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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관성과 정체.

박세욱. 2025. 4. 20. 22:34

258 문화의 관성과 정체.
1) 문화의 관성과 정체.
문화는 인간의 불완전한 욕구가 혼재되어 현상되는 결과이다.

문화의 한계적 절대성은 시간과 학습에 의해 파괴된다.
사회와 지식의 진화는 문화의 불안정에서 새로운 질서를 추구한다.
시대적 사고의 절대적 정체를 파괴하는 새로운 시험의 욕구이다.
진화에서 학습의 충족은 권태와 미지의 역설이 있다는 것이다.
교류와 소통의 고립에서 각각의 역사가 미지에 기대하는 것이 종교이다.
새로운 질서(미지 또는 종교)의 요구는 현세가 이질적 문화의 한계에 있다는 것이다.
문화의 불균형에 저항하는 평등과 평화의 요구는 자연의 합리성으로 학습된 선이다.
관계에서 영속적 지배는 선이 유일하다.
 
존재에서 선을 부정 할 수 없다.
물질과 권세의 차별은 만인의 것이 아니다.
선은 만인의 것이다.
문화의 파괴적 형태에서 재림의 기대는 선의 회귀적 본능이다.
생명의 경시와 인륜의 차별에서 분명한 선의 갈증이다.
재림은 문화적 한계를 의미한다.
마구간은 차별적 생명과 인륜의 저항이며 새로운 질서의 요구이다.
신의 가르침은 무한한 미지의 선택에서 인간중심 사회의 불완전성을 교훈하는 것이다.
불통으로 폐쇄된 문화의 관성적 절대성이 아니라 미지를 예지하는 지식의 욕구이다.
 
글로벌 사회의 지식과 문화와 통신은 교류와 소동의 시간을 충족하고 있다.
신의 가르침은 다음의 미지를 암시하는 것이다.
선과 악 죄와 벌에서 지식의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
통신사회는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현상에서 유전적 시간과 학습을 충족하는 미래와 미지의 발현이다.
생물학적 지식은 21세기 글로벌 사회와 데이터의 시대에 대비해야 한다.
기계적 생산성 시대의 필연적 예지에서 지배와 차별이 아니라 공유와 공존이다.
세계와 인류적 질서이다.
지식의 진화는 파괴적 변화가 아니라 가치적 또는 예지적 변화의 생산성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종을 애도합니다.
2025.4.21일.
 

2) 패권경제.
문명의 이기에서 생산성을 전제한 기업의 투자와 격이 다른 자본 패권주의이다.

미래 인류의 생존은 기계적 생산성의 분배에 있다.
현재로 썬 인류의 지식과 노동력이 미래의 생산성에 기여 할 수 있는 희망적 조건이 불확실하다.
공동이라는 개념의 사회주의가 아니라 노동의 시대가 끝나 간다는 것이다.
인류의 지식과 노동을 대체하는 데이터와 로봇의 시대이다.
문화와 종교와 민족적 지배를 위한 자본의 차별이 무의미한 미래이다.
현세의 상식으로 존재의 모호함에서 물질이 아닌 정신의 미지를 찾아야 한다.
지나친 예지의 염려가 아니다.
AI의 실체를 예견한 종교와 지식은 없다.
 
종교의 암시적 질서와 지식의 증거 적 관점에서 정체된 현상의 무의식이다.
미지의 예지가 필요한 시간이다.
물질과 자본사회의 근본적 성찰이 필요하다.
돈의 행방과 거취를 우려한 선지자가 다수이다.
경제를 빙자한 돈의 무한확장은 돈으로 돈의 치부를 저울질 하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이기의 실용에서 배부르지 않는 허상의 지배이다.
기회의 차별에서 확장되는 가난의 소외와 부르주아의 경계이다.
없는 놈은 칼 들고 불 지르며 악다구니 하고 가진 놈만 호의호식 하는 세상이다.
생명과 물질의 증거 적 관계와 상관없는 기회 적 권세와 탐욕이다.
 
역사에서 차별적 저항을 망각한 현상의 무의식이다.
먼저 된 자 나중 된다고 하였다.
돈의 문화에 기대어 세계를 또는 인류의 존재를 지배하려는 시도는 미래가 아니다.
시장경제는 사라졌다.
자본(돈)의 패권주의이다.
시장을 돈으로 지배하여 기술과 노력의 경쟁을 무의미 하게 하는 경제이다.
어렵다는 경제학이 유명무실하다.
생존의 이기와 무관한 돈의 패권적 경제이다.
예시하면 돈으로 어떠한 분야의 산업을 지배하여 글로벌 사회를 배경으로 매각하는 경제이다.
 
생존의 기여가 아니라 적당한 시기에 상장하여 챙기며 뒷일은 나 몰라라 하는 치부이다.
빈부 즉 민생과 자본의 격차를 조장하는 문제이다.
글로벌 사회에서 피장파장 이라고 하나 수많은 사람들의 생존수단을 돈의 패권경제가 빼앗는 것이다.
민생에서 일상을 침해하는 현상이다.
생명과 인륜이 아니다.
분야의 개발이라는 명분도 결국 독점으로 가격 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호주머니 문제가 발생한다.
말이 앞서는 민생이 아니라 국가의 말초에서 생존하는 일상을 지켜야 한다.
시장은 자연스런 자생적 기능이 있다.

 

자본이 특별하여 시장을 형성하는 예는 드물다.

패권적 자본의 산업지배는 새로운 직종의 창출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것이다.

사라진 시장경제의 허상을 앞세운 자본의 지배와 독점의 기회주의이다.

만인의 생존에서 잘못된 것이다.

산업의 정보통신 접목은 관련된 생산성에서 이익을 창출해야 한다.

제품의 노력과 관련된 정보에서 기존산업의 존재를 존중하라는 것이다.

동네시장 간판에 통신기업이 간섭 할 이유가 없다.

정보통신과 관련 없는 나의 판단과 의지에 의한 구매에 누구라도 개입 할 이유가 없다.

모든 산업의 생산성에 개입하려는 당치않은 노력이다.

 

AI의 생산성과 전혀 다른 자본 패권주의이며 갑질이다.

데이터와 기계적 생산성의 미래에서 노동을 상실한 생존의 저항에 직면하게 될 자본의 횡포이다.

관세전쟁으로 국제사회가 북새통이다.

상호주의는 존중되어야 하나 결국 국경의 이질적 경계이다.

2025.4.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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