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현상과 정치. 본문
260 현상과 정치.
1) 풍선.
한정된 공간에서 다수의 생존이다.
효율에서 273분의 1에 관련된 열의 정도가 있을 뿐이다.
대의와 대세에서 승패의 저울추에 시시비비 하는 산수의 곁가지가 있다.
정체성이 모호한 어부지리 정치이다.
촌철살인이다.
대세에 끼어들어 송곳으로 전유물을 챙기려는 얄팍한 정치이다.
양극화의 저울추에 기생하며 실체를 부풀리는 모사의 기회주의이다.
정당의 정체와 전통과 무관한 시류의 곁가지를 과장하는 틈새의 오지랖이다.
사회적 갈등을 갈라 쳐 입지에 이용하는 시장 통 엿장수의 거취이다.
정치의 변방에 머물다 이것도 저것도 안인 정체로 역사의 강물에 사라지는 여울이다.
면의 중심을 지르는 선의 직선에 개입하여 하찮은 곡선을 기대하는 맥없는 거취에 불과하다.
대의와 대세의 이미지에서 시대의 본류가 아니다.
제삼지대의 대의와 명분에서 택도 없다.
근근한 거취에서 끝난다.
갈등과 타의가 아니라 스스로의 능력으로 하라는 것이다.
수레바퀴에 진흙 달라붙듯 모양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2025.4.29일.
2) 거취.
제 머리 못 깍 는다.
의견수렴에서 수단이 앞서는 행위는 목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정치는 현상이 전부가 아니다.
반론과 비판 없는 미래는 없다.
세조의 후기는 순리의 반론과 인륜의 원한을 씻어내는 자성이 있다.
존재와 생존에서 자연의 다양성은 구성의 합리성을 충족한다.
대세에서 주체와 조건의 협력적 상호작용이다.
21세기의 사회는 관계에서 작용의 효율성이다.
톱니바퀴의 이해에서 사대부의 독선은 주체의 지나친 강조이다.
실용주의는 분야와 전문성의 역할을 존중하는 것이다.
이쑤시개와 귀지와 손톱 깍 기가 필요하다.
삶과 일상을 우선하는 가치에서 논리와 행위의 실천적 관계이다
정치는 상호작용의 관리이지 지배가 안이다.
통치에서 구성과 작용의 순리에 개입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구조적 문제는 시간을 충족하는 문화의 필연적 변화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적 가치이다.
새로운 질서의 요구이다.
정치는 현상에서 학습의 미래를 예지 할 수 있어야 한다.
울타리에 줄서서 내 것의 입 방정으로 선동하여 떠들지 말고 들으라는 것이다.
국민 우습게 보지 말라는 것이다.
지식과 문화를 공유하는 통신시대의 새로운 가치는 경계적 정치에 기대는 제 잘난 정치를 우선하지 않는다.
구성의 본질 국민 즉 사회가 국가의 주체이다.
독선과 억압으로 표현되는 위계의 사회는 사라졌다.
양극화의 획일성을 강요하는 부분의 독선으로 통치 할 수 없다.
통신사회의 포괄적 의견수렴에서 이분법적 경계와 특정한 사고의 주체가 어렵다는 것이다.
전체의 합리성을 충족하는 민심이 천심이다.
국민이 우선하는 민주주의의 시대이다.
이념의 적대적 사고와 사관의 이질적 역사는 국정의 변방이다.
2025.4.29일.
3) 가치.
계엄과 탄핵의 혼란에서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고 있다.
문제는 21세기 글로벌 사회에서 민주주의와 문화의 선진에 속하는 정치의 구태이다.
폭력으로 국가를 지배하려는 선택의 배은망덕 한 망상이다.
나 홀로의 고립으로 역사와 문화를 무시하는 분수없는 처신이다.
절차의 분별을 인내하는 민심이 아니라 경계와 수단이 앞서는 지배적 망상의 조급함이다.
아직도 승자독식의 절대 권력이 정치적 사고의 주류이다.
정치판이 도박의 기우와 줄다리기 형국이다.
이긴 자의 점유와 패한 자의 소외이다.
지식과 문화의 필연적 변화에서 과거에 머물러 있는 정치의 한계이다.
쓸만한 인물이 아니라 이념과 사관과 지역의 경계를 우선하여 깃발에 억 메이는 선택의 관성적 절대이다.
예지와 미래가 부족한 익숙한 것의 일상적 지배이다.
문화와 사회는 진보하는데 정치판 인물은 승패 적 사고로 고착화된 고물들뿐이다.
쓸만한 싹 아지 군화발로 뭉게드만 이제는 이기적 조직과 집단의 사사로움으로 물불 안 가리고 아작 내고 있다.
전체와 미래가 아니라 우리 편의 패권이다.
문화와 사회가 요구하는 민심의 수렴이 아니라 내 것의 깃발로 대의를 점령하려는 골목대장 꼴 아지 이다.
경계 적 정치와 지배적 사고의 벽을 허물어야 한다.
지식과 문화의 시대적 변화에서 국민의식과 사회는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정치의 다변적 유연성과 제도의 예견 적 실현이다.
관계에서 경계 적 파괴성 개선과 만인이 공감하는 제도의 안정이다.
탄핵의 인용에서 국민의식과 민주주의의 성숙은 21세기의 정치가 수렴해야 하는 미래지향적 현상이다.
과거의 구태 적 사고로 쉽게 예견 할 수 없었던 지적 변화의 실체이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문화도 학문도 정치도 아니다.
정치판의 실체가 견장의 입신양명과 가문의 영광과 밥그릇뿐이라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한민국 국민의 성숙한 의식과 공고한 민주주의의 위상을 수렴하지 못하고 드밀고 보는 돌격대 정치는 현상의 괴리에
있는 바보들의 행진이다.
이제나 저제나 안정된 일상의 평화를 기대하나 역사와 문화를 무시하는 나 홀로의 망상적 계엄과 죽기 아니면 까무라
치는 입법부의 독주로 정체를 상실하는 정치판 꼴이 참담하다.
낮 바닥 분칠하는 말은 가관이나 머리 통는 사사로운 입지에 갈피 없는 대의이다.
바꾸어야 하는데 실 헌 인물은 아작 나고 건더기 없이 떠드는 중생들께서 죄 짓고 있다.
현세는 탄생으로 해결 할 수 없는 자본이 지배하는 문화적 한계에 있다.
실용주의는 분야와 전문성을 우선하는 국가의 효율적 운영이다.
다양성의 합리적 관계이다.
의식주를 우선하는 삶의 안정이다.
일상의 평범이 정치와 제도를 의식하지 않아도 평화를 유지 할 수 있는 사회이다.
스스로의 자유로 살 수 있는 환경이다.
경쟁과 차별에 지치는 자아의 그리움이다.
새로운 정부 구성에서 돌아 갈 수 있는 그나 마의 가능성이 있었으면 한다.
떠들어도 쇠귀에 경 읽듯 하드만 존경하는 원로들께서 참여하신다고 한다.
정치의 변화에서 이짝이든 저 짝 이든 국민과 민생과 삶이 우선하는 중용의 희망이다.
2025.4.2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