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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저항.

박세욱. 2024. 5. 5. 08:04

171 선의 저항.
선의 본질과 생존적 수단에서 공기와 호흡은 비교할수 없다.
공기는 존재하는 것이고 호흡은 생존하는 것이다.
대자연은 절대로 존재하는 것이고 생명과 육신은 예속되어 생존하는 것이다.
존재의 절대에 예속된 생존수단의 차원적 이해가 필요하다.
역사와 문화와 문명은 신의 영역에서 현상에 의존하는 생존적 수단이다.
지동설 이전 지구와 인간은 우주의 중심이었다.
현상적 학습의 한계에서 미지와 존재의 이해가 부족한 우월적 사고이다.
대자연의 질서 즉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지배적 욕막이 작동하는 진화와 지식의 자만이다.
신의 발현에 예속되어 가르침을 전달하는 인간의 동격적 욕구이다.

존재의 절대에서 선택된 생존의 수단이 문명과 문화이다.
대자연의 질서 즉 신의 영역에서 인간의 욕구가 존재의 본질을 망각하고 학습의 수단에 자만하고 있다.
또다시 인간의 우주 중심론이다.
문명과 문화에서 호흡을 우선하여 공기의 존재를 망각하는 것이다.
아기의 탄생과 지식의 학습에서 아니오의 부정적 표현을 우선한다고 하였다.
잘못된 이해이다.
생태적 질서에서 생명의 탄생은 선이다.

잉태와 탄생의 순수에서 생명은 대자연의 합리적 절차를 충족하는 질서이다.
선은 생명과 육신으로 증명되는 현상적 실체이며 아기의 표현은 선의 본능적 방어이다.

존재의 본질을 망각하고 생존의 저항적 수단을 우선하는 학문적 오류가 있다.
선과 신의 영역은 일상으로 의식할수 없는 공기와 같은 것이다.
대자연의 절대적 존재와 생존은 조물주와 피조물의 차이가 있다.
문명은 생존수단이다.
미지의 이해에서 산업문명과 문화는 선택이며 절대일수 없다.
카진스키의 반문명론에서 존재의 본질을 망각하는 산업사회의 예속을 우려하고 있다.
대자연을 의식하지 못하는 산업문명의 지배와 구속이다.
산업사회의 사회적 예속에서 경쟁과 차별을 정당화 하려는 지식의 오만이 있다.
선의 공유와 의식에서 산업문명의 현상적 학습에 집착하는 사고이다.

문명은 대자연에 예속된 생존수단이며 사과의 운명적 선택이다.
산업사회는 차별적 경쟁에 저항하는 부정적 사고를 악마화 하는 경향이 있다.
가르침의 이해에서 생명으로 잉태하여 탄생한 아이가 선이며 학습의 부정은 선을 우선하는 생존적 수단이다.
탄생에서 문명적 학습이 결여된 본능적 표현은 선의 합리적 절차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현대의 문화는 선과 악을 이분법적 경계로 설정하고 있다.
대체로 자연현상과 비교하여 광명과 어둠의 극단적 설정이다.

선과 악의 이분법적 설정에서 신에 대칭하는 악마는 세상의 모든지식을 습득해야 존재할수 있다.
모르고 행하는 것은 무지이다.
무지는 악이 될수없다.

없는데 증오할수 없다는 것이다.
죄와 벌의 규범에서 동기의 중요성이다.
지식으로 증오하는 것이다.
폭풍의 언덕에서 차별과 배신의 증오는 지식의 악마화 이다.
아기의 표현은 선의 본능이며 클리프의 증오는 문명의 인습에서 저항적 조건의 성립이다.

대자연의 질서는 정도의 수용성이 있다.
대부분의 증오와 악은 조건의 부정으로 소멸된다.

문명과 산업사회의 차별적 부정은 저항의 기회마저 없다.
악마는 신에 견줄수 있는 지식의 소유로 선을 분별할수 있는 조건적 현상이다.

악으로 선을 지배하려 한다는 설정에서 이분법적 극단성의 제고가 필요하다.
악은 선을 지키는 역설적 수단이며 극단적 실현은 말종적 현상이다.
글리프의 처절한 증오는 죽음에서 사랑의 자아로 돌아왔다.
선으로 탄생한 인간이라는 것이다.
정신진화의 지성에서 악은 선을 지키는 소멸적 저항의 수단이다.
대자연의 질서 즉 신(선)의 영역에서 악은 선을 지배할수 없다.
절대에 예속된 수단일 뿐이다.
신의 영역 선은 사랑과 자비와 용서가 있다.
악마의 설정은 증오와 복수의 극단적 파괴와 소멸이다.

선과 악의 문화에서 신과 악마의 차이이다.
산업사회의 지배에서 인류의 본질적 존재가 무었인지 지나치게 현상에 집착하는 것이다.
요사이 주류에 저항하는 집단주의와 각자도생의 이유를 살펴보아야 한다.
문명의 산업화에서 비교우위의 계층적 사회성을 강요하는 구속이 있다.
자본과 시장경제의 차별적 경쟁이다.
유전자의 동격적 진화에서 상대적 욕구불만의 도피이다.
사회질서와 관계의 부정적 증가에서 선을 지키려는 경계(악)의 확장이다.
정치와 분야별 집단주의와 사회성의 부담에서 개인주의의 확장이다.
합리성이 결여된 부정적 현상이다.
 
의료의 문제에서 우리사회의 집단주의는 상당하게 진행되고 있다.
국가의 생산성과 산업사회의 경쟁적 이전투구에서 분배의 이기적 집단주의 이다.
생존에 집착하여 존재의 생태적 질서를 망각하는 것이다.
공기의 공유를 의식하지 못하는 호흡의 경쟁이다.
대자연의 질서를 의식하지 못하는 산업과 지식의 각자도생이다.
아기의 학습적 부정에서 선의 본능으로 수용할수 없는 문명적 인습이다.
선의 본질을 의식하지 못하는 경쟁과 차별의 사회성 강요와 현상의 합리화이다.
아기의 학습에서 부정이 강할수록 선과 문화의 괴리가 크다고 생각할수 있다.
자아와 종교적 관점에서 지나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아프리카 정글에서 원숭이와 생존하다 열살넘어 발견된 소년 이야기가 있다.
인간으로 태어났으나 인류의 관성적 또는 유전적 학습을 상실하였다.
문명의 학습을 시도하였으나 극단적 실패였다.
생명의 순환에서 문명과 문화는 학습으로 전달하여 유지된다.
아기의 긍정과 부정은 선의 본능에서 현상에 반응하는 것으로 이해할수 있다는 것이다.
아기는 학습으로 선과 악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본질로 인습의 현상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물론 아기의 학습은 선과 악이 혼재된 주변의 환경으로 강재 될것이다.
유전적 인연의 미련과 성취적 인습에서 우월적 관계의 집착이다.
산업문명의 시대적 현상과 시각으로 선의 본질 생명의 잉태와 탄생을 분별하는 오류가 있다.
 
존재의 절대를 망각한 생존과 수단의 현상적 집착이다.
실학에서 물질과 정신의 균형은 필요한 것이다.
2024.5.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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