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내란수사. 본문
240 내란수사.
12.3 계엄에서 내란혐의 정리가 법리공방으로 시끄럽다.
군을 동원한 계엄은 누구라도 하는 것이 아니다.
국정의 독선적 지배를 시도한 비상계엄 이다.
최고형량이 무기와 사형이라고 겁박하며 법리의 사실관계를 규명해야 하는 수사주체가 혼란스럽다.
국민에게 총을 겨누며 국정전복을 시도한 집단을 수사하고 처벌해야 하는 사정기관의 논란이다.
국정에서 제도를 관리하는 주체와 절차가 명시되어 있어야 했다.
법의 적용에서 절차상 문제가 있다면 수단에서 사실관계가 부정 될 수 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국정사수의 근본적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공수처 신설과 검수완박의 조급함에서 문제가 있었다.
국민의 가슴을 놀라게 하고 국가이익에 막대한 피해를 야기한 독선의 실체는 정확하고 철저하게 밝혀 역사로
정리되어야 한다.
전 국민이 체감한 현상의 실체가 있는데 법적절차의 수단으로 유야무야 할 사건이 아니다.
수사주체의 문제로 군을 동원하여 국회를 봉쇄하고 주요의원과 요인을 체포 구금하려 시도한 사실의 법적
절차가 어렵다는 것은 증거주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법치의 정의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이다.
체포영장 집행의 대치와 구속영장 발부에서 법원난입의 폭동은 법치의 혼란이다.
법원의 영장발부는 수용되어야 한다.
제도와 절차의 명시가 없으면 집행에서 위법이 되고 처벌에서 근거가 없다고 한다.
관습법은 사회생활에서 습관이나 관행이 굳어져서 법의 효력을 갖게 된 것 이라고 되어있다.
감정법학은 법률의 해석이나 적용에 법관의 자유재량을 무제한 인정하도록 한 이론이라고 한다.
사건을 분별하는 대다수 국민의 의지를 법관의 판단으로 수용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우의 문화에서 사리와 분별에 모자란 시정잡배의 행동은 멍석말이가 답이었다.
영장판사의 정치적 성향까지 들추어 시비하는 진영의 법치주의 이다.
진영의 유 불리에 따라 서부법원과 중앙법원의 법리가 다르다는 정치판의 산수이다.
사실의 규명과 처벌은 군사문화에 저항한 참담했던 민주화 역사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법의 적용에서 절차적 허점을 이용하여 구렁이 담 넘어 가듯 시간을 모면하려는 상황이 아니다.
정리하여 후대의 교훈이 되어야 하는 제도의 유산이다.
군사문화의 역사는 실체적 체험의 증인으로 남아 있다.
4.3과 5.18과 삼청교육대와 형제복지원 사건 등 민주화의 비극과 고난의 역사이다.
12.3일 오밤중에 대통령에 의해 일방적으로 선포된 계엄의 위기의식은 수많은 비극적 죽음과 파괴적 혼란의
상처를 기억하게 하였다.
현상의 진실을 상식 밖의 수단으로 회피하려는 시도는 매우 잘못된 인격이며 국가관 이다.
국가와 국정은 아니면 말고 식 정치판이 아니다.
군을 동원한 계엄의 시도는 정치적 해결이 불가하다.
사건의 진실에서 지지율 어쩌고 하시는 말씀은 국가의 정체성과 헌법의 정의를 소홀히 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총을 들이대고 계몽 어쩌고 떠드는 상식이 졸렬한 것이다.
의원이 요인으로 둔갑한 말장난은 드러난 현상의 진실을 부정하려는 시도이다.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는 국민이다.
역사와 문화를 우선하는 국민이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
국민이 이룩한 국 격을 정치가 훼손하는 상황이다.
정치판 어디에도 국민을 계몽 할 수 있는 지식과 인격이 없다.
절차에서 수단을 우선하는 치졸한 말장난의 억지에 진실은 바뀌지 않는다.
오로지 패거리 정치에 매몰된 적대적 경계의 승패뿐이다.
낮 바닥 기름칠 하고 만만한 구설로 민심 위에 군립하려는 작태이다.
법리에서 전 국민이 계엄의 실체를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체감한 위기의 현상을 부정 할 수 없다.
오리발은 시정잡배의 오지랖 이다.
지지율은 현상이 아니다.
태평양 건너 대선에서 선거직전까지 대부분의 여론조사는 엉터리 이었다.
하물며 울타리 정치의 난장판에서 여론조사를 얼마나 신뢰 할 수 있을지 응답율의 함정이 있다.
양극화의 구도에서 대체로 진보와 보수는 비슷하고 중도가 조금 많다는 조사이다.
3:3:4 정도이다.
일상적 사건의 시점에 따라 지지율 변동은 있으나 선거의 선택에서 진영의 변화는 크지 않다.
일테면 사건의 일시적 시시비비에서 진영의 지지는 크게 변하지 않으며 응답의 결집과 회피로 정당의 거취와
시국을 표현한다는 것이다.
진영의 관점에서 작용 반작용의 반복적 현상이다.
여론조사의 실체적 접근은 사건의 진실에 따른 시점의 변화를 시국과 정당운영에 참고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체제와 정당의 정체성에 부합하는 운영과 인물의 평가는 별개의 문제이다.
일극에 목매는 칠거지악의 집단주의와 돗자리 깔고 삼강오륜으로 죽치는 중진의 갓이 문제이다.
문화의 과거와 현재에서 이해의 차이이다.
선거 때만 되면 절반에 집착하여 민심의 갈라치기로 수작한 결과가 여론조사 추이이다.
빨강막대와 파란막대로 유별한 젊은이들의 이분법적 사고이다.
매사가 피해의식의 대립적 사고에 있는 양극화의 이해타산에 학습된 경계 적 인습이다.
절반의 진영논리에 기대는 몰지각한 정치가 부추긴 갈등의 부정적 현상이다.
국가의 대의를 상실한 이분법적 정치이다.
지역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정치가 이성의 갈등을 부추겨 또 다른 경계를 조장하여 이용하는 것이다.
파괴적 결과를 예지하지 못하고 오로지 우리 편에 집착하는 승패 적 정치의 정신지배이다.
요사이 양극화에 식상한 중도의 역할이 여론과 선택에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조사결과가 중론이다.
문화적 성취의 질서에서 중도의 역할은 증가하게 될 것이다.
탄핵과 내란수사에서 현상의 증거가 부족한 지지율 변화는 법리가 주의할 사항이 아니다.
사법의 독립은 일시적 여론에 일희일비하는 정치와 정당의 거취와 다른 것이다.
사법의 책무에 전념하시는 것이 독주와 독선적 국정에서 국가를 바로세우는 방법이다.
옳고 그름으로 계엄과 탄핵의 시간을 정리해야 한다.
2025.1.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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