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인류와 한반도. 본문
197 인류와 한반도.
휴전선 북쪽은 선제 공격할 이유도 여유도 없다.
동족을 향한 핵사용은 우리가 없는 한반도 민족의 일체성이 아니다.
혈육과 문화와 언어의 동질성은 이백여년 이념적 울타리와 다른 것이다.
우리는 우리것이 소중하다.
이분법적 경계에 구속되어 전쟁과 파괴를 조장하는 정치를 주시해야 한다.
평화가 아니라 패권적 울타리를 사수하려는 수작이다.
울타리 정치에 사족이 구속되어 대립을 조장하는 정치가 잘못된 것이다.
소 키우고 논밭 갈아 인연을 소중히 하는 민초의 일상이 좌우논리의 정치에 예속될 이유가 없다.
정치가 민생의 본질을 벗어나 자의적 지배를 획책하는 문제이다.
무엇이 민생과 인류의 평화인가?
제 잘난 정치이다.
물질과 좌우논리에 집착하는 현상적 정치는 절대가 아니다.
이기적 집단의 자기 중심적 선동과 지배의 욕구이다.
울타리의 경계적 정치에서 민생과 민초를 우선하는 선은 없다.
지배의 집단적 이기주의 뿐이다.
21세기에 누가 미래를 알고 주도할수 있을지 궁금하다.
너는 아느냐 현상의 결과를!
사과의 선택을 교훈으로 이해해야 한다
정치의 제잘난 잘못은 미래와 미지에서 정도를 벗어난 감옥적 지식의 집착과 오만이다.
너는 늬가 정의와 진실이 아니 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경계하여 죽여도 유전적 시간의 정체일 뿐이다.
동서냉전의 딜레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결국 한반도 분단의 비극이 끌려 들어가는 형국이다.
한반도 북쪽 군대의 참전은 또 다른 지정학적 경계의 빌미가 될것이다.
한국정부에서 대응을 논의하며 무기를 보낸다고 한다.
얼마전 북쪽에서 남북소통을 위해 개설된 철도와 도로를 폭파하는 파괴적 경계의 퍼포먼스가 있었다.
있어도 쓸모없는 냉전적 국제질서의 이분법적 경계에서 한쪽은 혈육단절의 비극을 외면하며 파괴하고 한쪽은
소통과 교류의 의지도 없이 파괴했다고 비난하고 있다.
평양상공에서 한국의 무인기가 발견되어다고 증거를 제시하며 재발시 무차별 무력응징을 호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쪽군대의 참전은 바람이 태풍이 되는 현상의 확장을 심각하게 우려하고 있다.
한국속담에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에게 덤빈다고 하였다.
사회와 경제와 군사적 비교에서 월등한 차이라고 떠들며 적대적 대치를 조장하는 정치의 문제이다.
현해탄의 역사 인식과 견주어 민족이라는 의식의 결여이다.
사관의 과거청산에서 우선순위의 배반적 형태이다.
냉전적 경계의 정치를 우선하여 분단의 비극을 이용하려는 집단의 망종으로 결과에서 좋을 것이 없다.
80여년 분단된 한반도의 미래와 자연과 순리에서 정치를 왜하는지 알수가 없다.
가졌다고 떠들며 혈육에게 여유가 없는 싹아지의 형편이다.
놀부전의 심보이다.
이념적 정치의 경계에서 우월적 진영논리에 집착하는 어리석은 사고로 한반도의 미래는 없다.
냉전적 경계의 요구에서 한국도 우크라에 파병해야 하는지 당혹스런 일이다.
무엇을 위한 것인지 문화적 일체성의 의지없이 오로지 피비린네 나는 영역확장 뿐이다.
민초의 일상이 요구하는 것인지 정치의 존재감이 요구하는 것인지 알수없는 악의적 현상이다.
냉전적 국제질서와 지정학적 위치에서 잘못된 정치의 욕심이 부른 경계의 파괴적 확장이다.
이분법적 경계의 현실과 교훈에서 전쟁으로 몰아가야 했냐는 것이다.
이념적 경계의 정치적 희석에서 냉전적 안보문제의 비화를 의식할수 없었냐는 것이다.
소통에서 시간의 동행으로 문제를 해결할수 없었냐는 것이다.
세계질서에서 무엇에 집착하는지 평화를 지키고 주장하는 철학의 질서와 개체의 존재가 없다.
예초 우크라 전쟁의 냉전적 국제질서에서 진영논리의 요구가 있었다.
우려하였던 것이 한반도 정세의 불안정성 이었다.
결과적으로 우려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21세기 민주주의 선택에서 한반도의 기대에 엇긋장 놓고 표에 무지하여 자신이 남북문제를 해결할수 있다고
거짓된 입버릇의 습관으로 떠들고 있다.
작금에 벌어지는 한반도 역사의 분열과 냉전적 경계확장의 우려에서 주체적 책임이 있다.
소통과 교류의 시간적 동행에서 희망고문으로 끝나버린 하노이의 아쉬움이다.
문화적 일체성으로 평화를 회복하는 과정의 인내가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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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길에서...
진실을 확인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직접 확인한 사안이 아니라서 진실에 가까운 정황의 대중적 이해이다.
민심의 정의는 바른 것이다.
사과 겸 진실을 확인하여 주신 분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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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있는 인연에서...
패북하며 시간을 소비하던 때이다.
중국의 후진타오 주석께서 직접 신분을 밝히고 친구신청 한 일이 있었다.
당시 내가 감당할수 있는 영역에서 너무 커지는 불확실성이 많았다.
일말의 두려움과 망설임으로 끝내 수락을 클릭하지 못했다.
후주석께서는 통신사회의 미래를 알고 계셨다.
인민대회와 돌아가신 모습에서 아련한 것이 있었다.
중국인들이 존경해야 하는 지도자 였다.
통신사회는 패권적 지배의 시험이 아니라 미래의 질서이다.
패권적 정치에 예속되지 안는다.
인류가 공유하는 새로운 발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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잛은글에서...
대한민국에 세계의 지성을 점지하는 특별한 귀신이 있다.
개나 소나 제 잘난 것이다.
가진것 없는 중생이 안방 차지하고 담넘어 소리에 갈피없이 애굿은 마당쇠만 만만하다.
이나라 주권이 철없는 안체의 널뛰기로 사라졌다.
제것도 가누지 못하면서 대양의 선택에 줄서서 꼬랑지가 길다.
세상이 늬것 이더냐?
한치 앞이 어두운 오지랖으로 문고리 흔들 일이 아니다.
천방지축으로 후질러진 오지랖으로 세계인의 지성과 국격을 훼손하는 것이다.
그것은 내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나아가 한민족의 것이다.
오천년 역사는 한민족의 유산이다.
법은 법이다.
누가 특별한가?
문지방 관리도 못하는 현해탄 역사는 귀신 씻나락 까드시는 소리다.
한두해 짭밥이 아니다.
21세기 통신사회는 필부가 간섭할수 있는 역사가 아니다.
2024.10.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