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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과 정의.

박세욱. 2024. 7. 3. 06:13

178 현상과 정의.

인간을 짐승몰이 하는 팔레스티나의 잔인함으로 문명과 지식을 주장할수 없다.

팔레스티나의 비극은 계시와 가르침의 학습적 한계에서 절망적 구원의 원한이다.

선지자의 계시(선)에서 존재(현상)의 주류를 주장하는 종교의 성지이다.

지적사회를 주장하는 누구도 책임지지 안는 인륜을 상실한 약육강식의 원시적 본성이다.

민주주의의 대세적 학습에서 비극의 현상을 방치하는 문명과 지식이다.

생명에서 무엇을 따르라는 것인지 지성의 정의는 없고 점유적 번민과 권세의 원시이다.

죽음으로 지배하는 민족차별이다.

탄생의 역사에서 피를 나눈 형제이며 일상을 공유하는 이웃이다.

역사의 분별력에서 경계적 원한과 복수의 학습이다

 

문명과 지성의 분별력에서 사랑과 자비와 용서를 상실한 악의 현상이다.

무엇을 위한 동서경계이고 패권경쟁 인지 인본주의를 망각한 민주주의와 문명의 허울이다.

역사로 포장되는 생명경시 이며 학살과 죽음의 학습으로 만연된 인륜의 처참함이다.

지배와 예속의 경계적 대립과 위정자의 거취에서 평화의 파괴이며 죄없는 자의 죽음이다.

21세기 글로벌 사회와 지식진화에서 문명적 지성이 요구하는 동격적 정의의 저항은 사라졌다.

죽음의 지배에서 나의 일이 아니면 인류공영은 없다.

뺏고 빼앗기는 역사의 학습에 지배당한 한계적 지식과 정신이다.

세계질서의 대세 민주주의가 주장하는 생명과 존재에서 무의식으로 방치되고 있는 비극이다.

패권적 지배의 집착과 차별적 의식으로 발생하는 극단적 경계의 파괴적 현상이다.

 

입에 침이 마르는 생명의 가르침에서 배반의 방관이다.

창조와 탄생을 망각한 경계적 또는 말살적 역사의 반복이다.

민족이 다르다고 대자연의 예속과 문명의 시대가 다르지 안다.

경쟁과 경계적 학습에서 전이된 우월적 관계와 힘에 의존하는 반문명적 사고의 피해이다.

역사의 희노애락을 공유하는 이웃의 관계라서 죽이고 죽는다.

점유적 또는 지배적(성취적) 문화의 정신지배에서 자아적 내면의 선은 희석되고 행색의 인습이 요구하는 악의

수단이 난무한다.

인간의 원시적 본성 점유적 욕구를 염려한 가르침의 우려에서 배반이다.

지식진화에서 선의 수용적 현상이 아니라 악의 침략적 지배이다.

 

선지자의 가르침과 계몽주의의 노력에도 불의의 준동은 탐욕의 관성을 추월하고 있다.

민주주의와 문화의 이해에서 절차와 제도의 규범적 질서를 파괴하는 극단적 (폭력적)집단주의이다.

평화와 인륜에서 죽음의 수단으로 지배하려는 정치적 경계의 비극이다.

지배와 예속에서 나와 우리편에 치우친 경계적 사고와 집단적 권세의 극단적 현상이다.

자연에 예속된 자아적 내면이 아니라 왜곡된 지식의 사주에 구속된 가르침의 상실이다.

스스로의 절대성에 구속된 가진자(이긴자)의 횡포이며 동격적 보편성의 파괴이다.

사물의 이해에서 개인이든 집단이든 스스로의 절대를 고집하는 고립된 정신의 구속이다.

21세기 인류의 문명과 문화적 요구에서 집단적 증오의 현상은 잘못된 것이다.

패권적 지배를 시도하는 극단적 사고의 준동이며 보편성이 파괴된 혼돈의 시간이다.

 

민주적 절차와 선택을 무력화 하려는 절차적 결과의 불복종과 탄핵의 학습적 병리현상이다.

민족적 생과 사의 명시에서 죽음이 전제된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는 반인륜적 지배이다.

침략적 근성에서 나와 우리편으로 비롯되어야 한다는 승패적 사고에 구속된 정치이다.

다양성의 합리성 충족에서 내것을 우선하는 공유와 공존의 의도적 배반이다.

존재에서 자아적 존중의 이해보다 경계적 관계의 우월성에 집착하는 차별적 성취의 시도이다.

나눌수 없는 경계적 학습의 정신지배에서 전이되는 이기적 사고이다.

행색의 현상적 가치에서 가시적 또는 물리적 증거에 지배된 선과 악의 가식적 분별력이다.

시대적 문화의 보편성 설득에서 지식의 한계에 있는 정치의 극단적 집단주의이다.

이데올로기의 이분법적 집단의식 소멸에서 또다른 정치적 집단의식을 획책하는 역사와 문화의 무지이다.

 

관련성의 현상에서 공익적 관점을 상실한 분야와 전문성의 각자도생이다.

문명과 지식진화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원시에서 유전적 시간의 충족이다.

과거에서 비롯되는 현재는 미래를 위한 과정적 학습의 시간이다.

문명적 문화의 시대에서 약육강식의 원시적 현상은 미지의 창조적 미래를 망각한 퇴행적 사고이다.

경계적 지배와 성취적 차별의 학습에서 기인하는 공격적 인습의 극단적 또는 집단적 현상이다.

공유와 공존을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시대적 현상 즉 파괴적 집단성 발현에 저항하는 것이다.

진화는 현상에 국한되지 안는 암시적 질서의 합리성이 내제되어 있다.

형이상학의 학습적 한계는 다음시대를 예지하는 데이터의 미지에서 시간의 충족에 있다.

사물적 관계와 정신적 관계는 병행하는 것이다.

 

암시적 질서에서 색깔없는 것은 존재하지 안는다는 사고는 사물적 절대성의 구속이며 미지의 무지이다.

생명이 선택한 물질적 사고이다.

생명의 원한은 물질의 소멸로 끝나지 안는다.

진화는 삶의 일상과 역사의 학습으로 내제되어 현상으로 표현된다.

지배력에서 생명의 존재와 정의의 소외는 시대적 문화의 보편성 일상(평화)과 관계없는 지배이다.

암시적 질서에서 예속적 경계에 의한 생명의 불신은 내제되어 반복된다.

만물의 변화에서 홍망성쇠의 역사는 유구하지 안으며 가진자 만이 나눌수 있다고 하였다.

저항적 시대는 불평등한 관계에서 역사로 잉태하는 것이며 덕 있는 자가 복을 받는다.

미래의 파괴적 현상은 현재를 초월할것이다.

 

현재의 악은 증폭되어 돌아온다는 것이다.

민족적 경계와 정치집단의 극단적 대립으로 전이되는 파괴적 학습의 우려이다.

전쟁으로 왜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하는지 위정자의 고집이라면 링에 올라가서 싸우든지 삼국지의 장수들 처럼

각개전투 하시든지 경계적 사고와 관계없는 민초의 평화가 안타까운 것이다.

생명은 같은 것이다.

역사에서 죄없이 죽은자의 기억이 참담하다.

국제사회의 역할에서 각자도생의 거취가 역력하다.

팔레스티나와 우크라이나 등 인륜과 민초의 비극에서 우월적 경계와 패권적 지배의 책임의식 결여이다.

극단적 집단의 발현은 좌우 수레바퀴 논리의 적대적 균형상실에서 저항적 지식진화와 시험의 결과이다.

 

문화와 정치의 시대적 주체를 상실한 과도기적 혼란이다.

보편성의 혼란에서 현상으로 발현되는 극단주의의 파괴적 패권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좋을 때 만 글로벌 사회의 주체이고 비극의 참담함에서 역사와 선진문명의 책임은 없다.

유엔의 결의는 물리적(가진자)현상에 머물러 있고 죄없이 죽은자의 원한은 증오의 인내에 있다.

이데올로기의 역사에서 지식의 이분법적 집단주의 시험은 정치에 이용되었다.

경계적 정치에 안주하는 조직논리의 진영정치이다.

평화로운 일상을 파괴하는 적대적 사고의 학습이며 선택의 강요이다.

자유의 지배이다.

이분법적 경계의 모호함에서 정치의 극단주의는 또다른 집단적 학습을 조장하는 선택의 강요이다.

 

거짓과 선동으로 진영논리의 경계적 심리를 자극하는 권모술수의 정치이다.

사회와 정치에서 저항적 지식진화의 문화적 욕구는 멈추지 안는다.

선택에서 극단적 집단의 획일성은 일시적 현상으로 시대의 정신적 주체가 될수없다.

극단적 점유의 학습으로 만연되는 집단의 혼란스런 경계에서 파괴적 생존에 직면하게 될것이다.

대자연의 순리는 인간이 지배할수 없다.

민주주의는 추종적 인물론에 의존하지 안는 의견수렴의 절차적 합리성이다.

나의 견해가 아니라 여러분의 의견을 존중하여 가장 합리적 결정을 하는 위치에 있다고 하였다.

민주적 의사결정에서 나의 책임은 체제와 선택된 정당의 정체성을 우선한다는 것이다.

선택에서 진실의 합리성을 충족하는 포괄적 판단의 필요이다.

 

불상한 중생은 어디에나 있는 것이다.

중용을 위한 사랑과 자비와 용서의 가르침은 변할수 없다.

세계가 주목하는 의견수렴 절차와 결과의 순리가 21세기의 민주주의이다.

2024.6.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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