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통신사회의 미래. 본문

나의 글방.

통신사회의 미래.

박세욱. 2024. 10. 30. 14:10

200 통신사회의 미래.

1)신사회의 미래.

시작과 연속성에서 선과 진실의 구심점을 지켜야 한다.

사회와 경제와 정치에서 옳고 그름을 우선하는 정의사회 구현이다.

새로운 질서와 미래에서 통신사회의 가치이다.

법인 또는 위원회를 설립하여 가시적 다수에 의해 역할을 유지해야 한다.

의지의 가시적 표현은 일의 성과에서 인습을 설득하는 상징성의 관계가 있다.

목적에서 악에 지배된 몹쓸 인간들의 공격적 경시를 간과해서는 안된다.

상어떼의 공격에서 지키지 않으면 확장 할 수 없다.

주장의 적극적 방어는 반드시 필요하다.

시대적 현상에서 인습의 가시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은 설득에서 주장의 방어적 목적이 충분하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고 하였다.

선과 진실의 생산과 유통을 분리하여 자본시대를 충족하는 생산성 확인과 목적과 의지에서 인습을 설득 할 수

있는 연속성의 조건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선과 진실의 주장과 전파 즉 유통에서 글로벌 통신기업과 필연적 동행이다.

글로벌 통신기업과 동행은 새로운 질서를 위한 인습의 설득에서 자본문화의 현상을 돌파하는 조건이다.

주장의 시대적 주목을 위한 동행이다.

사람의 형상으로 오셨다.

문화적 인습과 동행하지 않으면 더 많은 시간의 고행과 희생이 필요하게 될것이다.

재원이 확보되어도 특별하지 않으면 굳이 창작 이외의 인프라는 자제되어야 한다.

 

목적의 순수성이다.

역할분담의 동참과 협력으로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려는 것이다.

현상의 동행은 인습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시간의 인내이다.

누구라도 행하는 시간에 이르면 경쟁의 차별은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다.

선과 진실의 주장에서 어떠한 경우든 창작의 독립성은 보호되어야 한다.

이기적 집단의 이해타산과 패권적 지배의 간섭에서 목적과 의지의 독립이다.

이분법적 경계의 이해타산을 다투는 정치와 치부의 경쟁과 차별을 요구하는 경제와 국경의 경계에 집착하는

국가가 배제된 순수 민간기구의 운영이다.

인류문화의 주체 세계인의 지성이 주도해야 한다.

 

종교의 선과 유엔의 대표성과 민초의 사선에서 봉사하는 자선단체와 연계이다.

주장에서 선의 구심점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글로벌 문화의 공유와 경계 적 차별 해소에서 인류의 일체성이다.

언론과 협조는 선과 진실의 창작에서 낮은 곳의 실상과 정보공유의 필요이다.

통신사회의 생산성에서 전파를 공유하는 상호보완적 비용절감이다.

중용의 실용주의는 목적에서 정치적 방향성이다.

이분법적 지배의 사고에서 획일적 절대성의 자유이다.

의회주의에서 다양한 구성의 절차적 합리성을 지키는 중재의 역할이다.

삶의 현상을 우선하여 민생을 살피는 실학의 실천이다.

 

낮은곳과 자연은 통신사회의 중요한 정신이다.

패권적 지배의 정치와 치부의 경쟁적 차별에서 공유와 공존이다.

산업사회에 의해 파괴되는 자연생태계의 순리에서 자아 적 삶을 지향하는 조건의 회복이다.

돈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본주의를 회복하는 것이다.

민주적 절차에서 비판과 순리의 동의이다.

각자도생과 극단적 집단의 출현에서 공익적 견제와 승패 적 대립을 완화하는 균형의 민주주의 이다.

내것과 이분법적 경계에서 이해타산의 다툼이 완화되고 사라지는 평화이다.

이웃과 공유하는 자유이다.

질서에서 스스로 참여하는 문화 유토피아 이다.

 

당분간은 한글의 우수성에서 다양성을 접목 할 것이다.

한반도 비극과 통신사회 출현의 의미이며 시간으로 요점은 정리될것이다.

목적에서 시간과 관계가 있다.

 

2)언론과 여론조사.

통신시대의 대선 여론조사에서 한 달 통계는 의미없는 것이다.

권모술수의 부비트램을 알고 있을 텐데 굳이 의미 없는 자료 들이데는 저의가 모자람의 이유같다.

대선일 직전자료가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대양의 대선에서 대한민국 언론의 일방적 보도가 무엇을 위한 것인지 궁금하다.

화석연료 사용에서 환경문제의 투자 효율성과 곳간 거덜나는 방위비 문제는 발등의 불이다.

미주투자에서 보조금 문제의 애 굿은 70조원 행방과 대미무역에서 관세문제도 위기이다.

대한민국 살림살이가 태평양의 선택에 달려있다.

이뿐 아니다 선거불복을 일상화 하고 있다.

절차의 순리에서 승패에 집착하는 파괴적 폭력성은 역사를 역행하는 것으로 21세기 리더십이 아니다.

 

현상에서 극단주의의 모든 지표는 민주주의와 대한민국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권세에 의한 보도의 일방적 현상이라 며는 우려되는 줄서기 정치판의 실상이다.

나의 사사로움은 살아있는 동안 정치의 극단주의와 치부의 차별에 저항 할 것이다.

한반도 문화의 일체성을 주장 할 것이다.

주장은 예초에 설정된 통신사회의 목적에 의한 것이다.

거짓에 현혹되어 정치판 시류에 줄서지 않는다.

양극화 정치의 선택에서 어떠한 기회에 억압되어 달라질 것이 없다.

동의와 견제에서 선택이다.

21세기 민주주의의 미래는 신의 뜻이다.

2024.10.31.

 

 

 

 

 

 

 

'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림 1.  (0) 2024.11.09
역사와 학문.  (0) 2024.11.07
오류와 시험.  (0) 2024.10.26
인간세상.  (0) 2024.10.22
인류와 한반도.  (0) 2024.10.19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