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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대적 정치.

박세욱. 2024. 7. 7. 07:44

 
180 적대적 정치.

부족함의 은폐에서 철지난 좌우논리의 양극화에 기대는 극단적 경계의 불신정치 사주이며 선택의 분별력을

시험하는 음해이다.

탄핵의 꼬투리가 국가와 민족과 정의에서 옳고 그름의 선택인지 매우 불합리한 사법리스크의 미지이다.

점유적 욕구와 성취에서 기득권에 집착하는 이념적 집단주의 이다.

이짝이나 저짝이나 좌우논리의 경계적 집착에 머물러 있는 학습의 권태이다.

언제까지 이념과 진영논리의 획일적 사고를 주장해야 하는지 권세의 분별력이 과거의 행적에 머물러 있다.

극단적 집단주의는 냉전적 사고를 이용하는 진영논리의 무모한 권모술수이다.

대의의 전계나 설득없이 입신양명의 허울에서 일신을 위한 철지난 지식의 배반적 도용이다.

틈바구니 없는 시장경제의 성취적 경쟁에서 민생의 실효성 없는 이분법적 사고이다.

 

반쪽 울타리를 장악하면 민심의 반은 내것이라는 가당치 안은 산수이며 이기적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민심을

갈라치는 적대적 사고의 사주이다.

중용은 극단적 권세와 정치의 악다구니에 줄서는 분별력 없는 지성이 아니다.

민생에서 평화의 보편성은 더불어 사는 이웃과 가족의 인연이다.

산업사회의 조직적 또는 사회성 요구에서 대세적 정신지배는 있으나 대계의 삶은 보편적 현실에 안주한다.

모두가 인습의 환상에 만족할수 없다.

스타와 빌딩과 견장의 가치에서 대부분의 삶은 비교를 체념한 자아적 안주이다.

민초의 일상이다.

이념적 정치에서 자연에 예속되어 처마끝 아침햇살에 소 키우고 논밭갈아 인연에 지순한 일편단심은 없다.

 

시류에 휩쓸려 지할짓 다하다 자연과 인연에 충실한 민초의 삶에 끼어들어 밤이야 대추야 지멋데로 뺑뺑이

돌리며 떠들어 데는 낮바닦 두꺼운 승냥이들 오지랖이다.

민초의 삶은 정치가 보호해야 한다는 맥아리 없이 떠들어 데는 너 때문에 죄없는 인연의 미래가 암담하다.

지멋대로 지껄이는 유튜버에 정신줄을 빼앗겨 어먼디다 말뚝박는 정신나간 정치판 행색이다.

내것 아니면 존재를 부정하는 수레바퀴 논리의 원수이다.

매사가 강대강 대치로 최후를 염원한다.

한쪽이 죽어야 지긋지긋 한 양극화의 전쟁이 끝나는 것이다.

아무데도 쓸모없는 자가당착의 허세꾼들 빨리 돌아가 민생에 허덕이는 국민들 곡소리 없었으면 좋겠다.

눈뜨면 못잡아 잡숴 환장하는 양극화의 시정잡배이다.

 

멍멍이도 아니고 물고 늘어지는 곰배지의 작정이 금메달감이다.

한쪽에서는 모르면 조신함으로 낮바닦 관리나 할것이지 콩이야 팥이야 들쑤셔 될일도 안된다.

하시는 권세마다 오강단지 깨지면서 깨달음이 없다.

대낮에 속창시 뒤집어진 귀신이 환장하시다 곡할 노릇이다.

까마귀 날으니 배 떨어진다고 매사가 발악적 꼬투리의 일상이다.

늬가 죽어야 나의 속창시가 편하다는 것이다.

이겨봐야 별볼일 없는 불상한 중생이다.

이제나 저제나 어깨동무하기를 기다리는 백성들 한숨이 지진날 지경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고 까부는 분에게 부탁하신 가르침 너 자신을 알라하셨다.

 

수신제가 치국평천하이시다.

나도 모르고 적도 모르고 수신도 안되면 비교하지 마시고 체념의 자아적 안주가 필요한 것이다.

안되면 되게하라 하니까 누구라도 그렇게 되는줄 아신다.

귀신잡는 해병은 다르다.

생명으로 실수하지 안는다면 말이다.

허구헌날 쌈박질에 지겨워 조상님 보기 민망하니 작작들 하시라는 것이다.

속창시 빼놓고 연극해봐야 저작거리 민심은 택도없다.

이제는 문풍지 스치는 바람결의 냄세만 있어도 시정잡배 보다 못한 정치판 승냥이들 노략질 대번에 안다.

천군만마의 말발굽 소리에 혼비백산 하지 마시고 조신하게 속창시 관리하시라는 조언이다.

 

한반도 역사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정체성은 늬것이 아니다.

개딸의 악다구니와 옆구리 터지는 권세의 조신함에서 왠만하면 쪽박은 집구석 울타리를 넘지 말라는 부탁이다.

지멋에 겨워 까부는 너 죽는것 걱정하실 국민없다.

행여 동정일랑 바라지 마시고 즈려밟고 떠나시기 바란다.

환영인파는 아니어도 속창시 개운하게 배웅은 해드릴수 있다.

묻지마 관광버스 나만 타야 되냐고 끝까지 같이 죽자는 분 심정을 이해한다.

양짝다 타시고 거기서 죽든 까무라 치시든 원없이 끝장내시면 그나마 인정으로 복받을 것이다.

뒷일은 하시라도 걱정일랑 마시기 바란다.

됨됨이에서 초상집에 소금 뿌리는 정치판 아제들 보다 국민들께서 훨씬났다.

 

한많은 주뎅이 발통 달은게 오토바이가 따로없다.

매사 끄뎅이 잡고 죽기살기로 까질러 쌈박질에 여념이 없으니 미래가 암담하다는 것이다.

너 아니어도 쓸만한 불세출의 인재 많다.

공동체의 지식요구에서 물질문명과 산업사회는 인류의 염원 의식주 해결에 있다.

좌우논리는 완전한 생산과 분배의 효율성이다.

생존수단에서 부르주아는 분배의 왜곡으로 집단적 계층을 형성하려는 기득권의 차별적 시도이다.

전제주의와 귀족제도의 역사이다.

민주주의는 생존조건에서 생산과 분배의 합리성이며 다양성을 수용하는 지성적 삶의 공유이다.

공유와 공존에서 시장경제 역시 생산성 확장의 수단이며 가진자를 위한 일방적 체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특정세력이 주도하는 계급장 시대의 고초를 견디었다.

조직논리에 기대어 반론과 비판의 생산성을 파괴하는 극단주의의 행태에서 계급장 시대를 기억한다.

민주주의가 특정집단의 조직논리에 속수무책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한 수단과 방법에서 투쟁과 강단으로 포장된 극단적 집단주의 이다.

권세의 자기도취에서 울타리의 예속을 강요하는 허무맹랑한 지식의 망동이다.

치간에 깃발 꽂아도 우리편의 낮바닦 분칠에 노심초사하며 행여나의 민망함으로 화장지 준비하고 줄슨다.

주뎅이 쉴틈없이 허발라게 사대부를 성토하고 까발려도 정승집 멍멍이 밥그릇에 줄서는 견장이다.

정치적 신념부제에서 패권적 거수기로 전락하는 민주주의 정당의 이율배반적 행태이다.

적대적 정치를 우선하여 선택을 사주하는 진영논리의 사고이다.

 

사법리스크와 정권독주에서 강대강의 피아설정 이며 진실을 말할수 없는 현실정치의 불신이다.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물고 늘어지는 피아의 이판사판에서 진실은 패배의 지름길 이라는 부정적 사고이다.

나의 약점은 너의 약점으로 대응한다는 악과 악의 대치에서 정치판의 잘못된 생리이다.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지성적 가치와 상부상조의 인간적 기대에서 진실의 속창시 까발리면 정치판 생존 확률이

전무하다는 정신지배의 현상이다.

양극화의 승패적 사고에서 꼬랑지의 위아래 판단은 생사의 갈림길이 된다.

아까운 귀신잡는 생명 희생에서 정권차원의 고추가루 사수에 집착하여 정치적 식견의 절차적 하자가 있었으며

그렇다고 헌정질서를 파괴하는 탄핵의 정도는 아니라고 고해성사 하면 꼬랑지 각도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꼬랑지 내려가면 정권에 굶주린 승냥이들 떼거지로 몰려들어 피한방울 살점하나 남지 안는다.

 

이러니 절대생존의 사활적 사건은폐에 학습되어 사람의 도리는 개밥에 도토리 된다.

정치와 정권에 관련된 여타의 사건에서 진실의 접근이 어려운 적대적 정치의 현실이다.

죄없는 생명의 희생과 산자의 애절한 안타까움에서 인륜과 생명을 우선하는 인간성이 아니라 매사가 적대적

정치의 사활적 모자람 뿐이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

밑바닦 민주주의의 행태를 살펴보면 현실정치의 학습이 재현된다.

선과 악의 분별력에서 도적질의 단죄가 아니라 민생위에 군립하려는 약점(악)분배가 만연되어 있다.

민주적 절차를 지배하여 끼리끼리 해쳐먹는 조직논리의 기득권적 행태이다.

버젓한 음서제의 매관매직과 생산성 독점에서 특정세력의 부정적 공생이다.

 

바른말의 반론과 비판은 조직의 배반으로 낙인찍어 줄서기 문화의 쓴맛 변방의 고초를 격어야 한다.

적대적 정치에서 악의 대칭적 공생을 따라한다는 것이다.

피아의 경계를 고집하는 극단적 집단주의에서 학습의 전이는 위험하다.

오지랖 정치가 통제할수 없는 경계적 사고의 확장이다.

언론과 매체등 평론의 균형으로 설득할수 없는 민심의 강대강 대치이다.

나는 되고 너는 안된다는 지배적 대립에서 대응적 집단의 출현과 혼란이다.

권세의 자기중심적 오류와 개딸의 야욕과 공생하는 극단적 정치의 대립과 학습이다.

권세의 오만과 개딸의 야욕이 국가와 여성을 위한 정상적 행위라고 이해할수 없다.

통제할수 없는 민주적 절차 파괴와 혐오정치의 적대적 선택은 돌이킬수 없는 지경의 우려가 있다.

 

최후로 치닫는 파괴적 결과이다.

독선과 극단주의 현상에서 체제와 제도와 안보의 확인이 특별하게 필요할수 있다.

정치판 권모술수는 정황적 기우의 거짓과 선동으로 진실의 사실관계를 왜곡하려는 시도가 있다.

아니면 말고식 관심의 문제제기 이다.

악은 악을 키우고 선은 선을 전파한다.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우선하여 적대적 설정으로 대의를 파괴하는 결과의 예지가 필요하다.

민심 또는 대중의 심리는 관성을 가지고 있다.

현재의 학습으로 내제되는 진행의 결과이다.

쌀한톨이 호박이 될수있다.

 

나는 되고 너는 안된다는 적대적 생존에 지배되어 정치의 정체성을 망각하는 무지와 오만이다.

체제안정의 조건적 빌미에서 문제의 시작을 주목하는 불가피한 선별적 책임이 될것이다.

2024.7.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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