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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림.

박세욱. 2024. 5. 14. 22:22

172 재림.

인류의 시간(역사)은 거시적 사건과 문명적 생존에서 역사와 디테일(일상)의 원인적 문제가 있다.
역사의 굴절은 왜라는 원인의 진실에서 이해의 확장이 필요하다.
신이라는 절대존재와 생존에서 창조의 본질과 수단의 역사이다.
형이상학은 신의 가설적 존재에서 생명과 생존수단의 실체적 접근의 증거적 관점이다.
물질의 작용과 가시적 현상으로 미지를 이해할수 있다는 지식의 자만이다.
생존의 문제 의식주 해결에서 산업사회와 과학은 미지의 발현이다.
지동설 이후 과학의 새로운 이해가 미지의 상상을 축소하였다.
현대의 물질문명은 자아 즉 신의 시간에서 현상을 우선하는 가시적 증거의 시간이다.
형이상학은 인류진화의 동격적 습성에서 가르침의 증거적 집착이다.


동격은 생명의 공유이며 평화의 욕구이다.
혼자 죽으라면 안죽는다.
사자에게 죽음의 동행적 욕구가 있다.
전장과 학살에서 죽음의 공유는 생명의 가치를 상실한다.
동행적 욕구가 동격의 요구이다.
진화에서 물질의 공유는 사회성 이며 공익적 관점이다.
협력의 원천이다.
현재의 시간은 과학과 산업문명의 시대이다.
인류의 유전적 자만이 있다.

미지의 상상에서 학습의 한계적 오만이다.
존재의 절대에서 학습은 유전적 시간의 한계가 있다.
신의 영역에 이르는 구원자의 시간(가르침)은 유전적 시간(앞선문명)을 의심할수 있다.
유인원에 문명을 학습할수 없는 유전적 유별이다.
인류의 진화와 역사의 생물학적 이해이다.
대자연의 질서를 지배할수 없는 인류지식의 시간적 한계이다.
현상으로 학습되는 현재의 창(상상의 한계)에서 다음창의 변화를 예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피조물은 창조할수 없다는 것이다.
현상의 학습적 변화(진화)에서 미지가 발현된다.

창조가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다.
우주의 태초에 물질은 현재의 가시적 상태가 아니였다.
빅뱅이론에서 현재의 과학 즉 물질은 인간이 찾고자 하는 원초로 존재하였다.
인류가 찾고자 하는 물질과 과학과 이미 존재하였다는 것이다.
몇해전에도 컴퓨터는 인간의 명령을 수행한다고 하였다.
기계적(데이터) 지식의 한계였다.
알파고와 인간의 바둑대결에서 생물학적 지식과 지능의 완패였다.
데이터의 합성은 지능화 되었다.
예견하지 못한 미지의 학습적 발현이다.

요사이 문명의 대세는 AI 즉 데이터의 지식이다.
연금술의 시도에서 과학의 발전과 유사하다.
연금술과 데이터의 시도에서 하나의 조건이 성립되지 안아도 미지는 열리지 안는다.

미래의 에너지 핵융합은 핵폭팔의 파괴적 학습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학습의 과정은 시간의 충족으로 진화한다.
과학의 발현으로 신의 영역을 기대하는 오류가 형이상학이다.
대자연의 존재와 생존(문명)에서 차원의 무지이다.
다음창이 무었인지 현재의 현상으로 불가한 상상이라는 것이다.
생명은 대자연의 조건적(합리적)충족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이 일반적 학설이다.

문명은 대자연에 예속된 것이다.
문명은 신을 동격화 하는 창조가 아니라 대자연에 예속된 인류의 선택이다.
물론 미지를 향한 생존에서 의식주를 해결하는 물질의 이해는 별개이다.

생명의 물리적 현상에서 물질은 생존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진화와 문명의 역사는 현재의 시간을 충족한다.
역사와 학습은 보편성의 확장으로 진화한다.
과학과 형이상학은 시간 즉 진화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물질문명은 형이상학의 학습에서 발현된 시간이다.
불교의 탑돌이에서 형상화의 의식변화이다.

하늘의 계시에서 과학의 물질적 또는 증거적 욕구이다.
운명적 선택(사과)과 유전적 관점에서 학습의 관성이다.
사과의 선택 이전에 생명과 물질의 관계를 상상해 볼수있다.

생명에서 어느싯점에 사과를 선택하였는지 궁금하다.
태초에 물질의 합리적 조건과 생명의 현상적 발현이 있었다.
물질의 충족에서 생명의 물리적 또는 가시적 발현이다.
물질이 충족하였던 생명의 태초 육신이 소멸하는 죽음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물질 탐욕의 싯점이다.
가르침은 실체적 학습이다.

물질문명과 증거적 집착으로 망각하고 있는 신의 존재와 가르침의 이유에서 실체적 이해가 필요하다.
신의 영역과 구원자의 실체와 인류의 역사와 진화이다.
물질문명과 형이상학의 증거적 의심으로 망각되는 존재의 본질에서 구원자의 재림이다.
선의 구현에서 창의 변화가 필요한 가르침이다.
대자연의 예속에서 합리적 질서의 파괴이다.
문명시대에 물질의 증거를 우선하는 차별과 경쟁의 관계적 불신이다.
생산과 분배에서 생존조건의 비교와 성취적 우위의 인습이다.
자본과 시장경제에서 의식주의 생존을 외면하는 돈의 물질 지배이다.
생명에서 물질은 공유되어야 한다.
 
존재의 의식에서 비우면 체워진다.
미지는 무한한 것이다.
현재의 문명이 존재의 절대가 아니라는 것이다.
문명은 인류의 생존수단이다.
의료분쟁에서 분야별 불신과 소통부재이다.
분야와 전문성 관리와 보호에서 상호보완적 협력이 아니라 각자도생의 부정적 관계의 만연이다.
예시하면 21세기의 필수 자동차 관리에서 믿고 맏기는 긍정의 부정이다.
사회구성에서 의료부분과 경중의 차이는 있으나 유형은 같다.
나는 개인택시 사업주이다.

자동차 관리에서 수리의 공정한 관계는 불합리한 상황이다.
전체인지 모르나 지역의 일반 정비업소에서 개인택시 수리를 거부하고 있다.
협회와 관련있는 복지 정비소의 수리비 책정과 부속의 질적 차이에서 오는 사회질서와 관계의 부정이다.
일반 정비업소와 복지 정비소의 수리비 차액에서 관계의 부정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수리후 비교하여 일반정비 업소를 비난한다는 뒷말의 이유이다.
그렇다고 특정 자동차 회사의 써비스 지점에서 당회사의 차량수리를 거부하는 것은 경영이 아니다.
개인택시 사업주 대다수는 정비와 관련하여 부정적 관계의 영문을 모른다.
왜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말하는 것이다.

집단주의 이다.

답답하여 특정금액을 제시하고 수리할수 있었다.
스티어링 기어의 부품값은 12만원 정도라고 한다.
네배이상의 금액을 제시하고 전문성을 구할수 있었다.
나의 자동차 등록증의 차령은 2020년식 이다.
정비소나 부품가계에 가면 19년식 이라고 한다.
경쟁과 차별에서 부정의 만연이다.
이러한 현상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하는 부정적 경쟁의 신봉이 더큰 문제이다.
죽을넘 죽고 살넘만 살아야 한다면 그냥 죽을넘 없다.
결국 돈의 지배에서 공익성이 사라진 각자도생 이다.

재림은 거시적 역사가 아니라 대자연의 합리성이 파괴되는 삶의 현상에서 발현될것이다.
물질과 돈의 균형에서 실체없는 무분별한 자본의 지배이다.
물질과 의식주를 위한 생산성이 아니라 자본으로 돈을 지배하는 문명의 오류이다.
생명이 아니라 돈으로 물질을 지배하는 문명이다.
재림은 선의 저항이다.
선과 문명(형이상학)에서 
재림의 혼란은 역사의 거시적 사건이 아니라 개별적 생존의 각자도생이 촉매이다.
집단주의와 개별적 생존에서 
존재의 합리성이 파괴되는 것이다.
구원자의 가르침은 문명의 상상을 벗어나지 안는 실체이다.
문명과 유인원의 학습(길들이기)에서 유전적 시간을 뛰어 넘을수 없다.

인류의 현재는 파괴와 비극으로 귀결되는 현상적 문화의 절대성에 집착하는 시간에 있다.
지식과 지능의 진화는 절대가치의 예지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시간을 요구하는 대자연의 암시적 질서는 자아적 내면이다.
절대성의 관성적 집착에서 절대가치의 예지력이 필요한 시간이다.
재림은 역사가 아니라 내안의 존재에 있다.
2024.5.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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