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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의 길.

박세욱. 2024. 10. 14. 06:06

195 순교자의 길.

고행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차별적 예속과 고립에서 분노의 파괴와 시류의 타협이 아닌 자아적 인내에 머물수 있다면 누구라도 가능하다.
경계와 권세와 타의의 차별에서 가슴 저리도록 분노를 인내하는 자아적 고립이다.
인내는 순리를 찾아 반격할수 있다.
순교자의 인내이다.
순교자의 반격은 가장 대중적인 진실과 선의 확장이다.
대표적 예가 선을 우선하여 악을 차별하는 종교이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시 원자로 내에 진입하여 수습하려는 십수명의 전문가가 있었다.
진입 전 살아서 나올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대의를 위해 존재 즉 관계와 기억이 사라진다는 실체적 사실에 직면하여 어떠한 용기와 결단이었을까 생각해본
기억이 있다.
순교자의 마음에 조금은 다가 갈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국가의 명령으로 수행한 임무라서 사후 배려는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할 수 있을까?
요사이 글로벌 문화에서 한글의 우수성을 말씀하신다.
누가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렸는가?
너냐?
 
오강에 부체질 하는 곰은 따로 있다.
말씀 바르게 하자는 것이다.
순교자의 행색이 아니라 정체와 존재가 아리송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인본주의를 떠들며 개나 소가 되어간다.
21세기에 사대부의 패륜 세종시대 장영실의 차별과 소외를 기대하는 것은 시정잡배의 망덕이다.
민주주의를 떠들며 제 잘난 권세에 겨워 기본권과 인권과 표현의 진실을 왜곡하는 폭력이다.
중도 진보라는데 이짝 저짝 줄서라고 울타리의 권세와 새털 같은 간신배의 오지랖으로 지랄이다.
울타리에 줄서야 상 주나보다.
하기는 권세에 빠져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세계인의 지성을 제 멋대로 점지하는 귀신이 있기는 하다.
 
예초 방송에서 멀쩡한 놈 상 받을수 있다고 똥구녕 쑤셨다.
최초에 집구석 쌈박질로 이골난 명란대전에서 상의 이목을 염려한 진보귀신들 술래잡기에 물 먹었다.
당내경선 막바지에 예정된 수상자 발표가 18일 이었는데 16일로 갑자기 앞당겨 발표되었다.
표 차이가 극미하고 추격 중 이어서 많이 아쉬웠다.
당시 진보귀신의 변명같은 멘트가 "언제든지 받을수 있으니까!" 였다.
무슨 의미인지 어렵지 않게 알수있는 웃기는 소리가 되었다
경선 후 국회에서 국민인권문제를 거론한 의원이 계셨다.
나는 상과 후보의 권리에서 권력의 개입없이 불가능한 국민기본권 문제라는 생각을 하였다.
두번째는 팔자 고치는 워낙 큰 상이라서 은근슬쩍 기대했는데 나의 것도 쥔장소유라고 근처도 못 갔다.
 
좋은 말씀하시는 분께서 명암 올렸으면 해볼만 했다는 귓속말을 하셨다.
권력근처에서 상과 관련된 분들의 자만적 구설을 새와 쥐가 듣고 불상한 중생에게 전해주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성역같은 상의 추천과정이 후기로 전달 되는것 같다.
남의 것 가져가신 분도 선정되지 않았다.
당시 한반도 평화를 위한 북미대화가 하노이에서 결렬되었다.
하노이 가는 길은 압록강 건너 대륙을 횡단하는 열차여행 이었다.
한반도의 비운에서 고대하고 기다리던 기대가 있었다.
70여년 혈육단절의 희망에서 예상치 못한 비보에 누구라도 침묵으로 정체되고 있었다.
될것 처럼 떠들고 희망고문 하다 실체없는 정치적 행색으로 끝났다.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수 없는 딱한처지가 비감하였다.
세번째는 대빵 바뀌어 새 안방마님 점지에서 불발되었다.
선거에서 반대편에 있었던 관계로 상의 과거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나는 사실관계를 모르는 상황에서 여론추이와 SNS를 통해 점지의 수작을 알수있었다.
상당히 시끄러웠다.
당시 상황이 강서구 보궐선거에 꽤나 영향을 끼쳤다.
강서구 보궐선거에서 야당승리는 새로운 안방마님 점지 덕이었다.
궁금한 것은 상의 후보를 위원회에서 요청하는지 국가에서 추천하는지 절차를 모르고 있다.
후보자에게 알려주지 안는다.
 
워낙이 바닥이 없어 세월이 약이라고 견디고 있는데 네번째 들어 양치기 소년이라고 한다.
세번 물먹은 불행을 어찌 아는지 말도 잘한다.
그래서 방송하나 보다.
큰상 받을 놈이 운전대에 열중하고 있으니 멍청하고 한심한 인간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권력과 재물은 내손 안에 들오기 전에 내 것이 아니라는 현상적 체험을 하였다.
일상에 집중하는 것은 나의 관리에서 의지의 경계를 확실하게 하려는 것이다.
존경하는 선배님께서 방송에 나와 멀쩡한 놈 심장떨리게 걱정말고 선배들 잘 모셔야 한다고 하셨다.
대빵 바뀌어 힘들 텐데 하면서도 귀떼기 솔깃하였다.
문학계에 영향력 있으신 분이시다.
 
혹시나는 역시나 였다.
공개석상의 대빵께서 출산율 문제 해결하면 상 열개도 된다고 하신다.
이크! 틀렸다.
상은 대빵께서 주는 것이 아니다.
출산율 문제는 국정을 책임지는 인사들 책임이다.
공개석상에서 국가의 난제를 상 후보 되실 분에게 책임전가 하고 계셨다.
제시한 조건에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국민기본권의 형평성은 고려하시는 것인지 특별하여 어긋장 놓는
것인지 국정책임자의 상식과 의지가 매우 궁금하였다.
문제의 정황은 또 있었다.
 
갑자기 체코 원전수주 원천기술 문제에 더하여 현대자동차 미국공장 환경문제가 불거졌다.
진원의 의지가 무엇인지 피아의 식별에서 까다로운 시간이었다.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정치적 세파에서 진실을 찾는 노력이 가련할 정도이다.
이어터진 체코방문 중 현지에서 안방마님 10억원 증권수익 문제가 보도되었다.
불의에 저항하는 국제사회의 정의에서 과거의 경험에 의한 불행한 흔적이라고 생각했다.
서글픈 놈 옆구리 걷어차는 형국이다.
후보는 모르는 상의 심사에서 대계는 과정을 미리 알고 있는 듯하다.
더러운 팔자다.
드디어 2024년 평화는 유보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유는 세계가 전쟁 중이라는 것이다.
그래도 평화의 의지를 위해 선정해야 한다며 몇몇 인사를 거론한다.
거론된 분들 후보로 추천되었는지 궁금하다.
하도 당해서 하는 말이다.
평화는 물 건너가고 귀가 옆은 언감생심으로 혹시나 하고 염탐하는데 어마 삼천포로 빠졌다.
21세기 민주주의 미래에서 통신사회의 주장을 핸폰으로 작업하고 있었다.
티비에서 획 스쳐지나가는 벼락 맞을 화면이었다.
이상한 것은 몇칠 전 이분 생각을 스치듯 했었다.
그럴수도 있겠다고 생각하였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미안한 말씀이지만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으며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여 가볍게 생각했었다.
휘발성이 강하다는 비평은 손가락 절단된 목상공방 쥔장을 간호사 주사바늘로 퇴장시키는 작가의 권력적 횡포
때문이었다.
딴에는 목상공원 조성과정에서 유명작가의 시각으로 4.3의 깊이 있는 인륜을 기대했었다.
주사바늘로 주체(나의 생각)를 횡사시켰다는 불만이다.
어찌되었든 훌륭한 분이라서 대한민국 화이팅 하였다.
일의 디테일에서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나쁜것은 지적해야 하는 것이 작가적 소명이다.
 
상에서 평화와 문학의 정치적 선입견이다.
진영논리와 관계에서 당연히 우리편 이어야 한다는 편견적 추천이라는 생각이다.
정치와 권세의 사사로운 망동이 저지르는 지성과 기본권의 차별이다.
상의 정치적 후기는 위태로운 지지율 점검하느라 눈알맹이 힘들 것이라는 판떼기의 지식이다.
정치판 생리가 그렇다는 것이다.
정치판에서 개가 풀을 뜯어먹는 순교는 없다.
잡아 쳐 먹든지 아니면 야합하여 한 놈 죽이던지 시정잡배의 판떼기다.
운전대 잡고 쓸라니 눈알맹이 부터 온몸이 시팔시팔 한다.
무엇을 할지 세속의 안타까움이 조도 마이싱 이다.
 
힘없어 스스로 지킬수 없는 민초의 삶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것 아닌가 생각되기도 한다.
민심의 저울추를 기대하는 경계적 정치판에서 상의 구심점은 크다.
정치적 저변확장과 민심의 긍정적 이목에서 상과 비교되는 기회는 없다.
정치의 또 다른 중심이 될수있다는 말씀이다.
정치판에서 상의 결과는 복합적 연결고리를 생각해야 한다.
산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슈퍼컴퓨터로 알수없는 권모술수와 야합이 난무하는 곳이 정치판 이다.
눈만 뜨면 잡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승냥이들이 세상의 주체처럼 설치는 곳이다.
정치는 야합과 부정적 공생과 이질적 이해타산이 난무하는 곳으로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정치와 무관한 상의 수상과 관계없는 말씀이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 것이다.
좋은 것은 좋은 것이다.
본질적 말씀 드려야겠다.
선을 위한 고행적 고립에서 정신의 가치와 인습의 외로움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세래 요한에게 부탁한 어머니 마리아의 보살핌은 인간세상의 인연이다.
나에게도 세속의 인연이 있다.
인연의 책임은 범인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나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웬만한 분들 만큼 하였다.
 
세계평화와 인륜에서 노력하였다.
통신사회의 비약적 발전에서 한 푼도 산수한 것이 없다.
살림살이가 궁색하고 불편하다.
나의 육신은 주어진 데로 욕망의 짐에 있지 않으나 인연에서 마음이 많이 불편하다.
글로벌 싸이트에 글 올리며 통신기업들 심심치 않게 재미 본다는 말씀을 들었다.
물질적 관계에서 부탁할 곳도 기대할 것도 없다.
세파와 시류에서 인본주의를 지키느라 주변과 격리되었다.
세속에서 자아를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견주어 저울질 하고 뒤통수로 돌아오는 뱀의 혓바닥 때문이다.
 
불편하여 피한 것이 자아적 연민의 고행처럼 되었다.
동업자 차원에서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낫살은 늘어 나는대 통신사회를 시작하며 목적한 일을 아직 마무리 하지 못했다.
최초에 설정한 인륜과 한반도 평화에서 괄목할 만한 증거를 아직 찾을수 없다.
통신사회의 미래에서 선의 주체도 완전한 확립이라고 할수없다.
옳고 그름의 분별력에서 공간적 개념을 확보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공간적 개념이라 하는 것은 전쟁 등 인륜적 문제에서 통신을 통해 비판적 여론을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다.
통신사회는 선을 우선하는 인류의 일체성과 공영이다.
새로운 질서의 의지는 감히 권력자와 정치판의 하찮은 경계적 시각에 흔들리지 않는다.
 
누구라도 1차원적 식견으로 건들지 말아 달라는 부탁이다.
육십줄 후반이니 아직은 시간이 조금은 남아있다.
부당한 차별에 처절하고 철저하게 반격할 것이다.
정치애기도 있다.
말씀드렸듯이 나는 중도 진보 이다.
육십줄 얼마남지 않은 생에 시류와 타협하지 않은 세월이 안타까워 바꿀수 없다.
좌우경계에서 민주주의와 대의를 위해 협력할수 있으나 일신과 기회주의에 줄 설 생각이 없다.
시간이 되는대로 중용의 실용주의를 위해 정치에 관심을 가지겠다.
통신사회의 미래와 역할이다.
 
세도정치의 퇴물 사대부의 허세와 철없는 권세의 못된 망아지를 정치적 계산없이 감시하겠다.
제 잘난 독선에서 이기적 거짓과 권세의 횡포에 저항하겠다.
초상집에 소금 뿌리는 곰배지의 철없는 인면수심을 고발하겠다.
절대성의 구태에 예속되지 않는 절대가치를 지향 할것이다.
정치적 선택에서 인격과 관련없는 사사로움을 완전히 배제하겠다.
선지자의 가르침 따라 낮은곳에 있을 것이다.
문화와 인륜과 한반도 평화를 위해하겠다.
특별하지 않으면 통신사회를 통해서 할것이다.
2024.10.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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