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2024년 말 어설픈 계엄. 본문
204 어설픈 계엄 1.
장염으로 2주 정도 금주하며 고생하고 있다.
의학적 상식이 부족하여 철석같이 장염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아랫배가 아리고 화장실이 불편하였다.
병원에 다녀와도 약을 추가로 복용해도 차도가 없다.
대장암이 솔 찬 하다는데 이제 갈 때가 되어 가나 세월의 체념까지 흔들리고 있었다.
이대로 끝이 보이는가 싶었는데 작년에 감으로 점심을 대신하며 장이 불편하여 고생한 생각이 났다.
당시 상당히 고생했는데 일 년 만에 까 드시고 한 달 넘게 점심을 감으로 대신하였다.
영업 중 십여 년째 과일로 점심을 대신하고 있다.
대계는 사과였는데 가격이 올라 여름에는 바나나였고 가을부터 제철 과일 감으로 대신하였다.
무지하여 작년 고생을 까마게 잊은체 아침에 껍질 벗겨 비닐 포장지로 감싸 준비하여 나갔다.
경험과 지식을 의식하지 못하면 과일이라는 현상적 현실에 머물수 밖에 없다.
민주주의 체제와 다양한 타의의 수용에서 현상의 겉모습과 나의 사고에 머물러 통치할수 없다.
경험과 직관에 의한 예지가 필요한 이유이다.
2주를 약과 호전되지 않는 증세로 고생하고 식생의 문제에서 장기 섭취한 감에 의한 변비라고 판단하였다.
의학으로 않되는 고민의 해결을 찾는 스스로의 노력에서 원인의 처방은 간단하다.
인내하였던 금주 거나하게 한판 벌이면 장 청소는 그만이다.
한밤중에 계엄으로 온 나라가 한숨 쉬는 동안 매번 보던 뉴스도 안보고 장 청소의 희열에 빠져 있었다.
아침 6시 30분경 식구들 새벽 잠 깨울세라 서둘러 나와 시동을 거는데 익숙한 라디오 진행자 목소리이다.
시간을 보니 평소의 시간대가 아니다.
계엄 어쩌고 하는데 본방 팽개치고 아침부터 시간 알바하며 세 똥 빠지게 역사 강의 하나 싶었다.
한두 마디 흘려듣다 심상치 않다는 느낌에 설마하며 집중하니 밤새 어처구니없는 역사가 있었다.
계엄이 선포되고 헌법을 무시하는 무지한 포고령이 발표되었다.
정치를 금지하고 국회를 장악하고 국회의장과 양당대표를 체포하려 했다는 머리통 하 해지는 소식이다.
특전사 군인들이 국가시설에 투입되고 경찰의 국회봉쇄로 의원들의 출입이 어려웠다.
포고령을 위반하면 처단한다는 무시무시한 군사문화의 위협적 압제도 있었다.
야심한 여의도 밤하늘에 헬기가 날고 280여명 1공수 여단 병사들이 국회에 진입하였다.
사무처 유리창이 깨지고 보좌진과 몸싸움 하며 일촉즉발의 위기가 있었다는 것이다.
80년 5월 광주에서 박희도 1공수 여단장의 역할이 새삼스럽다.
명령이라고 하나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대사에서 1공수 여단의 역할이 지대하다.
2024년 말 잊힌 줄 알았던 군사문화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k문화와 문학상 자랑에 살만한 대한민국에서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이다.
군인들은 국방에 전념해야 한다.
국가의 구성과 역할에서 제 잘난 오지랖 방종으로 정치에 발 담그는 모자란 분별력의 문제이다.
국회봉쇄는 계엄해제 권한이 있는 다수당 야당의원들의 의결을 방해할 목적이다.
예초 어설픈 계엄으로 지휘계통의 미비 때문인지 경찰의 봉쇄가 느슨해 졌고 야당의원과 일부 여당의원 190명이
계엄해제 의결에 참여하여 만장일치로 계엄은 해제되었다.
12월3일 오후10시30분에서 다음날 새벽 1시 까지 152분의 비상계엄 이었다.
국회에 진입한 특전사 군인들은 국회의 의결을 확인하고 절차에 따라 철수하였다.
그나마 체제의 순리를 따른 것이다.
과정에서 통제된 국회대로에 시민들이 모여 들었고 계엄해제를 주장하였다.
일부시민들은 동원된 군 차량을 막아서기도 했다.
새벽 4시30분경 대통령은 계엄해제와 군인들의 원대복귀를 확인하였다.
과정에서 인명피해는 없었다.
장 청소 개운한 아침이 썰렁하다.
민주화의 역사를 망각하고 민심을 거스른 오밤중의 어설픈 거사였다.
남은 것은 나 홀로 점지와 무지에 동행한 책임소재이다.
이제나 저제나 조기대선의 빌미를 고대하였던 야당에서 대통령 탄핵을 공식화 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암울한 정치판의 총체적 책임에서 어설픈 계엄의 본방으로 이제부터 시작이다.
어처구니없는 2024년 년말 계엄정국의 문제는 허물의 정치이다.
보편성을 충족하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허물을 허물로 대응하여 감추려는 수단의 집착이 부른 역사의 악재이다.
나의 허물을 감추려는 극단적 설정의 막다른 궁지가 이성적 판단을 흔들고 있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는 완전한 지배의 충동이다.
국가의 대표권은 타의의 수용과 동의에서 시류의 우여곡절에 의연 할 수 있는 인격적 안정이 필요하다.
보편성의 동행과 설득에서 양극화의 대립을 부추기는 권세의 허물은 자체의 부담이다.
현실정치에서 양극화 정치의 극단적 대립은 상대의 약점으로 생존한다.
상대에게 약점이 없으면 성립 될 수 없는 불확실성의 조건적 공생이다.
울타리 정치의 승패 적 선입견 충족에서 근본적으로 선택의 바탕이 잘못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편이면 앞뒤 없이 번호와 색깔로 선택하는 이분법적 정치의 고질적 병폐이다.
정치의 분별에서 주체의 대의를 우선하는 실용적 동행의 합리성 필요이다.
민심을 호도하여 군립하려는 잘못된 자의 판 떼기에서 수신제가의 현명한 처신이 없다.
나라와 백성의 편에서 권력에 충언하고 정의를 위해 형장에서 갓을 고쳐 쓰는 선비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의 행위에서 허물의 결과를 예지하여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최소한의 대의가 없다.
국가의 미래에서 제 잘나 낮바닥 들이미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무엇을 위한 성취인지 이기는 자의 전유물이 되어 있는 권세와 목적 없는 정치이다.
K문화와 문학상을 자랑하는 대한민국의 문화적 자긍심에서 아직도 사대부적 권세에 정의와 정직을 요구하는
정치판의 실상이다.
국제적 위상에서 애써 이룩한 국민의 노력을 소홀히 하는 권세의 자가당착이다.
정치의 목적에서 동의를 위한 과정의 순수가 아니라 나와 우리 편의 절대를 위한 지배의 집착이다.
타의의 수용에서 비판과 동행을 불편해 하는 비논리적 현상이다.
국민과 국가가 자신을 위해 존재한다는 착각으로 헤매는 중생이다.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동의의 합리적 절차가 아니라 나에 억매여 비롯되어야 하는 국수적 사고의 고집이다.
다양성의 합리성을 위한 반론과 의견수렴에서 민주적 제도와 절차가 아니라 진영논리에 구속된 집착이다.
나와 우리 편으로 비롯되어야 한다는 강박적 관념이며 권세에 상응하는 잘못된 존재감의 과시이다.
국민에 의해 위임된 결정권은 내가 아니라 국가와 민생을 우선해야 한다.
정치의 목적에서 무엇이 미래인가?
나와 우리 편이 절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합리성은 비판을 수용하는 절차적 순리이다.
허물로 견주는 정치판의 수단적 거취가 미래의 불확실성이다.
양극화의 대치에서 공생적 반대급부를 위한 극단적 정쟁의 결과이다.
민심은 나 홀로 국정운영과 탄핵국면을 요구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의 문화적 성취에서 망연한 상실이 개탄스럽다.
대권이든 다수당 이든 민심의 선택은 무소불위의 절대권한 행사가 아니라 주장한 목적에서 타의와 동행하는
수용적 합리성을 주도하라는 주문이다.
국수론 자들이 자가당착에 빠져 내 것 밖에 모르는 것이다.
극단의 정치에서 기인하는 광적 권세의 집착이다.
어처구니없는 계엄의 진실은 파괴 될 수밖에 없는 극단적 정쟁의 끝물이다.
양극화의 경계에서 옳고 그름의 분별력을 상실하는 집단주의의 불행이다.
지적문화와 민심의 결과를 예지하지 못한 어설픈 계엄은 자아의 조각으로 현상을 지배 할 수 없다는 증거이다.
글로벌 사회에서 애써 이룩한 국민과 국가의 미래가 안타까운 것이다.
당쟁과 권세의 집착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수습이 필요하다.
정치판의 총체적 문제에서 군사문화를 끌어들인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여야 한다.
민주주의와 군사문화의 체제적 제고이다.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밀실정치의 위협에서 의회주의 사수와 대통령제의 제고이다.
12.12사태에서 역할 하였던 9사단 백마부대 탱크와 일부병력의 출동준비 태세도 있었다.
계획적 계엄의 실행이었다.
역사의 역행에서 문제의 본질은 정치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영의 예속을 강요하고 의지와 상관없이 줄서야 생존 할 수 있는 집단주의의 극단성이다.
양극화의 경계에서 대표권과 관련된 정치적 거취의 허물은 반복되는 표적이 된다.
삼권분립에서 법과 정치는 분리되어야 한다.
체제의 구성에서 견제 적 역할이 분명해야 예지의 방향을 상실하지 않는다.
나의 존재와 진영논리에 지배되어 문화의 동행 적 교훈을 망각하는 역사는 미래가 없다.
내 것이 아니라 상대의 허물로 입지를 마련하는 것은 생산적 정치가 아니다.
계엄군의 선관위 점거는 특이한 상황이다.
국민투표를 통해 유신에 준하는 장기집권 정황이라는 말씀이 있다.
현상유지도 아슬아슬한 시국에서 권세의 탐욕이 오지랖 주제를 모른다.
사실이라면 민주주의를 떠들며 독선을 획책하는 위험한 역사의 망동 이다.
국회에 진입한 특전사 군인들의 적극적 점거행위는 없었다.
국회를 봉쇄한 경찰은 완화를 반복하며 의원들의 회의장 진입을 방조한 흔적이 있다.
독선을 획책한 위정자들의 기대와 달리 대한민국 민주주의 뿌리는 민들레의 의지을 이루고 있다.
군인이든 경찰이든 어떠한 극단적 시도와 시련도 극복 할 수 있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저변이다.
시민정신이다.
정치개혁의 수용적 바탕이다.
2024.1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