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29명의 장수. 본문
138 29명의 장수.
참호에서 뛰쳐나와 민주당을 구한 29표이다.
정당운영의 독선에서 정치생명에 연연하지 안은 민주당의 역사와 정체성 사수이다.
대권의 신뢰에서 야당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계파정치의 울타리에 일신을 의지할수 없는 문제이다.
당당한 대응의 주장이다.
사정정치의 국정운영 왜곡과 이를 빌미로 계파정치의 패권을 시도하려는 우려이다.
대표의 사법적 문제를 빌미로 결속을 강요하는 특정세력의 사유화 시도이다.
당내 민주주의의 파괴이다.
민심의 정치가 아니라 계파 또는 팬덤에 의한 영합적 집단의 불신이다.
정당내 패권주의 이다.
검찰공화국의 역사에서 통신사회와 국민의 판단에 맏겨질 법적절차 문제이다.
정치에서 시대적 문화를 수용하는 신뢰가 필요하다.
불신적 사정의 결과에 연연하여 국민의 판단을 신뢰하지 못하는 정치는 있을수 없다.
정치적 현상은 민주적 절차를 충족하는 민심의 판단에 따라야 한다.
사정의 정치개입 역시 민심의 판단을 피할수 없다.
불체포 특권 의견수렴에서 위임된 의지의 구속은 민주정당의 정체성과 민심을 소홀히 하는 것이다.
양극화의 승패적 경계를 이용하는 집단주의이다.
옳고 그름 보다 우리편과 일신을 우선하는 줄서기 문화이다.
대권의 정당성에서 나의 무고는 민주적 절차에 따라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민주당의 합리적 정체성이다.
계파적 진영논리가 아니라 국가와 진보와 민주당의 대의를 우선하라는 것이다.
권력과 유착된 검찰공화국에서 민주당의 계보는 납치와 사형선고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이루웠다.
민주주의 국가를 위한 재판정의 최후진술에서 일신의 안정은 신의 뜻이었다.
신념에 의한 당당한 의지는 4.19와 5.18의 저항으로 문민정부를 이끌었다.
권력과 결탁한 사정과 사법의 정치화에 정신과 육신으로 부디치며 일신에 연연하지 안았다.
진보정당의 역사와 정체성이다.
더민주의 불체포 특권 가결 후기는 울타리에 줄서서 미적거리던 줏대없는 한량들께서 반상회 하는 것이다.
진보정치의 대의에서 민주당의 현실적 미래를 예지해 보아야 한다.
국가와 진보와 더민주가 아니라 나와 우리편 이라면 대권은 어불성설이다.
잘못된 것은 잘못된 것이다.
민주당의 미래와 추종적 인물론의 팬덤에서 무었이 정치의 대의인가 하는 문제이다.
군사문화의 최후는 군대의 사조직 하나회 척결이었다.
정당의 정체성에서 계파의 사조직은 혁신되어야 한다.
조직에 줄서서 논리없이 시끄러운 자들은 가진것이 부족한 내것의 허세이다.
위치에 따라 입장이 바뀌거나 말에 침바르는 소갈머리 없는 지식으로 정치하면 안된다.
더민주의 문제는 일부 정직하지 못한 분들이 조직으로 논리를 지배하려는 문제이다.
사대부 사랑방에 줄서서 정치생명을 연명하는 주류적 기득권의 한계이다.
단물의 기회주의이다.
스스로 권세의 절대성에 갇힌 신념부재의 은폐이다.
밥그릇에 눈돌아가 공천권 흔들며 자신들 아니면 안된다는 내것의 고집이다.
울타리 정치의 기득권을 우선하는 씨스템 공천의 허울이다.
좌우논리의 정치에서 주요정당 지지율은 30% 언저리이다.
절대다수의 성립에서 턱없이 부족하다.
여기에서 정당내 기득권의 공천권 횡포이다.
민주정당의 정체성이 울타리에 줄서는 눈도장의 허울이라면 정치개혁은 음모이다.
용비어천가의 낮바닦 정치이다.
깃발에 줄서서 비판을 수용하지 못하는 토론부재의 기회주의이다.
정당에 소속되지 안은 민심과 중도의 선택을 무시하는 것이다.
중도의 시각을 포함하는 합리적 절차가 필요하다.
지역 유권자가 참여하는 국민경선이다.
양극화의 승패와 계파의 패권에 집착하는 정당내 기득권이 아니라 지역 유권자의 선택이 우선되어야 한다.
양극화 정치에서 30%의 절대평가는 보장된다.
공천에서 최소한 민주당의 정체성은 민심이 이해하는 범위를 형성한다.
중도의 선택은 유보적이다.
지역을 대표하는 위임에서 포괄적 선택의 신뢰는 민심을 구할수 있다.
집단주의와 추종적 인물론의 팬덤으로 시대적 주류의 형성은 어렵다.
정당이 추구하는 논리와 의지의 규합으로 주체을 구성해야 한다.
당내 민주주의에서 공천권의 지배가 아니라 지역 유권자의 위임이 작용하는 지도부의 역량이다.
당내 집단주의가 아니라 민심의 올바른 선택으로 주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민주당의 역사와 계보의 정체성과 계파의 이익을 영합하는 선택에서 선당후사이다.
양극화의 승패적 정치에서 극단적 강성론이 정당을 대표하고 민심을 대변한다고 할수없다.
국가와 민주당의 합리적 대의를 위해 법적의혹에서 당당하라는 요구는 잘못된 것이 없다.
합리적 진보의 미래가 대표의 사법 리스크에 목숨줄 부지할수 없는 것이다.
실패한 대권의 집착에서 잘못된 팬덤을 앞세운 독선적 지배이다.
정의와 공정 또는 명분과 실리의 부재에서 무조건 내앞에 줄서라는 요구이다.
합리적 진보의 정체성과 선택의 책임에서 일신을 우선하는 사사로움이다.
검찰개혁 시국에서 광화문 집회에 발동동 구르던 서초동 집회의 우려가 있었다.
지지난 지방선거에서 두려울 정도의 승리가 있었다.
21대 원내일당 180석이 더민주 지도부의 실체는 아니었다.
평창 동계올림픽의 초반 우려에서 민족으로 도와주신 분들이 있다.
지난 지방선거 참패에서 그나마 건진 아찔한 경기도의 이유가 무었이었는지 기억해야 될것이다.
정치적 대의는 아니었다.
더민주의 정체성에서 일한 사람들 따로 있다.
우리편으로 명찰달기 전에 중한것이 있다는 것이다.
울타리에 말뚝박고 치간 관리하면서 선과 능력을 연장으로 사용하려는 패륜이 진보는 아니다.
받는것이 있으면 인정으로 갚는것이 사람의 도리이다.
내것이 중하면 남의것도 중하다.
사람의 개별적 능력은 무한하지 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다수의 대의를 우선하는 이유이다.
사법 리스크는 폐쇄적 절대권력의 과거를 망각한 정치사정과 병행하는 문제이다.
정권의 위치에 따라 적용방향을 달리하였던 정치사정의 불신이다.
집단적 권력의 일방적 지배는 자유와 균형을 요구하는 지적민심을 피할수 없다.
민주화의 시간과 진보하는 민심을 신뢰하라는 것이다.
조직논리의 한계에서 통신사회의 이해이다.
양극화의 경계에서 중도의 예속을 강요하는 정치는 과거이다.
작금의 정치불신은 국가의 미래에 이로울것이 없다.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면 경제도 안정될수 없다.
국정책임의 문제이다.
나를 희생할수 없는 인격으로 국정운영을 책임질수 없다.
사법 리스크에서 스스로 판단할수 있는 시간적 기회는 충분하였다.
정치에서 수신제가 치국평천하는 인격의 기본이다.
사법 리스크의 회피적 권모술수는 조직논리로 정당을 지배하여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트랩이다.
정치생명 운운하며 선택으로 위임된 의지를 강제하려는 가당치 안은 작태이다.
유권자의 권리와 상관없이 위임의 의견수렴 절차를 위협하는 것이다.
계파정치는 줄서기 문화에 머물러 있는 비생산적 행태이다.
선동정치에서 표현의 치열함은 일부이다.
일부의 주장으로 전체를 포장하는 허세이다.
수단과 방법에서 대의와 정치의 도의는 필요하다.
정당운영에서 절차를 무시하는 집행부의 독선은 지적되어야 한다.
진보의 창의적 요구에서 일반적 개념의 한계에 머물러 있는 지식과 분별력이다.
국가의 미래를 권세를 앞세운 조직으로 저울질 하는 울타리 정치의 망국적 행태이다.
조선후기 세도정치와 다를것이 없다.
정권의 독선을 성토하며 내것의 아집으로 가득찬 인격이다.
대빵의 영장기각에 집중할 시간에 계파의 지분에 열중하고 있다.
난세에 딴생각 하는것이 밥그릇의 행태이다.
불체포 특권 의견수렴에서 참호를 벗어난 투사적 결과의 진실이 하늘의 뜻이길 나도 바란다.
단식과 불체포 특권의 목숨줄 걸린 정치판 계산에서 산수가 안되는 문제적 의심이다.
정치가 예지의 영역에서 단순해 지는 것은 옳바른 방향이다.
승패적 정치의 개념에서 양면적 일수 있으나 진실은 현상이다.
법적판단의 진위를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대빵의 영장청구에서 법적 사필규정으로 이해하는 최고위와 개딸들의 선입견이 문제이다.
지기의 개별적 인륜은 정치의 대의와 무관한 것이다.
이것저것 사리의 분별력이 정치이다.
매사 보이는것 없이 초치는 무지의 치열함이 잘못된 것이다.
수천만 국민의 시선에서 일천명의 허세와 선동으로 대사를 이룰수 없다.
자가당착의 집단주의에 빠진 극단주의의 실체적 한계에서 낮바닦 힘들어 어긋장 놓는 것이다.
인물론의 잘못된 팬덤은 밥그릇의 허세이다.
조직이 아니라 통신사회 시대이다.
조직으로 지식과 문화와 통신의 의견수렴을 지배하려는 수작이 통하는 세상이 아니다.
더민주의 미래를 위해 화약통 짊어지고 계파정치의 생사에 뛰어든 29명의 장수이다.
민주당의 지적 합리성을 혁신위와 개딸들 앞세워 왜곡하고 있다.
사대부의 고집으로 처신하는 권세이다.
선택을 왜곡하는 강성론자들의 패거리 정치이다.
나는 실용주의자 이며 우파든 좌파든 강성론자를 배제하는 중도진보 이다.
살아생전 극단주의자들과 피를 섞지 안을 것이다.
식민사관을 망각하고 독립운동을 폄하하는 패권정치를 역사와 민족의 패륜으로 생각한다.
알량한 지식으로 지배를 획책하는 학문의 우월감은 우물을 벗어나기 힘들다.
지식은 책이 아니라 세상에 있다.
진화는 책이 아니라 현상으로 이루어 진다.
책상머리 지식으로 우쭐대지 말라는 것이다.
잘난체 해봤자 부처님 손바닦이다.
대권의 꿈이라면 내것이 아니라 울타리 밖 세상을 올바로 보아야 한다.
신념없이 대빵 눈치나 보면 결국 망한다.
낮바닦 분칠보다 속것이 실해야 한다.
2023.9.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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