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돈잔치. 본문
185 돈잔치.
내수가 안된다.
코로나 정국에서 경제 생산성의 한계는 있었을 것이나 우리나라에서 만 수백조의 돈이 풀렸다.
세계적 통계로 계산하면 어마어마한 돈이다.
이문제로 세계경제의 인플레이션 걱정이 많다.
일상과 씀씀이에서 물가는 운신의 한계를 걱정할 정도로 올랐다.
세계적 추세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국내의 내수문제는 특별하게 찾아보아야 하는 원인이 있을 것이다.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나 물질과 돈에서 대체수단의 비대칭적 확장을 생각할수 있다.
물질과 돈의 균형에서 확장된 자본이 물질에 반영된 결과라는 이해이다.
증가하는 자본의 관성적 차별에서 양극화의 확장적 가속이 심해지고 있는 문제이다.
자본논리에서 돈이 돈을 흡수하는 원리가 있다.
없는자의 형편은 생존을 위한 생필품 구입에 수입의 구획이 불안하다.
있는자의 형편은 경쟁적 자본 지배의 인습으로 치부의 만족을 추구한다.
시장경제의 현상적 당위성에서 부에 대한 끝없는 욕망이다.
고삐 풀린 자본경제의 무한경쟁에서 자본의 치부와 지배는 돈에 자석이 달려 돈을 흡수한다.
사회참여의 시작에서 특별하게 선택되지 안는 한 돈이 없으면 자본시류에 합류할수 없는 경제구조 이다.
새로운 생산성 발현에서 기회를 염탐하나 저울추의 균형은 한계가 있다.
경쟁에서 누구나의 보편성으로 충족할수 없는 역량의 선택적 조건은 특별한 영역으로 협소하다.
자본의 곳간적 지배와 새로운 선택의 협소에서 가난해 지고 있는 보편성 이다.
떠들다 돈의 욕망에 지쳐 나몰라라 심화되고 있는 빈부격차와 기회의 차별이다.
미래의 예지에서 시장경제와 자본문화의 절대적 인습에 휩쓸려 공유의 개념을 상실하고 있다.
인류의 역사에서 문화의 절대성 집착은 파괴적 현상에 이르러 미지의 진화를 체험하는 오류가 있다.
통신사회의 지적공유는 이러한 오류를 절대가치의 계몽을 통해 예지가 가능한 시대이다.
자본문화의 차별적 현실에서 미래를 예지하는 학문의 확실한 제시는 없다.
인류의 역사에서 자본경제의 끝이 무엇을 지향하는지 제시되고 있지 안다는 것이다.
삶과 진화의 이해에서 사물의 불균형한 불편함은 영원할수 없다.
바람에 이끌리는 현상적 지배의 관성이라 며는 미지의 불확실성에 대비할수 없다.
현실경제에서 있는자의 곳간에 쌓이는 돈은 제조업의 한계로 갈곳이 마땅치 안다.
결국 물질과 돈의 가상적 가치를 형성하여 한계 없는 투기의 경쟁으로 너도 나도 부의 우월적 지배를 시도한다.
우리나라에서 대표적 현상이 수도권 부동산 소유로 비교되는 삶의 성취와 관심이다.
도시화 문제에서 국가 인프라는 경쟁과 생존을 위해 몰려드는 수도권 확장으로 국토의 개념이 모호할 정도이다.
기회와 성취의 경쟁을 위해 몰려드는 젊은 인적자원 수용에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가 시장경제의 예속에서 공유의 개념으로 해결할수 없는 거주의 조건이다.
일태면 생필품 가격 안정에서 공유적 비축의 개념으로 민생의 균형을 유지할수 있다.
자본지배의 대중적 인습을 우선하는 기회의 정치에서 부동산 정책의 공유적 개념은 요원한 기대이다.
자유경제에서 시장의 공적개입은 체제의 반론을 고민해야 하는 국정의 딜레마가 있다.
공동체의 구성과 운영에서 공유적 개념이 필요 이상으로 제한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출산률 문제에서 자본시류의 성취적 조건으로 고민하는 의식주의 경쟁완화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와 경제 인프라의 수도권 집중화 문제에서 부동산 소유의 가학적 부담이다.
자본의 양극화와 수도권 특정지역에서 발생하는 부동산 투기의 경쟁으로 심화되고 있는 거주이전의 불편함 이다.
이로인한 가계부체 증가도 심상치 안은 수위에 도달하고 있다는 보도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부동산 수요의 차별적 인식에서 부의 양극화도 심화되고 있다.
자본문화의 기회에서 성취적 인습의 조건적 인프라와 돈 있는 곳에 돈이 몰리는 형평성의 부정적 현상이다.
민생과 거시경제에서 자본과 투자의 배반적 현실이다.
도시화 확장에서 문화적 지성은 불안한 미래를 예지하며 자본시류의 관성에 휩쓸리고 있다.
성취와 경쟁의 인습에서 자아적 관점의 상실이다.
산업사회의 진화에서 오히려 생존조건의 부담이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돈은 많은데 어디 있는지 알수가 없다.
요사이 쳐 묵으면 큰 것은 조 단위고 작아야 몇 십억 된다.
억 소리는 옛날이다.
의식주의 수요와 욕구에서 생존조건의 약점을 이용하는 투기의 돈 잔치는 있는자의 전유물이 되었다.
치솟는 부동산 가격과 물가에서 미래가 암담한 가난한 자의 씀씀이는 운신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어줍사리 챙기던 외식은 일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수도권의 주거를 위한 노력에서 그나마의 가능성도 희박해 지고 있다.
인연의 책임은 하늘의 뜻에 맡긴지 오래이다.
무능하다고 탓하기 전에 육신으로 할수있는 경쟁의 기회에서 참담한 현실이다.
무엇인가 잘못되고 있다는 체감에서 방법이 전무하다는 무력감에 짓눌리는 형국이다.
사는 것이 아슬아슬 할 때가 있다.
차별적 경제에서 물질과 돈의 불균형으로 발생하는 전반적 문제라는 인식이다.
개별적 소비의 한계에 있는 경제논리의 확장적 시각에서 소비는 전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경제의 양극화에서 특별한 계층의 소비는 비중의 한계가 있다.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산층 이하에서 소비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중산층 이하 계층에서 소비여력을 상실하고 있다.
경제적 한계에서 성취와 비교의 욕구를 위한 내집 마련의 희망은 발바닦 땀나는 소비의 구속이다.
몸뎅로 벌어먹고 사는 근근한 형편에서 육신으로 체감하는 가난의 불가항력적 현실이다.
낙수효과 그것 거짓말이다.
가진자의 호주머니에서 돈 나올수 있는 기대는 가뭄에 갈라지는 콩밭보다 못하다.
양적완화에서 푼돈으로 흔들다 자본으로 부자집 곳간에 자리 잡으면 요지부동 이다.
양적완화의 결론은 가난한자를 구별하여 가진자의 리그가 새로이 형성되는 돈의 경매장이 된다.
뒤주의 빈약함으로 기회를 상실한 가난한 자의 처지는 지붕으로 날아간 닭 쳐다보며 희망이 절멸된 생존에
부대끼고 있다.
이제는 가상의 가치를 만들어 돈의 지배를 가속하고 있다.
자본문화의 현실은 돈으로 돈의 가치를 저울질 하며 돈을 경매하는 경제가 되었다.
만족의 한계를 상실한 끝없는 치부의 경쟁이다.
가진것 이라고는 돈 밖에 없는 내지르는 넘이 선수이다.
근로소득 역시 차별의 희열적 만족에 있는듯 하다.
돈의 균형에서 수입구조와 대비되는 소비의 양극화가 내수부진의 원인이다.
자본문화와 경제논리의 근본에서 잘못된 관성의 딜레마라는 생각이다.
개별적 경쟁에서 선택된 돈의 치부적 디테일이 거시경제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것을 우선하는 수단과 방법에서 공유의 개념을 상실한 치열한 각자도생의 현상이다.
체제의 합리성과 제도의 생산성 공유에서 전체가 아니라 선택된 부분에 치우친 자본이다.
보편성 안주에서 포플리즘 공방에 있는 의식주의 책임은 공적문제에 이르고 있다.
경제의 양극화 문제이다.
불균형한 세상은 저항이 있기 마련이다.
인류의 역사가 그렇다.
문화적 분노는 법치로 어찌할수 없는 것이다.
시류에 휩쓸려 날뛰다 다친다.
세상은 불편함의 저항으로 변한다.
체제와 제도에서 규범의 논리로 차별적 치부와 기득권을 지키고 있으나 인내의 한계는 무한하지 안다.
공산주의는 시대의 차별적 현상으로 발현한 엄연한 학문이다.
역사는 교훈이다.
물질과 돈의 균형을 이념적 역사의 시각으로 대비할 이유는 없으나 생존의 문제이다.
자유는 절제라고 하였다.
민주주의의 원리에서 존재는 합리적 인내의 한계에서 파괴될수 있다.
절대성의 관성적 집착으로 파괴되는 역사와 문화의 교훈에서 절대가치의 분별력이 미래를 예지할수 있다.
보편성의 주체 민초의 일상을 우선하는 새로운 계몽주의 또는 수정주의의 필요이다.
의식주 부담에서 AI든 기계적 생산성 이든 새로운 기회와 생산성의 책임이 있다.
정치는 입신양명의 기회주의가 아니라 민생을 살피는 것이다.
자본문화의 치부적 경제에서 돈이 부자집 곳간에 들어가면 썩어 나가도 나오지 안는다.
표 산수에 집착하여 개별적 치부의 디테일에 정신줄 빼앗기지 마시고 거시경제에 집중하시라는 것이다.
정치는 민초의 삶을 우선하는 것이다.
가난한 자는 곳간의 여유가 없다.
각자도생의 사회와 극단적 집단이 준동하는 정치의 시국과 거시경제를 외면하는 치부경제의 불편함으로
이래저래 미래가 불투명 하다.
2024.8.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