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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과 극단적 정치.

박세욱. 2024. 9. 5. 06:26

187 사관과 극단적 정치.
우리편의 정치이다.

오천년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주체의 역할에서 울타리에 치우친 정치공학의 무지가 극단주의를 부추기고 있다.
양극화의 습관적 정치와 진영대치의 확장으로 승패적 시국을 저울질 하는 파괴적 시도이다.
물빠진 이념 정치의 경계적 모호에서 식민사관의 극단적 설정이다.
정치가 민생의 현실과 이해(안주)에서 미래가 아니라 비극적 역사의 과거에 머물러 있다.
시간의 학습과 문화적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울타리 정치의 이분법적 사고이다.
시대의 분별력을 우선해야 하는 정치가 진영논리에 구속되어 예지력을 상실한 고집 뿐이다.
비극적 역사를 빙자하여 양극화의 경계를 자극하고 유지하려는 편협한 정치의 관성적 무지이다.
오천년 역사와 문화는 정치 또는 정치인을 위한 한민족의 뿌리가 아니다.
 
통일전선은 민족의 염원으로 포장된 비극적 도발이었다.
교훈하여 21세기 식민사관의 도발은 극단적 갈등을 이용하려는 울타리 정치의 관성적 무지이다.
양극화의 울타리 정치를 우선하여 오천년 역사와 문화의 국가관을 훼손하고 있다.
정치가 국가의 정체성을 우선하지 못하고 내것의 승패로 미래를 시험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노동부 장관 인선에서 식민사관의 이질적 인식과 독도문제의 현실이상은 현상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현해탄의 역사에서 이질적 인식의 경계적 사고와 파괴적 도전은 의도적 설정이 다분하다는 것이다.
좌파의 극단성에 대응하는 명분으로 우파의 결집을 시도하는 의도적 도발이라는 것이다.
끝으로 치닫는 매우 우려되는 양극화의 무지이다.
적대적 정치에서 강대강의 대치가 끝물에 이르고 있다.
 
정치의 목적에서 내것으로 상대를 지배하려는 패권적 시도와 적대적 사활의 대응이 전부이다.
정치와 국정에서 견제적 대치의 정도를 상실하고 있다.
양극화의 경계적 사고에서 정치적 이익을 우선하는 잘못된 현상의 침체는 회복하기 어렵다.
80여년 분단의 역사는 문화적 격리와 이분법적 학습으로 전이되는 군사적 대치의 진행형 이다.
국민감성을 부추기는 양극화 정치의 잘못된 정치공학으로 발생하는 적대적 인식의 골은 회복의 피해가 크다.
정치적 목적의 선동에서 합리성은 민심의 관성이 있으며 예초의 설정과 달리 대중적 욕구에 의해 합리화 된다.
특별한 현상이기는 하나 표현에서 대의 민주주의의 영역을 벗어난 직접 민주주의 형태로 발전할수 있다.
광화문의 전국시대에서 예초의 기대는 정권의 말로가 아니었는데 일이 그렇게 확대되었다고 하신분이 계신다.
계엄의 계획에서 여부가 있었으나 극단적 대치의 분열적 여지는 정치가 살펴야 하는 문제이다.
 
촛불의 요구에서 수용이라는 표현이 어려우나 탄핵의 절차적 경험과 철지난 정권의 말로는 비참한 것이었다.
진영정치에서 순진한 예속의 기대는 이유불문 하고 광화문의 교훈으로 사라진 생존적 저항의 배수진이 되었다.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 학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좋은 역사가 아니었다.
정치적 생존에서 이미 경험한 역사이다.
양극화의 생존에서 일방적 패권을 위한 극단적 시도의 반격적 대응은 철지난 권력의 처참함으로 정해진 수순이다.
정치는 국가관의 대의를 지향하는 분별력이 필요한 지식이다.
민주주의 체제는 수용성의 전제에서 합리적 결정체 이다.
주체와 참여의 관계는 최소한 내것과 늬것을 견주어 대의를 충족하는 절차적 합리성 이라는 것이다.
 
지식과 권력의 편협함에서 역사에 비일비재 한 최악의 결과를 피하기 위한 노력이다.
이념적 선택의 적대적 지배와 집착에서 전쟁과 일상이 파괴된 삶의 비극적 교훈이 있다.
절차의 합리성이 파괴된 삼권분립의 이질적 대립과 극단으로 치닫는 정치의 우려이다.
최소한 같이 죽자는 망국적 한의 돌격이다.
정치는 공동체의 동의가 전제되는 행위이다.
역사와 문화의 대의적 공유에서 일을 우선하여 감성적 대응은 배제되어야 한다.
진영논리는 이분법적 선택의 경계적 인습을 자극하여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승패적 한계의 설정이다.
글로벌 경제의 경쟁에서 정치와 사회의 불확실성은 투자와 교류의 조건적 불이익을 우려해야 한다.
21세기의 국제사회에서 정치는 내부문제에 국한되지 안는다.
 
진실이든 권모술수의 정치공학 이든 정치적 생존의 사활에 급급한 극단적 대치는 잘못된 현상이다.
정당내 민주화와 국회운영의 절차적 독선으로 극단적 시도의 이분법적 대응을 유발하고 있는 문제와 사관을
분탕질하여 앞뒤 없이 대응하는 정치적 수단의 우려이다.
정치가 민생이 아니라 역사의 갈등을 부추기는 극단적 설정의 저울추를 우선하고 있다.
불에는 불 이에는 이라는 파괴적 설정으로 민심을 저울질 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배력의 탐욕은 나살기 바쁜 내것 뿐의 정치이다.
정치의 목적에서 적대적 생존에 구속되어 미래를 예지하려는 노력이 전무하다.
국회의 의견수렴 절차를 지배하려는 무지한 탄핵정국의 시도가 부추긴 현상이다.
국수적 집단으로 전체를 지배하려는 극단적 시도는 21세기의 지적민심을 오판한 오류이다.
 
나와 국수적 패권을 우선하여 전체의 대의를 혼란에 빠트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결과를 예지하지 못한 정치적 공격의 퇴로는 없다.
정치와 사회에서 절차적 독선과 식민사관의 억지로 비화된 결과적 현상의 오류를 책임져야 한다.
무엇을 예지하려는 것인지 정치의 목적을 망각한 오지랖의 극성과 밥그릇의 우려이다.
국가의 정체성과 국민은 안중에도 없이 오로지 정치적 사활에 눈돌아 가시는 사대부 나쁜버릇 뿐이다.
대한민국은 정치인의 것이 아니다.
이미 적대적 설정의 비생산적 요인이 발생하고 있다.
진영논리와 분단의 학습으로 일상화 된 경계적 대응의 소모전에 몰두하는 정치적 오판의 현실이다.
정치 제대로 하시라는 것이다.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정치이다.
협치와 중용을 주장하는 국민의 저항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다.
현시국을 주도한 극단주의자들의 말로가 있을 것이다.
현해탄 건너 총리께서 머시기 광산의 등제를 거론하시며 식민사관의 회한을 부추기고 계시다.
양극화의 극단적 갈등에 편승하여 무엇을 기대하시는지 아리송 하다.
설마 백여년전 역사관으로 이웃의 일취월장을 부러워 하시는 것은 아니신지 유수의 세월이다.
한민족의 정체성을 갈라치려는 시도는 성공하지 못한다.
한국에 오시며는 사관의 이해타산이 아니라 한국민의 문화적 정서를 우선해야 한다.
현해탄의 미래는 정치와 정치인의 전유가 아니라 양국국민의 소통과 의지가 우선되어야 한다.
 
정치의 한계에서 21세기 글로벌 통신사회의 문화적 공유를 소홀하게 생각하지 마시라는 것이다.
역사는 민초의 삶이 우선하는 것이다.
백여년전 산업화의 국제적 격변에서 오천년 국가관의 문화와 삶을 괴롭힌 이질적 역사와 인륜의 제고는 미래를
위해 필요한 것이다.
역사를 빙자한 위정자들의 희노애락을 위해 이웃의 문화와 평화적 삶을 파괴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적 제고이다.
종의 분별에서 사람의 정체성은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이것이 유전자의 유별과 시간의 필연이다.
사람은 이름이 있다.
문명과 문화와 학문으로 유별하여 존중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지에서 지식으로 나의 정체성을 의심하며 스스로 존재를 찾아가는 생명체라서 그렇다.
종의 분별에서 사자는 사자일뿐 스스로 인식할수 있는 이름으로 존재할수 없다.
사물의 명칭는 인간의 문명적 유별과 지배를 위해 창조된 것이다.
사자는 인간이 사자라고 하는지도 왜 그런지 의미도 모른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목청것 사자를 불러도 코끼리를 불러도 오지 안는다.
국제질서의 존중에서 한반도의 오천년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은 유별한 것이다.
산업화의 격변에서 국제질서에 적응하는 시간으로 백여년전 혼란을 이해할수 있이나 특별한 역사의 희노애락이
전제된 사관의 주장은 아프리카에서 사자나 코끼리를 부르는 것과 같은 것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국제질서를 충족하는 사회와 경제적 역할에 모자람이 없다.
 
백여년전의 혼란이 아니라 오천년 국가관의 명분으로 이름값 하고 있다는 것이다.
양극화의 극단성을 조장하여 편승하려는 편한정치를 위해 현해탄의 회한을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민생을 살피는 목민관의 자세와 미래의 예지가 없는 치졸한 정치는 민심의 한계가 있을 것이다.
통신사회의 지적민심과 민생을 우선하는 중용의 선택을 간과하지 말라는 것이다.
2024.9.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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