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동짓달 소양강땜. 본문
230 동짓달 소양강댐.
춘천에 왔다.
소양강댐에 가볼 생각이다.
일요일 쉬면서 티비에 지치는 시간 방황해 볼 요량이다.
정치와 문화의 분별력을 상실한 계엄정국의 수습에서 특검과 탄핵으로 이어지는 양극화의 이전투구 뿐 이다.
우리 편과 너의 편으로 갈라져 사생결단으로 사안의 논리를 달리하는 혼란이 편하지 않다.
매사가 집단의 국수적 논리에 집착하여 국민을 우선하는 정치를 찾아보기 어렵다.
북치고 장고치고 제 잘난 정치의 끝물이다.
이참 저 참 우대용 교통카드 빙자하여 돗자리 털고 전철을 탓 다.
예전 아이들 어렸을 때 골목건너 아침저녁으로 마주치는 분의 본가가 소양강댐 아래에 있었다.
삼십여 년 전 동행한 기억이 있다.
막막한 서울생활 하며 근처에서 어울려 살았다.
골목건너 집주인과 세 들어 살던 분이 나와 비슷한 연배의 또래였다.
내가 두어해 위였다.
틈나면 세가정이 어울렸다.
삼십 초반 준비 없는 서울생활에 아이가 태어나고 갈팡질팡 세파에 운명을 체념하고 살던 시절이다.
인연과 혈육의 책임감을 충족 할 수 없는 갈피 없는 고립된 시간이었다.
무엇도 예지 할 수 없는 시절 어려운 처지를 같이하는 이웃이었다.
내 것의 자아와 거리가 있는 사회의 고립에서 의도하지 않은 조건적 동행이었다.
세파에 어쩔 줄 모르는 산업사회의 차별과 생존에서 존재의 견주기를 포기한 동질성의 안주였다.
시류에 동떨어진 무지가 사람 사는 세상을 어렵사리 이해하며 섞이고 있었다.
사는 것이 다 그런 것인데 나를 도외시 하여 도시생활을 힘들어 하던 시절이었다.
댐 아래 음식점에서 송어 회 만찬이 괜찮았다.
동네 시장 잡체 곁들여 철판에 볶아주는 곱창 집에 자주 갔다.
건너 집 아이엄마 몸집이 보통이상 이었는데 사고가 있었다.
우리 집에서 아이엄마들 어울려 막걸리 파티하다 쓰러져 강동에 있는 큰 병원 응급실에 이송되었다.
머리가 아프다고 하며 잠시 누워 있다가 갑자기 혼절하며 팔이 안으로 비틀어졌다고 하였다.
난리 통에 시어머니가 며느리의 모습을 보자마자 혼절하여 난리에 난리를 더하였다.
회생이 불가능한 상태로 방치되듯 미동 없는 육신으로 응급실을 차지하고 있었다.
결국 회기동 병원에서 생을 달리하였다.
마지막 모습이라고 하여 서둘러 병실에 가니 미동 할 수 없는 육신인데 "주르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누군가 죽음과 같은 상태라도 듣기는 한다고 하였다.
귀와 눈물의 감성이 어쩔 수 없는 이승의 미련이었다.
사람 사는 것이 노력하여도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충격이었다.
큰아이 또래의 여자아이와 간난아이가 있었다.
사는 것이 나와 같이 넉넉하지 않았다.
처가가 동네에서 만만하지 않은 집안이었다.
아이들을 처가에서 키워준다고 하였던 것 같다.
요사이 부러울 것 없이 행복했다고 하며 낙심하여 눈물 흘리던 아이아빠 모습이 망막하였다.
행복에 노심초사 하는 뜻하지 않은 불행이었다.
당시 누구도 책임질 수 없는 불가항력적 운명이라는 무기력이 많았다.
당구치고 생맥주 하며 어울렸는데 사고 후 이유가 어디에 있든 눌러 앉을 수 없는 동네를 떠났다.
무지한 시류와 두려운 세파에서 그나마 의지 할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열심히 살던 분이었다.
어려운 시간을 같이 했던 기억이 무상하다.
몇 해 후 나도 서울에서 남양주로 이사하였다.
이십 수년 전 닭갈비 때문에 아이들과 춘천에 여러 번 왔다.
명동 번화가 뒷골목에 단골집이 있었다.
꽤나 오래된 기억이다.
겨울연가로 주목받기 이전이다.
아이들 크고 혼자서 몇 번 왔다.
소양호의 가을 풍경이 좋았고 춘천 역에 내려 남 춘천까지 공지 천을 걸었다.
삼악 산에 서너 번 올랐다.
의암댐 쪽 능선이 가파르나 호수가 있는 춘천과 북한강 줄기가 한눈에 들어왔다.
올해여름 강촌에서 올라 의암댐으로 내려와 쉽지 않은 버스타고 남 춘천에서 전철을 탓 다.
동짓달 기온이 올해에 최저이다.
에 굿은 날 잡아 몽그작거리던 흔적으로 돗자리 된 둥지 탈출이다.
소양호의 물이 시릴 것 같다.
남 춘천 역 버스정류장 대기실 난방이 따뜻하다.
나는 추운데 대기실 비워두고 밖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차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으로 겨울철 기온에 익숙하지 못한 내가 추운 것이다.
노부부가 소양강 버스 편을 물어보고 있다.
세월에 노심초사하는 노인께서 집안에 눌러앉은 답답함이 지루하고 건강도 걱정인 것이다.
건강한 노부인 손에 이끌려 나온 거동이 불편한 남편이었다.
추운날씨를 걱정하는 물음의 반문에 상관없다는 노부인의 말씀에서 일상의 지루함을 이겨내려는 의지가 있다.
인연의 동행에서 나의 것으로 자유롭고 싶은 것이다.
아름다운 것은 일상의 사소함에 있다.
노부부라고 하지만 나의 처지도 얼마 남지 않았다.
나는 내가 나이든 생각을 못한다.
육십 줄 후반의 세월에 견디지 못하는 육신의 변화를 부정하는 것이다.
나만 느끼는 사실은 매년 동지섣달이 다르다.
운동량이 조금만 과해도 다음날 회복에서 차이를 느낀다.
세월의 노심초사는 육신의 현상과 끝없는 견주기를 하지만 문득 찾아오는 차이에 체념한다.
노인의 도전은 건강한 육신의 미련이다.
버스타고 조금 지나니 도시를 벗어나 한적하다.
커다란 호수가 있어서 그런지 도시의 시야가 여유롭고 깨끗하다.
11번 버스에 나이 드신 분들이 많다.
중간에 노부부가 하차하려고 출구에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친 모양이다.
하차 버튼을 눌러야 되는데 안 누른 것이다.
노부의 다급한 말씀에 급하게 정지하며 "버튼을 눌러야지요!" 볼멘소리에 "나이든 촌놈이라 몰라!" 하신다.
뒷자리에 타신 할머니들께서 우리는 나이 먹고 시골 살아도 안다고 얄미운 불만이시다.
노인품격 떨어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아니면 옆구리 시린 투정이시든지!?
눈 덮인 풍경을 기대했는데 거리와 산 아래는 대부분 녹았다
겨울하늘에 구름 한 점 없고 멀리 높은 산봉우리가 어제내린 눈으로 하얗다.
댐 아래에서 정상으로 올라가는 도로 변의 가을철 단풍이 좋았는데 겨울철 차가움으로 움츠려든다.
오늘의 기억이 가을의 정취를 더하게 될 것이다.
경춘선 동네에 살며 세월의 무력감으로 더러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내리며 기사양반에게 돌아갈 버스시간 물으니 15분마다 있다고 한다.
시간에 구애 받지 않고 아무 때나 오고 갈수 있다.
점심으로 코코넛 비스켓이다.
추운 날 뜨거운 것으로 뱃속 따뜻하게 할 수 있는데 혼자라서 쉽게 포기하였다.
다이어트 막바지에서 75kg 굳히기 작업 중이다.
한 달에 8-9kg 정도 뺏다.
아침 간단한 한 끼에 비스켓 과 귤로 하루의 공복을 견디고 있다.
평소의 운동량도 조금 늘렸다.
비워두어야 저녁 먹 거리가 자유롭다.
그래도 조금은 아쉽다.
댐 아래 아스라한 차가운 시야 끝 어디쯤 삼십여 년 전 기억이 있다.
삶은 수많은 인연을 스치며 사는 것으로 존재는 온전한 내안의 것이다.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하늘의 뜻에 따라 돗자리 깔고 사는 것이다.
소양호에 물이 가득하여 호수 가장자리의 황토 빛 경계가 없다.
농번기에 사용하고 장마철 대비해서 수위조절 할 것이다.
전기가 남나보다 발전소 수압출구가 조용하다.
댐 정상 도로는 막혀있다.
주차장과 보도의 응달진 곳에 눈이 남아 있고 녹은 곳은 얼어붙어 미끄럽다.
전시관은 난방과 호수 방향의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에 따뜻하다.
의자에 앉아 느긋하게 시간을 망각하는 여유가 부럽다.
사고의 집착을 팽개치지 못하는 자극적 변화의 안절부절 이다.
전시관을 꼼꼼하게 둘러보았다.
수몰민 사연에 물 아래 잠긴 세월을 상상 할 수 있었다.
소양강은 문명이 아니었다면 속세와 거리 있는 깊은 계곡 조용한 물길이었다.
사연에서 산수의 풍경에 아쉬움이 많았다.
수몰지역에 학교, 양조장, 사진관, 파출소가 있는 꽤나 큰 마을이 있었다.
언젠가 찾아가고 싶은 동심을 간직한 그리운 것의 상실을 이해 할 것 같다.
지워지지 않는 익숙한 것의 기억이다.
춘천은 퇴계원 보다 춥다.
주변에 사람들이 더러 있다.
딸기를 가져와 길가 벤취 추운데서 드시는 분들이 있다.
더 춥다.
따뜻한 전시장은 음식물 반입이 안 되었다.
예전에 배 타고 오봉산과 양구에 갔었다.
양구 쪽 가는 배는 공기부양선 이었는데 지금은 보이지 않는다.
겨울철 사람이 없어서 인지 배는 운행되지 않았다.
술 한 잔 곁 들이고 싶은데 혼자라서 가는 길이 피곤 할 것 같다.
낫살에 망설임이 많아진 것이다.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버스가 빼곡하다.
역시 노인들이 많다.
춘천역에서 내렸다.
도시의 풍경이 남 춘천 역 번화가와 많이 다르다.
소양강댐 나들이는 춘천역이 편하다.
올 때는 전철 안이 춥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돌아갈 때는 "으쓱" 움츠려질 정도로 추웠다.
술과 찌개거리 사들고 드러눕기 쉬운 집에 왔다.
2024.12.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