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독립운동. 본문
183 독립운동.
아무리 훌륭한 사회개혁 이라 하여도 민심이 부족하면 성공하지 못한다.
민심의 부족이라 함은 실체의 설득에서 과정의 절차이다.
체제의 선택과 변화에서 지식의 자기중심적 독선으로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외세를 등에 업고 무리지어 주체를 강제하고 이견을 척살하는 독선적 만행으로 민심을 얻을수 없다.
체제의 이분법적 갈등에서 일부 극단주의자들의 지배력 획책은 구한말 혼란을 보는듯 하다.
주체를 상실한 당쟁의 혼란은 민생에서 민심의 지적동요를 막지 못한다.
체제의 주체는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국민이다.
오천년 역사와 체제안정에서 민심의 선택을 우선하라는 것이다.
식민사관은 지울수 없는 역사이다.
전전과 전후를 말씀하셨다.
글로벌 사회에서 미래의 생산성을 위한 관계적 생존의 우선순위 이다.
정도에서 식민사관에 집착하여 반대할 이유는 없다.
정도라 함은 역사의 굴절을 공유하는 상호주의 이다.
한반도 역사의 민족적 정체성과 국가관은 유구하고 영원하다.
외세의 역사는 미래를 위해 공유되는 것이지 우리의 정체성과 바꿀수 없다는 것이다.
21세기 글로벌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은 범상치 안은 위치에 있다.
우리것을 지키는 것으로 이웃과 미래를 공유할수 있다.
고조선에서 삼국시대 지나 고려와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이다.
지배력의 주체에서 국호는 바뀌어도 한반도 민족의 혼은 근본적으로 바꿀수 없다.
홍익인간정신과 미풍양속과 관혼상제와 멍석말이등 우리의 정서는 우리의 것이다.
우리의 역사와 문화이다.
지배력 또는 체제에서 시간의 학습은 이해할수 있으나 일체와 문화의 연속성을 공유하는 민족 또는 혈육에서
변화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세계사의 산업적, 문화적 격변에서 동학의 민심을 수용할수 없었던 패권적 국제질서와 식민사관의 이질적
법령과 예속에 저항하였던 오천년 민족혼의 국가관 이다.
민족의 시각에서 시대와 학습에 의한 주체의 변화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를 계승하여 발전시키기
위한 노력이다.
시대와 주체에 의한 건국은 형식의 변화 일 뿐 민족의 정체성은 역사와 문화의 연속성에 있다는 것이다.
분단의 현실에서 완전체라고 할수없으나 대한민국은 오천년 역사와 문화를 지키는 민족국가 이다.
재헌의회를 말씀하신다.
학문의 시각에서 단정과 단선을 반대하였던 4.3의 비극을 기억하셔야 한다.
해방과 하나의 민족국가 존속에서 좌우논리의 냉전적 국제질서에 파괴된 한반도 역사와 문화의 비극이다.
독립운동사에서 개인의 사사로움이나 좌우경계의 정치적 이해타산은 민족혼의 정신이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를 수용한 민족정서에서 좌우로 또는 사관으로 대립하는 이분법적 정치의 무지가 안타까운 것이다.
국제질서의 한계에 있는 한반도 통합에서 이국체제를 말씀하시나 문제의식은 어쩔수 없는 혈육의 운명이다.
통일의 과정과 절차에서 시대를 충족하는 또다른 정체성의 건국을 부정할수 없다.
식민사관의 역사에서 관계의 이해타산과 형식을 우선하는 건국일로 목숨걸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해방과 건국이 마치 오천년 역사를 부정하는 이질적 정서의 지배로 착시하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다.
한반도 민족의 독립정신은 인류역사의 굴절에서 외세에 빼앗긴 역사와 문화의 정체성과 국가관을 지키기 위한
뿌리의 저항이다.
태평양 대국의 독립전쟁은 기존국가의 정체성에서 분리된 신생국의 국가관 확립이다.
시민정신과 다민족 국가의 국가관에서 실용주의의 정체성은 서구문화의 태생적 연속성에 있다.
뿌리의 근본은 역사도 어쩔수 없다는 것이다.
빼앗긴 주권 회복을 위한 한민족의 독립운동은 오천년 역사와 문화의 뿌리에서 근본의 차이가 있다.
현해탄의 역사는 한반도 민족의 교훈이다.
남대문의 현판이 세워져 있는 이유이다.
인류역사에서 식민사관은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였다.
삶과 역사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역사의 극단적 변화에 불구하고 문화의 연속성으로 생존한다.
포탄이 떨어져도 아이는 태어난다.
강제된 국제질서와 익숙한 일상을 위협하는 이질적 법령의 시간에서 지식과 학문의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다.
식민시대의 역사를 공유했다고 한민족의 혼으로 남아있는 문화와 국가관은 사라질수 없다는 것이다.
독립정신은 민족적 자긍심의 정서이다.
정치적 이해타산의 사건이 아니라 한반도 민족이 지켜야 하는 국가관 이다.
지배력 획책에서 인륜과 문화적 예속 없이 땅에 국한된 욕심이라면 침략은 성립할수 없는 것이다.
역사의 주체는 생명과 문화이다.
좌우논리의 퇴색에서 울타리 사수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사관의 준동은 극단적 우려가 있다.
주체의 교훈으로 존재하는 학문과 국수적 지배의 획책은 다른 것이다.
정치적 욕구의 시대적 논리부제에서 사관을 확장하여 민심의 저울질을 시도하는 독선적 패권의 도전이다.
현상에 치우치는 학습의 예지에서 학문의 중심이 필요한 문제이다.
21세기 대한민국 위상에서 행여나 갑신정변의 변화는 무지한 지배력의 시대착오적 오만이 될것이다.
한일경기의 정서에서 전전의 앙금은 부정할수 없는 역사이며 민심의 현실이다.
불구하고 24년 한국민의 일본여행이 8백만 명으로 꽤나 가까운 이웃이 되었다고 한다.
일본의 외국 여행객 세명중 한명이 한국민 이라고 한다.
전후의 관계에 대해서 실용적 현실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얼 더 바라는지 현상이 아리송하다.
행여나 한일관계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정치공학의 무지라며는 결과의 예지에서 잘못된 선동이다.
식민사관의 해결에서 혈육의 생명과 민족의 문화는 예속되지 안는다.
새로운 이웃의 설정은 동격적 동의가 전제되는 것이다.
21세기는 통신사회 이다.
체제와 정치에서 민심의 동의없이 아무것도 할수없다.
사관으로 위장된 극단적 지배력 획책이라며는 가당치 안은 정변이 될것이다.
독립운동이 이분법적 정치의 경계에 있다는 사고방식도 잘못된 것이다.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는 한민족이 공유하는 유산이다.
모두가 지켜야 하는 정신이다.
독림운동사를 끈 떨어져 시대의 관성으로 소멸될 양극화의 울타리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독립정신은 오천년 역사와 문화의 국가관으로 분리되어 지켜져야 한다.
새로운 페러다임(질서) 요구에서 정치의 이분법적 대립은 변화가 필요한 구태한 현상이다.
매사 적대적 사고에서 중용의 실용주의 시대를 이해해야 한다.
2024.8.1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