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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박세욱. 2024. 5. 22. 21:55

173 체제.

5.18 정신은 민주공화국의 헌법수호를 위한 저항이다.

헌정질서 파괴에 저항하였던 사건의 헌법수록을 주장하며 민주주의의 절차적 합리성을 부정하고 있다.

민주주의의 선택을 배신하는 이율배반적 행태이다.

나로부터 라는 독선이다.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쉽게 사고하는 가당치 안은 대장(정치)놀이 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돌 빼내더니 민주당의 정체성과 계보의 실종이다.

악다구니 한다고 생태적 질서의 천지개벽은 없다.

문화는 시간의 순리로 변화한다.

생태계의 이분법적 질서는 대자연의 합리적 결론이다.

 

국제사회에서 개딸의 인민재판과 극단적 정치의 동행을 이념적 시대의 남로당으로 비교하고 있다.

다양성의 이해와 선택에서 의견수렴의 절차왜곡과 강요는 민주주의와 헌법의 부정이다.

국민을 빙자한 전체주의의 자기중심적 고집이다.

국회의장 선출의 절차왜곡은 체제와 삼권분립의 위기이다.

다수당 국회의장 후보 경선에서 절차를 충족한 결론을 부정하고 있다.

낙선한 우리편을 후보로 결정하라고 강요하는 낮바닦 볼것없는 비민주적 오지랖이다.

민주정당의 의견수렴 강요와 정치적 의지 탄압은 특정집단의 독선이다.

대장놀이에서 공천학살은 지워지지 안는 합리적 절차의 왜곡이다.

깃발에 줄서는 하향식 공천의 악다구니와 억지춘향의 관성이 체제의 간섭으로 오염되었다.

 

진보정당에서 벌어지는 집단주의의 다양성 왜곡은 의회주의와 합리적 절차의 부정이다.

나와 우리편 아니면 안된다는 절대주의의 망동이다.

개딸과 동행하는 극단적 집단의 독선이 안하무인이다.

총선에서 국민의 참여는 민주주의와 의회주의의 성립이다.

의회는 민심을 대변하는 의결권 위임이다.

당양성의 합리적 거취이다.

국정운영에서 민주정당의 절차왜곡은 역사를 망각한 좌파적 논리의 독선이다.

국회는 헌법으로 위임된 의결권 즉 민주적 절차를 총족해야 한다.

삼권분립에서 국회의장은 당원이 아니라 국민을 우선해야 한다.

 

철없는 팬덤의 의회절차 개입은 소수집단의 민주주의 왜곡이며 헌정질서 파괴이다.

민주공화국의 배신이다.

상대당 출신 대통령에게 국민이 중심이라고 침이 마르더니 우리당 출신 국회의장은 우리편 이어야 한다고

어처구니 없는 낮바닦 드밀고 있다.

대한민국 국회는 정당에 예속된 기관이 아니다.

민주주의와 헌법에서 국회구성 절차와 의회주의 부정은 무지의 독선이며 체제의 배신이다.

나와 우리 이외에는 모든것을 부정하는 집단주의이다.

하늘 무서운줄 모르는 전체주의의 철없는 망동이다.

드밀고 악다구니로 세상사 나몰라라 하는 것이다.

 

악다구니 뒤에서 계산서 챙기는 염통에 털난 정치판 승냥이들의 음모가 가관이다.

문화적 해결이 필요한 사회의 구조적 문제에 편승하는 좌파논리의 정치개입이다.

잘못된 팬덤에 기대는 모진 세상사 내 마음데로 안된다.

민주주의와 헌법가치를 왜곡하는 개딸의 인민재판식 정치개입은 반쪽과 지성의 반격이 있을 것이다.

21세기에 철지난 이념과 좌우논리로 이분법적 경계에 안주하시는 분들에게 한말씀 드린다.

해방후 외세와 신탁통치의 혼란에서 분단의 경계와 비극적 역사가 있다.

한라산 봉화와 양민학살은 이념에 얶메인 정치와 인륜에서 근본의 문제가 다르다.

4.3의 본질은 영원할수 없는 좌우논리와 이분법적 정치의 체제대립으로 희생된 양민학살이다.

이념의 절대주의에 집착하여 민족의 시각을 우선하지 못한 비극이다.

 

민주주의 이든 공산주의 이든 자신들의 진영을 고집한 역사이다.

과정에서 민족과 이웃과 인륜을 망각한 양민학살은 이념적 절대성에 집착한 학습의 한계이다.

체제와 분단의 적대적 갈등에서 비롯된 오천년 역사와 민족과 인륜의 비극이다.

민족분단에서 남로당의 절대주의에 대응한 우월적 진영논리의 패륜이다.

역사와 문화의 동행에서 나와 우리 이외의 타의를 부정하며 내것을 고집하는 집단주의가 원인이다.

시간과 학습의 한계에서 이념적 문화의 절대성 집착이다.

한반도 역사의 주체에서 민족의 경계를 고집하는 누구라도 죄인이다.

인류의 삶과 일상에서 존재하지 안아도 되는 시간의 비극이다.

문명과 지성의 시대 21세기에 팔레스티나에서 벌어지는 참극이다.

 

우리에게는 체제가 이니라 경우의 문화가 있다.

경우의 문화는 좌우 진영논리가 아니라도 진화의 시간을 충족할수 있다.

지식과 지능은 동격적 평화를 추구한다.

존재를 망각한 차별적 현상의 집착이 내것을 우선한다.

선의 무지이다.

양민학살과 체제(정치)대립은 다른문제 이다.

개딸의 망동은 민주당의 정체성과 계보의 정신이 아니다.

늬당 내당의 구획정리가 우찌되었든 총선에 참여한 국민의 의지는 의회주의이다.

늬것 내것 하다 민주주의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 이다.

좌파논리의 비약 공산주의의 실패는 의식주와 분배에서 국제사회의 생존경쟁을 충족하는 생산성 빈곤이다.

21세기의 문화와 정치의 대세는 대자연의 합리적 결론을 학습하는 민주주의 이다.

대한민국의 체제는 민주주의의 합리적 절차를 충족해야 한다.

극단적 집단의 저돌적 무지를 우선하여 시대적 대세와 민심을 배신할수 없다.

패권적 정치판에 기대어 신의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생태적 질서의 혁명적 기대는 문화적 학습의 시간과

유전적 한계가 있다

동의에서 좌파와 동행하는 순리가 파괴된 배반적 의지는 목적달성에서 대부분 연장으로 사라질 것이다.

좌우논리의 관성적 집착은 해방 후 체제 선택에서 지식과 시간의 무지이다.

 

21세기 통신사회에서 이념과 좌우논리는 철지난 지식이다.

공유와 공존에서 좌우와 진영논리의 정치판 계산법은 씨알 안맥히는 지식과 문화와 시대이다.

22대 총선은 좌파적 독선과 개딸의 민주주의 왜곡이 아니라 정권 심판론이다.

한반도 미래와 문화의 이해에서 시간과 과정을 의식하지 못하는 이념적 절대성 집착이다.

지식의 현상과 상상에서 변하지 안는것은 없다.

한반도 정세에서 철지난 동서 진영논리에 정신줄 빼앗겨 민심과 민생을 소홀히 한 결과이다.

자가당착에 빠진 우월적 집단의 정치적 또는 대중적 이해의 한계이다

통신사회의 지식과 지성에서 민심을 도외시한 사대부적 권세의 자기도취 이다.

국민의 지성을 소홀히 하는 철없는 권력과 정치의 횡포이다.

 

지난총선에서 극단주의를 배제하는 혁신과 중용의 의지가 있었다.

극단주의자들은 소수에 불과하다.

집단의 무모한 집착으로 정치의 정의를 왜곡하는 것은 역사의 퇴행이다.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극단적 권력이 아니라 공동체의 문화와 구성의 존중으로 해결되어야 한다.

양극화의 병패에서 정치의 퇴행은 수많은 희생과 미래의 무지이다.

자기중심적 고집이 아니라 미래 지향적 상호존중에서 역할과 실력과 기여의 합리성이 필요하다.

경우의 문화는 공유와 존중이다.

요사이 성과 세대간 갈등이 위험수위 이다.

일시적 현상을 기대하는 무지한 표계산의 갈라치기 이다.

 

생태적 질서의 사회개혁은 정치의 지배와 혁명적 사고로 목적을 달성할수 없다.

극단적 집단의 민주적 절차 왜곡은 대의와 시류의 정도가 아니다.

현상에 의지하는 염통에 털난분들 정치적 성취에 동행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합리적 절차를 부정하는 것은 체제의 배신이다.

2024.5.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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