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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진보.

박세욱. 2025. 2. 14. 14:23

245 합리적 진보.
김대중 과 노무현의 정치이다.

해방 후 이념과 산업사회의 기득권에 저항하는 인간과 민족과 민주주의의 문화적 실현이다.
분단의 위기적 정치와 시장경제의 대세에서 국가경쟁력에 희생되는 민생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불나방의 설득이다.
군사문화에 저항한 국민기본권과 자유이다.
민주화의 역사에서 유전적 또는 생명적 학습의 도전적 노력이다.
사형선고와 인적 없는 광장에서 자유와 민의를 우선하는 민주주의의 집착적 신념이다.
부르주아 정치의 불가능에서 희생이 전제된 민족과 자유의 대의로 이루어진 민주주의이다.
진영의 차별적 경계에 저항하며 협력과 타협으로 수레바퀴의 균형을 설득하였다.
 
동진정책과 검사와 대화는 국가를 우선하는 동의에서 전체적 노력이다.
반쪽의 정치에 기대는 이분법적 정치에서 국가의 통합이다
보수와 진보는 국정의 제도와 절차에서 보완적 협력의 관계라는 주장이다.
민의와 의견수렴에서 집단의 독선을 배제하는 민주적 제도와 절차의 의지이다.
논리를 충족하는 다양성과 반론의 수용이다.
인간과 민족과 국가에서 집단과 내 것의 사사로움이 없었다.
대한민국은 이념과 군사정권의 독제가 사라진 민주주의 국가이다.
수많은 불나방의 희생으로 이룩한 부정 할 수 없는 역사이다.
민주주의를 지켜야 하는 합리적 진보의 정치이다.
 
12.3 계엄과 탄핵의 책임회피와 난세에 사사로이 기회를 탐하는 집단의 권세에 반대하는 절차적 순리이다.
2말3초에 목숨 거는 행태나 행여나 4월18일 넘겨 기사회생을 획책하는 선동적 변론이나 국민과 국가의 미래는
안중에 없는 내 것과 집단의 이기적 정치이다.
허물의 진실에서 진정성의 설득이 아니라 수단에 집착하여 민의를 왜곡하려는 얄팍한 낮 바닥의 억지이다.
군을 동원한 계엄의 책임과 사법의 허물에서 절차를 충족하는 검증 없이 민심의 동의는 불가한 것이다.
민심을 과소평가 하는 울타리 정치의 고집이 국정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국가의 미래에서 탄핵의 사후를 예지해야 하는 시간이다.
3말4초의 사법적 검증 한 두 달로 국민이 주도하는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뀌지 않는다.
태평양의 인내는 대한민국의 민주적 안정이다.
 
난세를 정리하는 합리적 진보의 미래지향적 역할이 필요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개선하는 권력구조 개혁을 위한 개헌이다.
절대 권력의 공백에서 위기의 주의적 관점이 시기적 적절성을 충족하고 있다.
권력의 방향이 정해지면 권세에 안주하여 유야무야 하던 개헌시도의 전례가 작금의 불행한 결과이다.
정치권이 합의하면 분권 형 개헌의 지식과 절차는 충분하게 확보되어 있는 오래된 문제이다.
계엄의 사후는 여든 야든 탄핵정국의 정략적 접근이 불가한 결정으로 개헌의 절차를 확신해야 한다.
조건적 핑계는 난세에 절대 권력의 기회를 탐하는 무리의 탐욕이다.
반쪽에 기대어 사법적 허물의 검증 없는 국정의 책임은 온전한 권력이 될 수 없다.
탄핵의 인용에서 유력한 차기 대권후보의 검증은 국가의 미래를 위한 정치의 순리이다.
 
전체의 동의가 불확실한 민주적 절차의 불의에서 반드시 민심의 저항이 있을 것이다.
정치는 순리이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는 특전사와 해병대가 아니다.
계엄군으로 동원된 특전사 간부들의 전역이 늘어나고 있다는 국방전력의 안타까운 보도이다.
군의 명예를 잘못된 위정자의 망상으로 실추시킨 이유이다.
계엄의 증언에서 한밤중에 전 국민에게 중계된 현장의 실체가 있는데 명령권자가 없다는 오리발이다.
현장의 군인들에게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군은 명령 없이 움직이는 조직이 아니다.
국방의 목적과 의무에서 군인들의 불만을 이해 할 수 있는 무책임한 법리의 수단이다.
체포와 구금, 북풍공작과 삼선개헌의 영구집권 등 괴이한 수첩의 실체는 정치가 아니라 적대적 증오이다.
 
시장잡배의 수첩이 아니라 전 방첩사령관 이며 점성술에 집착하는 계엄주요종사자이다.
현 정부의 기우 적 기대와 상통하는 사고의 소유자이다.
계몽 령 운운하는 법리적 책임회피는 정치가 아니라 반쪽에 기우하는 적대적 정치의 망상이다.
난세에 권세를 우선하여 사법적 허물의 시간적 산수에 견주어 고집하는 울타리 정치의 끝물이다.
형장에서 갓을 고쳐 쓰는 선비의 고결함은 갓끈 떨어진 정승 집 멍멍이 되었다.
낮 바닥 기름칠 하고 실체 있는 진실을 왜곡하는 정치가 명예를 중시하는 군을 본 받아야 하는 현상이다.
역사를 거스르는 책임에서 옹호와 변명의 거취는 민심의 정치적 판단이 있을 것이다.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끼친 집권정당의 책임이다.
철지난 냉전적 경계를 부추겨 울타리의 감정적 승패에 기대하는 정치의 몰상식 이다.
 
울타리 정치에 줄서는 억지춘향의 산수가 국제정세에 기대어 대세를 오판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냉전적 국제질서의 지정학적 사선을 회피해야 한다.
체제의 선택에서 한미동맹과 언덕 론은 현실적 또는 생존 적 문제가 있다.
글로벌 사회에서 정치는 체제이고 사회는 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전통이며 경제는 생산성 경쟁과 공유이다.
국제질서의 협력과 냉전적 경계의 생산성 공유에서 일체적 괴리가 있다.
대한민국의 건국과 역사에서 태평양의 역할과 민주주의를 부정 할 수 없다
한미동맹은 안보와 체제에서 필수이다.
언덕 론은 지정학적 문제이다.
국경을 공유하는 대륙은 경제와 역사적 관계에서 필요하다.
 
분단의 현실과 전쟁의 위험에 있는 대한민국은 태평양과 대륙의 관계에서 노력하고 있다.
21세기의 국제질서에서 생존은 철지난 냉전적 경계가 아니라 글로벌 생산성의 실용주의이다.
역사의 진화에서 현상과 문화는 변화하는 것이다.
계엄과 탄핵의 시국에서 시대의 문화와 정서를 대변해야 하는 정치가 진영의 승패에 집착하여 쉽게 접근 할 수
없는 한반도의 긴장과 미래이다.
냉전적 역사의 패권적 시각으로 양극화의 극단적 선택을 부추기는 정치에 문제가 있다.
지장학적 위치에서 정치적 선택으로 발생한 안타까운 전쟁이 결론에 이르고 있다.
무엇을 위한 고통인지 직시해야 한다.
한반도의 미래는 적대적 경계의 정치가 아니라 평화를 전제하는 소통과 교류를 통한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다.
 
21세기는 냉전적 경계에 집착하는 진영의 관념적 사고가 아니라 AI로 시작되는 미지의 발현이다.
새로운 시대의 문화적 질서에 기여하는 정치의 노력이 필요하다.
매사가 진영의 패권적 승패에 몰입하는 정치가 작금의 피해이다.
선택에서 일의 평가를 우선하지 못하는 사랑방 정치의 병폐이다.
합리적 진보가 지향하는 문화 유토피아는 가치의 예지를 중시하는 인륜과 이웃의 존중이다.
추상적 또는 추종적 종사의 기우 적 절대성이 아니라 지식과 문화에 의한 가치의 실용주의이다.
타의를 존중하는 스스로 참여하는 문화적 질서이다.
대자연의 생태적 합리성에서 다양성의 가치를 수용하는 절차적 민주주의이다.
합리적 진보의 정체성은 내 것으로 울타리 치는 극단적 집단주의가 아니다.
 
반쪽의 설득과 수용에서 토론과 논리의 존중이다.
일극체제의 어긋 장에서 못자리 만들어 놓고 통합이라고 한다.
제 잘나 떠들던 집단의 극단 성으로 부족하여 중용의 실용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빈집에 문패 걸어준다고 극단적 권세에 줄서는 귀신들 사라지지 않는다.
어차피 대세라는 사고는 난세와 미래의 수습책이 아니다.
민심의 평가는 대선에 집중되는 것은 아니다.
탄핵의 머릿수는 특정정당의 전유가 아니다.

계엄과 연이은 탄핵으로 대통령제의 신뢰는 부정적 이다.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절대 권력의 저항적 감시는 12.3 계엄과 탄핵의 교훈적 결과가 있을 것이다.

정치는 시대를 대변하여 미래에 대비하는 것이다.
이래도 저래도 특별한 비젼없이 울타리의 권세에 줄서는 구태한 도로 묵 정치이다.
아직도 좌우의 경계에서 반쪽으로 지배하려는 무지한 패권적 정치를 시도하고 있다.
분단과 좌우의 이념으로 충돌하였던 군사문화와 민주화의 역사는 학습의 시간을 충족한 과거이다.
21세기의 정치에서 연연 할 이유가 없다.
작금의 현상적 증거에서 극단적 집단주의는 지식과 문화와 제도와 절차에서 민심의 한계가 분명하다.
민주주의는 반쪽(실체는 반쪽도 안 된다.)이 아니라 전체의 동의에 정치의 명분이 있어야 한다.
나와 우리편의 집단주의가 아니라 타의를 수용하는 중용의 합리적 지성이다.
정치와 제도에서 대통령제의 폐해를 종식하는 권력구조 개헌의 필요이다.
지방분권형 개헌은 준비의 시간이 오리무중이라서 정치판을 불신하는 십리 길의 발병이 의심된다.
2025.2.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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