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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여 떠난다.

박세욱. 2024. 3. 23. 04:50

160 구하여 떠난다.
좌우논리의 극단성에 편승하는 잘못된 팬덤의 독선이 생떼와 어거지로 정신을 지배하려 한다.

민주적 절차의 의견수렴과 토론에서 일방적 의식을 강요하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오로지 쥔장의 용비어천가와 유교문화의 관성적 피해의식이다.

민주주의와 절차적 합리성을 무시하는 얼토당토 안은 사람들이 김대중 정신을 도용하고 있다.

절대성을 강요하는 집단주의의 가당치 안은 설정과 자기중심적 인물론이다.

양극화의 경계에 갈등하는 공영방송의 공정성에서 누가 내것의 주입식 주장인지 알수가 없다.

정권순환과 언론의 자유에서 쓸만한 방송 아작내 귀떼기 이사했드니 다른쪽 귀신이었다.

떵 뭍은 머시기가 남 탓 만 하는 색깔론의 확성기가 지겹다.

양극화의 경계에서 우리편에 편승하여 먹고사는 가난한 분들이 문제이다.

 

통신사회의 지성은 합리성이 결여된 나팔수와 확성기에 동의할수 없다.

경계의 승패에 집착하는 편협한 정치에 줄서는 극단주의와 같이할수 없다.

말씀드렸듯이 피 한방울 섞을 생각이 없다.

극단주의자들을 혐오한다.

피의 저항으로 이룩한 민주화의 주체 민주당의 계보와 정체성을 강탈하려는 집단주의이다.

합리성이 결여된 독선적 인격에서 가당치 안은 민주당 계보의 끼어들기 이다.

사법 리스크의 처신에서 국민적 의혹에 당당하지 못한 어림없는 인격과 준비없는 대권이다.

단식의 가식를 표현하는 지팡이의 진실에서 좌우의 경계와 군부독제에 저항한 민주주의 역사가 다르다.

분단의 비극에서 민족의 동질성을 걱정하였던 집착이 다르다.

 

민주주의와 진영논리에서 합리적 사고의 동진정책이 다르다.

검사와의 대화는 기득권적 시각과 진영논리의 파괴였다.

역사와 정치적 시각에서 택도없는 비교이다.

안방 내어주고 보따리 싸는 합리적 진보의 오지랖이 안타깝다.

까질러져 보수로 보따리 싸드만 진보의 정체성에 구속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외로운 늑대의 처지이다.

본방사수의 연민에서 문자폭탄과 위임권 구속을 악이라고 반론하니 따지지 말고 울타리의 맹종을 강요한다.

국수적 주장에 예속되지 안는 논리적 저항에 꼴사나운 악다구니로 말꼬리 잡는 시정잡배의 망동이다.

민심의 평가가 두려운 정치판 경계에서 나로 비롯되어야 하는 복수와 증오의 권세이다.

정당의 동행적 위치에서 의견수렴의 합리성을 지배하고 반론을 악마화 하는 증오적 사고이다.

 

21세기의 문명과 문화에서 선과 악을 동격으로 이해할수 없다.

악은 언제나 부분으로 준동한다.

민주당의 정체성과 계보와 역사에서 극단적 집단주의자들이 획책하는 악의 시험이다.

오로지 부뚜막 문화의 편견과 좌우 진영논리의 경계적 시각이다.

이것 하지 말자는 것이 정치개혁 이며 중용의 정치이다.

중용의 주장은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받는 다양성을 구하자는 것이다.

역사의 굴절은 자갈길 지나 거치른 강물로 흐른다.

합리적 진보는 다양성을 공유하고 충족하는 민주적 절차의 이해와 확장이다.

수박이라고 비하하고 나가라고 떠들다 지겨워 나간다고 하니 역적이라고 한다.

 

평생의 대부분을 의지한 민주당의 시간과 삶에서 본방사수의 울분과 연민이 왜 없겠는가?

외로운 늑대를 선택하는 보따리의 굴절에서 수십년 인연의 연민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김대중 정신과 민주당의 합리적 정체성이 연민이다.

양극화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하는 방송의 객관적 관점이 아쉽다.

대한민국에서 지사와 총리를 지내신 분이다.

일족을 이루는 인격의 평가에서 취재인지 평론인지 방송의 역할이 지나치게 가볍고 소홀하다.

방송인이 국수적 논리에 집착하는 정치인 흉내를 내고 있다.

공영방송에서 타의와 관련된 인격적 언행을 양극화의 정치적 식견으로 평가하며는 안된다.

일과 능력에서 상대를 존중하지 못하는 사고가 복수와 증오의 정치이다.

 

팩트가 전제된 방송의 전달의무에서 우리편에 집착하여 무엇을 강요하려 하고 있다.

방송의 자세와 역할이 아니다.

사물의 이해에서 순리가 급하면 속창시 챙기기 어렵다.

과거 진보와 민주당을 지적사고의 집단이라고 하였다.

논리부재의 집단주의와 재명이네 마을이 무엇으로 김대중 정신을 내것이라고 하는지 상식이 없다.

권세의 깃발에 줄서서 맹종하는 무지의 극단주의와 밥그릇이 정치의 악이다.

집단의 편협한 주체를 의식하는 증오적 독선이 진보의 정신과 민주당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이다.

민주적 절차의 이해에서 도대체 속창시의 논리가 없다.

민주정당의 역사와 정체성 사수에서 정치적 신념과 능력의 기대치 없이 권세의 깃발에 들러리나 서라는 것이다.

 

나로 비롯되어야 하는 가당치 안은 권세와 고집에 줄서서 연장이나 되라는 것이다.

존경과 믿음에서 가진것 없이 우리편의 악다구니로 정신을 지배하고 예속하려는 작태이다.

사사로운 권세에 집착하여 일부로 전체를 호도하는 집단의 독선으로 민주정당의 주체를 장악하려는 것이다.

불체포 특권에서 맛들인 침대정치의 동정론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도둑질 하려는 것이다.

국가와 미래에서 정치적 상식으로 이해할수 없는 무모한 집착이다.

미래와 정신에서 실패의 교훈없는 알수없는 깃발의 권태이다.

도대체 토론과 논리와 절차의 씨알이 안맥히는 우리편의 강요이다.

논리없이 대빵의 발길질에 꼴대 옴기는 절대권세의 맹종이다.

실패한 권세의 증오적 집착과 신념부재의 공천에 발목잡힌 민주화 세대의 무지한 충성이다.

 

대의와 미래는 없고 오로지 우리편의 획일성에 집착하는 편협함 뿐이다.

정당내 민주주의는 개밥에 도토리 되었다.

피와 젊음으로 저항한 민주화의 주체 민주정당의 현실이다.

민주당의 역사는 극단주의자들 것이 아니다.

극단주의는 민족과 이웃에서 이념적 좌우논리를 우선한 4.3의 가해자와 분단과 군사대치를 이용하여 안보장사

하신 군사문화의 우빨적 집단주의이다.

양극화의 승패적 경계를 빙자하여 쥔장의 용비어천가로 민주적 절차와 인격을 무시하는 개딸정치의 패륜이다.

민심의 요구를 관철하는 정치개혁과 검찰개혁등 민주적 절차를 충족하는 일의 대의는 극단주의가 될수없다.

우월적 이지 안은 우월적 집단 검찰공화국과 개혁적 이지 안은 집단 개딸정치의 병적현상이 극단주의이다.

 

사법리스크 문제에서 떡본김에 제사 지내는 칼바람의 정치적 산수는 계파정치의 배반적 무지이다.

불체포 특권에서 쥔장의 거취에 맹종하지 안은 위임권과 의견수렴의 신분을 선별하고 차별하는 횡포이다.

우리편을 경계하는 칼바람이 특정집단을 우선하는 정치적 목적의 기획이라면 민주정당의 폐악이다.

정당내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정치적 이탈과 특정집단의 미심적은 기획에서 무엇을 위한 작태인지 아리송하다.

이탈의 조짐과 결과에서 정치적 득실의 주체가 합리적 진보의 정체성과 다르다는 것이다.

잘못된 팬덤의 울타리에 줄서는 신념부재의 맹종적 또는 말종적 정치를 때려 치워야 한다.

정당내 패권을 획책하는 집단주의는 정치의 악이다.

계파정치의 독선과 개딸들의 망동은 반듯시 바꾸어야 하는 비민주적 형태의 정치이다.

민주화의 역사는 다양성과 합리성을 충족하는 중용의 선택지가 필요하다.

 

문화의 시대적 공유에서 통신사회를 이해해야 한다.

정치적 성취에서 매사가 가시적 현상과 기우적 믿음으로 이루어지지 안는다.

치열한 좌우논리를 빙자하여 나의 일신과 집단의 밥그릇에 집착하는 더민주는 정치개혁 의지가 없다.

더민주의 비민주적 지배와 강요에서 섣부른 정치적 산수의 부작용이 만만하지 안을 것이다.

수박의 비하와 보따리의 선택에서 시방부터 이유없는 시시비비는 우리편의 맹종을 강요하는 정치적 선동이다.

고육지책의 선택에서 간섭은 강요와 지배이다.

역사와 정치를 공부하며 대부분의 시간에 중용을 주장하였다.

이념과 진영논리의 시각이 인륜과 역사의 진실이 아니라는 이해이다.

냉전의 분단에서 파생된 양극화의 승패적 대립은 절대권력의 정치로 고착화 되었다.

 

매사가 늬것 내것 아니면 우리편과 늬네편이다.

수레바퀴의 협력적 논리에서 상대를 악마화 하는 정치의 극단주의이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정권의 순환은 절대권력과 울타리의 승패에 얶메인 복수와 증오의 퇴행적 역사가 되었다.

다양성에서 중용의 주장은 양극화의 패권적 고착화로 정치개혁 의지를 상실하고 있다.

말씀은 민생과 민심이나 행위와 의식은 진영논리의 승패적 국민감정에 기대는 편한 거취이다.

정치를 이분법적 경계에 안주하는 가문의 성취로 이해하면 안된다.

민주화의 역사에서 민초가 요구하였던 민주주의 다양성과 자유를 의식하라는 것이다.

정치개혁의 필요는 대결적 인습에 구속된 불편하고 권태로운 관성적 집착의 정치이다.

울타리의 권세로 개혁의지를 지배할수 있다는 가당치 안은 무리적 습성이다.

 

사대부의 사랑방 정치를 이용하여 끝없이 개혁을 방해하고 있다.

좌우논리와 집단주의의 비생산적 현상에서 스스로 해결할수 있는 수단과 방법도 상실하였다.

개항이 어려웠던 세도정치의 단면을 보고있다.

가관인 것은 좌우논리에 기대어 덩달아 춤추는 나팔수의 철딱서니와 무지이다.

정치개혁은 낮바닦과 뒤퉁수의 앞뒤가 다른 정치판의 배반적 현상에 저항하는 것이다.

무소불위 절대권력에 눈돌아가 상호주의를 망각하는 울타리 정치를 개혁하는 것이다.

조직과 권세가 아니라 분야별 역할에서 능력과 일에 기여하는 생산성을 우선해야 한다.

충고와 수용의 분별력이 필요한 정치가 진영논리에 구속된 우리편의 이기적 구태에 있다.

정치개혁의 필요에서 수없이 주장하고 요구하였으나 제도권은 강건너 불구경하였다.

 

검찰공화국과 개딸정치에서 피의 희생으로 저항하며 민주화를 외치던 불나방의 기억이 필요하다.

21세기의 통신사회는 새로운 질서를 요구하는 시대이다.

통신을 통한 지식과 정보의 공유는 사물의 이해에서 진실의 접근이 가능한 시대이다.

이미 통신을 통한 무한의 의견수렴으로 새로운 선택이 이루어지고 있다.

좌우의 경계를 빙자하여 나로 비롯되어야 하는 무지한 권세의 집착에서 늬것이 전부가 아니다.

공천권으로 대권을 거머쥐려는 비상식적 행태이다.

정치판의 문제는 매사 우리편 늬네편으로 갈라치는 경계적 사고이다.

개딸정치에 저항하는 보따리의 선택에서 민주화의 역사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지정학적 경계의 무모함과 문화적 질서를 법치의 시각으로 바꾸려는 시도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2024.1.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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