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사로움.
21세기 민주주의. 본문
89 21세기 민주주의.
헬로윈 대회의 비극과 남북 군사력이 대치하는 하늘의 위기에서 생명의 희망은 있었다.
지하 195m 갱도에 갇힌 광부들이 십여일 만에 무사히 구조되었다.
이백여 미터 깊이 지하갱도에서 어둠과 사투를 벌이다 무사이 가족과 이웃으로 돌아왔다.
바위에서 떨어지는 물 한컵과 카피믹서로 하루를 소비하며 시간을 인내하였다.
죽음에 가까운 어두운 고립의 정체에서 구조작업의 발파소리에 그나마 귀환의 희망을 지탱할수 있었다.
생명과 인륜의 가르침을 우선하는 사회의 책임에서 정치와 물질의 갈등은 생존의 문제가 아니었다.
159명의 젊음이 불가항력적 짓눌림으로 육신과 심장과 폐가 찟어지고 터지는 절멸의 비극으로 절규하는 안타까운 시간에 이웃의 동행으로 절박한 생명의 의지를 부여잡고 있었다.
존재와 삶의 정체는 인륜과 이웃의 믿음이다.
팽목항의 처참함을 격으며 수년의 고통과 치유에서 이것으로 다시는 없을줄 알았던 비극이었다.
신의 선처에서 국가의 믿음에 의지하는 생명의 넉넉함은 선택의 정체를 상실하였다.
민생의 일상을 보호해야 하는 정치의 실용성에서 존재를 상실하고 있다.
정권순환에서 모호한 이분법적 국가정체성 혼란으로 국정의 연속성은 사라지고 나의 것을 우선한다.
국정에서 적대적 정치의 소모전은 역사의 교훈과 연속성에 의지하는 저장의 생산성이 사라지고 있다.
헬로윈의 비극 역시 비축된 데이터의 생산성 보다 울타리의 차별을 의식하는 양극화 정치의 모순이 있다.
나는 늬가 한것으로 하지 안는다는 잘못된 국가관이 연속성의 안정적 생산성을 뭉개는 것이다.
이분법적 선택에서 제도는 물론이고 인적자원 활용과 사업의 연속성도 낙동강 오리알이다.
국정의 연속성에서 남북문제를 필두로 모든것이 새로운 정권의 차별적 정책으로 위기가 발생한다.
정권초기 국가기관 운영에서 통치의 자기중심적 철학과 인적자원 활용에서 안정되지 못한 혼란이다.
양극화 정치의 대립이 진영의 불신으로 다양성을 이해하는 선택의 합리성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승리의 우월감에 빠져 지멋데로 하는 이기는 넘의 세상이다.
땅의 비극에 뒤질세라 오늘도 한반도 하늘의 위기는 무었을 위한 것인지 70년 분단의 민족적 교훈은 없다.
허구헌날 지치지도 안고 날세운 총뿌리 들이데며 평화의 순리를 위협하고 있다.
항공모함과 어둠의 F-35B에 이어 죽음의 백조 B-1B가 한반도 영해와 상공에 진입하였다.
한미동맹의 확인에서 한미 공중연합훈련이 하루 연장되었다.
민족의 미래와 혈육의 생사를 지정학적 위기에 더하며 알수없는 오리무중의 시간으로 기약없이 소비하고 있다.
오늘도 북쪽의 미사일 위협은 계속되었다.
4일에는 보란듯이 북쪽 전투기와 전폭기 180여대가 전술 조치선 근처를 비행하며 공대지 사격훈련 하였다.
남쪽에서 F-35A등 80여대의 전투기가 할테면 해보라고 꼴값에 대응한답시고 출격하였다.
한반도 하늘에서 냉전의 역사에 얶메인 70년 원한의 파괴적 위협이 극단의 대치로 치닫고 있다.
땅에서는 참담한 비극과 생사의 인내에서 생환의 희비가 교차하는 인륜의 우여곡절로 망상의 질곡에 있다.
무었이 이시대의 정치와 사회와 문화의 정의인지 지루한 위기의 상존은 무의식의 일상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대립도 비극의 무지도 상존하는 지정학적 경계의 파괴적 대치도 만성적 무의식이 되어간다.
21세기의 한반도 역사가 무었을 지향하는 것인지 알수가 없다.
파괴적 위기의 불감증에서 평화인지 전쟁인지 지리한 지정학적 이유의 한반도 정세는 미래의 불확실성에 있다.
반복되는 비극도 상존하는 전쟁의 위협도 양치기 소년 되어간다.
일상은 자본과 권력의 성취적 욕구에 묻혀 상존하는 냉전적 위기와 공존의 미래를 의식하지 못한다.
준비없는 무감각의 시간에 어느날 불가항력적 비극이 들이닥칠 기세이다.
이태원 핼로윈 축제에서 발생한 반복되는 무의식의 처참한 비극에 통탄한다.
일 벌어지면 행색이 앞서는 울타리 고쳐치고 진실과 상관없는 늬것 내것의 정치적 책임으로 호들갑이다.
책임에서 정치적 이해타산을 우선하는 철없는 오지랖은 양극화의 골만 깊어간다.
참사 애도기간에 존재의 눈도장을 위해 연례행사 처럼 벌어지는 진영논리의 집회가 비극의 현장에서 있었다.
전 정권을 중심으로 하는 진보는 현 정부의 관리책임을 물어 진실인지 사실인지 모르는 탄핵을 외친다.
보수는 과거의 비극을 거론하며 전 정부에게 재발을 책임지라고 억지춘향의 오리발이다.
젊음의 희생에서 모두의 잘못인데 나의 허물은 없고 너만 죽일넘이다.
희생자와 유족들의 아품과 국민의 안타까움은 양극화 정치의 승패적 논리가 한심한 것이다.
참담한 비극을 애도하는 유가족의 슬픔과 항의에서 관리주체를 비호하는 도대체 이해할수 없는 상대적 논리의
반대집회가 버젓하다.
희생자의 비극과 유가족의 애도와 항의를 반대하는 집회에서 구호와 악기는 동원하지 안았다고 생색이다.
논리부재의 망상에서 어처구니 없게도 이것이 반론의 생산성을 유지한다는 씨알 안맥히는 참담한 주장이다.
민주주의가 민생을 위해 있는 것인지 정치의 이해타산을 위해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운 참사의 현장이다.
정의와 상식의 논리에서 적대적 상대평가를 우선하는 양극화의 승패적 정치이다.
생명의 흔적이 남은 장소에서 좌우논리로 갈라져 너죽고 나 살자는 것이다.
정치판의 상대적 논리에서 인연과 인륜적 양심은 없다.
무었을 위한 민주주의 인지 양극화와 밥그릇에 줄서는 진영논리에서 옭고 그름의 분별력은 없다.
소수의 집단을 형성하여 권력의 주체를 모방하는 철없는 국수주의의 난동이다.
선악의 경계에서 뵈는것이 치졸하고 한심한 오지랖은 우찌되어도 내편이다.
우리편과 밥그릇의 배떼기가 우선하는 속창시 없는 민주주의이다.
적대적 상대평가에서 정의와 공정은 개밥의 도토리되었다.
너의 편과 나의 편만 존재하는 정치에서 무었을 지키기 위한 민주화의 희생이었는지 불확실하다.
21세기 초입에 민주주의와 자유가 시대의 대세로 존재하는지 혼란스러운 시간이다.
오천년 홍익인간정신을 식민사관과 4.3의 비극으로 죽쑤어 버린 것이다.
다양성의 개념에서 이웃을 존중하는 합리적 절차와 결과를 수용하는민주주의는 퇴색되고 있다.
획일성을 강요하는 적대적 사고의 상대적 논리에서 선거의 불복이 선택의 결과를 정리하는 수순이 되었다.
절차의 합리성에서 내가 이해하지 못하면 다양성의 다수도 결론도 수용할수 없는 편협한 오지랖이다.
아직 대한민국은 총이 없어 그나마 다행으로 공권력에 저항하는 한계가 있다.
절차적 결과에 불복하여 우리편으로 떼지어 입법기관을 아작내는 태평양 건너 대국의 리얼한 민주주의 액션에
비교할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서 다행이다.
한국속담에 아~들 앞에서는 찬물도 못마신다고 하였다.
대국의 문화라고 하면 사족을 못쓰고 따라 행하는 분들의 오지랖이 조만간 큰일 하실것 같다.
숨통을 조여오는 땅의 비극과 배떼기 터지는줄 모르고 할태면 해보자는 무모한 하늘의 위기에서 진영논리의
상대적 집착은 공멸의 순간을 망각하는 무지이다.
민주주의의 절차 선거에서 합리적 결론의 수용과 동의가 우리편의 우월적 집착으로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체제를 충족하는 합리적 결론에서 승패의 패권주의가 대립을 선동하여 적대적 불복을 일상화 하고 있다.
문화의 선입견에서 대국이나 중견국이나 개표의 결과가 끝이 아니다.
선택에서 적대적 불복의 파괴적 행위가 마무리의 끝이 되었다.
민주주의의 정의가 정도이탈의 위기에 있다.
국제질서의 주체를 주장하는 민주주의 체제가 절차를 부정하는 논리부재의 혼란에 있다.
민주주의의 전파와 확장에서 다양성을 수용하는 합리적 결론의 동의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무었으로 민주주의를 주장할 것인지 논리부재의 불복과 폭력적 현상이 심각하다.
절차에서 폭력적 볼복을 일삼는 승패적 패권주의로 다양성의 민주주의를 설명할수 없다.
민주주의의 방어적 개념으로 이해하는 한반도 상공의 위기가 무었을 위한 대립인지 아리송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실현과 확장에서 양극화의 적대적 집착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갱도의 어둠에 고립된 생명과 인륜의 위기에서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이웃의 공유가 이시대의 민주주의이다.
인륜의 공유에서 비극은 비극으로 동행적 애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치가 우선이 아니라 사람사는 세상의 이야기이다.
잘못된 팬덤정치가 긍정의 수용성을 부정으로 경직된 집단의 울타리에 가두는 폐해이다.
승패에 집착하여 폭력과 파괴로 절차를 지배하려는 것은 권위주의의 절대를 모방하는 패권주의 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정치인지 집단주의를 위한 정치인지 정의를 확실하게 하라는 것이다.
몸둥이 하나로 독재와 권위주의에 저항하며 민주주의의 불나방 되었던 순수가 바다건너 불구경 한다.
낮바닦 명색에 집착하는 말뿐인 민주화 세대이다.
민생의 디테일에서 민심을 우선하는 지성의 실용주의가 민주주의의 미래이다.
국제질서와 태평양의 당위성에서 민주적 존재의 동행적 이해가 필요하다.
민주주의 올바른 질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민생과 민심을 우선하는 사람사는 세상 민주주의의 대세를 유지할수 있다.
철지난 이념적 경계의 정치에서 소통을 통한 글로벌 문화의 공유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요구하고 있다.
냉전의 관성에 있는 대립과 경계적 문화에서 공유와 공존의 실용적 욕구이다.
냉전적 관성의 양극화와 부분으로 전체를 왜곡하는 집단주의의 이기적 정치를 개선하라는 것이다.
상대적 논리로 민심을 호도하여 경계적 모순을 합리화 하려는 자가당착적 논리는 자기중심적 행위이다.
다수의 합리적 결론에서 소수의 물리적 행위와 선동으로 대의를 훼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진영논리와 세대 또는 이성의 다름을 갈라쳐 감성적 갈등을 이용하는 왜곡된 선동의 정치는 개선되어야 한다
지식과 문화의 지성은 진실의 왜곡과 국수적 논리의 선동에서 옳고 그름의 분별력으로 선택할수 있다.
독립된 지성을 다름의 경계적 울타리에 가두려는 어설픈 정치 몰이꾼이 통신사회의 선(인륜)을 왜곡한다.
2022.11.6일.
'나의 글방.' 카테고리의 다른 글
| 29명의 장수. (0) | 2024.02.22 |
|---|---|
| 이태원의 비극. (0) | 2024.02.20 |
| 정치사정과 검찰개혁. (0) | 2024.02.19 |
| 망천과 민주연합. (0) | 2024.02.19 |
| 4.사관과 이념의 갈등. (0) | 2024.02.03 |