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인간세상. 본문
198 인간세상.
악은 악으로 선은 선으로 뿌린데로 거둔다고 하셨다.
실사구시는 민생에서 선의 행위적 실체를 우선하는 것이다.
생존과 성취에서 의식주를 공유하는 사회의 구성과 질서이다.
보편성 충족에서 먹고 입고 자고 학습할수 있는 인륜의 안주이다.
문화적 시간의 인습에서 성취의 노력은 선택되어야 한다.
분야와 전문성에서 모두가 제일주의를 지향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공유와 공존은 좌파논리가 아니라 생산성 충족에서 데이터와 연결망을 통한 생존과 물질의 효율성이다.
경쟁과 차별을 완화하는 복지사회 이다.
산업사회의 사회성 지배에서 자연에 예속된 삶의 회복이다.
생존에서 자연의 생산성은 자아적 삶과 정신의 안주에 중요하다.
미래는 자연과 문명과 문화가 공존하는 생물학적 지식진화의 시대가 되어야 한다.
기계적 생산성 시대의 준비이다.
선지자의 가르침에서 그렇다.
파괴와 폭력적 지배를 일삼는 세상이 재림을 요구한다.
거짓과 진실과 선과 중오는 한 울타리에 있다.
선이 사라진 젖과 꿀의 땅에서 악과 지옥을 차별해야 하는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
아브라함의 역사에서 벌어지는 차별적 역사가 처참하다.
현세에 악마가 있다.
누가 말 하였는지 구원자에 의해 선택된 인간의 행위가 아니다.
평화로운 삶과 죽음을 경시하며 신과 선을 말할 자격이 없다.
누가 학살자 이고 테러범 인가?
전쟁과 역사의 민족적 비극에서 피해자의 악마적 고통과 박해가 새삼스럽다.
역사의 소외적 방어와 파괴적 폭력의 가해에서 행위의 현상이 다르다.
신의 가르침과 선택에서 21세기의 학살을 멈추어야 한다.
신께서 마련한 생명의 권리에서 사관의 지배적 대립으로 죽어야 하는지 저항을 저지할 이유가 없다.
선의 인내와 한계에서 또 다시 비극적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
악마의 목적이 무엇인지 신을 모방하여 생명의 지배를 시도한다.
예지하여.. 선택에서 피로 역사를 쓰려는 특별한 망종의 세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누구라도 신을 모방하는 자 반드시 망한다.
역사는 늬것이 전부가 아니라 참과 균형으로 기억되는 것이며 차별에서 영원한 지배는 없다.
인간의 폭력성은 선지자의 고난이다.
병행하여 중앙아시아의 비극이 점입가경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정학적 위치의 방어적 개념에서 동서냉전의 지구적 전선으로 확대될 위험의 위기이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은 현상에서 바람이 태풍이 된다는 분별력을 상실한 국제정세의 역사관 이다.
무엇을 위한 전쟁인지 명분과 생존에서 목적의 제한성을 상실하고 있다.
세계인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지정학적 분쟁을 전쟁으로 해결할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동서냉전의 사선에서 명분과 실리없이 물러날수 없는 문제이다.
국제사회의 적극적 중재노력 필요에서 사선적 정치가 아니라 평화를 우선하는 세계인의 의지가 필요하다.
정치적 입지의 주문에서 통신사회의 역할이다.
한반도 분단은 동서냉전의 지정학적 사선에서 일시적 전쟁중단의 군사적 대치에 있다.
수백만 군대와 70여년 전쟁을 대비한 파괴적 무기의 대치이다.
냉전적 진영논리의 요구에서 민족적 또는 문화적 이유없는 한반도의 위기가 재현될수 있다.
이국체제의 말씀은 한반도 통합을 위한 소통과 교류에서 버거운 국제정세의 일시적 고육책으로 이해해야 한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수 없는 통한의 현실에서 가능성 없는 왕래의 빌미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차라리 다른 나라의 법적지위 라면 왕래에서 국제정세의 간섭을 피할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이다.
언어와 문화에서 오천년 역사는 체제와 정치의 이합집산으로 갈라 놓을수 없다.
요사이 말씀에서 북쪽주민의 통일염원이 오히려 강하다고 한다.
문화적 접근의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평화의 공존을 위한 새로운 시각에서 국제사회의 적극적 노력 필요하다.
패권적 지배에서 동행적 믿음의 노력이다.
체제와 정치에서 국제사회의 안정적 보증에 의한 폭력적 역사관의 전환이다.
체제적 현상의 경계에서 접근의 유연성이다.
정치는 나쁜 것을 좋은 것으로 이끌어 내는 작업이다.
한반도 분단의 역사가 냉전의 상징적 의미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의 권력자를 험담하면 봄바람에 제비처럼 날아오는 것이 있다.
범칙금 통지서이다.
권세의 차별적 횡포가 대단하다.
쌓아 두었든 버려두었든 조건이 되면 날아온다.
어찌하다 큰상 모퉁이에서 물먹은 신세가 시정잡배 보다 못하다.
못된 귀신의 거짓된 사주에 신들린 철없는 권세의 망동 때문이다.
즈그들 편들면 조용하다.
밴댕이 소갈머리 같은 권력의 치졸함이다.
이제는 익숙하여 기다리고 있다.
영업용 차량 운전해 봐라!
피곤의 무의식에서 무작위로 깔아놓은 무인단속기에 위반 안하고 하루를 견디기 어렵다.
콜 영업에 시간의 촉박함도 한목 한다.
일부러 위반하는 운수종사자는 없다.
준법정신이 중요한데 일상에 바쁜 낫살에 집중력 저하는 어쩔수 없는 현상이다.
제도에 가까운 제 잘난 권세에 예속된 민초의 삶이라는 생각이다.
돈의 여유도 그렇지만 사대부의 치졸함에 차별받는 일상의 분노가 좀더 아프다.
증거로 위반했으니 즉시 납부한다.
언짢은 자아의 조각에 예속되지 않으려는 노력이다.
전생의 업인지 실체없는 상 때문에 얼굴 팔려 택시팔자도 온전하지 못할것 같다.
어쩌다 이리 되었는지 살기 꽤나 힘들다.
세파에 악다구니 하며 새로운 질서를 들이밀어도 내것으로 가진자의 치열한 자기방어는 미래가 없다.
수단과 방법에 미친 민주주의는 우리편의 집단주의로 거짓과 진실의 분별력을 상실하고 있다.
양당제에서 이분법적 사회성 요구와 집단적 이해타산을 우선하는 선택이다.
역사에서 무엇보다 정신의 의지가 무너지면 회복이 힘들다.
절대성의 파괴적 구태에서 실용적 절대가치의 요구이다.
실사구시의 현상에서 미지를 상상하는 지적 예지력의 주문이다.
차별은 폭력과 지배가 아니라 소통과 교류의 문화적 역량으로 완화되어야 한다.
가진자의 사회적 책임에서 구성의 효율과 제도의 형평성은 문화와 민심을 우선하는 지배력의 역할이다.
새로운 질서는 극단성에 대응하는 극단성의 우려에서 중용의 균형을 위한 노력이다.
독자생존과 집단주의 발현에서 21세기의 선택은 새로운 리더십 요구이다.
나의 사사로움은 형장에서 갓을 고쳐 써도 선과 진실을 추구하는 영원한 실용적 진보이다.
2024.10.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