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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라만상 2.

박세욱. 2025. 4. 13. 18:23

257 삼라만상 2.
1) 계시록.

그만파라!

땅 꺼짐은 구조적 문제이다.

수도권 그만 확장해야 한다.

현상이 아니라 미래이다.

정치는 우선이 아니라 미래를 예지해야 한다.

계속 파면 계속 무너진다.

요한 계시록은 종말론이다.

바빌론은 도시이다.

타락의 거점이다.

현세는 사과로 비유되는 관계의 지배이다.

뱀의 혀로 시작되는 불신이다.

중세는 자연과 신에 예속된 시간이다.

21세기의 인류 세는 인간의 세상이다.

산업사회와 증거 적 관점 즉 형이상학의 문화이다.

신의 존재에서 무디어지고 무의식한 시대이다.

도시화는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탐욕의 상징이다.

자연과 자아의 상실이다.

요한의 증오에서 하나도 빠지지 않는 탐욕과 타락이 전부인 세상이다.

물욕과 금욕과 권세의 타락이 신을 대신하는 절대의 존재가 되었다.

왜 일곱 천사를 통한 신의 진노가 없는지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다.

현세에서 신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물질의 세속에 세뇌된 자들을 벌 할 수 없다.

개별적 자유와 사유화는 민주주의의 대의이다.

무엇이 잘못되었다.

물질과 자본의 시대를 인간 또는 사회를 통해 요한의 증오로 벌 할 수 있을지 불가능한 시대이다.

인간의 능력으로 현세를 인정 할 수밖에 없다.

자아 적 증오로 적그리스도의 세상을 바꿀 수 없다.

예수의 시대나 지금이나 적그리스도의 세상이다.

시대의 문화적 사고로 이해 할 수 있어야 바뀐다.

가르침의 증거가 필요이다.

요한처럼 네가 나를 의심하느냐 하여도 일곱 천사를 대신 할 방법이 없다.

재림이 답이다.

선의 분별과 용서의 한계에서 자아 적 분노는 정의이다.

또다시 구원자의 희생으로 죄를 사해서는 안 된다.

로마와 봄베이 정도로 대신 할 수 없다.

기자지구의 참상이 천사의 형벌이라는 가르침은 따를 수 없다.

또 다른 심판과 형벌 절대자 신의 모방이다.

음녀의 지칭에서 차별이 느껴진다.

무저갱과 여덟 번째 왕의 정체가 궁금하다.

단테의 신곡이 어렴풋하다.

이천년 전의 자아이다.

 

2) 심판과 형벌.
첫번째 심판 힌말은 정치와 권세.
두번째 심판 붉은말은 폭력과 전쟁에 의한 힘의 지배.
셋번째 심판 검은말은 물욕과 금욕 등 물질만능 사회.
냇번째 심판 청황색말은 규범으로 이해되는 색정과 욕정의 관계적 부정 즉 간음.
다섯번째 심판 우상숭배와 순교와 이단의 종교적 경계.
여섯번째 심판 음해와 거짓의 다툼에서 타의의 침해.
일곱번째 심판 악의 파멸.
 
천사1 형벌 피석인 우박과 불.
천사2 형벌 바다에 떨어진 운석.
천사3 형벌 육지에 떨어진 운석.
천사4 형벌 흉년 또는 수탈 등 의식주의 기근.
천사5 형벌 종교와 민족적 경계에서 전쟁의 참상.
천사6 형벌 지진과 태풍과 화산과 해일 등 천재지변.
천사7 형벌 모든 형벌(아마겟돈).
불의 형벌이 많다.
여섯번째 심판과 향료의 위치는 나름의 오해에서 글의 문학적 구색이다.
2025.4.13일.
 
3) 제삼지대.
양극화의 비생산적 대립에서 중용의 명분은 충분하다.
세력화의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새로운 정치의 정체성이 필요하다.
과거의 진영논리와 이념적 경계는 버려야 한다.
민생을 우선하는 실용주의 이다.
대선과 지방선거와 총선의 과정이 필요하다.
의지와 인내의 노력이다.
현실정치를 답습하는 구태한 정치를 탈피하는 새로운 지형의 실체적 도전이 필요하다.
정치 죽기 아니면 까무라 치는 것이다.
합리적 절차에서 진보정치의 돌격적 수단이다.
보수정치는 하는 말이 이분법적 진영논리이다.
적대적 선택에 기생하는 정치이다.
양극화의 패악에 도전해야 한다.
어차피 목표는 분권 형 개헌이다.
다수의 역할이 필요하다.
중도정치에서 절대 권력은 없다.
의지가 통합된다면 나의 사사로움도 동행한다.
2025.4.13일.
 
4) 안개.
특별한 예우이다.
촛불의 난세에서 퇴거 직 후 모질은 포토라인에 구속과 포승줄과 수갑이었다.
참담한 정권 질기게 끌고 다녔다.
제 잘난 계엄과 난세의 자신감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정의 위치가 만만하지 않다.
사법적 절차의 기대도 갸우뚱 하다.
법리인지 인물인지 권력인지 또는 허물의 저울추 인지 아리송하다.
나는 몰라도 야사는 안다.
정치가 국민을 속이면 안 된다.
정치는 현상이다.

지나치면 속 것의 진실이 증거로 남는다.
2025.414.
 
5) 낫살.
사는 것이 조금씩 지겨워 진다.
아니다.
예전부터 지푸라기 잡는 생이었다.
사지에 매달려 정체를 돌아볼 촉각이 없었다.
낫살에 포기가 늘고 있다.
남은 것의 미련이 아쉬움으로 사라지고 있다.
간혹 죽음을 현실로 견 줄 때가 있다.
불가항력적 처지의 포기이다.
텃밭에 시간을 소비하는 그나 마의 연명이 아쉽다.
싶다.
내안으로,,
그것이 쉽지 않다.
2025.4.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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