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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념적 정치(시대).

박세욱. 2025. 2. 5. 06:07

243 관념적 정치(시대).
1) 관념적 정치.

탄핵은 진보의 정치이고 계엄은 보수의 정치라는 전제는 시대의 이해가 부족한 관념이다.

신탁과 반탁의 역사에서 우파의 기득권과 좌파의 약자적 사고이다.

산업사회의 차별과 냉전적 역사의 관념적 정치이다.

진보는 투쟁해야 하고 보수는 지켜야 한다는 구태 한 사고이다.

평등의 권리를 차별로 설정하고 있는 무지이다.

이념과 분단의 현실을 이용하여 정치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획일적 경계의 고집이다.

21세기 양당정치에서 더 이상 기득권과 약자의 관계는 없다.

보수의 투쟁적 길거리 정치가 서부법원 폭동이다.

스스로 기득권이 아니라는 약자의 정치 형태이다.

 

정치의 주체와 입신을 위한 차별적 대립이 국정의 보완적 협력을 망각하고 있다.

민생과 국정에서 대의를 상실하고 있다.

이분법적 경계에 지배된 잘못된 관념적 사고이다.

군사문화 즉 계엄의 시간에 격어야 했던 약자의 시간을 기억해야 한다.

역지사지해야 하는 부르주아의 역사이다.

계엄과 군사문화로 보수의 인연과 성취를 억압하고 핍박하였다고 가정해 보시면 고통을 알수있다.

반복 될 수 없는 제주4.3사건과 5.18참상과 삼청교육대와 형제복지원사건 등 압제의 시간을 기억해야 한다.

우파의 기득권이 좌파의 인연을 괴롭힌 연좌제의 고통도 있다.

군사문화의 압제와 민주화의 투쟁적 시간은 과거의 역사로 정리해야 한다.

 

양극화는 이념의 시간에 억매여 있는 냉전적 경계의 학습과 문화적 관성이다.

생물학적 지식의 존재에서 유전적 시간과 학습의 한계이다.

문화에서 현상의 지배에 주의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민주주의 국가이다.

체제에서 압제와 투쟁의 역사는 교훈이지 미래가 아니다.

새로운 시대의 사고가 필요하다.

미지의 발현에 대비하는 협력과 타협의 중용과 변화에 적응하는 가치의 실용주의 이다.

미지를 이해하는 인간의 정체성 제고가 필요하다.

21세기의 진화는 돌연변이 적 변화이다.

 

체제와 증거 적 현상의 학문에서 변화의 속도를 이해해야 한다.

지식진화에서 학습의 시간적 충족이 빨라졌다는 것이다.

AI는 현상의 돌연변이 적 변화이다.

알파고와 바둑대결 패배에서 인간의 계산을 넘는 기계의 지능을 경고하였다.

데이터 합성과 지능의 학습이다.

미지적 문제에서 관련된 전문지식 이라면 미래를 예측 할 수 있어야 했다.

별것 아니라고 치부한 지식이 있었다.

정보통신산업 과 우버의 기존산업 접목은 데이터의 지능적 진화에서 방향이 완전히 틀렸다.

기존산업에 접목하여 경제 질서의 지배와 돈벌이에 치중하여 떠들다 새로운 발현을 예지하지 못한 것이다.

 

AI산업은 정보처리의 다변적 지능이다.

인공지능은 생물학적 예지의 발견이 이니라 학습의 시간으로 발현된 것이다.

미지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지 즉 우주는 인간중심이 아니다.

현대는 지동설 이전 인간중심의 세계관과 같은 현상의 지배에 있다.

인간의 유전적 시간으로 자만하지 말라는 것이다.

미래는 빨라진 학습의 충족에서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현상을 넘지 못하는 학문이 문제이다.

칠거지악과 사서삼경의 시대가 아니다.

 

산업사회와 지식의 변화는 정치가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다.

계엄과 탄핵의 파괴적 현상은 획일화 된 투쟁과 진압의 사고방식에 억매여 있는 정치가 잘못된 것이다.

유전적 시간에서 시대의 변화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지 할 수 있어야 한다.

노아의 시대 인간을 쓸어버려야 한다는 신의 분노를 표현하고 기록한 이유가 있었다.

절대 지배를 획책하는 극단적 집단의 정치와 산업사회의 차별적 경쟁과 분별력 없는 성취에서 인간이 없다.

내 것과 집단을 우선하는 대의와 상대적 인륜의 상실이다.

유전적 학습의 한계에서 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있다.

또다시 미지의 간절함이 사라진 제 잘난 인간 우선주의 이다.

통신사회는 새로운 선과 악의 시간이다.

 

반드시 선의 정립과 문화적 주체의 설정이 필요하다.

재림의 이해는 죄와 벌에 병행하여 새로운 선의 가르침이 될 것이다.

문화에서 획일화 된 학습의 절대성이 아니라 지식으로 미지를 예지 할 수 있는 절대가치가 필요한 시간이다.

현상과 데이터의 이해이다.

 

2) 실학.

조선 시대 실생활의 유익을 목표로한 새로운 학문이다.

추상적 정신의 지배에서 실사구시(현상과 증거)와 이용후생(과학과 민생)을 우선하여 인간의 존엄성과 일상에

필요한 과학적 시각으로 국민생활 향상을 위한 학문이다.

민생을 우선하는 노력이다.

유교의 추상적 가치와 신분적 제약에서 제도와 일상의 생산성을 우선하는 과학적 학문이다.

민생은 평등과 평화가 전제된 상호주의의 관계에서 생산성 확장과 형평성의 조율이다.

이것이 실용주의이다.

정치의 집단적 패권과 차별적 경쟁과 내것을 우선하여 상호주의를 파괴하는 성취는 실용주가 아니다.

요사이 노동계의 주당 시간제 문제로 실용주의 문제가 있다.

 

시간당 생산성이 일정한 작업장의 경우는 문제가 없다.

일 없으면 생산성의 공백이 발생하고 일이 몰리면 생산성을 채우는 작업장 문제이다.

출판업계가 그렇다고 한다.

일 없으면 놀고 일이 몰렸을 때 노동시간을 말씀하시면 기업과 노동의 상호주의가 아니다.

IT업계도 결과에 집중해야 하는 작업환경 이라고 한다.

아이디어의 가시적 환경에서 결과를 위한 연속적 집중이다.

초과근무이다.

노동시간의 상호주의에서 기득권과 약자의 불신이 있다.

성과에서 시간과 생산성 보상의 신뢰가 필요하다.

 

제도는 타의이며 관계이다.

실용주의는 실제 결과가 진리를 판단하는 기준이라고 주장하는 철학과 사상이다.

행동을 중시한다.

사고나 관념의 진리성은 실험적 검증을 통해 객관적으로 타당한 것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상과 증거이다.

실사구시이다.

미래는 현상에서 미지의 발현이다.

2025.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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