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망천. 본문
165 망천.
민주당 정신차려라!
우째서 재명이네 사람들이 하라는 데로 굿판 벌이는지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께 부끄럽지 안는가?
정치적 신념은 개밥에 도토리 되었고 알량한 권세에 줄서서 밥그릇 챙기기 바쁜 낮바닦 뿐이다.
행여 극성스런 집단 주의자들의 공천개입 이라면 합리적 진보 민주당의 정체성은 무너졌다.
당내 여론은 불과 30% 참여에서 70% 이상의 지지라고 떠들고 있다.
당원 전체로 산수하면 20%정도로 당권이 발생하는 것이다.
민주적 절차를 충족하는 당내 여론수렴 공정성을 위해서 당원 과반의 성립이 필요하다.
22대 후보경선에서 민주주의 의견수렴 절차를 충족하는 불가역적 참여의 필요이다.
일부의 독선적 극단성을 배제하는 합리적 진보의 정체성을 사수해야 한다는것이다.
서울 성동갑 은평을 강북을 광주 서구갑에서 문제없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출신지역이 아니더라도 입법활동과 다선에서 단수공천과 비교하여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경선은 이해할수 있으나 심사의 불이익에서 집단주의의 차별적 의심이다.
민주화의 선봉이라고 떠들어도 울타리의 권세로 싹수 잘라놓는 인물난에 허덕이는 아랫역의 실상이다.
더민주 대선후보 경선에서 대변인 신분으로 출신지역을 폄하한 동서 진영논리의 작태가 엇그제이다.
견제와 균형에서 몇석이든 우리끼리 하면 된다고 정당정치의 역사를 부정한 사람이 있다.
내것과 입신양명을 우선하는 잔머리의 오만으로 민주당의 정체성과 시대를 왜곡하려는 철딱서니이다.
입바른 소리로 느그들 끼리하지 왜 합리적 진보와 개혁과 민주주의 위한 피와 희생을 이용해 묵냐는 것이다.
민주화의 역사에서 우유부단한 깃발의 맹종과 민주당의 정체성에서 무엇을 위한 선택인지 정신차려야 한다.
정치적 선택에서 봉사도 상대의 정성에 따라 다른것이다.
젊음과 피의 희생으로 이룩한 민주주의에서 주체의 시간을 망각한 과도한 권세의 독선이다.
계란과 불나방 세대의 제도권 진입과 일부의 기득권 합류에서 민주화의 시대정신이 훼손되고 있다.
독선의 시대에서 피의 희생으로 처절하였던 민초의 정신과 민주화의 역사는 유구하고 무한하다.
자유를 위한 저항의 역사가 양극화의 울타리에 얶메여 사사로운 정치적 탐욕에 이용되고 있다.
민주화의 성지가 집단주의의 국수적 난동에 연장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정체성과 현실정치의 위치에서 두분 전임 대통령으로 기억되는 계보의 존재를 상실하고 있다.
호남선의 역사가 진보진영에서 무엇하나 제데로 할수있는 것이 없다.
패권적 집단주의의 거수기로 전락한 것이다.
민주화의 성지에서 눈씻고 찾아보아도 뿌리를 자처할수 있는 인재가 없다.
민주당의 치열한 역사에서 주체와 지역정서의 싹수를 잘라놓는 사사로운 권세의 횡포이다.
일신과 가문과 울타리의 사당화에 역사와 운명을 기대하는 합리적 진보의 정체성이 안타까운 것이다.
민주당의 정체성은 민주주의와 민족과 국가이다.
민주화의 역사이다.
합리적 진보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뒤돌아보기 바란다.
성동의 갈등에서 새천된 당사자의 의지가 없었다는 문제의 발언이 절차의 배반적 실상이다.
낮바닦 치장으로 설래발이 치던 종로의 근거를 상실하고 불출마 결심에서 자신도 모르게 지역에 점지되었다는
전달에 아연실색이다.
민주주의 절차에서 민심을 대변하는 위임권의 거취를 국수적 집단이 자의적으로 결정하는 문제이다.
지역주민의 의지와 선택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이것이 민주적 절차냐는 것이다.
민주주의 합리성은 까라면 까라는 군사문화의 잔재가 아니다.
사당화의 목적으로 안하무인 처럼 민주주의 체제와 절차의 합리성을 뭉개고 있다.
정치판에서 외로운 늑대의 고난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다.
납치와 수감과 법정의 사형선고에서 의지와 용서로 역사를 창조한 것이다.
대한민국 정치판에서 주류와 변방은 시련도 아니다.
하잔은 시류에 얶메여 대의를 논할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는 증오를 해소하는 것이다.
대의와 일신의 사사로움에서 무엇이 대한민국의 미래에 옳은 것이냐 하는 분별력의 문제이다.
현상에 집착하는 현실주의의 산수는 하늘 무서운줄 알아야 한다.
양극화 해소에서 합리적 정치지형과 중도는 극단주의자에게 표를 주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특별하여 선거의 공정성을 훼손하는 진보정당 공관위 소속 후보의 비민주적 횡포와 마포나루이다.
개혁은 정치판이 아니라 민심의 선택으로 이루어 진다.
3월 7일 민주정당에서 우려하던 공천학살이 집단주의의 무지한 독재에 의해 자행되었다.
피갑철의 가면을 뒤집어 쓴 울타리의 독선으로 국민의 뜻을 도용하고 왜곡하고 있다.
낮바닦 우수운 말의 잔치가 권세의 억지춘향에 집착하는 속창시의 전부이다.
한쪽에서는 민주화의 역사를 부정하고 한쪽에서는 독재에 저항하던 정신의 지배를 시도하고 있다.
국운의 미래에서 대단한것 가진것 처럼 개혁이고 혁신을 외쳐대는 작자들의 독선이 난무한다.
화살은 촉이 아니라 대의 형틀과 꼬리가 목표물의 명중을 위해 균형을 유지한다.
촉의 피에 집착하는 집단주의의 독선은 균형을 상실하게 될것이다.
깡패정치와 자유 민주주의의 가면으로 민족을 외면하고 독재를 일삼은 학살자의 기념관을 대한민국의 간판
광화문 옆에 짓는다는 무지한 우리편의 편견이다.
이짝이나 저짝이나 국가와 민족과 민주주의는 없고 우리편의 가당치 안은 자가당착 뿐이다.
이웃과 민족과 인륜을 망각한 역사의 이해에서 하잔은 것도 없는 정치인의 입바른 소리로 천지창조의 조화를
왜곡하지 말라는 것이다.
학살자의 역사를 기념하고 싶으면 한반도 역사와 대한민국이 공유하는 광화문이 아니라 당신네 울타리 안에
지으라는 것이다.
동의하는 사람끼리 공유하여야 다툼없이 아름다운 것이다.
이웃에 더러운 것을 강요해서는 안되는 것이 유구한 오천년 역사의 미풍양속이다.
자기중심적 지식과 인격의 한계에서 내것의 독선으로 민주주의와 정치의 격을 떨어뜨리지 말라는 것이다.
가당치 안은 권세의 낮바닦으로 국민의 분별력을 소홀히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개혁과 혁신의 자기중심적 가면으로 민주화를 이룩한 민주정당의 정체성을 훼손하지 말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정치와 정치인의 입지를 위한 양극화의 허울 진보와 보수의 승패적 경계가 아니라 오천년 역사와
문화를 공유하는 백성의 것이다.
어처구니 없는 무지의 공천학살에 배아지 뒤틀려 초가삼간 불지르고 싶은 해장이다.
무지한 극단주의자들과 통합할 생각이 없다.
정치인들의 입지를 우선하는 획일적 좌우논리에서 견제와 균형을 위한 중도의 역할이 미래이다.
독불장군으로 행세하다 비극적 현상에 오리발로 일관하는 권위적 무지와 투쟁적 사고에 집착하다 솥투껑 보고
놀라 호들갑 떠는 시각으로 정치하면 세상 잘못된다.
한반도 역사에서 실학의 주체는 민생과 민족 자결권이 근본이다.
냉전의 사고에서 중용이 지정학적 희생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선거든 정권평가의 요구는 있는 것이다.
평가는 국수적 논리의 획일적 사고와 선동이 아니라 문화와 통신정보 공유에서 국민의 의지로 이루어 져야한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선택은 화살 촉과 같은 국수주의의 주장이 아니라 존재를 합리화 하는 균형적 다수의 결의이다.
통신소통의 시대에 양극화의 승패를 우선하는 국수적 논리의 주장은 냉전과 지정학적 경계에 구속된 좌우논리의
관성이다.
한반도 분단의 비극은 좌우가 아니라 민족문제이다.
좌우논리를 빙자한 양극화와 집단주의의 공천학살로 민주정당 더민주에서 중도는 사라졌다.
중용의 실헌 일꾼들이 알량한 혁신위와 개딸들에게 학살당했다.
민심의 선택은 독선적 공천제도에 의해 합리성을 상실하였다.
추행의 구설에 있는 봉이 유치원 삼법의 용을 개혁하고 혁신한다는 말씀은 낮바닦 어불성설 이다.
나와 집단의 권세를 위한 무찌르자 민주주의이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정치판이다.
2024.3.1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