 결여된 탄핵의 조건적 정권성립에서 동행한 동의의 요구가 있을 것이다.
촛불의 합리화는 정권의 책임으로 해결 할 수 있었으나 절대 권력에 기대는 반쪽의 정치는 대응하는 반쪽의 응력 적
저항으로 해결해야 한다.
유전적 시간과 학습의 권태로 사라진 유교의 직접적 가해와 피해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성의 반쪽을 개인적 성취와 극단적 정치의 목적을 위해 정당정치에 끌어들인 역차별의 결과가 있을 것이다.
지식과 문화의 시대를 떠들며 무엇을 위한 정치인지 알 수가 없다.
국수적 독선과 갈라치기 정치가 만든 사회적 병패이다.
대립과 불신의 상대적 대응을 간과한 정치공학과 이성이다.
사회적 역할에서 문제제기는 이해하나 극단적 정치와 권력에 기대하여 민주적 절차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여권신장의 요구는 정치와 권력으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수백 년 한반도의 문화와 정서를 지배하였던 부뚜막 문화와 가부장제는 대문 밖 정체의 문제에 있다.
어찌되었든 모성으로 이해하는 생물학적 차이의 공존은 피 할 수 없다.
6~70년 전과 작금의 변화에서 문화와 사회적 문제제기의 학습과 시간으로 해결 될 수 있다.
결혼기피와 출산율 저하는 문화와 사회의 변화를 요구하는 학습의 증거이다.
체제와 권력의 거취에서 특정한 국가권력기관의 정치화를 방관 할 수 없다.
국가기관의 정치 개입은 질서의 합리성을 위해 그만 두어야 한다.
제도의 집행에서 가능한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 되어야 한다.
이짝이나 저 짝이나 수단과 방법에 개의치 않고 이기고 보자는 억지는 계엄의 망상과 다를 것이 없다.
정치검찰에서 국가의 대표가 되는 망상은 계엄의 실상으로 끝내야 한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배반 적 선택으로 계엄과 탄핵의 난세이다.
"이사람 믿어주세요."
거짓과 갈등을 조장하고 이용하는 정치판 믿을 구석 없다.
국정의 안정에서 확실한 검증의 필요이다.
연속되는 정권의 불행과 정치의 난맥에서 국가의 미래이다.
계엄과 탄핵의 혼란에서 합리성이 결여된 선택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것이다.
국정의 집단적 또는 폐쇄적 운영이다.
지식과 문화의 시대를 인정하는 정치와 국정의 요구이다.
집단과 부분 보다 전체의 합리성을 우선하는 정치와 제도이다.
정치는 진실과 정의에서 정사가 야사를 우선해야 한다.
정치의 수단과 기교를 앞세워 야사로 정사를 왜곡하는 것은 미래가 어두운 모자란 학습이다.
페미든 정치검찰 이든 권력과 진영의 경계를 이용하는 왜곡된 공생의 정치는 잘못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과 정치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독선적 권력과 민주화의 투쟁적 시간에 집착하는 정치의 정체이다.
승자독식 제왕적 대통령제와 중심을 상실한 의회주의는 민주주의의 불신이다.
민주화의 시간과 현재의 정치에서 민주주의의 성숙과 동행하는 안정된 국가관이 필요하다.
국민의 의식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투쟁과 갈등으로 학습해야 하는 단계를 넘었다.
적대적 이념과 울타리의 승패에서 국가의 안정적 관리가 필요한 시점이다.
입법부의 불안정과 계엄의 망상은 국민의 정서와 동떨어진 집단의 경계와 사대부의 구태한 관성에 빠져 있는
정치의 오판이다.
운명의 기우와 어줍지 않은 가훈으로 국가를 운영 할 수 없다.
현실정치는 민심의 요구와 격이 다른 시정잡배의 패거리 정치이다.
인간은 배운 대로 한다.
생물학적 능력의 한계에서 내 것이 전부가 아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깨끗하다.
조직이 오래되면 비비고 줄서며 썩는다.
신념과 바른말은 쇠귀에 경 읽는 꼴이 된다.
별 볼일 없는 조직의 허세로 쓸 만한 싹 아지 잘라 놓는다.
민심의 지적 분별을 소홀히 하는 줄서고 비비는 조직의 문제는 인물의 부제이다.
귀는 없고 입만 방자한 오만이 세상의 변화를 모른다.
신념 없이 기회에 줄서서 낮 바닥 들이밀어 입지를 색칠하는 화면 빨 정치이다.
국가보다 울타리와 밥그릇을 우선하는 배지의 존경은 택도 없다.
정치판은 업 지러진 물 주워 담는 시정잡배의 못자리 이다.
거짓이 당연한 정치공학이다.
정당 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공천의 절차가 가부장제의 이분법적 소외를 이용한 정치공학에 학살되었다.
일극체제의 극단 성으로 민주당의 정체성은 사라졌다.
다양성의 반론과 중용을 기대 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
동진정책에서 주객이 전도되어 진보의 본거지가 들러리 되었다.
꿈속을 헤매는 망상적 억지의 계엄에서 자나 깨나 오매불망 하는 조기대선의 가능성에 벌써 줄서고 비비고 철딱서니
없는 낮 바닥 쟁탈전이 점입가경 이라고 한다.
국가는 변방이고 밥그릇이 전부이다.
앞뒤가 다른 낮 바닥 정치의 속살은 겉모습과 전혀 다르다.
오지랖 물 말아 드시는 김치 국물에 망한다.
계엄과 탄핵의 난세는 정사로 엄정하게 기록하여 후대에 전달해야 한다.
권세에 기대어 허물의 저울추로 국민의 정서를 속이는 사대부의 정치는 끝내야 한다.
헌재의 판단에서 국민이 동의하는 법치의 정의를 보았다.
2025.4.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