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기계적 생산성. 본문
179 기계적 생산성의 미래.
기계적 생산성의 노동력 대체에서 생산과 분배에 의한 권력적 지배개념의 격변적 변화를 예지 할수있다.
점유와 성취의 지배적 주체 인류의 의식주는 기계적(AI) 생산성에 맏겨진다.
물질문명과 산업사회에서 의식주와 성취의 경쟁이 없는 평화의 시대가 인류가 염원하는 유토피아이다.
데이터와 기계적 생산성이 의식주를 완전하게 해결하는 시대이다.
기계적 생산성의 미래에서 노동생산성을 상실한 인류의 삶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생산에서 권력과 기득권의 지배구조는 공익적 관점으로 사라질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인본주의의 확장이다.
생산과 분배에서 권력의 의미가 희석되는 공유적 개념의 생존이다
과도기적 시간의 변화를 충족하는 인내는 필요할 것이나 어떠한 진화의 시간보다 빠른변화에 대비해야 한다.
자연과 자아로 회귀하는 새로운 자유의 사고에서 삶은 통신정보와 수송수단을 활용하는 개인적 또는 작은단위의
지역적 레트워크의 질서가 될수있다.
노동생산성을 상실한 인류의 미래이다.
데이터와 기계의 시대에서 어떠한 제도이든 분배의 실현으로 인류의 생존을 책임져야 한다.
이렇게 주장하면 절대분배를 앞세워 미래가 사회주의 체제라고 인식하는 좌파논리가 있다.
좌우논리와 전혀다른 가치관의 시대가 될것이다.
산업혁명의 역사는 물리적 가치의 시대이다.
데이터에 의한 기계적 생산성 시대는 시간과 자아에서 우주 또는 미지를 향한 가치가 될것이다.
인류의 선택에 따라 우주의 끝에 가는 새로운 지식의 시작이다.
변화의 대비는 산업사회가 대처할수 있는 시간적 과정이 있을 것이다.
극단적 사고의 권력에 세뇌되어 좌우논리로 뭉그작 거리는 궁뎅이는 택도없는 고집이다.
돈에 집착하는 자본의 관성적 근성은 질길 것이나 그나마도 생산성을 상실한 삶의 공유적 개념에서 파괴적
저항에 대비해야 할것이다.
21세기 초입 시장경제의 학습에서 자본의 치부는 무의미한 개념이 된다.
생산과 분배에서 데이터에 의한 공유경제의 물질관리가 새로운 삶과 공동체의 형태를 주도하게 될것이다.
현상적 조건에서 미지의 발현은 회피할수 없는 진화의 시간이다.
파괴되지 안는다면 지구에 존재하는 어떠한 개체든 막을수 없다.
요사이 게임 등 개인적 문화가 확장되고 있다.
우연은 안일 것이다.
점유와 성취에서 집요하고 힘들었던 경쟁의 이유가 사라진다는 것이다.
자본의 기계적 생산성 지배에서 노동력 상실의 생존적 저항을 쉽게 생각하는 오류가 있다.
한세대(백년)에서 데이터의 암시적 변화를 경험할수도 있다.
자본과 시장경제의 기득권 안주에서 치부의 집착은 죽는날 까지 한계적 수용의 내것이라면 가능할 것이다.
데이터와 기계적 생산성의 미지는 가까운 미래라는 것이다.
인류는 경쟁적 물질문명과 전혀다른 사고에서 시간과 자아를 충족하는 생물학적 미래의 또다른 생존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문제는 데이터에 의한 미지의 발현에서 인류의 지적오만과 자본의 패권경쟁에서 시대착오적 집착이다.
인공지능과 데이터 경쟁은 이미 국경으로 경계를 확장하고 있다.
과도한 경쟁과 개발에서 인류의 통제를 벗어나는 인공지능의 미운 일곱살이 걱정이다.
홀로 할수있다는 AI의 반란 또는 저항이다.
현재의 능력은 인류진화의 데이터에 의존하는 한계에서 인류의 지배에 있다.
우려되는 것은 AI의 예상치 못한 진화와 범 지구적 레트워크 구성에서 통제불능의 싯점이다.
글로벌 레트워크 구성에서 일부의 전원으로 전체의 씨스템을 공유하는 경우이다.
스스로 스위치를 작동하는 단계이다.
인간의 통제에서 벗어난 기계적 레트워크의 진화이다.
이미 가까운 범위에 있으며 인류는 이러한 단계를 예지하고 있다.
유엔 사무총장의 발언에서 핵무기 통제의 수동적 작동을 주문하였다.
AI 관련업체들도 인공지능의 공익적 관리를 주문하고 있다.
관련된 문제의 인식이다.
데이터의 자본화와 공유경제에서 인류의 생존을 위한 인공지능의 예지적 분별력의 필요이다.
자동차의 지능화에서 급발진 현상과 전자정보 통제의 불확실성이 있다.
확률적 이기는 하나 현상의 조건에 의한 미지의 암시적 발현을 의심할수 있다.
인류의 지식과 문명으로 알수없는 미지적 현상이다.
요사이 집세기와 고무신은 대세가 아니다.
파괴적 위험에서 사실에 입각한 명확한 진실이 필요하다
좌우논리로 궁뎅이 뭉그작 거리는 과거보다 미래에 발현될수 있는 미지에 대비해야 한다.
선택에 따라 유토피아와 아마겟돈이 따로 없다는 것이다.
자본과 권력의 기득권은 사건의 진실을 왜곡하여 대중적 판단의 지배를 획책한다.
사회와 경제에서 산업과 기업의 이익을 우선하는 경향이 있다.
미지의 불확실한 발현은 준비하지 안으면 대비할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서 진영논리의 패권주의에 정신줄 빼앗긴 적대적 지식의 무지가 있다.
AI에 의한 미지의 발현에서 수세기를 학습한 형이상학의 증거적 또는 점유적 행위의 상실은 필연이다.
물질적 지식과 산업문명은 의식주의 생존이 아니라 점유적 욕구의 정신적 성취에서 차별적 만족을 추구한다.
산업사회의 사회성에서 타의에 구속된 성취적 경쟁의 경계적 삶이다.
데이터에 의한 기계적 생산성의 시대에서 찾아볼수 없는 현재이다.
광야한 들판의 생태계는 경계가 없다.
물질과 생태계의 순수에서 본능적 생존에 집중한다.
물질의 생태적 공유이며 대체적으로 생존 이외의 탐욕은 없다.
인간이 만든 산업문명의 울타리가 자유로운 광야의 생존을 방해한다.
생명이 선택한 물질적 생태계의 약육강식은 꼭 그래야만 했는지 의문이다.
모아라는 새의 멸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태계의 평화는 무엇인지 생각해 볼수있다.
살기위해 죽이지 안는 생태계의 상상이다.
선택의 결과라고 하지만 생존과 물질에서 약육강식 만이 현상의 절대는 아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생명이 선택한 물질의 균형은 유지되었을 것이다.
붉은피와 단백질과 비타민이 아니라도 생명의 물질선택은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공유에서 힘에 의한 차별적 생존의 문제이다.
만약 약육강식의 진화가 없었다면 모아의 평화는 사라지지 안았을 것이다.
무엇이 삶이고 평화냐는 것이다.
굳이 불교의 가르침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생명과 물질에서 파괴적 설정은 절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생명의 물질선택에서 문명적 점유의 현상은 폭력적 또는 지배적 관점으로 존재하고 있다.
약육강식의 점유적 욕구와 물질공유의 평화에서 모아와 네안데르탈인의 소멸로 비교되는 진화의 역사이다.
물론 뒤돌릴수 없는 생태적 선택이나 문명과 지식진화에서 약육강식의 현상에 대한 이해는 필요하다.
경계와 타의의 위험이 없는 광야한 대지에서 살수있는 평화의 그리움이다.
문명과 지식에서 대자연의 삶을 이해하는 생산성의 공유이다.
미개척 원시에서 어둠으로 격리된 자연의 두려움이 아니라 가로등으로 밝힌 현대의 문명에서 생존의 두려움
없는 광야적 삶의 여행은 없냐는 것이다.
경쟁과 차별의 사회성으로 자연의 예속과 광야적 자유를 구속하는 문명을 파괴하고 싶은 카진스키의 자아적
그리움과 저항이다.
물질공유와 의식주를 해결하는 기계적 생산성의 완전한 생존에서 인류는 미지와 광야에 있을 것이다.
인류와 기계적 생산성이 공존한다는 전제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데이터의 지능에서 거짓과 이기적 학습의 전조가 있다고 한다.
AI의 진화에서 인류의 파괴적 지배와 내것을 위한 거짓과 선동의 권모술수를 볼수 있을것 같다.
인간은 표현과 암시적 질서의 교감이 있으나 기계의 속은 알수가 없다.
때려 부술수 밖에 없다.
그것도 인간의 지배에 있을때 가능한 일이다.
상상밖 미지의 발현은 어둠처럼 두려운 것이다.
인간이 AI를 생산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AI 스스로 인류가 입력한 데이터 보다 우수한 지능의 로봇을
생산하는 시대가 올것이다.
인류의 존재가 아닌 테이터와 레트워크로 지구에 존재하는 물질과 생산시설을 통제할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가고 있다.
결론적으로 데이터는 인류의 생존영역에서 공유되어야 한다.
2024.7.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