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또 다시 탄핵. 본문
228 또 다시 탄핵.
결국 세 번 째 탄핵이 국회를 통과하였다.
총 의석 300석 중 찬성 204석 반대 85석 이다.
여당의 이탈 표 23석 중 12석의 찬성표가 나왔다.
2004, 2016 그리고 2024년 탄핵정국의 혼란이다.
여소야대의 정국에서 민심이반의 국정운영과 영부인 문제가 대통령의 거취를 어렵게 하였다.
국회를 장악한 다수야당은 의결권을 이용하여 정권을 공격하였다.
비판이라기보다 대통령 탄핵 시도와 다수의 특검으로 정권과 소수여당의 입지를 어렵게 하였다.
대통령은 재의 요구 권(거부권)으로 대응하였다.
집요한 특검요구는 영부인의 법적 의혹과 야당대표의 사법리스크 수사와 관계된 검사들과 감사원장 이다.
이분법적 진영논리의 정권전환에서 국정의 대비적 운영과 이에 따른 국가기관의 거취가 불안정한 것이
대한민국의 정치와 국정의 현실이다.
정권의 진영이 바뀌면 국정전반에 걸쳐 먼지 털기에 바쁘다
정권전환에서 해임되는 직위의 사법적 표적이 감사기관과 사정기관의 역할이다.
일테면 정권전환에서 가장먼저 사법의 저울추로 손보는 곳이 안보기관 이다.
분단의 현상에서 이념적 진영논리가 가장먼저 작용한다.
상대의 허물을 알아야 나의 허물을 감추고 때로는 위협하여 국정의 동조를 요구하는 치졸한 정치와 국정이다.
허물의 정치이다.
김여사의 사법적 의혹과 야당대표의 사법리스크는 대응되는 정치의 수단이 된다는 것이다.
현실정치 우짜고 떠들며 당연시 하는 허물의 견주기이다.
좋은 것으로 견주지 못하는 대한민국 정치판의 현실이다.
이분법적 진영논리의 대립적 망상에 갇혀 상대를 인정하지 못하는 인정 할 수 없는 정치의 작태이다.
일은 안하고 진영논리를 부추겨 정치적 입지에만 몰입하는 사대부의 꼴 아지 이다.
내가 살아야 국민과 국가가 있다는 낮 바닥 정치의 어불성설이다.
낮 바닥 정치의 정의는 국민의 면전에서 반듯한 모습과 긍정적 말로 치장하고 뒤 돌아 서면 격의 차별을 의식
하는 속물적 겉모습의 정치이다.
가진 것 없이 국민위에 군립하려는 행색의 정치이다.
방송에 나와 제 잘난 구설로 떠들어도 목적이 배반된 정치의 야사는 감추어 진 진실이 훨씬 많다.
계엄은 국정운영 방법에서 민심의 기대를 소홀히 한 것이다.
특검의 시도에서 결국 탄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대통령의 우려가 민심과 동떨어진 계엄으로 국정과 신변의
압박을 돌파하려는 시도였다.
중대한 결과와 책임에서 국정의 압박을 경고하려 했다는 말씀은 동의 할 수 없는 국정책임자의 사고이다.
21세기의 문화와 역사의 이해에서 잘못된 판단이다.
어설픈 기획에서 동원된 병사들의 회피와 지휘계통의 불확실성을 간과하였다.
대한민국의 문화적 역량과 지성의 저변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나의 의지로 국정을 장악하기 위해 비판적 민심의 억압과 상대의 정치적 의지를 파괴하는 설정에서 실패의
반격을 예지하지 못한 경솔한 결정이었다.
계엄의 시도에서 통치권의 권위에 자신하여 가담자와 지휘계통의 동의와 결의 없이 측근의 한계에서 진행된
결과이다.
무모한 시도의 정황이 역사의 불행으로 진행되고 있다.
윤 대통령은 2016년 대통령 탄핵 실무 자 이기도 하다.
역사의 아이러니와 대한민국 헌정사의 불행한 일이다.
양극화의 진영으로 갈라져 여의도와 광화문에 집결한 지지자들 모습이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이다.
국회의 탄핵가결은 헌재의 결정을 남겨두고 있다.
헌재의 결정은 9인 체제에서 6인의 찬성이다.
현재 헌재의 구성은 6인으로 3인이 부족한 상태이다.
헌재 소장은 6인으로 심리는 할 수 있으나 결정은 논의해 봐야 한다고 하였다.
탄핵을 지지하는 집회는 여의도에서 광화문으로 이동하여 헌재의 인용을 촉구하는 양상으로 전계될 전망이다.
여당의 태극기 부대의 대응도 예상되나 탄핵가결의 영향이 어느 정도 될지 귀추이다.
정치의 모질음은 상대의 숨통이 끊어질 때 까지 멈추지 않는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전쟁보다 더한 사나운 정치이다.
대한민국 정치에서 사람과 인정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부러져도 물러나자 말아야 한다는 사생결단의 학습이다.
민심의 대의조차 없다면 아무것도 아닌 죽이고 살은 놈 뿐 이다.
양당정치의 한계와 대한민국의 불행이다.
작금의 사태는 양당정치의 대결구도에서 다수야당의 입법독주와 절대 권력의 망상에 빠진 대통령제의 한계이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여소야대 국면에서 직접민주주의를 시도하였다.
국정을 의회가 아니라 정권이 직접 국민의 동의를 구해 이끌어 가는 것이다.
예초 식민역사의 민족감정을 고려하지 못한 현해탄 역사와 한반도 정세의 지정학적 문제에서 냉전적 역사의
설정은 문화와 역사 즉 민심의 보편성을 배려하지 못한 섣부른 판단이었다.
남북문제의 대결적 구도 역시 민심이 원하는 설정이 아니었다.
정치와 국정의 민심접근에서 절차와 숙성의 인내를 간과한 정치력 부재가 민심이반의 원인이다.
통신사회와 21세기의 정치는 권세가 아니라 현상의 동의이다.
민주주의는 민의를 따르는 것이다.
그래야 다수당의 입법부 독주에서 직접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여소야대 정국에서 국정의 방향전환으로 민심의 설득을 우선해야 했다.
입법독주의 정국돌파에서 직접민주주의 방법을 설정하지 못하고 대통령을 감추기 위해 노력한 주변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다.
정치가 안정되어야 국정이 원만하다는 것은 상식이다.
김여사 특검도 정면돌파를 시도해볼만한 것이었다.
계엄까지 설정하는 정권의 사활에서 대통령 부인의 사법문제에 대한 야당과 사법당국의 처신을 국민의 판단에
맡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초가삼간에 살지 못한다면 정치판은 부디 쳐야 방법이 나온다.
대한민국의 문화와 지성을 기대 할 수 있는 문제였다.
권세와 진영논리에 의지하여 문제를 회피하니 국회 다수당의 의결권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다.
머리 들이미는 놈은 사지의 본전 생각에 어려워도 도망가는 놈은 만만한 것이 제미 있는 것이다.
절대 권력의 망상이 정치의 방법에서 유연한 사고를 구속한 것이다.
국가와 제가는 다른 것이다.
대한민국의 정치 불신은 어제오늘 말씀이 아니다.
사법정의가 집단의 정치적 요구를 수용할 이유가 없다.
일주일 제멋대로 살다 주일에 교회 가서 회계하는 놈은 잘못된 것이다.
제멋대로 안식일에 교회 가서 기도했으니 죄를 사면 받았다고 사고하는 불량한 소행은 만행이다.
이승에서 죄 지은 자는 염라대왕에 끌려가 심판받는 것이 당연하다.
염라대왕은 정치를 모른다.
우리나라 사법과 사정 역시 집단주의 빠져 민주주의의 절차를 왜곡하는 불신의 정치를 모른다.
합리성을 충족하는 일의 성과가 아니라 승패의 정치에 매몰되어 수작이 우선하는 의회주의도 모른다.
몰라야 자신들 밖에 모르는 모질은 위정자로 부터 국가를 구 할 수 있는 정답이 나온다.
탄핵의 헌재판단과 야당대표의 사법리스크는 당연히 별개의 문제이다.
여의도의 민중은 정치의 정의를 요구하는 것이지 야당대표의 사법리스크를 사면하라는 것이 아니다.
헌정질서의 충족에서 정의로운 정치인 이라면 스스로 절차를 기획하여 민심의 요구에 따라야 할 것이다.
역대 대한민국 대통령의 문제에서 국가의 미래를 위한 검증은 특별 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발바닥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치판의 실체와 국 격을 바닥내는 대표권의 실상이다.
국민이 이룩한 국가의 위상을 대통령의 정치적 거취로 훼손하는 폐단의 방지이다.
탄핵정국에서 특별하여 내로 남 불로 공정성을 훼손하는 정의의 불신은 또 다른 국민의 판단이 따를 것이다.
제 잘난 인성의 집요한 수작은 의회주의의 절차를 왜곡하는 다수 의결권의 횡포로 학습된 것이다.
정치는 물고 늘어지는 것이 상수라는 것이다.
2024.12.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